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슬럼독 밀리어네어
왜 슬럼에서 자란 사람은 퀴즈를 맞출 수 없게 되는 걸까? 슬럼. 도시화와 빈부격차로 인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도시 바깥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끼리 판잣집을 짖고 모여 살게 되면서 그 동네는 슬럼이라는 빈민촌이라고 불리게 된다. 당연히 빈민가에 대한 국가에 지원과 복지는 관심 밖에 일이고 때문에 그곳의 수도와 쓰레기 시설 거의 모든 환경이 최악일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 아이들이 활주로에서부터 경찰에 쫓기며 자연스럽게 동네의 풍경을 보여준다. 쓰레기장, 흙탕물 빨래터념 아이들의 수영장, 좁고 지저분한 골목. 어디에도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없기 때문에 동네의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것도 모자라 지역 환경조차 열악한 상황. 하지만 영화에서는 꽤나 유쾌하게 열악한 상황을 풀어나가서 열악한 상황의 슬럼에 대한 생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상황은 물질만능주의의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준다. 슬럼에서 자란 아이가 퀴즈를 맞췄다는 게 그렇게 의심스러운 일인가? 만약 주인공의 사는 곳이 슬럼이 아니었더라면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로 납치심문을 할 필요나 느꼈을까? 영화를 보면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승리를 인정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승리를 의심받고 무시하는 생각이 앞서있는 상황이 보여졌다. 이 상황을 보면서 돈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판사 변호사가 된 사람들과, 돈이 없어서 슬럼에 살고 전화연결원들에게 차를 타주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존재한다. 또 이 사회에서는 그만큼 사회 속에 인간을 만드는데, 돈이 정말 큰 역할을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바꿔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항상 자본주의의 황패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열을 내며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나조차도 이러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도 없다. 때문에 다음 주 이대 탈경계 인문학이 '맑스'인데 너무 타이밍이 나이스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