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10월 20일자 ‘Seattle Sunday Star’지에 실린 헨리 아담스박사(회담에 직접 통역으로 참석한 장본인)의 버전

시애틀추장의 연설문 :
시애틀추장 (1786 - 1866 )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우리들에게 연민의 눈물을 뿌려주었고, 우리들에게는 변함 없이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저 하늘도 이제는 바뀔 지도 모른다. 오늘은 개었지만 내일은 구름으로 뒤덮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말은 변치 않는 별들과도 같다. 나 시애틀이 하는 말은, 워싱턴의 대추장의 말을 해가 다시 뜨고 계절이 다시 돌아 오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백인추장이 말하기를 그의 대추장이 우리에게 우정과 선의의 인사를 보낸다고 한다. 이는  친절한 일이다. 우리는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정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로 느끼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부족들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저 광대한 초원의 풀과 같이 무수하다. 반면에 나의 부족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폭풍이 쓸고간 벌판 여기저기에 흩어진 나무와도 같다.

위대하고도 선한 백인 추장은 우리 땅을 사고 싶으며, 또한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땅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것은 참으로 공정하고도 관대한 처사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 붉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경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넓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현명한 제안일 지도 모른다.

한 때는 우리 종족이 온 땅을 가득 메운 시절이 있었다, 조개 껍질이 깔린 바다 밑을 바람에 부대껴 물결 치는 파도가 뒤덮듯.  하지만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고, 종족들의 위대함도 이제는 거의 잊혀져 버렸다. 나는 우리 종족의 때 아닌 쇠락을 슬퍼하지도, 또한 이를 재촉했다 하여 백인 형제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충동적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사실이거나 또는 상상에서 비롯된 불의에 분노하여 그들의 얼굴을 검게 문신을 새기면 그들의 마음 역시 일그러져 검게 변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잔혹성은 무자비할 뿐더러 그 끝도 없다. 우리 늙은이들은 이들을 만류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종족들과 백인 형제들 간의 적대감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만 될 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젊은 용사들이 목숨을 바칠 만큼 복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때에 집에 남아 있을 늙은이들과 싸우러 나갈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에 있는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 – 이제 그의 영토를 북쪽까지 넓혔으므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된 것으로 믿는다 –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는, 우리가 그가 바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를 보호하겠다는 전갈을보내왔다. 그의 용맹한 군대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보호벽이 될 것이며, 또한 그의 거대한 전함들이 우리의 항구를 채우게 되면 북방에 있는 우리의 오랜 적(敵)인 하이다스족(Haidas), 심시암즈족(Tsimsians)도 더 이상 우리 부족의 여자들과 노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들은 그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대들의 하느님은 우리의 하느님이 아니다. 그대들의 하느님은 그대들은 사랑하지만 우리 종족은 미워하신다! 그는 애정어린 손길로 백인들을 감싸 안고 마치 아버지가 갓난 아기를 이끌 듯이 그들을 끌어주지만, 그는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날이 갈수록 그대들 종족을 강성하게 만들고 있기에, 조만간 온 땅은 백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반면에 우리 종족들은 마치 재빨리 빠져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썰물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백인들의 하느님은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사랑할 수도 없고 또 보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아무 데서도 기댈 곳을 찾을 수 없는 고아들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한 형제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당신들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고 다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위대함을 찾으리라는 꿈을 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불공평한 것 같다. 그는 백인들에게만 찾아갔으므로, 우리는 그를 보지도 그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다. 그는 백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었지만, 한 때 별들이 저 창공을 채우듯 이 광대한 땅을 가득 메웠던 수백만 명의 피부가 붉은 자식들에게는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족이다. 우리의 기원이 다르듯이 앞으로의 운명도 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거의 공통점이 별로 없다.

