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에세이 - 두란
3분을 둘러싼 3개월
정선에서 나는 색을 찾고자 했는데, ‘색’자체가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탄광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곳은 ‘검을 것’이라고 미리 정해두었던 것 같다.
정선에서는 한 장소에 대비되는 것들이 함께 있으면서 빈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첫날, 고한의 구읍사무소가 있는 거리에는 즐비한 스키용품 렌탈샵과 커다란 두 개의 편의점, 그리고 식당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우리 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거리는 조용했으며 편의점은 한가해보였고 그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공허한 인상을 풍겼다. 렌탈샵은 스키의 특성상 특정 시즌에만 운영이 가능하다. 그럼 이 묘한 느낌도 그 시즌을 탄단 말인가. 사람이 사는 장소, 공간이 특정 시기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뭘까.
‘폐광 - 흑백’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동원탄좌, 그 흑백의 공간 안에서 건물의 틈 사이로 보여지는 바깥 풍경과 동원탄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읍내. 그 둘에게서 보여 지는 색의 차이.
정선에선 이런 광경들이 계속 보였다. 그게 나에게는 굉장히 묘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어떤 곳에선 내가 그 상황을 보는 것이 불편하게도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게 어떤 것일지 궁금했고 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곳을 찾았다.
[3분] - 고한 아랫마을에서 윗마을 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의 총 소요시간.
고한에는 탁한 청록색의 튀는 신식 모노레일이 있는데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움직이는 일종의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다. 고한은 마을이 마치 층으로 구분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윗마을,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한다)과 시장이나 식당, PC방 등 일상과 관련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아랫마을)이 떨어져있다. 내가 마음대로 두 곳을 나눠도 될지 모르겠다만 모노레일은 그 두 마을을 이어준다.
그 강원랜드에서 지역의 사회공원 차원에서 만들었다던 모노레일을 두고도 마을사람들의 입장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나와 함께 탄 할아버지께서는 모노레일이 나이 드신 분들을 배려하고 무겁게 시장을 봐와도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며 시장의 활성화를 돕는다고 말씀해주셨고, 에이스가 만난 아주머니께서는 모노레일을 만드는데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고 실제로 모노레일의 전기세나 수리비 같은 것을 주민들이 감당해야하는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끼신다고 하셨다. 둘 다 수긍이 가는 말이긴 한 것 같다. 나는 그곳에 살고 있지 않고 처음 가본 사람으로서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편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한 번 모노레일을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갔었는데 사망할 뻔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약 내가 주민이었다면 아주머니처럼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소요시간은 약 3분.
3-4분가량을 타고 올라가면서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중턱 즈음에는 또 중간마을이 있는 묘한 광경을 봤다. 그 곳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겉을 먼저 보자면 여느 아파트와 같은 크기의 강원랜드 사택과 달리 중간 마을은 작고 작은 집들이 모여서 겨우 사택의 반도 안 되는 규모이다. 베이지 계열의 사택. 그리고 빨강, 파랑, 주황, 초록 등 원색의 칠이 눈에 띄는 중간 마을. 딱 봐도 튼튼해 보이는 사택과 언젠가 꼭 수리가 필요할 것 같은 중간 마을. 겉만 봐도 둘은 확실히 달랐다. 섣부른 판단이 위험한 것은 알지만 나에겐 그 3분이 고한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고한 우체국에서 만난 아저씨는 정선의 검은 색이 많이 사라졌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있다며 그것을 ‘그늘’이라고 하셨다.강원 랜드가 정선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더욱이 인간 생활의 최적지라고 하는 해발700m 지점에 고한 시장, 상가가 형성되어, 먹고 자고 소화가 잘되어 3快, 숨 쉬고 사랑하고 마시기 좋아 3好, 스키, 골프, 카지노 3樂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곳” 으로,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음)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윗마을에서 큰 건물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밑에는 어쩌면 전혀 아랫마을과 윗마을처럼 모노레일이 닿아있지 않은 중간마을도 있는 것이다. 이토록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사람 사는 곳의 갈림이 드러나는 경험은 처음이다.
그늘이란, 정선에 와서 느꼈던 그 묘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늘은 빛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정선에서는 어느 쪽을 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계속 느꼈던 대비되는 둘은 서로 공존하고 있었나? 그 둘이 어우러져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지금은 아직 정선의 개발이 진행 중이기 때문일까? 개발이 만약 중간마을을 과 아랫마을을 없애고 모두 윗마을 같아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공존도 아니고 공존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럼 정선은 어떤 마을이었으면 하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늘과 이면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듯하다. 꼭 정선뿐 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광명시에도 그런 모습은 있다. 단지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뒤바뀐 것뿐. 그럼에도 내가 정선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느낀 것은 어떻게 된 걸까? 일단 내가 학교의 프로젝트로 갔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인식할 수는 있지만 의식까지 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하거나 배우는 것으로 인식을 하면 원래 알던 것도 새롭게 보게 되거나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동선이 있는 ‘모노레일’이라는 걸 통해서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눈으로 멀리서 봤으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멀리서 먼저 봤을 때 중간에 어떤 곳이 있는지는 잘 보지 못했기도 했다.) 모노레일은 밑에서부터 위로 정해진 노선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드라마틱하게 지나간다. 이 두 가지가 나한테는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당시 내가 읽고 있었던 ‘공공의 더 큰 이익’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그 책은 인도의 작가가 쓴 인도의 댐 건설, 그리고 그 댐 건설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고 밟힌. 결국은 어쩌고저쩌고 해서 우리의 삶을 좀 더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댐이 ‘우리’가 생략되는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고발 같은 책이다. 정선의 경우도 아리아리 정선을 외치고 정선을 살리고자 강원 랜드가 들어오고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지만 시즌이 아니면 텅 빈 길거리, 그에 맞게 보란 듯이 쭉 이어져있는 스키 용품 렌탈 숍들, 강원 랜드 사택 옆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의 실제 차이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이익인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말하기와 전달]
나는 정선을 다녀온 후 페차쿠차의 주제를 ‘3분’으로 하기로 했다. ‘주어진 3분’동안 내가 고한의 모노레일에서 느낀 중요한 ‘3분’가량의 경험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럴 때는 가장 전달하고 싶은 말을 중심으로 정리를 했어야했지만 나는 본론보다 서론이 더 긴 발표를 해서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하고 말았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말하는 것과 발표, 전달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진전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 그런 과정을 겪고, 나중에 주제연구를 공부하면서 개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개요 잡는 것을 하면서 내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고 평소처럼 버벅거리는 일도 많이 없어졌다.
