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사들도 계속 붙일께요.

명동에도 거대 상업 단지를 만드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명동에 있는 수 많은 소상인들과 노점상들, 거리의 작가들이 사라질 위기에 있지요. 명동의 DNA가 확!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명동이 이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왜 지금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개발' 모델이 필요한 걸까요? 그리고, 여기에 왜 '스토리 텔링'이 중요한 걸까요? 이 질문들은 서촌을 비롯한 다른 많은 지역에도 같이 적용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촌에서 '고생'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

스토리텔링은 요즘 학계나 관공서에서 유행같은 거지요. 하지만, 주의할 점은, 이야기를 단순히 모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들의 다양한 결들을 읽어내는 것. 그 결들 간의 관계와 의미를 파악하는 것. 이들을 우리의 관점으로 다시 풀어내는 것. 다양한 결들과 다양한 해석, 거기에 지역들이 가진 공동의 문화가 있고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urban ecology라고도 합니다.


기사 세 개 올릴건데, 읽어보세요. 질문들에 대한 답이 돌아돌아 있습니다.


사족 하나 - 이건 내 twitter 잡담, 이 기사들에 대한 :


지역의 가치를 일깨우는 '스토리텔링'.명동을 새로운 거대단지화하는 것보다 지금을 바탕으로 보완해나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숫자놀이에 있지 않다.이 곳의 수~ 많은 '스토리텔링'에 있다.이들이 만드는 명동이라는 urban ecology,복잡계에 있다.



‘2011년 명동’… 세월이 가도 명동은 ‘명동’이다
[하니Only] 박종찬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신기섭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1005 20:46 | 수정 : 20111108 15:33
  • 텍스트크게
  • 텍스트작게
  • 스크랩하기
  • 오류신고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MSN보내기
  •  
  •  싸이월드 공감
  •  
‘도시 공간과 사람, 명동 이야기’ 실험 프로젝트
<1회> 소비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 명동이 한국의 얼굴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명동을 잘 아는 사람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나 각자 나름의 ‘명동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한국은 온 국민의 90%가 도시에 사는 ‘도시의 나라’다. ‘농촌’이 여유와 한적함을 상징한다면 ‘도시’는 번잡함과 빠른 속도를 상징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건 번잡함과 빠름이다. 하지만 공간은 사람이 만들고 꾸미고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도시 공간이 번잡하다면 그건 한국인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 공간을 보면 그곳의 사람을 느낄 수도 있다. <인터넷 한겨레>의 실험 프로젝트 ‘도시 공간과 사람, 명동 탐사’가 목표로 삼는 게 바로 이것이다. 한국인이 살고 일하고 쉬고 노는 대표 공간으로서 ‘서울 명동’을 통해 본 오늘 한국의 모습을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편집자주)

각자 다른 기억 속의 명동

명동이 한국의 얼굴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명동을 잘 아는 사람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나 각자 나름의 ‘명동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대에 따라, 처지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클럽과 음악다방으로 상징되는 낭만의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는 격동의 공간일지 모른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에게는 첨단 패션의 경연장일 수도 있다.

명동은 이렇게 세대와 경험이 다른 이들의 머릿속에서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다. 명동은 항상 새 옷을 갈아입고 움직이고 변화한다. 계절에 따라 다른 건 물론이고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명동의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명동의 하루를 여는 ‘2시간짜리 의식’

» 명동2길 중간 지점, 공사가 한창인 중국 대사관 담벼락 앞에서 40년째 시계방을 하는 아저씨가 있다.
명동의 하루는 도시의 다른 곳보다 조금 늦은 시각부터 기지개를 편다. 명동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모두 3만5천여명이다. 명동 매장들은 직장인 출근시간보다 조금 늦은 10시나 11시쯤 문을 연다. 본격적으로 명동이 열리기 전, 그러니까 오전 8시부터 명동에는 30년째 변하지 않는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 있다. 명동의 하루를 여는 2시간짜리 의식, 그것은 ‘명동2길’ 뒷골목에서 벌어진다. 명동2길은 명동길 들머리 눈스퀘어에서 명동 화교학교를 거쳐 중앙우체국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 중간 지점, 공사가 한창인 중국 대사관 담벼락 앞에서 40년째 시계방을 하는 아저씨가 있다.(그 아저씨는 명동 취재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나중엔 취재용 카메라를 맡기고, 음료수를 챙겨줄 정도로 친해졌지만, 끝내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시계방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침 텅 빈 거리에 시계방 아저씨가 혼자 서 있다. 그 옆에는 길이 2미터에 높이 80센티 정도가 되는 철로 만든 상자가 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철판 상자 옆 폭 1미터도 안 되는 셔터문 위에 ‘명품 시계 수리’라고 쓰인 간판에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텅 빈 거리에 매일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짓는다. 셔터문을 여는 순간, 그의 하루가 열린다. 거기에는 진열대와 작업대, 간판과 천막, 의자, 각종 공구 등 시계방을 여는 데 필요한 온갖 장비가 빼곡하게 차 있다. 진열대 2개가 맨 먼저 나와 제자리를 잡는다. 바닥에 바퀴가 달려 있고, 10센티쯤 돼 보이는 턱은 깔판을 깔아 혼자서도 거뜬히 비좁은 창고에서 진열대를 뺄 수 있다. 철판 상자 양끝 자물쇠를 풀고, 바닥에서 서랍을 꺼내 그 위에 철판을 올리니 훌륭한 판매대로 변신했다. 아저씨는 창고 안의 물건을 하나하나 옮겨 판매대에 진열한다. 순서도 시간도 로봇처럼 정확하다.


