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산이의 밤
퐁대입구
영등포
청과물 시장

밥 먹고 여태껏 뺑이다
꼴에 술도 한두 잔 먹었다
해는 바람난 지 오래고
달은 보이지도 않는다
12시39분이다

거리는 네온싸인으로
낮인지 밤인지
나더러 계속 흥청거리란다
거리엔 아직도 사람들로 빡빡하다

술도 들어갔고
나름 옷도 신경 썼겠다
기분이 좋다
좁은 어깨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게
힘 빡주고 폼 나게 걷는다

서른 아홉 번째 발걸음을 내딪었을때
오른쪽의 앞꿈치가
왼쪽발의 뒤꿈치에 걸려
나는 길바닥을 향해 그저 넘어진다
거리엔 아직도 사람들로 빡빡하다
누구 탓을 해야 하나
내 오른쪽 발을 걸은 왼쪽 뒤꿈치 탓을 해야 하나?

좋은 기분 망치기 싫어
멍청하게 한바탕 웃고는
다시 자세를 잡고 걷는다
전철에 몸을 실는다

공간이동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
이곳은 죽은 도시인가?
너무 어둡고 축축해
우울하고 아픈 기억으로
내몰아버린다

떠오르는 기억들에
핸드폰 전화번호부의
이름들을 살핀다
한숨을 뻑뻑 내쉬며
통화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한다
그저 잡생각에 빠져 걷는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진다
다시 기억은 문을 닫고 돌아간다
가게마다 동그란 백열등 몇 개씩을
내걸고 분주하다
"삐 삐 삐" 소리를 내며
허벌라게 큰 트럭이 후진을 한다고
나더러 비키랜다
어디선가 고함소리와 욕설이 들려온다
살짝 기분이 상한다

새벽 1시 37분
내 몸은 피곤하다고
눈이 뻘게서 대꾸도 안한다

트럭에서 주인아저씨들은
으쌰으쌰
지금 시간이 몇 신지도 모르는 듯이
움직인다

나는 뭘 했다고 피곤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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