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악(세종이 새로 재정비한 음악)과 훈민정음의 관계는?


나나 : 중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백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었었다. 한자도 그렇고 음악도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 시대의 인식은 파격적이었던 것 같은데 중국의 것을 우리나라의 것으로 개조시켰다는 생각도 있다.


Q.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엔 한다. 신악을 마찬가지였지만 이후에 세조(수양대군)가 완성한다. 훈민정음이 반포될 무렵 반대를 하는 신하의 의견과 신악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반대는 같은 것일까?


풀 : 훈민정음과 관련해서 고려나 신라가 있었는데 얼마 가지는 못 하고 쓰러진 것이 중국이 너무 센 것 같다. 조선시대부터는 중국의 아래로 들어가 글자도 받고 여러 가지를 받아서 왕조가 오래갔던 것 같다. 세조와 세종의 업적은 그런 일의 저항인 것 같다.


Q : 세종은 조선 초기의 왕이다. 세종은 고려 시대도 보았을 것이다. 고려의 실정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세종이 일을 진행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씨오진 : 아마 이 두 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이 건축되고, 정책을 자치적으로 확립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하들은 중국의 문물을 그대로 받으려고 했고, 세종은 유교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능동적인 정치를 펼치려고 했던 것 같다. 계속 안타깝고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신하들도 유교적 사상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텐데 중국을 따라가려고만 했을까?

나나 :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워낙 강하다보니 그것을 쫓는, 그런 현상이 아니었나싶다.


성원 : 요즘도 그런데, 갖고 있던 기득권을 바꾸게 된다면 굉장히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중국은 거대한 나라고 동양의 중심이었다. 우리는 중국 땅 아래 있고. 우리나라가 중국에 밑 보이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들의 자주성을 찾아가기 위해서 했었던 업적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훈민정음을 만들고 향악을 만들고 이렇게만 쓰자, 저렇게만 쓰자.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글을 만들고 향악을 만들었으니 이것만 쓰라, 그런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세종은 자주성 성립을 시도한 왕이 아니었나.


고찌 :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고 그들은 대단하고 우리는 따라가고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사대주의다. 보통의 보수라 함은 신하들의 가장 큰 걱정은 나라가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 가장 큰 근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을 막으려고 했던 것. 만약 일이 실행되었을 때 외로부터 들어올 압박 등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막는 것이 나라를 안전하고 부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애국’을 전제로 움직이는 보수나 진보파 얘기를 하는 것이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금도 나라가 안전하려면 해군기지가 있어야한다. 왜? 애국. 이런 식의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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