<iframe width="590" height="200" noresize="" scrolling="No" frameborder="0" marginheight="0" marginwidth="0" src="http://www.hani.co.kr/section-adv/713/society_590130_Middle2.html"></iframe>


이렇게 펴 놓아야 손님들 눈길이라도…

» 30센티도 안 되는 시계방 아저씨의 작업장에는 돋보기와 안경, 시계를 수리할 때 쓰는 여러 공구들로 가득하다.
“80년대 초쯤 됐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매일 판매대를 펴고 정리하는 일이 고역이더라고. 그게 하도 힘이 들어서 혼자 열고 닫을 수 있고, 좁은 공간도 잘 써먹을 방법을 찾다가 내가 직접 설계를 해서 만들었어. 그러니 내 손에 착착 달라붙는 거지.” 회색 철판 상자가 판매대와 진열장, 작업 탁자까지 갖춘 시계 수리방으로 변신한다. 2시간을 낑낑대고 나니 이마에 땀이 맺힌다.

“처음 이 장사 시작한 것이 70년대 초반이었어. 그때는 시계를 수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수입 시계나 명품 시계를 팔았지. 그러니 시계 진열하려면 이렇게 판매대가 필요했던 거야. 지금이야 수리 위주로 하니까 헌 시곗줄이나 건전지, 공구 따위를 진열해 놓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매일 이렇게 펴 놓아야 사람들 눈길이라도 끌 것이 아니겠어?”

그렇게 2시간 동안의 의식이 끝나고 나니, 첫 손님이 찾아온다. 30대 여성이다. 아저씨가 작업대 서랍에서 금테를 둘러 고급스러워 보이는 남성용 시계를 꺼내 건넨다.

“이 시간에 가장 먼저 오는 사람들은 전날 시계 수리를 맡긴 근처 사무실 사장님들이야. 대개는 아래 직원들이 찾으러 오지. 수리를 맡길 정도로 값비싼 시계를 요즘 나이 들고, 돈깨나 있는 남자들이나 차지. 젊은 사람들은 죄다 핸드폰 시계 보잖아. 그래도 내 단골들은 꾸준한 편이야. 예전엔 다 명동을 기반으로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지. 지금은 강남, 분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지만…. 심지어 수원에서도 아직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요새는 명품 시계를 솜씨 좋게 고칠 만한 데가 별로 없거든.”

남자의 거리에 젊은 여자들만…

시간이 갈수록 조용하던 뒷골목에도 사람들이 몰려온다. 시계방 옆 식당의 네온사인 간판이 길 한가운데에 켜지고, 아직 손님이 뜸한 환전소도 문을 열었다. 골목 들머리 명품 수리집 미싱도 요란하게 돌아갔다. 텅 비었던 거리엔 아침부터 쇼핑백을 들거나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젊은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저씨는 그들을 보면서 별로 반가운 얼굴이 아니다.

“옛날에는 명동이 말이야, 완전 남자들 동네였거든. 70년대까지만 해도 저 앞길이 죄다 양복점이었어. 학사주점에도 그렇고, 예술회관 주변 다방에도 그렇고 죄다 남자들이 죽치고 있었단 말이야. 그때는 시계 장사도 꽤 잘됐거든. 그런데, 지금은 여자들밖에 안 보인다니까. 내 장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돼. 젊은 여자들은….”

99.9% 일본 손님… 장근석 생일엔 장근석 사진을

점심이 가까워질 때쯤 시계방 아저씨는 30센티도 안 되는 작업대에 앉아, 돋보기 너머 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1시간째 그 자세 그대로다. 그 시간, 시계방 아저씨가 일하는 곳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중앙길 엠플라자 옆 한류 물품을 파는 가로 노점은 매장 단장에 한창이었다.(가로 노점은 길거리를 무단 점거하는 노점과 달리 합법적으로 운영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명동 노점상들의 대대적인 생존권 투쟁 결과로 합법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판대가 고정으로 설치돼 있고, 도로 점용료도 내고 있다.)

