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마일을 뛰면 200불을 주지? 그리고 드디어 담배 워크숍은 진행되었으나...
(2000. 7. 14. 금 / 지원)
여전히 대표자 회의처럼 이상하게 계속되던 아침 미팅 시간을 땡땡이 치고, 우리들은 날씨가 날마다 환상이라는 산타페에 위치한 튜토리알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그렇듯이 그 학교도 항상 자유롭고, 자신감을 주고, 여유로운 시간이고, 자기평가는 자기가 하고, 돈이 많으면 많이 내고, 없으면 안 내고,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는 환경이었다. 튜토리알 학교 교장의 너무나 여유넉넉한 표정이 궁금해진 나는 우리가 하자에서 느끼는 바쁨, 끊임없이 뭔가 해야하고 알아야하고 들어야하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히 건네봤다. 그 결과 내가 알아낸 것은 진부한 명언, "다르고 같다"였다. 우리 나라와 미국, 하자센터와 튜토리알은 너무나 다르며 너무나 같다. 제도교육에 너덜너덜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스케치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확실히 제도교육은 사람의 피를 말린다. 반면에 제도를 나간 뒤의 생활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한국의 불쌍한 초기 자퇴생들은 모두가 자퇴생 대표선수들이며 투사들이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 나라의 제도와 싸워줘야 하며, 불확실한 자기 앞날을 위한 튼튼한 방어벽도 쌓아둬야 한다. 부모님의 눈 크고 입 큰 친구들을 배려해서 적당히 바른 생활도 해놔야 하고, 돌대가리 기자들 앞에서 의지에 불타는 눈빛 연기도 종종 보여줘야 한다. 튜토리알의 친구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자기를 위한 생활'이다. 남의 시선을 생각해 자기를 연기하는 상당한 수고가 제거된 생활. 나는 그 시간이 부럽다. 그 시간이 줄 수 있는 풍부함이 갖고 싶었다. 나중에 희옥스와 조한은 튜토리알학교와 하자센터와의 교환학생 제도도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또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런 종류의 시간이 나에게도(우리에게도)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테스타 교장의 이야기가 끝도 없어질 기세가 보이길래 나와 양상(일본어 통역을 해주던 선미언니는 어느샌가부터 '양상'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은 테가를 빠져 나와 숲을 산책했다. 한참 숲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할 줄 알았던 그 곳에,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머리가 여럿 보였다. 도꾜 슈레 아이들이었다. 가만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던 그 더운 날에 숲을 청소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묵었던 "테가의 언덕"이라는 곳은 청소를 할수록 숙박비가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올림픽 센터에서 테가의 언덕으로 장소를 옮기던 날, 도꾜 슈레 측은 테가의 이런 저런 규칙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함께 청소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부 외국사람들의 온갖 조소를 담은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 됐었고 그래서 못하게 된 청소를 슈레 팀이 혼자서 하고 있는 거였다. 나도 돕고싶다고 말했지만 이미 다 끝났다며 내일 방이나 잘 청소해 달라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이 행사는 정말 이상하게 치뤄지고 있다. 하필 이런 기숙사 같은 곳을 프리 스쿨 회의 장소로 선정하고 무턱대고 규칙이니 같이 청소하자고 말하던 도꾜 슈레 측도 이상하고 상대방의 사정이야 어찌됐건 자기네 나라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비웃고 놀려대던 다른 나라들도 이상하다. 매일같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이상하다.
