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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글 수 53
Q. 신악(세종이 새로 재정비한 음악)과 훈민정음의 관계는? 나나 : 중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백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었었다. 한자도 그렇고 음악도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 시대의 인식은 파격적이었던 것 같은데 중국의 것을 우리나라의 것으로 개조시켰다는 생각도 있다. Q.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엔 한다. 신악을 마찬가지였지만 이후에 세조(수양대군)가 완성한다. 훈민정음이 반포될 무렵 반대를 하는 신하의 의견과 신악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반대는 같은 것일까? 풀 : 훈민정음과 관련해서 고려나 신라가 있었는데 얼마 가지는 못 하고 쓰러진 것이 중국이 너무 센 것 같다. 조선시대부터는 중국의 아래로 들어가 글자도 받고 여러 가지를 받아서 왕조가 오래갔던 것 같다. 세조와 세종의 업적은 그런 일의 저항인 것 같다. Q : 세종은 조선 초기의 왕이다. 세종은 고려 시대도 보았을 것이다. 고려의 실정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세종이 일을 진행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씨오진 : 아마 이 두 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이 건축되고, 정책을 자치적으로 확립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하들은 중국의 문물을 그대로 받으려고 했고, 세종은 유교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능동적인 정치를 펼치려고 했던 것 같다. 계속 안타깝고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신하들도 유교적 사상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텐데 중국을 따라가려고만 했을까? 나나 :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워낙 강하다보니 그것을 쫓는, 그런 현상이 아니었나싶다. 성원 : 요즘도 그런데, 갖고 있던 기득권을 바꾸게 된다면 굉장히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중국은 거대한 나라고 동양의 중심이었다. 우리는 중국 땅 아래 있고. 우리나라가 중국에 밑 보이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들의 자주성을 찾아가기 위해서 했었던 업적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훈민정음을 만들고 향악을 만들고 이렇게만 쓰자, 저렇게만 쓰자.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글을 만들고 향악을 만들었으니 이것만 쓰라, 그런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세종은 자주성 성립을 시도한 왕이 아니었나. 고찌 :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고 그들은 대단하고 우리는 따라가고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사대주의다. 보통의 보수라 함은 신하들의 가장 큰 걱정은 나라가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 가장 큰 근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을 막으려고 했던 것. 만약 일이 실행되었을 때 외로부터 들어올 압박 등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막는 것이 나라를 안전하고 부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애국’을 전제로 움직이는 보수나 진보파 얘기를 하는 것이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금도 나라가 안전하려면 해군기지가 있어야한다. 왜? 애국. 이런 식의 명분. ![]()
2012.05.05 02:49:30
뿌리깊은나무는 우선 송중기가 너무.....멋.....ㅎ......ㅎㅎ...... 2화에서 태종이 '너의 조선은 어떤조선이냐?' 라고 했는데 대체 세종의 조선은 무엇이엿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품달 해례본에는 세종의 조선은 '모두의 진심을 얻어 그들을 품는 조선'을 지향했다고 전제하고있다고 하는데 저말도 틀린말이아닌것같다. 되게 뭔가 백성들을 생각하고 소통하고 싶어했던것같다. 태종과는 좀 많은 차이가 있는것 같은데 크게 세종과 태종의 차이점은 붓과 펜인데, 태종은 좀 왕권확립을 중요시하고 직선적?저돌적?이고 세종은 타협적이고 좀 합리적이였던것같다. 근데 음 2화에서 어린세종이 태종이 자신이 11살일때 외척들과 자신의 가까운 주위사람들이라고하나 친척들을 죽이는 그런 아버지가 어땠을까? 아버지를 이해할려고 했다는데 나라면 이해하고싶어하지도 않았을것 같다. 심지어 이방원은 자신의 자신의 아내인 민씨의 형제들을 살해했다는데 으어아 부인은........얼마나 힘들었을까? 화는 나지않았을까? 화는 나는데 뭐라고 하지는못했을까? 내가 어린세자나 민씨였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약에 내가 그상황에서 놓여있었다면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태종은 자신이 계속 통치를 할수있었는데 왜 세종에게 그토록 힘들게 얻은 조선의 왕자리를 빨리준것일까? 음 만약에 자기가 죽기라도 하면 왕위를위한 다툼이 일것이고 혼란이 생길것인데 빨리 왕자리를 주어서 왕중심의 체계를 교육시키는게 좋겠다라고 생각을해서 주었다고 하는데 어차피 세종은 태종이 죽기전까지 그냥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것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한글반포를 그렇게나 반대를 하고 세종은 계속 추진을 했을까? 밖으로 봤을때는 중국이 많이 좀 신경에 쓰였던것같다. 훈민정음을 반포함으로써 기존의 유학에서 좀 벗어나 우리가 만든 우리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는것에 대해서 걱정이 참많은것 같았다. 그리고 안으로 봤을때에는 그때는 한자를 쓰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방법을 모르니까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반포함으로써 좀 평등해질수있는? 그런게 실현가능해지게끔 상상해 보았던것도 같아요. 세종대왕,소리가 하늘이다.는 유교와 음악의 관계라고 했을때는 유교라하면 공자인데 우리나라가 유교가 기본바탕인 사회였는데 음 사실 나도 그렇게 뭐라 깁숙히 얘기를 못하겠어서; 유교와 훈민정음과 엮인걸 정리해보고 창제는 또 세종은 왜 음악을 정비했을까? 영상에서도 나왔듯이 이상국가를 건설하기위해서 그리고 일종의 정치수단을 위해서 그리고 이로서 왕실의 법도와 위엄이 세우기 위해서.라고 영상이 놔왔다. 그리고 우리말을 담기위해 훈민정음을 우리음을 담기 위에서 우리음악을 만든것이고. 그리고 음악으로써 소통울 하기위했다고 했고 악기만들때 천연재료를 사용해서 했다고 했는데 천연자원으로 내는 조선시대의 이런소리는 구나가 하는 신기함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좀 차별화되고 자치적인 나라임을 보여주기위함도 없지않아 있어보였고 그리고 크게 생각하는것은 우리만의 음을 만들어서 음계를 통해서 국민들과 어울림?다같이? 좀 대동단결하는 그런 걸 바라지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봤을떄는 중국으로부터 자립을 하고 싶어했던 세종이였던것같다요.