주제연구에 대한 얘기를 좀 하자면, 학기 초부터 시작해 계획을 짜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도 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주제에 대한 내 결론을 내볼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학기 초에 쓴 학습계약서는 정말 그대로 진행되지 않더라. 고민하고, 얘기하고, 해보면서 계속 수정 되었다. 그렇다고 전혀 생뚱맞은 게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방황이니 뭐니 하면서 초반에 주제연구를 게을리 했었는데 주제 연구는 스스로 결정한 공부인 만큼 책임감도 느꼈다.
중간발표는 원래 디자인팀 안에서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가 갑자기 공연 팀처럼 오픈하여 발표를 해도 좋겠다고 하셔서 단번에 우리의 발표는 오픈하는 것으로 결정! 그때 단지가 잠깐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 발등에 불이 붙었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얘기하는 거 정말 못하고 싫은데 내 주제연구 발표를 못하고 싶지는 않고 많은 사람들이 코멘트 해준 나의 말버릇 ‘아’ , ‘아니요~제가요~’ 들로 내가 공부한 것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이 내 이야기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그래서 그 상황과 내 눈앞의 사람들이 공포로 다가오지 않도록, 그런 내 자신이 싫어서 급 열심히 했다.
주제는 ‘삶을 디자인 하다 - 나를 디자인하다!?’ 이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주로 공부를 했는데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나 책에서 말하는 것 등을 공부하다 보니, 그리고 꼭 이 연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시민문화 워크숍이나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정말 나 혼자만의 문제나 완전히 개인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자칫 잘못 링크가 걸리거나 너무 거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정선 작업 발표가 어려웠던 것에 이런 지점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 - 마을과 나, 그 안에서 표현한다는 것
3개월간, 그리고 정선에서부터. ‘하자’라는 마을과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의 출발은 ‘말하기’에서 부터였다. 나는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무섭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나 글로 써놓은 것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말을 꼭 해야 된다.’는 상황을 나는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힘들어했지만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럴까. 지난학기 까지는 스스로 ‘시도’라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시도조차 두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볍씨 안에서도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존재했으니까.
돌아가면서 이야기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패스를 해도 또 돌아오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 말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그러다 내 차례가 끝나면 땡! 안심해버리고 만다. 이런 방법은 다 같이 얘기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종종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다. 주제에 대한 생각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거나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일 때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차례가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 끝이다. 그런 상태에서 말을 하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떨면서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은 내 얘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에 코멘트까지 하면 나는 혼수상태다. 말하기 조심스러워서 그럴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런 상태에선 코멘트를 받아도 대체 어떤 부분에서 받은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정선에서는 매일같이 몇 시간을 리뷰를 했다. 어떤 것을 보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주제들까지. 정선에서 나의 이런 문제가 두드러졌다. 점점 하고 싶은 얘기조차 없어지는 것을 느낄 때, 그건 내가 있으나 마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을 때면 옆 사람, 혹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했다.
어느새 나는 ‘표현’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말은 물론이거니와 글, 작업을 보여준다는 것이 점점 표현의 의무처럼 느껴졌다. 해야 되서 하는 것, 그렇다보니 그 의무는 점점 내 목을 조여 왔고 결국은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가고 약까지 먹어야했다.
표현은 자기의 생각, 느낌을 의도해서 자기가 끄집어내는 것이다. 표현을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 더구나 우리는 작업자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때로는 말이 필요할 수도, 어떨 땐 말보다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음악을 들려준다거나, 전시를 해 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소통방식은 (굉장히 개인적인 문제하고 연결되지만)말을 꺼낼 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질 것 같다. 사실 이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지금은 이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전체적으로 먼저 말을 꺼내기를 어려워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내가 보고 느끼고 고민하고 표현하고 힘들었던 모든 문제가 너무 사적인 것 같고 응석을 부리는 것같이 느껴져서 내가 마음을 고쳐먹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개인적’이라는 것은 없으며 이제는 그게 정말 개인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얘기를 꺼내놓고 봐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3개월간의 이런 과정은 사실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하는 문제로 쉽게 결정될 수 있었다. 반대로 지금의 나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쉽게는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힘든 것은 계속해서 있을 것 같다.(오히려 더 힘들지도….) 글을 쓰면서 나를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고, 글을 썼다고 해결된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힘이 될 것 같다. 지금은 그래도 쓰는 것부터 하고 있는데, 그게 말이 되고 언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