주변세계와 함께 가기

 

김경미(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1. 둘레세계(Umwelt)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지구라고 해도 좋겠다-를 생각해보자. 이곳에는 누가(무엇이) 살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강의하고 있는 이 공간을 생각해보자. 여기에 누가(무엇이) 살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보는 길가의 나무는 어떤가? 그 나무는 여름내 노래하던 매미가 머무는 곳이고, 새가 둥지를 트는 곳이기도 하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 매미, 새에게 이 나무는 어떻게 보일까? 사람에게 이 나무는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매미에게는 엄청나게 큰 공간일 수 있고, 새에게는 적당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각은 다른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야곱 폰 웩스쿨이란 생리학자는 떡갈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떡갈나무는 많은 동물들이 살면서 백 여가지의 다양한 움벨트를 꾸리고 있는 대상으로서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한때는 이러했다면 또 다른 때에는 저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똑같은 부분이라도 어떤 때는 넓게 보이고 어떤 때는 작게 여겨지기도 한다. 떡갈나무의 목재 또한 딱딱한 때도 있고 부드러운 때도 있다. 나무가 보호해줄 때도 있고 위협적일 때도 있다. (<떡갈나무 바라보기> 137면)

 

야콥 폰 웩스쿨은 [동물과 인간세계로의 산책]을 쓴 에스토니아 출신의 생리학자로 곤충을 비롯한 동물이 인식하는 세계를 상상해본 선구자였다. 그는 동물이 경험하는 주변의 생물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움벨트(Umwelt)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영어나 독일어에 동물이 경험하는 그들만의 세계를 나타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용어 대신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자연’, ‘경험’ 또는 ‘현실’ 같은 용어로는 동물이 경험하는 세계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움벨트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의 동물에게 특별한 유기적 경험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계에는 단 하나의 공간과 시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체에 따라 수많은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개개의 주체는 자기 나름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고유한 환경에 속해 있다 - 야곱 폰 웩스쿨의 <이론생물학> 중에서

 

환경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세계이다. 그것은 공기, 물, 바람, 물, 생물 때로는 문화로 존재한다. 환경은 영향을 주고 받는 온갖 만물로 구성된다. 생명체는 환경 속에서 태어나며 동시에 그 일원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동시에 인식하는 동물은 없다. 인간의 시각은 많은 시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자신을 놓음으로써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2. 두 가지 에피소드

 

코끼리의 죽음

 

인도 서(西)벵갈주의 잘파이구리에서 생긴 일이다. 기차 철로에 끼인 아기 코끼리를 보호하려다 어른 코끼리 5마리가 기차에 치여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아기 코끼리 2마리도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코끼리 7마리가 고속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코끼리들이 기차를 피하지 못한 것은 아기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동하던 코끼리 무리 중 아기 코끼리 2마리가 철길을 건너다 철로에 발이 끼었다. 아기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어른 코끼리들이 애를 썼지만 결국 아기들의 발을 철로에서 꺼내지 못했고, 기차가 다가오자 이를 피하지 않은 채 코끼리 여러 마리가 아기 코끼리 2마리를 감싼 채 몸으로 버틴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아기코끼리를 몸으로 감쌌던 어른 코끼리 5마리가 그 자리에서 사고로 사망했고 아기코끼리 2마리도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기차에 치인 어른코끼리 1마리도 중상을 입어 치료 중이다.

 

신문에 따르면 코끼리들이 사망한 자리에 다른 코끼리들이 찾아와 동료의 사망을 슬퍼하며 애도하는 바람에 기차 운행이 한동안 지연되기도 했다.

 

해당지역은 코끼리의 주요 이동로로 3개월 전에도 다른 코끼리가 철로에 발이 끼어 죽은 적이 있다. 인도 철도 당국은 코끼리 안전을 위해 장소 구간의 열차 속도를 시속 20마일(약 40km)로 제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곰의 자살

 

최근 중국의 한 곰 사육장에서 어미 곰이 새끼 곰을 질식시켜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전해졌다. 중국 북서부 외곽 지역에 있는 이 농가에서는 곰의 쓸개즙을 채취하기 위해 곰을 포획해 ‘크러시 케이지’로 불리는 아주 좁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고 있었다.

 

사건 당일 사람들이 우리에 갇힌 살아 있는 새끼 곰에게 고무 호스를 삽입해 쓸개즙을 빼내려 하자 새끼 곰은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새끼 곰의 비명을 들은 어미 곰은 우리를 부수고 새끼 곰에게 달려갔다. 쓸개즙 빼는 작업을 하던 사람은 도망쳐 버렸고 어미 곰은 새끼 곰이 갇힌 우리를 부수려 시도하다가 결국 부수지 못하자 새끼 곰을 끌어안아 질식시켜 죽였다. 그리고는 자신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사람만이 귀한가?’

 

사람만이 귀한가? 이러한 질문은 실은 오랜 질문 가운데 하나였다. 우선 조선의 사상에서 한 줄기를 끌어내 본다. 다음은 조선후기 실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홍대용(1731~1783)이 한 말이다.

 

허자가 대답하기를,

“천지간 생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귀합니다. 저 금수나 초목들은 지혜도 깨달음도 없으며 예법도 의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금수보다 귀하고 초목이 금수보다 천한 것입니다.”하였다.

실옹은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진실로 사람이로군.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禮義)이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며,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으로써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로써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 다 마찬가지다. 대저 지혜까 없는 자는 그 지혜가 없는 까닭으로 거짓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자는 그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하는 짓도 없다. 그렇다면 만물이 사람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 아니겠느냐. 또 봉황(鳳凰)은 높고 천 길을 날고, 용(龍)은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있으며, 시초(蓍草)와 울금초(鬱金草)는 신을 통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재목으로 쓰인다. 사람과 견주어 본다면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하냐? 대개 대도(大道)를 해치는 것으론 자랑하는 마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만물을 천하게 여김을 자랑하는 마음의 근본이다.”하였다. (홍대용, <의산문답>)

 

4. 주변세계와 함께 가기 - ‘공명(共鳴: 함께 울기)’으로 가는 길

 

동정곡(同情哭)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는 유배된 지 넉 달 뒤에 세조의 지시를 받은 관리에 의해 자살을 강요당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남편인 단종이 궁궐에서 쫓겨난 뒤 정순왕후는 지금의 숭인동 동망봉 기슭에 초가삼간(정업원)을 짓고 살게 된다. 동네 여인들은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에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한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며 같이 슬픔을 나누었다.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애타는 기원도 보람 없이 단종의 비보가 날아왔을 때 그녀는 18세였다.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소녀 왕비가 가슴을 치며 통곡이 매일 이어지자 같은 마을의 여인 누군가 함께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 집 저 집에서 함께 우는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산 아래 마을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녀들이 정순왕후의 처지를 동정하며 함께 서러움을 나눴던 이 통곡을 사람들은 동정곡(同情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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