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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96
일본 홋카이도지역에 있는 '베델의 집'에서 재단 이사장, 활동가, 당사자 스태프 등 12명의 베델의 집 공동체분들이 서울방문을 하시게 되었어요. 서울일정을 작업장학교에서 코디를 하게 되었고, 포럼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29일 도착, 6월 3일 출국, 포럼은 6월 1일.) 포럼에 대해서는 아직 내용과 형식을 다 완성하지 않은 채라서 다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일단은 베델의 집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기로 해요. 그리고 베델의 집. 손님맞이를 준비하면서 죽돌들과 함께 보려고 배리어프리영화제에 부탁하여 "위 캔 두 댓"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마침 오는 목요일 [현미네홉]시간이 휴강이 되어서 (사실 그날 해야할 일들도 있지만 아침이나 점심시간에 틈틈이 합시다.) 목요일 2시에 999클럽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할 예정이에요. 관련기사: http://blog.makehope.org/smallbiz/953 기사의 제목은
베델의 집은 정신장애공동체이고, 사회적기업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델의 집에서 방문하시는 동안 강화도에 김성수주교가 만드신 '우리마을'이라는 비슷한 성격을 공동체마을도 탐방하려고 해요.(관련블로그: http://www.7bofree.or.kr/zbxe/teacher_board1/208714/page/3) 음. 이곳은 죽돌들과 모두 함께 가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일정조정이 안 되어서 죽돌들은 함께 가기 어렵게 되었네요. 베델의 집 관련기사는 동아일보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책소개: http://news.donga.com/3/all/20090102/8678925/1 오마이뉴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책소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51568 오마이뉴스 "베델의 집 사람들" 책소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09852 오마이뉴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 쓰지 신치이 대담 중에서 언급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59399 등이 있고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의 몇 구절을 인용해보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함께 웃는 정신이다. 오사카 군이 진지하게 (환청이 심한) 자기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겐 씨가 그것을 깨뜨려 버리고 (불쑥불쑥 고함을 치면서 끼어들고) 그들 사이에 가와무라 선생이 "그게 환청이죠"라고 끼어든다. 그 유머에 모두들 웃는다. 그것은 결코 정신병을 깔보거나 가볍게 여겨서 나온 웃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정신병이 얼마나 곤혹스런 병이고, 이 병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다 알아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정직한 웃음인 것이다. 그것은 광기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일부로 인정하려는 사람들이 그 일상 안에서 만들어내는 웃음인 것이다." (p.?) "예배 중 미야지마 목사가 쭉 훑어보면 얌전하게 앉아있는 사람은 제일 앞줄 (사회복지사인) 무카이야치 씨와 맨 뒷줄 목사 부인 정도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두 사람도 피곤에 지쳐 졸고 있었다. 대체 이러고도 교회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교회가 추궁받는" 장면이었다고 무카이야치 씨는 말한다. "조용하고 조신하며 잡다한 거리의 소음과는 멀었던 교회가 일변해 '고민하는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선남선녀가 모이는 금욕적인 결벽으로 가득 찬 교회도 아니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교제하는 독실한 교회도 아니며, 사람들이 약함을 인연으로 삼아 만나 함께 살아가려는 무리인 교회를 그곳에 봤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을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p.64) "약을 먹을지 안 먹을지, 어디까지 견디고 버틸지 그것은 모두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다. 그 결과 병이 재발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며 예상된 일이니까, 라는 의미를 담아 "순조롭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아무리 증상이 악화되어 재입원해도 비난받는 일이 없으며, 본인이 고민하고 생각한 끝이 빠져나오는 것은 "모두 순조로운" 것이다. 그것은 병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고생을 거듭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p.72) "결과적으로 하야사카 씨가 3분밖에 일할 수 없어서 다른 동료(세 사람)까지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여전히 미야지마 미치코 씨 일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작업장이 된 <베델의 집>에는 점차 다시마를 둘러싼 일의 테두리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이 <베델의 집> 작업장의 원형이었다. 하야사카 씨는 거기에서 자신의 약함을 비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으로 "세 사람 분의 일을 낳은" 공로자로 인정받았다."(p.77) ""우리는 이른바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라는 말을 흔히 해왔고, 그에 대해 별 의문조차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정신장애인만이 사회복귀를 해야할까... 장애인은 정말 그런 것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하고 말이죠. 또는 우리의 역할도 말이에요. 그저 장애인의 장애성에만 시선을 두고, 그것이 좋다, 나쁘다 하는 차원의 일만 해나가는 것이 정말 우리 역할일까 하고 말이지요. 