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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58
2010. 구나에세이 "손을 뻗어 보다" 다시 문 연 학교 : 크리킨디 학교? 처음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 학교만들기팀을 해보겠냐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라며 이마에 몇개의 큰 물음표들을 그렸다. 탄광마을 정선과 버마난민들이 살아가는 메솟을 다녀오고, 수료가 다가올 무렵 소개받은 크리킨디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시즌2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상상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꿈을 꾸며 헤엄칠 것인지가 쉽게 눈 앞에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겠다던 지난 수료에세이의 마지막 구절을 '하자'라는 공간에서 또 다시 이뤄내는 것이 과연 나에게 적합할까… 당장에 검정고시를 볼 것도, 돈을 버는 게 목적도 아니지만 일상을 챙길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마련하는 동력이 필요했던 여러 고민들의 결말은 결국 "매체의 기술보다, 내용에 먼저 집중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크리킨디이야기를 소개받고난 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오로지 '자기표현'에만 집중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일을'하는 경험을 통해 배움과 삶을 일치시키는 연습을 하자에서 해보겠다는 기대를 품은 채 학교만들기를 시작하였다. 내 이야기가 오로지 내 마음에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바깥 세계에도 감동을 주도록 하기, 생각과 행동과 말과 세계가 모두 함께 섞이도록 만들기, 힐끗 보기를 버리고 세계를 응시하고 읽어내기. 이제 내가 발들여 놓은 이곳 하자작업장학교는 오로지 내 재능과 욕구로 홀로 잘 설 수 있다는 격려보다도 옆에 누가 있는지를 알고, 그 다른 개개인들이 모여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민다. 3월 수료식 이후 본격적으로 시즌2학교만들기가 시작되었고, 학교만들기팀은 스스로들이 잘 쓰일 수 있는 사람으로, 팀으로서 움직이기 위해 아주 소소한 것부터 근본적인 것까지 질문을 다시 해보아야 했다. "만약 시즌2가 우리끼리만 좋은 일들로 보람을 느끼는 학교라면.. 굳이 필요할까?" "그럼, 어디에서 뭘 할건데?" 아무리 불을 끌 물방울을 입에 물고 있어도 어느 숲에 불이 났는지 알고 있지 않으면 불을 끌 수가 없다. 심지어 나에 대한 관심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남에 대한 관심은 때로 애써 배워야 하기 때문에 늘 주변에 대한 섬세한 안테나를 키고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시즌2학교만들기팀은 시즌1의 경험에 의존할 수만은 없었다. 시즌2를 하겠다는 결정이 여느때와 달랐던 점은 '학교만들기팀'의 일원으로 보다 더 주도적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좋은 팀워크로 뭉쳐 일하는 것과 동시에 개개인이 모두 "기획자"가 되는 과정에 대해 기대를 가졌다. 엉성하게 상황을 만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연습을 해보면 차차나아질 것이라 되뇌이면서 말이다. 앞으로 시즌2 학교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시대적 배경에 근거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과 상황을 움직이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눈. 즉 나무에만 치중하지 않고 숲을 함께 보는 능력을 필요하다. 매체공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에 목적을 두고 작품활동을 하는 것보다 먼저, 내용에 기술을 부가적으로 동반하여 전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의 탄탄함을 잘 거쳐보는 것이 내가 경헝해보고자 하는 일이었다. "프로세스"의 중요성은 디자인워크숍에서 거듭 강조되는 부분이지만 시즌2를 굴러가게 만드는 각각의 톱니바퀴들을 보다 더 잘 굴러가게 할 수 있는 태도이자 능력이었다.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만 들었던 하자 시즌1 초기의 이야기는 (하자초기무렵, 나의 십대가 시작되었다) 마치 '어느 다른 공간의 사람들 이야기'처럼 생소하게 다가왔다. 하자 초기의 죽돌들은 마치 '서태지'와 같았고 그들 '스스로'하자를 찾아온 십대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비판적이었거나, 자기재능에 몰입하며 자기주도적학습을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라는 화두로 삶을 '스스로' 설계하기 위한 자기 나침판을 갖기 위해 바쁘게 학습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행복을 나누지 못하는 하자바깥의 다른 아이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하자가 만들어진 첫 해부터의 추석에 작업장학교의 한 졸업생이 '달맞이축제'의 '소원종이'라는 의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2010년 9월에도 어김없이 작업장학교는 시즌2의 첫번째 달맞이축제를 준비했다. 우리들에게 이 의례는 '하자바깥의 다른 아이들'에 대한 염려보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크리킨디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할까? 매년 했기 때문에 또 하는 행사가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치르게되는 문화적 의례를, 그렇지만 오히려 그날만 되면 더 쓸쓸해지는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 새터민,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는 여자들… 모두 함께 나와 달보며 소원도 빌고, 함께 놀자는 의미에서 우리는 달맞이축제를 이어받았다. 2010 달맞이축제에 작업장학교는 특별히 돈의동 쪽방촌 독거노인들을 초대하였다. 그분들은 학교만들기팀이 지난 8월에 돈의동 쪽방촌에 들어가 '온도재기'프로젝트라는 것에 참여하면서 만나뵈었던 분들이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기후변화문제가 심각한 최근 쪽방촌의 여름은 보통보다 2-3도씩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여름에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공간이 조금 더 비좁아도 사람들은 더위를 쉽게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 찾아간 쪽방촌은, 좀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생기게 했다. 늘 (함부로) 동정심을 느끼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쪽방촌의 상황은 '안타깝다'라는 표현이 아닌 다른 표현을 찾기 급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학교만들기팀 내부에서는 "동정(pity)과 공감(empathy)"이라는 두 개의 주제가 화두가 되었다. 그 두개의 사이에서 혼돈하지 말자고. 