» 중앙길 엠플라자 옆 한류 물품을 파는 가로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40대 일본여성이 물건 정리에 바쁘다.
이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40대의 일본 여성은 물건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대충의 정리가 끝났지만, 아르바이트는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는 아직 정리를 하지 않고 사장 눈치만 살핀다. 매장 안쪽에서 노점 주인 ‘박 사장’(그도 이름 밝히기를 꺼렸고, 주변에선 그를 ‘박 사장’이라고 불렀다.)은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오늘 한류 스타들의 행사 일정을 검색하는 것이다. “우리 노점 손님은 99.9%가 일본 사람이라니까. 요즘 한류 드라마 가운데 뭐가 인기가 있는지, 누가 인기가 있는지 알아야 장사를 해먹지. 오늘 생일이나 공연, 팬미팅이 있는지는 꼭 알아 봐야 돼. 류시원 행사가 있으면 류시원 사진을, 장근석 팬 미팅이 있는 날은 장근석 사진을 잘 보이게 배치하는 거지. 그래야 장사가 될 것이 아니야.”

일본 알바와 일본 관광객의 수다

인터넷을 뒤진 박 사장이 별다른 이야기가 없자 아르바이트는 요즘 잘나가는 장근석이나 동방신기, 김현중 등 아이돌 스타 사진을 맨 앞에 놓는 것으로 진열대 정리를 마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매장 앞은 일본 여성들로 붐빈다. 주로 50대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류 스타들의 사진이나 앨범 등을 펼쳐 놓고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와 일본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고 떠들었다.

“길거리 노점이야 간단한 의사소통으로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여기는 좀 복잡하거든. 거의 대부분 일본 손님인데다 이것저것 정보성 있는 것도 제공을 해야 하니까 일본말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하루 종일 나 혼자 손님 상대하기도 벅차고. 그래서 오전, 오후 알바를 쓰고 있어. 물론 매출에 많은 도움이 되지.”

이처럼 한류로 먹고사는 박 사장은 명동에 불고 있는 한류에 대해 뼈 있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명동이 한류로 돈을 번다고 하지만 사실상 빈껍데기라고. 이렇게 사진이나 몇 장 사가고, 화장품 가게에서 한류 스타 얼굴 배경 삼아 ‘인증샷’이나 찍어 가는 것 빼고 뭐가 있어. 그래서 명동예술극장이 아까워 죽겠어. 저렇게 번지르르하게 지어 놓고 맨날 ‘구닥다리’들만 와서 공연하고 있잖아. 자기들 옛날 좋았던 기억 회상하라고 만들어 놨나? 저런 데서 한류 스타들이 공연을 해야지. 그래야 일본 사람들이 와서 즐길 문화가 생길 것 아니야. 안 그래?”

행인들은 천천히 걷는다

» 빠르다는 이미지와 명동은 잘 어울린다. 그러나 명동에서도 빠르지 않은 게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변화와 빠르기를 놓고 말하면 명동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빠르다는 이미지와 명동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러나 명동에서도 빠르지 않은 게 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점심시간 전후 식당을 찾아 나서는 직장인들을 빼고, 명동을 걷는 사람들은 느리게 천천히 걷는다. 어디를 목표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목표를 찾기 위해 걷기 때문이다.

명동 외곽에 포진한 빌딩들은 점심시간에 비로소 직장인들을 명동거리로 토해낸다. 넥타이 부대, 블라우스 부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 시간 전까지 명동은 큰길 주변의 화장품 매장과 옷 가게, 신발 가게만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장인 부대들이 맛집을 찾아 명동의 구석구석을 점령하는 그 순간, 비로소 명동 전역에 활기가 돈다.

‘일본 빠꼼이’에 맞춰 맛도, 패션도 일본 스타일로

좁은 길 구석구석에 숨은 식당들로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관광객들도 눈에 들어온다. 대개는 일본 관광객이다. 명동 직장인들이 맛집을 꿰고 있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골목 식당까지 찾아 나설 정도의 빠꼼이들이 적지 않다. 금강제화 옆 먹자골목 안에 있는 분식집 ‘덕이푸드’에도 일본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이 집은 손님들의 낙서로 벽을 꾸며 유명해졌다. 낙서에는 한국말 일본말이 반반이다. 이 집 여사장은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한 낙서를 벽에 붙여 놓은 것이 유례가 됐는데, 지금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며 “요즘은 옛날 쪽지를 확인하러 다시 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중에 일본인들도 꽤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통역 서비스를 하는 관광 안내원 박선정(24)씨도 “요즘은 쇼핑뿐 아니라 한국인이 먹는 소소한 먹거리까지 찾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며 “어떤 일본인은 냉면집을 찾으면서 면의 굵기, 육수의 성분, 조리 스타일까지 자세히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체험으로 알아낸 맛집은 입소문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일본인들 사이로 퍼진다. 그렇다 보니 명동 식당들은 한국 손님들보다 일본 손님 취향을 맞추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명동성당 앞 한 설렁탕집 주인은 “일본인 식성에 맞추려다 보니 명동 음식이 덜 맵고 덜 짜 자극적인 맛이 덜하다”고 말했다.