2012.05.06 17:14:52
까르 무언가를 바꾸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고 그 만큼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힘든 일이었을 텐데,, 보는 내내 그 당시 힘이 강했던 중국을 뒤로 넘기고 백성들과 소통을 하려 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습니다. 훈민정음과 신악은 소통하려고 했던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세종이 백성을 위해, 오로지 남을 위해서만 한글을 만들었을까? 하는 (몹쓸..)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어딜가나 자꾸 좋은 이야기만 나와서.. 세종의 성격이나 정치방식은 태종 이방원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태종이 죽으면서 세종에게 잘 하라고 말을 했을때 '그래도 죽기 전엔 역시 아들을 위한 말을 하는 구나,,' 싶었는데 이어서 너가 잘 해야 내 선택이 잘 한 선택이 되며 그래야 내가 유명(?)해진다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걸 보고 실제로 저리 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잔인하다 싶었습니다. 저게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일까... 한국의 전통 음악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사물놀이, 판소리 그런 것들인데 궁중음악도 조금 더 대중화 되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지금 저런 것들을 배우시고 치시는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시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
2012.05.07 06:23:11
훈민정음과 신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국의 무언가를 버린 다는 것, 조선만의 무언가를 만든다는게 무엇이길래 세종이 왜? 그랬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조선건국초기라는 배경이 가장 큰 이유겠지? 하는 간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 수 도 있지만, 왜 우리의 것이 중요하지? 지금 우리에게 "우리의 것"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작은미국이라는 별명도 생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지만, 있겠지만 누가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알고 있는 "우리의 것" 예를 들어 전통결혼문화나 돌잔치?, 제사를 드리는 문화, 한글, 판소리 같은 것은 언제부터 "우리의 것" 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이라 불리는 것들은 계속해서 변해갈 텐데...변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같은 질문들이 들었어요.
저는 뿌리깊은 나무 라는 드라마를 좋아해서 방영당시 좋아라하면서 시청했었는데, 다시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보게 되면서 계급이 있는 사회에서 모두가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글을 읽는 것도 환대받지 못하는 문화였다는 것이 떠오르면서 드라마에서 한글창제 반대파들이 많이 했던 이야기인 "질서가 어지럽혀질 것이다"라는 말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시험을 보고 관리의 자격을 얻는다고 하여도, 타고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이 큰 영향을 미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랏일에 평생동안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겠지.!하는 것도 떠올랐어요. 참, 악기는 우주의 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옛날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자연이 음악이 되고 - 그 음악의 기준을 이용해서 또 다른 기준을 만드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좋은 음악은 좋은 민심을 만든다는 이야기도요. 음악을 정치적이념을 바로잡는 도구로 열심히 연구하고, 이용했다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2012.05.08 07:45:44
나나 세종은 참 마음이 따듯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였던거 같았다. 게다가 공부를 많이 함으로서 훌륭한 군주의 조건을 갖췄다. 아무리 반대파가 있어도 아버지인 태종이 무력으로서 척결한거와 달리 논리적으로 토론을 해서 이김으로서 반대파를 수긍하게 했다. 세종이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말이라고 했던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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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나하나 상대할 것이다!! 하는 세종대왕처럼 큰 정책의 결정은
대통령이 정당 대표들을 하나하나 상대하면 좋겠단 생각이 해품달 보다가 문득..
세종대왕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다음 주 강의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