폼포코너구리대작전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말 "대작전"을 벌이는 너구리들처럼, 불이 난 숲에서 한방울 씩의 물을 나르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고 말하는 크리킨디처럼, 시즌2의 죽돌들에게는 "공감"으로 인한 움직임을 만들 동기가 필요했다. 우리들 세계의 문제를 기꺼이 자기 한쪽 어깨를 내어 짊어질 수 있다는, 또는 누군가에게 "그래도 힘내, 같이 잘 지내자!"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동기말이다. 더이상 낯설지 않다 시즌2 개교 및 신입생 맞이 준비를 앞두고 학교만들기팀에서는, '이것이 정말 학교인가' 라는 질문과 더불어 신입생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크리킨디가 우리의 모든 활동을 대변할 수 있나? 만약 신입생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쩌지?" 신입생들은 학교만들기팀으로서 처음으로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민 이들이었으며, 또한 자신들이 스스로의 발로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나역시 아직까지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던 마음을 설명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들의 반응에 대해 쉽게 감잡을 수 없었다… 아마 학기가 시작된 중반이었나, "크리킨디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며 몇 명의 죽돌들이 또 다시 이마에 물음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가 문을 연 9월부터 한 눈 팔면 길을 잃어버릴 정도의 일정이 많았기 때문에 자칫 "이벤트"에만 생각이 국한되면 그것이 이뤄지는 전반적 맥락에 대해 이해하는 시야가 좁아지기 십상이었다. 이번 시즌2에서 우리는 "낯선" 것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낯선 이름, 낯선 사람, 낯선 사건들… 심지어 낯선 삶의 방식을. 그렇기에 현재 자신의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모든 것을 이해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때론 책을 펼쳐보거나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다니는 수고가 필요했다. "신체장애를 안고 있는 증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그것을 예술적수단으로 비장애인들이 가진 규범을 뿌리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며 타이헨극단을 창단했다는 김만리선생님은 "인간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전환해갈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다. 하자에 오기 전까지는 생소했던 단어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역시 신체장애인의 신체표현예술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반문해보고있다. 모든 인간이 다양하다는 것을, 또한 동시대에 살아가며 함께 숨쉬며 살고 있는 것들을 볼 때, 차이는 차이로서 받아들이고 가는 것을 기본적 시선으로 가진채로말이다. 타이헨극단의 '황웅도 일대기' 한국 공연실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연습을 통해 "쿠로코"라는 역할을 수행해보면서 그것이 일시적 경험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우(장애인)분들이 힘들지 않게 도와주는 단순한 헬퍼로서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돌봄"으로서 어떻게 화합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연습을 쿠로코를 통해 몸소 해보고있다. 아직도 질문해보아야 할, 더 정면으로 마주쳐야할 문제들이 많다. 심지어 내 뒤에는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채 공부하는 통합, 평화 등에 관한 공부는 협소해질 수 있다. 지난 6월, 볍씨학교가 정부의 보금자리정책 3차 사업지구 포함되었다. 볍씨는 무려 2-3년 만에 아파트숲이 될 수 있었던 개발도시 광명에서 이상하리만큼 시골 냄새를 풍기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산이 있고, 물도 있고 찾아오는 동물도, 사람도 많다. 그래서인지 아닌지… 그린벨트지역이라 합법적인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 '볍씨'뒤를 따라다니던 꼬리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린벨트보다 심각한 '학교가 사라진다'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현재 볍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사업은 '현장'을 없애는 사업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더이상 '기억'과 '추억'의 잊혀짐으로 간주할 수 없다. "우리들만의" 내부적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학기 '기억'과 관련된 짧은 주제연구를 하며 발견한 문장이 있다.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 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정부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한 이후부터 볍씨사람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무척 바빴다. "너희 학교가 없어진다고?" "대안학교?" 라며 되묻는 낯선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연습을 해야했고, "너희들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 이해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했다.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있다는 생각에 난 서명지를 인쇄해 하자내부를 비롯해 그밖에 아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명운동에 참여했지만, '알고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조금 벗어나 우리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우리들이 시도해봐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하자에 온지 2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볍씨학교'이야기를 꺼낸다. 그렇지만 길찾기부터 시즌2학교만들기팀까지의 단계별 과정에서 볼땐, 다방면에서 기억을 되살려내보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 2009년 하자에 처음 들어와 길찾기가 되었을 때, 8년 동안 볍씨학교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억을 다시 드러내야 했다. 사실 그무렵, 난 온실 속의 화초였나? 