5만원짜리 ‘명품 스타일’ 어디 없나요?

» 일본 젊은 여성들이 명동에서 제일 눈독을 드리는 것이 5만원 이내의 괜찮은 액세서리다.
일본인들은 제 나라 관광하듯 자연스럽게 명동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예전에 명동 상인들 사이에서 일본인들은 돈 잘 쓰고 명품을 쓸어 가 ‘봉’으로 통했지만, 요즘은 중국인들에게 큰손 자리를 내줬다. 최근 명동을 찾는 일본인은 한류나 화장품 붐을 타고 들어온 20대 젊은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들이 명동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명품에 버금가는 세련된 디자인의 액세서리들이다. 명동 중앙길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신승호(59)씨는 “일본 젊은 여성들이 제일 눈독을 들이는 것이 5만원 이내의 괜찮은 액세서리”라고 귀띔한다. 지갑은 얇고 눈높이는 ‘명품’에 맞춰진 젊은 여성들이 질 좋고 세련된 데다 값도 싼 명품 스타일을 노점에서 쓸어 가는 것이다.

유행 따라 분주한 길거리 디자이너들

손님들을 직접 상대하는 판매상 못지않게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들이 노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제작자들이다. 명동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변화도 놓치면 안 되고, 일본 유행이나 중국 유행까지도 다 파악해 팔릴 만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자칭타칭 ‘명동 디자이너’로 불리는 ‘김 사장’(62)도 그런 부류다. 40년 넘게 명동을 오가며 머리띠, 귀걸이, 핸드폰 고리 같은 액세서리류를 공급하고 있다. 그는 명동을 오가는 행인들, 특히 요즘은 일본 여성들을 눈여겨본다. 머리 모양, 옷 색깔, 치마와 바지의 길이, 유행하는 신발까지 모든 걸 관찰한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떠드는 패션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명동 상인들과 납품업자들의 예상이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올여름엔 선글라스가 뜰 것 같아서 잔뜩 들여놓은 상인들이 꽤 있었는데,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재고만 쌓였다고 한다. “선글라스 장사들 완전 망쳤지. 여기서 팔리지 않는 재고품들은 조만간 각 지방으로 흘러갈 거야. 유행에 덜 민감한 지방에서 떨이 판매는 가능하거든. 대신 한류스타 양말 장사는 쏠쏠했어. 불티나게 팔리더라고.” 올가을 흐름 파악에 분주한 김 사장은 복고바람이 불 것으로 내다봤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버틱한 트렌드가 결합한 복고풍이 일본 20대 여성들 취향에 딱 맞을 것 같아.”

스스로 유행이 되는 대형 매장들

» 대형 의류 매장들은 길거리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면서 스스로 유행을 만든다.
영세 상인들이나 노점들이 최신 유행을 쫓느라 분주한 반면 에이치앤엠(H&M), 자라(ZARA) 같은 대형 의류 매장들은 길거리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소신껏(?) 매장을 꾸민다. 전세계를 상대하는 업체들인 데다가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거의 매일 ‘신상’(신상품)을 쏟아낸다. 흐름을 쫓아가지 않고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 간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H&M 정해진 팀장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신제품이 들어오고, 하루에도 오전과 오후에 진열 상품을 바꾸기도 한다”며 “한국 상황에 맞춘 제품을 따로 내놓기보다는 전 세계에 똑같은 제품을 내보내는 게 회사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의류 매장들도 명동이 국제적 상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명동 상권이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인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점이 부각된다. 실제, ‘한국 패션이 세련됐다’고 생각하는 중국 관광객들의 옷 구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구입한 물품 1위가 의류였다. 일본인들도 환율 차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명동에서 옷 구매를 더 늘릴 수 있다. 이미 명동 상인들 사이에선 프랑스계 의류업체가 명동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재는 화장품이 명동 상권의 주류이지만, 패션과 의류로 흐름이 이동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명동의 모든 것은…

명동은 소비의 공간이다. 명동에서 모든 행위는 직간접적으로 소비와 연결된다. 시계방 아저씨가 매일 아침 2시간짜리 의식을 펼치는 것도, 대형 매장이 오전과 오후에 진열 상품을 바꾸는 것도, ‘잘 팔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명동이 상업과 소비의 공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뒤에 감춰진 공간에도 사람이 있다. 소비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에 이어 명동을 삶의 공간으로 두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2부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