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잘 정리가 안되요. 시간을 조금 만 더 갖은 뒤 올릴게요. 답사 1일 날 밤에 썼던 글이라도 올릴게요.

해남투어 1일차, 새벽 2시.

 6시가 조금 넘어 비가 기분 나쁘게 옷을 적시는 날씨에 출발을 했다. 나름에 해남이라는 공간에서 고정희와 김난주 시인의 시를 읽고자하여,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지며 시를 찾아 한글에 옮겨 붙였다. 해남과 지리산, 80년대 한국의 뜨거움과 향수를 담은 김남주와 고정희  시들. 적어도 답사 날 밤의 하루 정리만이라도 이들의 시를 읽고자 했다. 나름에 이면지활용까지 생각해서 인쇄를 했지만 당황스럽게도 이면지 사용의 가장 큰 단점인 종이가 구겨져 프린터에 쉽게 걸린다는 점이 내 답사 여행을 비와 함께 좋지만은 않게 했다. 하지만 시를 모으며 간간히 읽었던 구절과 그들의 이미지들은 왠지 이 여행과 밤 시간을 살짝 설레고 기대하게했다. 정말 오랜만에 움직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날씨도 쌀쌀해져 불안하게 했지만, 세이렌의 배웅을 받으며 희옥스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별 탈 없이 출발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멍때리고 자고 얘기하다를 반복하며 4시간 쯤 달려 내려왔을 때 목포의 어느 구석 방파제에 내려 바닷바람을 만났다. 4월이 다 끝나가는 지금에도 바람은 매섭고 차가웠다. 얼른 다시 차를 타고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를 대충 둘러봤다. 황토로 빗은 집이다. 공간도 넓고 시설도 쾌적하게 정말 잘 갖춰져 있어서 이곳이 시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방에서 풍겨 나오는 시골 집 특유의 냄새와 주변 풍경뿐이었다. 심지어 최신식 HD와일드 완전평면 벽걸이 TV까지 걸려있어서 TV없이 살고 있는 나에겐 왠지 일탈의 여행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긴장을 풀어 버리려 했다. 대충 몸을 씻어내고 다른 일행들의 방으로 옮겨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희옥스가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하자를 수료하고 나서의 계획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생태건축을 하고 싶기 때문에 호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희옥스는 이 계획이 정말 막연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짚어 주시고, '시우스 마운틴 회사'의 전문성과 회사의 철저한 기준(방침)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며 내가 정말 지치고 피곤해질 때까지 쏟아 붓고 좀 더 과정에 집중해 파고들 것을 빨리 시작하고 정말 지쳐서 쉴 타이밍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를 눈치반 요구 반 하셨다고 난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내가 너무 하는 게 없고 입만 살아 있는 무능력한 게으른 멍청이라는 생각에 희옥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내 방에 돌아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게으름을 정 반대에 두기로 결심 만 했다. 나보다 경험도 지식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에 대해서 체크해 주는 시간이 너무 좋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또래나 20대 친구와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 외에 없기 때문에 조언이나 충고 같은 것이 나에게 박힐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쓸쓸하다. 당장에는 내 시간과 힘들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짐하는데, 또 그냥 다짐으로 끝날 거 같은 생각이 한편으로 든다. 너무 여러 번 이런 다짐들을 흐지부지 보내버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핑계만 대는 멍청이....�









여행정리

->고정희와 해남?
 답답, 막막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투어 준비를 해남에 가면 조금이라도 풀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었다. 고정희와 김남주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장소 이동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적어도 이 시인들의 마을에서 그 시인들이 풀고있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나 감수성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이들에게 해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왠걸 내가 읽은 시들은 대부분 '밤과 자본주의'와 같은 민중운동의 감정이 막 풍겨 나오는 시들이었다. 천하태평하게 하늘의 파랑과 땅의 초록이 지나가고 그 중간에서 80년대 당시 광주와 그들의 시대운동이 다가왔다. 파랑과 초록의 공간과는 상관없이 그저 새벽녘 금남로를 돌며 확성기에 울부짖는 여자만 상상 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 고정희 시인에게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고, 알게 된 것도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다 한번 소개받은 사람.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사람. 그래서 이 사람은 매우 낯설다. 어렵기도 하고... 내가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힘은 그녀의 시다. 2009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광주의 뜨거움과 슬픔, 아시아의 여성들에 대한 노래가 슬픔, 분노, 따듯함... 내 감정을 건드린다. 거기다 난 그녀를 추모하는 여행의 안내자 역할도 맡았다. 그녀의 생가와 무덤. 그녀와도 그녀의 집과도 첫 만남이다. 왠지 그녀의 생가 앞에 내려 서있자니 차분해지고 싶어졌다. 생가 주변엔 대나무 밭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대나무 밭이 있는 작은 집을 구하지 못해 아직도 기러기 가족 신세로 살아가고 있는데, 문뜩 그 대나무 밭이 부러웠다. 디카에 대나무 밭을 담으려 그것에 눈길을 맞추자 바람이 막 불어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초 뒤 어디선가 새들도 날아올라 지적이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시인의 집이였기 때문일까, 왠지 나 혼자 이 장면을 보고 "안녕." 대나무와 새들의 인사에 대답을 했다. 나에게도 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건가. ㅋㅋㅋ
 그녀의 무덤. 숙연한 마음이 커지고 움직임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녀의 무덤은 뒤로는 소나무 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호수 넘어로는 (보리밭?) 평지가 펼쳐진다. 어렷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성묘와 벌초를 빠짐없이 다녔기 때문에 그녀의 무덤 위에 자라난 쑥을 뽑아주고 싶었다. 쑥과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으며 그녀에게 인사도 건네고 내 소개도 했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러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안부와 곧 다시 찾아 올 것을 일러주고는 절을 올렸다. 그녀의 무덤 주변에는 아주 작은 보라색의 예쁜 꽃들이 있었다. 다시 우리를 이동시켜줄 차로 돌아가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성묘를 올리는 일들에 더 진지해지고 마음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해남의 하늘 땅끝의 하늘
해남은 땅과 하늘이 참 예쁘고 따듯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개 구름들, 온통 나무와 보리 같은 식물들로 초록빛인 땅. 서울에서 이곳으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 이 해남의 땅과 하늘 사이에서 고정희 시인이 묻혀있는 곳에서 우리의 룰 모델을 생각하고 축축한 사람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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