라는 염려를 하며 조심스럽게 하자에 고개를 내밀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볍씨바깥의 공간"은 늘 낯설었다. "볍씨에서는 이랬는데, 하자는 매우 차가운 곳이군" 그나마 대안학교라는 이름의 익숙한 이름을 가진 공간에서 맞딱들인 이 "낯설음"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암순응[暗順應]처럼 이제는, 이미 하자에서 "낯선"상황에 대해 "낯설게"만 반응했던 시기를 지나, 여기는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님을, 그렇지만 "낯선" 문제를 등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응해갈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때론 손을 뻗어보아야 한다. 불이난 숲 앞에서 좌절하거나 심각해질 수만은 없다. 시즌2에서 집중하는 3개의 키워드 통합, 생태, 평화라는 기본용어를 가슴에 품고 문제의 힘을 면면이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일단 손을 뻗어보는 게 중요하다. 손을 뻗어 보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철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작위적 사고가 아닌 철저하게 의도적인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 작업장학교에서 디자이너가 실질적으로 하는 일들은 굉장히 구체적이지만 전반적인 일상의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이곳에서 배움을 지속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해준다. 의도적 사고를 통해 일상을 기획할 줄 알며, 숲을 보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주변에 대해 섬세한 안테나를 가지는 것…. "내가 가야할 길은 얼마나 길지?" 하자에서 '디자이너'는 행사를 위한 포스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의 일을 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기술적" 한계에서 골몰해, 누군가 "이봐!"라며 툭툭 건드려줘야 컴퓨터화면에서 눈을 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를 보는 눈도, 기술적 요소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왜 자꾸 "언젠가 할 수 있을꺼다"라는 말에 의구심을 갖게 될까. 하라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 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라는 문장을 소개한다. 달갱과 하는 디자인워크숍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에 대해, 디자인 "프로세스"를 제대로 밟는 연습을 통해 조금 익숙해질 수 있었다. 또한 현재 작업장학교에서 "기술"을 전문적으로 소화해내고 있지 않지만 "기술과 소통의 밸런스"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여러 시행착오와 공부를 통해 깨닫고 있다. 9월부터 치러왔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과 데코레이션을 혼돈하면 안 된다"는 코멘트가 수차례 오갔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살고 있더라면 디자인이 필요할까? 오히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지 않을까? 가끔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디자인'은 "혼자"를 위함은 아니다. 작업장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매체의 기술만큼이나 기획력과 사고의 내용을 중요시한다. 일상에서 무신경했던 것들을 '이것을 디자인해보자'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는 '앗, 저게 왜 저곳에 놓여있더라?'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한번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실은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잘 보지 못한다. 어느 것 하나 '눈여겨'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관찰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무언가를 "일상화"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정의하거나 상세하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다르게 볼 수가 있다. 나는 무수히 많이 보고 느끼는 방법들의 경험을 통해서, 하자에서 하고 있는 공부들의 흐름 속에 구현되어야 할 장치가 무엇인지를 궁리하고 시도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잘 기획해갈 수 있는 "직감"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면 내가 하자를 벗어난 다른 곳에 스스로를 소개시켜도 될 것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손에 쥐가날 것 같거나 하지는 않다. 대체로 난 실험과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사실 눈치밥 먹으며 과감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멈추기는 싫다. "남발해도 된다" "망쳐도 된다"라며 결단력과 판단력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면서 말과 행동을 남발할 수 있을 때까지 가볼 수 있 거라고… 되뇌일 것이다. 가끔 손을 풀면서 낙서를 하고 있을 때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까봐 염려가 되지만, 그러면 큰 그림을 그려보면 된다.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느낌인지, 손목만 사용하던 때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내 그림에, 디자인에는 어떻게 내 모습이 비추어질지 상상을 하며 작업하는 사람이 되자. 이전 볍씨에서 "배움과 삶이 하나되는 사람,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을 체화하는 학습으로 "삶"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해도 되는 존재이며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도 된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즐거워서 함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을 즐겁게 만든다"라는 하자의 새로운 화두에 격려를 받아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분리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세계를 구한다"는 것, 체인지메이커가 된다는 것이 굳이 거창해질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성은 '새로움'에 대한 추구보다 오히려 평범한 사고의 비범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고있다. 옆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들과 소통가능한 언어가 무엇인지, 우리모두가 좋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한다. 그러면 개개인이 매개가 되어 "우리끼리 즐거웠던 일"을 함께 즐거운 일으로 넓혀가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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