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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75
내 위치를 만들어가며, 시대를 읽어가기. 정선에서의 난 '카지노 자본'과 '석탄 시대'를 지우려하는 그곳의 사회적 문제를 보게 되었다. 난 이 지역의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자본의 변화를 (석탄) -> (카지노)로 읽어냈다. 그리곤 내가 알러지를 일으키는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는 카지노라는 자본을 비판하고자, 이야기를 찾고 만들어갔다. 그렇게 카지노와 지역주민 간의 문제, 카지노로 인해 노숙자가 된 사람 등 카지노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캐내는 것에 집중했었다. 이 과정에서 난 섣부름을 범했다. 정선의 경제자본인 '카지노'에는 비판으로 당장에 바꿀 수 없는 많은 고리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러한 섣부름은 꽤 오랜 시간동안 집중해왔던 용산의 문제를 권력과 토건자본의 불순함으로 들여다보고자 한 개인주제연구 발표에서도 들어났다. 나의 연구주제 발표에 대해 '80년대 사람 같다', '여전히 자본의 문제'로만 풀어간다는 코멘트가 날아오면서 나의 섣부름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동안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시대읽기' 라는 것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시대읽기'라는 것을 시대의 문제를 읽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문제'들을 쫓으며 관찰했고, 그것에 대해 말해왔다.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혀, '바꿔라!'라고 외치고, 행동했었다. 그러나 '시대읽기'는 시대의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닌, 그 문제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 지, 그리고 그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지 까지도 읽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 시대의 문제들은 정선의 문제처럼 자본과 지역주민, 관광, 한국의 한탕주의/문화 등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 읽기란 '문제'만을 읽는 것이 아닌, '시대'를 읽는 것 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이 '문제'와 그것의 '시대'를 함께 읽어가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여러 번의 나의 허술함과 섣부름을 마주하는 힘든 과정이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문제만을 보는 관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시대' 안에서, 내 주변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살아가며 걸리는 문제들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일상에 서서 내 흐름을 타며 시대를 읽어가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진정으로 시대를 읽는 '관점'이 생길 것 같다. ![]() 이 산은 내겐 '멈춰진 이전의 시간'이고, '검은 섬'이었다. 정선의 동력이었던 '석탄'으로 쌓여졌지만, 시대가 지나 새로운 동력인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멈춰서고 지우고 싶은 것이 된 '시간', '섬'. 지금 이 산 위에는 카지노가 있었다. 난 그것을 '새로운 시간'이라고 불었고, 지역의 문제로 판단했다. 지역의 어떤 주민은 카지노로 인해 지역에 '멍'이 들었다고 했다. 정선의 사회적 문제에는 많은 고리들이 연결되어 있어, 쉽사리 '멍'을 해결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 새로운 시간이 건강한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 할 수는 있기에 과제로 남긴다. 난 이 검은 산이 내가 작업한 '검은 섬'으로 남아, 하얀 불빛으로 씻겨주고 싶은 '섬'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시간은 '섬'처럼 동 떨어지는 것이 아닌, 조화롭게 잘 흘러야 혼란에 빠지지 않지 않은가. - 같은 시대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나'와 '너' -시대 읽기를 함께 하고 싶다. 민욱은 '나는 어떻게 너의 현실에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물음가지고 '나'와 맺는 무한한 '너'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제시한다. 난 언젠가부터 내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작업)가 내가 있는 이곳 하자의 '너'들에겐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왔었다. 정선에서 나의 이야기의 섣부름을 보게 된 뒤론, 더욱 자신감도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 말하기를 피하곤 했다. 질문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위치에서 혼자가 아닌, 자신들의 위치와 흐름을 지지하는 마을을 갖은 시인들을 만나면서 '나의 마을(동료그룹)은?' 이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일상 인 이곳 '하자'로 눈을 돌리자 나의 이야기에는 흥미를 갖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하자의 '너'들 또한 '기후변화'와 '평등'과 같은 각자의 눈으로 시대읽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나의 일상에서부터 '나'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너'들의 이야기가 섞인 '우리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받은 질문으로 생각을 시작하게 되고, 떄론 나의 생각을 진전시켜나가기도 했다. 나에게 하던 '왜'라는 질문을 '어떻게'로 바꿀 수 있게 해주었던 것도 이 곳 하자의 '너'의 질문이었다. 그렇게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생각의 폭, 전환을 줄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너'이고 싶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항상 하자의 '너'들과 분리시켜, 시대의 문제를 내 고민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하자의 나와 '너'가 같은 시대를 살고 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 지금은, '너'들의 이야기를 분리시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내 고민과 연결지점을 찾아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공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와 '너'들이 함께하는 일상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에 의미를 만들어가고 싶다. 앞으로 내가 갖고 있는 시대의식을 잘 키워나가는 것 또한 소중히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진득하니 눈에 보이는 <문제>만을 읽는 것이 아닌 <시대>를 읽는 것을 함께하기를 고민하며, 내가 있는 일상을 나의 위치로 다지고, '너'들과 나누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려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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