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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교수모임
[탈핵교수모임] 2월 8일 세미나: 자연에너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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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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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교수모임
[탈핵교수모임] 2월 3일 세미나 : 탈핵과 윤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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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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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방사능 무대책에 대한 국민소송(헌법소원)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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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
2011-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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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요코하마 탈핵에너지 세계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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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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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
연말 연시 지구와 이웃과 나를 위한 겨울(세일) 시즌 보내기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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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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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원전 사고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 원자력안전협정의 체결과 주민의 안전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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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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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원전보다 더 위험한 그것, "하면 된다"고? |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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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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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강연문 전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원자력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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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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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한미원자력협정, 실리를 추구하자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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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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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고속로의 결정적 약점, 플루토늄 대량생산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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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고속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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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핵연료 재처리, 과연 200조원 가치가 있을까?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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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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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단 1%짜리 재활용 위해 수백조원 투자?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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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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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핵연료 해외 위탁 재처리, 과연 바람직한가?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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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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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장정욱 | 핵연료 재처리, '밀실 결정'에 맡길 건가? | 핵연료 재처리 진단과 대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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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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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인문주간(w/이화인문과학원)
[동영상] 송태현: 포스트 후쿠시마 문화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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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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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인문주간(w/이화인문과학원)
[동영상] 김경희: 동아시아인들이 바라본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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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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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9 / 잘가라 원전. 에너지 전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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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조 |
2011-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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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원자력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국, '탈핵'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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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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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인문주간(w/이화인문과학원)
[동영상] 강성윤: 후쿠시마와 생태에 대한 다면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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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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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전문은 위의 게시글 첨부파일에.
아래는 이원영교수님 작성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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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물리학) :
원전의 관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인간은 무제한의 시간동안 무제한의 경계를 지속시킬 심적 능력이 없다. 그런데 원전의 사용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원자로의 폐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효력이 끝날 때까지 수 천 혹은 수 만 년 간 관리를 지속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창세기의 아담은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하느님의 명령 한 가지를 어겼다. 선악과라고 하는 금기사항이었다. 왜 그것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것을 먹으면 죽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따먹고 벌을 받았다. 지금 우리 자연계에, 바로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정원 안에,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 가까이 하면 반드시 죽는 것, 바로 그런 것이 바로 ‘핵물질의 연쇄반응’이다.
유엔산하 과학자 집단인 IPCC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양에너지를 위주로 하는 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전세계의 동력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세계GDP의 1%에 해당하는 비용만 그 기술개발에 지불한다면 40년 이내에 세계에너지수요의 80%를 감당할 수 있고 지구 온난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정호영(충북대 교수, 철학) :
핵무기는 적을 상대하지만 핵발전소는 자국민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다. 그 위험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에 따를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가 누구에겐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결국 사회구성원 전체의 동의가 요구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동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형평성 즉 고통이 균형 있게 나누어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고통의 분유에 따른 적절한 보상체계/의미부여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은 결국 핵발전소 문제가 한 사회의 가치관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구성원의 합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사회적 결정의 문제라는 점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에 따른 합의/결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핵기술에 관련된 위험의 문제가 숨김없이 공개되고, 그 결정이 특정한 방향으로 강요됨이 없어야 한다.
위험분담의 형평성 문제는 현 세대 구성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세대와도 형평성도 심각히 고려되어야 한다. 전기에너지 이용의 과실은 현 세대가 누리고, 미래세대에 거의 영원히 처리되지 못할 맹독성 핵폐기물과 그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폐로된 핵발전소만을 남기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부모․자식 관계임을 상기하면 그 같은 일은 비인간적이기 까지 한 일이다.
독일은 일찍이 1998년 사민당-녹색당의 연립정부에서 2021년까지 핵발전을 폐지하기로 결정하였으나, 2009년 기민당-자민당의 보수적 연립정부가 집권하면서 2010년 17기의 핵발전소 수명을 연장하는 등 기존의 정책을 뒤집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규모 반핵시위가 있었고, 선거에서도 패배한 집권당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과학자, 사회학자, 종교인, 업계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Ethics Commission for a Safe Energy Supply는 집중적인 회의와 토론 끝에 2011년 5월 30일 ‘독일의 에너지 전환-미래를 위한 집합적 프로젝트’라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였고, 정부는 그 제안에 따라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는 지극히 모범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는 오랜 동안의 반핵운동과 그에 따른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형태의 논의가 당장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형태의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원돈(한신대 교수, 사회윤리) :
후쿠시마 핵 사고를 겪고도 핵 산업을 이끌고 있는 그들은 과학과 기술, 자본과 권력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형성한 체제의 주인공들이다. 이 과학기술체제는 군산복합체만큼이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견고하게 조직된 체제이다. 핵발전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전문성은 자본의 구심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제공한 정보로 인해 여론이 저항한다면, 그들은 이윤 추구에 방해를 느낀 자본에 의해 제거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국가 기구들이나 여론매체들은 핵 산업과 더불어 이익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핵 산업을 위축시키는 시민 저항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핵 산업은 과학기술체제로서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 지배에 굴복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핵 산업 체제가 파국적인 핵 사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체제를 움직이는 힘이 여전히 강고하기 때문이다.
