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스스로 이름 짓는 시인/시민이 되고 싶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타이틀로 6명의 시(市詩時施視翅)인들을 만났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지구화가 등장했고, 제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으나 긍정적인 면을 보았을 때, 나라마다 다른 사회적 배경으로 빚어지는 여러 현상을 ‘함께’ 극복해나가는 것은, 혹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라의 차원에서 벗어나 세계의 주민들이 시민으로서 함께 사유한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1. 함께 만들어가는 콜라주


세계라는 말 자체를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이 넓은 세상을 단 한 사람이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이냐는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조원규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나의 주변에서 느낀 문제의식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그것을 묵인한 채 맞춤양복처럼 삶의 틀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문제제기를 함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때문에 나의 내면을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영화 <I'm not there>에 나오는 ‘네 시대를 노래하라’는 말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 공부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배운 것을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이상 그 사실은 사실로만 남지, 더 이상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나의 내면이 사회의 기본적인 문제들과 연결 되듯, 나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개인이 중요한 지금 시대의 배경에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 무조건적인 같음을 추구하는 것보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 한 가지의 통일된 색이 아닌, 여러 색을 섞고 뭉치고 조합하는 콜라주를 원한다. 내가 하자 안에서 죽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콜라주이다.


이번학기 목표가 이상적인 관계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것인데, 그저 감정만이 중요한 관계를 넘어서 ‘동료작업자’가 무엇인지 재질문하고자 했다. 민욱의 워크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레드와의 협업이었다. 공동 작업을 할 때 가장 두려운 건 나라는 주체가 흡수되거나 묻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동 작업은 지금 영상팀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습작 프로젝트다. 서로 갖고 있는 생각의 지점을 공유하고 그것을 토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달맞이 축제’, ‘정선’, ‘지구마을 젊은주민’ 시리즈를 보며 공동작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예전에 해왔던 공동 작업들은 대게 거대한 일이거나 작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우리’가 훨씬 더 큰 것들이 많아서 감을 잡기 힘들었다. 민욱과 프레드는 협업을 통해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나도 하자 안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고 싶다.


2. 제도에 저항한다는 것


워크숍에 초청된 시인 모두 제도권의 경계를 넘나들며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안학교에 있다는 이야길 하면, 제도에 저항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나는 저항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제도권을 기피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가끔 고등학교를 3년간 다시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에 문제의식을 주장하고, 보안을 요청하고자 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옥에 갔던 시인, 현 대통령을 고소한 시인, 미술관의 초청을 받았음에도 버스정류장에 작품을 전시한 시인 모두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 모두 사회에 필요한 일을 했으며, 그 필요가 기여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생활을 하며 온 몸으로 함께한 내 주변의 10대는 제도 앞에서 맞서 싸우기보다는, 제도가 주는 혜택은 받되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는 은근한 저항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386세대가 민주화, 변화를 추구했다면 지금의 세대는 무엇을 함께 추구할 것인지 질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전에 나를 무엇으로 부를지 말하자면, 나는 이야기전달자로서 작업하고 싶고, 그 작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시인들의 워크숍을 통해 한국은 경제적 성장이나 발전이 더 이상 필요 없으며 힘들다 걸 알 수 있었다. 지하철만 가도 함께 발전하자는 캠페인성 광고가 많은데, 무엇을 위한 발전인지 질문해야 한다.


88만원 세대가 아닌,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다는 홍성태 시인의 말처럼, 우리 세대는 스스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습 공간 활성화 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현 제도 교육은 10대를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또, 제도교육이 주체로서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그 누구도 한 사람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몰개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에 남아있는 10대가 무기력하게 출석일수만 채우게 되는 이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 안팎의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높여 제도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제도 또한 10대의 제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는 이 대화의 과정을 시도하는 것이 기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사회에 기여하는 세대가 되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이름으로 함께 발전하길 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에 저항하되 제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싶다.


임민욱 시인의 워크숍에서, “실존이 없는 예술은 사이비다.”라는 말을 접했다. 제도의 틀 안에서 위상과 생존만을 위한 전략적 작업에 대한 비판이었다. 제도에 저항하는 것, 함께 만들어가는 콜라주 모두 하나의 형식적인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사이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나는 유동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보편이나 객관에만 맞추는 게 아닌, 계속해서 변해가는 하나의 목소리이고 싶다.


밤비(영상팀/주니어4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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