오후에는 하자센터가 신청한 "아이덱에서 담배 피우기"라는 워크숍이 있었다. 의욕 없고 지친 표정의 하자 아이들과 꽤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모였다.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대표자 회의'라는 이상한 제도를 통해 '하달'되었던 아이덱에서의 십대 금연 명령에 대한 이야기와 청소년에게 담배를 금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사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결론이 미리 마련되어있는 회의였지만 아이덱 행사에 대한 진짜 이야기들-도꾜 슈레의 감각 없음, 서구인들의 오만과 반민주적인 행동-이 처음으로 젊은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리였다. 우리는 워크숍 결과를 정리해서 도꾜 슈레 팀에게 전달하기로 약속하고 회의를 마쳤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사요나라 파티가 있었다. 우리는 충분히 하지 못한 유스 페스티발 홍보 때문에 마음이 바빴고 나는 돈이 없어 밖에 있는 일본인 친구 히데미 때문에 신경질이 나 있었다. 히데미는 낮에는 '마꾸도나르도'(MacDonald)에서, 그리고 밤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나마 아이덱에 자원활동을 하면서 식당에서 짤렸다. 그래서 그 애는 마꾸도나르도도 짤리지 않도록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외국인들에게 차마 많은 돈을 받을 수 없었던 도꾜 슈레는 대신 자국의 외부 참가자들에게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국의 외부 참가자들이란 게 결국 누구겠는가? 일본에는 많은 자퇴생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의 대부분은 일정한 직업이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물가 비싼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주최측에서 그들에 대한 더 많은 배려가 필요했다. 방이 없어 가라오케에서 밤을 새고 식사시간마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무소속 부등교생들. 외국에서 온 내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는 것을 보면(사적인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히 도꾜 슈레는 무신경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힘들게 이 행사를 함께 하고 간 무소속 부등교생들에게 과연 아이덱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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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리한 발제내용과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발제 (1) 올림픽 기념 센터에서 담배를 피웠던 하자꼬라지들은 '대표자 회의'에서 돌아온 히옥스로부터 일본에서 미성년자는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피우지 말라'는 통보가 있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전달된 이 상황이, 하자꼬라지들은 매우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
발제 (2) 대부분의 나라들은 청소년의 담배, 술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자꼬라지들은 이것이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관리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1) '성년'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넌 어리니까 보호받아야 하고 넌 어른이니까 모든 것을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양쪽에게 매우 폭력적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만큼 관리할 수 있는지.
결론 (2) 13일 밤에 있었던 drug에 관한 토론을 들었다. 시카고에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만으로는 스스로의 생명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회에 따라서 어떤 기준은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결론 (3) 지금까지 많은 회의가 있었지만 이번 아이덱에 관한 실질적인 사항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우리들은 아이덱 준비팀이 '대표자 회의'나 이름표로 Adult 와 Child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어떤 특정 사항에 대해 대화로 해결하려 노력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사용요금을 줄이기 위해서 도쿄 슈레팀이 테가 주위를 전부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 도쿄 슈레팀이 전체 회의 때 함께 청소를 하자고 말했었지만, 다른 여러 나라 팀들은 비웃음과 비꼬는 말로 일관하며 무시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나 도쿄 슈레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들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
산타페라는 고산지대에 있는 안락한 학교 Tutorial School의 교장 리차드 테스타는 하자센터의 홍보비디오를 본 후 우리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무척 좋아했고, 교환학생제도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거의 70이 다 된 노인이었지만, 매일 3마일씩을 조깅하는 건강한 분이셨고, 학교학생들에게 같이 완주하면 매일 200불씩으로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완주한 학생들은 없었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이데거를 인용하면서 '실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테스타 교장을 보고 철학이론에 해박한 교장이라는 생각에 감탄스러웠다.
"IDEC from now on"이라는 워크숍은 우리가 흡연문제 워크숍을 열고 있을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팀에서는 희옥스가 대표로 참석하였다. 조한은 이미 ICANN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테가를 떠난 후였다. 아이덱을 그대로 회의체로만 둘 것인지 아니면 아이덱위원회 같은 것을 둘 것인지의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것인데 작년에 그 문제를 위임받은 몇 사람, 작년의 시카고의 제시 럼과 펜실베니아의 짐 코너가 내놓은 해결책은 "worldwide real education network"라는 것을 만들자는 거였다. 이들의 안은 제3의 안이 되고 말았다. 젊은 미국인들이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는 어떤 나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있는 단위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들의 문화적 차이가 경제적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인 토론이었지만, 이제 이 세 가지 안(그냥 두자, 위원회를 만들자, 온라인 네트워크를 만들자)으로 의견이 분분한 채 논의는 내년으로 다시 미뤄지고 말았다.
우리처럼 올해 처음으로 참여한 인도의 버터플라이스쿨의 선생님들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아름다운 색색깔의 천들을 휘감고 다녔다. 우리나라의 천 가게에 가면 저런 것들은 몇 십만원씩할 텐데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버터플라이스쿨은 매우 가난한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덱의 참가도 일본 주최측에서 여비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길거리의 부랑자같은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열었다는 버터플라이스쿨. 그들은 간디의 비폭력주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언젠가 나비가 될 꿈을 꾸는 애벌래들인 것이다.
담배워크숍에는 나고야대학의 학생들과 프리스페이스 나기(NAGI)의 청소년들, 그리고 금방 친구가 되었던 탈학교청소년 사나에 그리고 하자쪽 친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