우리 조상들의 유골과 재는 신성한 것이며, 그들이 마지막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은 거룩한 장소이다. 이에 비해 그대들은 아무런 후회도 없이 그대들 조상들의 무덤에서 멀리 떠나 떠돌아다닌다. 그대들의 신앙은 그대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성난 하나님의 강철같은 손가락에 의하여 석판 위에 쓰여졌다. 우리 종족들은 이런 것을 결코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들의 신앙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이다. 그것은 위대한 정령(Great Spirit)이 우리의 늙은 현자들에게 전해준 꿈이며, 우리들의 추장들이 본 환영(vision)으로서 우리 종족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대들의 조상들은 무덤의 입구만 지나서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그대들과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 멀리 하늘의 별들 너머로 세계로 멀어져 간다. 그리고는 곧 잊혀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들은 결코 그들을 존재케 했던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 웅장한 산들, 그리고 외진 계곡들을 변함없이 사랑한다. 그들은 언제나 지극한 애정으로 우리들의 외로움을 애처로이 여기기 때문에, 종종 다시 이곳을 찾아와 남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위로해준다.

밤과 낮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붉은 사람들은 아침 햇살에 안개가 스러지듯, 백인들이 다가오면 언제나 뒤로 물러서왔다. 하지만, 그대들의 제안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 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서 그대들이 제공하는 보호구역으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멀리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위대한 백인 대추장의 말은 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 종족을 인도하는 대자연의 목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를 따를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은 나날들이다.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울것이다. 지평선 위에는 별빛 같은 희망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슬픈 바람 소리는 저 멀리서 흐느끼고 있다. 우리 뒤로는 우리 부족의 무서운 적들이 쫓고 있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마치 상처 입은 암사슴이 사냥꾼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무자비한 파괴자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최후를 예비하게 되리라.

달이 몇 번 더 기울고 또 겨울이 몇 번 더 지나고 나면, 옛날 이 광대한 땅을 가득 채웠던 강대한 이땅의 주인이며, 또는 지금 뿔뿔이 흩어져 광야 속을 떠돌고 있는 종족들 중 그 누구도 살아 남아서, 한 때는 그대들 만큼이나 강하고 희망에 넘쳤던 종족의 무덤 앞에서 슬퍼해 줄 수도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왜 이를 불평해야 하는가? 내가 왜 우리 부족의 운명에 대해 불평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그저 각각의 인간들로 이루어졌을 뿐인 것을. 부족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가버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백인들이 멸망하는 시대는 아직 멀리 있는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되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대들 하느님과 함께 친구처럼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일지도 모른다.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의 제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결정이 나면 그대들에게 기별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설혹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다. 즉 우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 조상들과 친구들의 무덤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 땅의 어느 곳도 우리에게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벌판과 덤불 숲들은 우리 부족의 과거의 아렷한 추억이나 슬픈 경험으로 인하여 신성한 장소가 되어 있다. 엄숙한 위엄 속에 잠겨, 고요한 해변을 따라 묵묵히 누워 있는, 저 태양열에 달아오른 바위들 조차도 우리 부족들의 운명과 연관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전율하고 있다. 그대 발 밑의 흙 조차도 그대들보다는우리들의 발소리에 더욱 다정한 응답을 보낸다. 왜냐하면 그 흙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유골이며, 우리의 맨발 또한 우리 형제들의 생명이 충만한 토양이 보내는 따뜻한 촉감을 절절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이 곳에서 살면서 기쁨을 누렸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잊혀진 검은 문신을 한 용사들과 다정한 어머니들, 생기발랄한 처녀들과 어린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고독한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안식처는 황혼녁이 되면 음울한 정령들의 출현과 함께 어슬픗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리하여 마지막 인디언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그의 기억마저도 백인들 사이에서 옛이야기가 되고 난 다음에도, 이 해변들은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영혼들로 가득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벌판이나 상점, 차도 또는 숲의 고독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도,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밤이 되어 그대들 도시와 마을의 거리에 정적이 내려서 그대가 인적이 모두 끊어진 것으로 여길 때, 그 곳에는 한 때 그 곳에 살았고 아직도 아름다운 그 땅을 사랑하고 있는 영혼들이 모여들 것이다. 백인들도 결코 홀로 있을 수는 없다.

죽은 사람들이라고 완전히 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디 살아있는 우리 종족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죽음이라고 말했나? 사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변해가는 것일뿐.

 

출처: 이목수님 블로그에서 가져와서 새벽안개가 수정한 번역본.   최초작성(2008.01.09)
영문원본까지도 보고 싶다면, http://hosunson.egloos.com/12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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