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레옵니다. 이제부터 사춘기를 주제로 한 저의 페차쿠차를 보게 되실겁니다. 그러면 일단 사춘기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도록 하죠!
누구나 어릴 때는 천사같고 귀엽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죠.. 저에게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사실은 안구의 데미지를 최대한 줄이 기 위한 저의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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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던 저에게도 어떠한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사춘기는 근대에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겪게되는 과정 중 하나로, 질풍노도의 시기, 심리적 격동기, 중이(2)병 등, 사춘기를 일컫는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사춘기가 오면 생기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몇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춘기때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드름이죠. 사람에 따라 많이 날 수도 있고 적게 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무턱대로 소독되지 않은 손톱으로 여드름 제거 시술을 시도하는 것은 강력히 비추(!)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옷차림이나 머리 등 자신의 몸단장에 더 신경스기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사춘기는… 한마디로 청춘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성에 대한 감정을 제어하기 가장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Sigh… 휴…
아주 어린 아이들을 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하죠?) 사람은 사춘기에 자기애라는 것이 생긴다고 합니다. 조금 생소한 말로는 나르시즘(Narcissism)이라고 하죠. 이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이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으로부터 유래 된 말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남들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죠. 아니, 오히려 제가 더 심한 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사춘기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사실 옛날에는 사춘기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애들이 요즘 사춘기다 뭐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 통틀어서 ‘사내아이’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공장들은 서로 경쟁하며 대량생산을 하던 시절이 있었죠. 공장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으로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서도 쓸모 있는 개체는 단 하나밖에 없었죠.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 외의 일을 못하는 여자, 노인, 어린아이, 장애인들은 돈을 벌지 못했고 돈을 버는 “건장한 성인 남성” 들만이 사회의 주류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개체 속에 가능성이 있는 개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어린아이들이었죠. 그래서 사회는 나중에 성인이 될 남자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교육을 시키기로 했습니다(이게 바로 초창기에 다수의 남자 아이들만 학교를 다녔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학습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습니다.(물론 학교에서는 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겠죠..) 왜냐하면 농사를 하는 데에 필요한 학습은 농부의 일상생활에(ex. 아버지 따라 농사) 베어 있는데 비해 학교의 교과과정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생각과 경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부작용으로) 청소년들에게는 ‘반항기’ 즉 사춘기라는 증후군이 생겨났고 지금 사회에서는 그것이 거의 일반화가 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의 사춘기의 절정은 작년 크리스마스, 데미안이라는 책을 완독했을 때 였을것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삭스…> 책의 대표적 문구입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책의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가 고뇌하며 방황하는 모습이 저와 닮아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앞에서 사춘기때는 자기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죠? 저는 줄곧 제가 누구보다도 특별하고 별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그 알 속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넌 안전해’ 라고 스스로 안심시키기에 급급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 알속에 있을 수는 없기에 저는 이제 알을 깨 보려고 합니다.
아니면 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알을 깨고 있을 수도 있겠죠. 만약 알을 깨고 나온다고 해도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어색하겠지요. 아니면 제게 힘든 일이나 견디기 힘든 날들이 올때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려 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그러려한다면, 다가와서 저를 구제해주세요. 여기 있는 제 오랜 동료들과…
….선생님 처럼요.
언젠가는 알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제가 원하는 길을 걷고, 마침내 날 수 있는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