핵 산업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핵 산업 체제가 가져오는 전 시민적 위험을 강조하면서도 핵 산업 체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의의 감각이 필요하다. 정의의 감각을 갖춘 사람들은 핵 산업 체제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일그러지고 깨뜨려졌음을 지적하고, 그 관계를 바르게 형성하여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 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그 권리는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유린될 수 없다.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핵 산업은 욥기 41장 1-34절에 등장하는 ‘레비아탄’을 연상케 한다. 욥기 41장은 레비아탄의 모습을 갖가지로 묘사하면서 “레비아탄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고 말하고,(9절) “그것에게 덤벼들고 그 어느 누가 무사하겠느냐? 이 세상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고 개탄한다.(11절) 또한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33-34절)고도 했다.
설사 땅 위에서 레비아탄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이 만물을 그분의 주권 아래 두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레비아탄과 같은 괴물도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핵 산업 체제는 하느님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고 전능한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핵 산업 체제가 내세우는 무신성의 구호에 맞서서 만물에 대한 창조주의 주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신앙고백 때문에 만물을 지배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체제의 명령에 굴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과학기술체제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하느님 노릇을 하려고 드는 것에 제동을 걸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핵 산업 체제를 해체하여 핵 과학과 기술을 자본과 권력의 구심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고, 자본과 권력을 민중의 통제 아래 놓는 일이다. 오직 그렇게 할 때 핵 산업 체제가 가져오는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은 비로소 핵 산업 체제의 독재로부터 벗어나 생명과 평화가 깃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유미호(기독교환경연대 실장) :
한국교회는 1986년 체르노빌사고 이래 반핵운동을 펼쳐왔다. 이제 우선적으로 할 일은 ‘자신이(교회가) 소비하고 있는 전력소비량을 살피는 것’이다. 원전이 9기였던 1991년 2,412kWh였던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5년 7,403kWh로 3배나 증가해, 이미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국민들보다 더 많아졌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우리는 그 4배나 되는 9,493kWh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 늘어난 에너지가 과연 필요에 따른 것인가 점검해야 한다. 소비하고 있는 것에 끊임없이 이윤을 좇는 이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에 의한 것이 있다면, 그 ‘에너지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초래하거나, 공기와 물과 땅을 오염시켜 회복되기 어렵게 하고 여러 동식물을 멸종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있음을 보게 해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알아야 할 것은 정부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를 채워주고자 2030년 13,510kWh를 목표로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라늄의 경우 2030년이면 2000년보다 20배나 가격이 뛰고 가채연한도 2040년부터 급강하하여 207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 때 가서 어쩔 수 없어 멈추려 한들 멈출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 곧 자신의 ‘에너지에 대한 필요’를 점검하고, ‘탐욕의 선’을 정하여 조절해가는 연습을 하자. 아직 희망은 있다.
“이 세상의 자원은 모든 인류에게 충분하나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간디)
“너희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예수)
주님은 지금 말씀하신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이 땅 지구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기에 충분하다고.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제대로 알아 그 필요만큼만 채우고 산다면 말이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풍요롭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눅 마 25:21)이라 칭찬받을 참 그리스도인이요, 신음하는 피조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다.
앞으로,
1. 교회 대중들의 핵 토론의 장 마련 (웍샵 및 토크)
2. 원전 건설지역 및 예정지 순례
3. 원전 관련 지역교회 혹은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기도회
4. 탈핵 교회 및 신학 선언 및 창조신앙회복(생태영성) 운동
5. 탈핵 교회를 위한 실천목표 및 이행계획 수립
6. 탈핵 교회를 위한 실천 = 교회의 에너지전환 운동
- 에너지절약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햇빛발전, 태양열 온수와 난방, 지열 및 바이오디젤 이용, 자연을 이용한 환기 및 채광 등, LED 조명, 친환경십자가로의 전환, 바이오 소변기, 빗물 활용, 텃밭이나 녹색쉼터로 녹지공간 조성, 가까운 먹을거리로 공동식사, 초록가게 운영 등)
7.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기도와 정책제안 및 연대 활동
등을 펼칠 것이다.
위의 내용을 보면서 절실하게 생각되는 바는,
'부모가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입니다.
탈핵은 곧 양심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