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사가 세상과 작별한지 10여년이 넘게 흘렀다. 저번해를 마지막으로 줄리에트의 집에 방문했었다. 줄리에트는 이모를 닮아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어릴적 예뻤던 줄리에트는 온데간데 없이 아름다워졌다.
줄리에트를 보면서 가슴 한편에서는 냉혹한 찬바람이 휘몰아치곤 했다. 이렇게 나의 텅 빈 마음에 휘몰아치는 폭풍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리에트는 한쪽 입 꼬리만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줄리에트와 나는 서로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부터 만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그대로 줄리에트의 집으로 모두 부쳤다. 돈은 내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 요소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알리사의 빈소를 찾았다.
그때 그 하얀집 정원에 있는 노란 단풍나무 아래서 십자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고 그저 바람과 단풍잎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마치, 왜 지금 왔냐는 듯 바람은 이야기했고 단풍잎은 그때의 알리사 상태를 지금 내게 알려주는 듯 거칠게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녀가 쇠약해져 병약에 시달렸을 때, 나는 곁에 있지 않았다.
알리사는 나를 더 좋은 인연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랬다. 그녀는 나의 이상적인 상대였으며 서로가 애타게 원했던 인연이었다. 그녀의 유언장이자 일기장을 보고 난 뒤로는 그녀가 주님에게 나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것을 왜 혼자만 짊어지었을까?
십자가 앞에서 알리사를 대면하며 누구나 그러하듯이 돌덩이와 대화를 시도했었다.
“지금와서 꽃을 바쳐도 위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랑하는데 사랑하지 못하는 지금에 와서 그리워해도 돌아오지는 않을거야. 지금 내 머릿속에는 우리가 손을잡고 다니던 노란색 단풍아래와 늘 읽던 시를 함께 읊었던 순간이 가득 메워져있어. 줄리에트를 보면 아름다운 미소 뒤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모습이 내게는 보여."
알리사가 금방이라도 '왔던곳으로 다시 돌아가' 라는 말을 해줄것만 같았다.
십자가는 그런 말조차도 가로막는듯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 일기장이 언제쯤 줄리에트의 손에 잡힐까.
나도 세상 살아가는것을 너무 쉽게 포기할줄은 몰랐다. 줄리에트에 대한 미안함을 글로 다 전달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일기장을 알리사의 품에 놓은채
다른길을 통해 주님 곁으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