거기에 정말 의문이 있었거든요." 장애인의 사회복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회복귀야말로 주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사회복귀란, 즉 복귀해야할 사회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베델의 집이 있는) 우라카와라는 마을에 대해 말하자면 사는 사람이 적고 일자리도 없으며 모두들 나날의 생활에 고생을 겪고 있다. 대부분 젊은이들은 마을을 뒤로 하고 떠나지 않는가. 과연 이런 마을에 복귀하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이 마을 자체가 '사회복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p.79) "어떤 의미에서 정신분열병은 말의 병이다. 백인백색,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다르다는 이 병에는 간혹 수다수러운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공통된 것은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환각이나 망상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수도 있고, 약의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는일도 있을 것이다. 또 병의 후유증으로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일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야기를 하지 않든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단편적이며 이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섬뜩하다거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경원시되고, 그것이 또 더욱 그들의 인간관계를 악화시킨다. 그러한 악순환속에서 분열병자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립되어 있다. (중략) <베델의 집> 생명이 '하루 세끼 밥보다 회의'라고 하지만 회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베델의 집>에서의 가장 큰 고생은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문에 '그대로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장을 만들었으며, '충돌과 만남'에 가장 큰 가치를 둬왔을 터였다...(중략) 거기에서 행해지는 것은 언뜻 보면 형식적이다. 서툰 이야기방식을 기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에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각자가 필사적으로 묻고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이게 된다. 실로 간단한 대화연습 같아도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SST(social skill training, 말하기연습시간)에 모임으로써 하나의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연결되고 싶다고."(p. 155) "고생이 가득 차 있다. <베델의 집>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관리하지 않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 정신장애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마을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는 것,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그들의 이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무카이야치 씨 강연에서 그들이 부지런하게 변함없이 반복해온 것은 '고생하는 것'이며, 그들 안에 가득 차 있는 고생이야말로 그들의 힘,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 고생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베델의 집>을 이해하는 핵심어로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베델의 집>이 해온 것은 모두 이 고생이라는 말과 관련되어 있다. 고생하는 것, 고생을 받아들이는 것, 고생에 직면하는 것, 그것은 정신장애인이든 아니든 간에 똑같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싫든 좋든 간에 병으로 인한 고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생이 가득 차 있는' <베델의 집> 사람들은 그 고생이 있기 때문에 활기가 있고 표정이 있으며, 살아가는 힘을 배워온 것이다. ...(중략) 하지만 <베델의 집>에서 모두가 '고생을 되찾자'고 생각한 것은 결코 안이한 정신주의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병이든 아니든 간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낙, 그런 것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바탕에는 정신병이 생겼을 때처럼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발버둥을 쳐도 해결할 수 없는 고생이나 고민이 있다'는 인간존재에 대한 심오한 인식이 있었다. 인간에게는 원래 그러한 고민이나 고생이 있었을 텐데, 요즘 세상에서는 흔히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누구나 그것을 스스로 감추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pp.176-177) "문제나 고생, 고민을 없애지 않는다. 그렇게 비로소 정신병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과 마주하고, 그 사실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응시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방식을 "파고들고 파고들어" 고민을 말로 해 모든 사람들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며 고생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만, 고민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고민하면서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그들은 치료라는 틀에서는 결코 평가되는 일이 없는 풍요로움을 낳고 있다.(p.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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