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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1학기, 공연음악팀, 초코(이완석) 다르지않아 처음 히옥스께서 에세이를 자서전처럼 쓰라고 하셔서 많은 걱정을 했었다. 내 어릴적 이야기. 가족마저 나를 불쌍하게 보는데 남들은 어떻겠는가. 내 어릴적 이야기. 라고하면 그냥 서러움이 밀려들고, 그냥 속이 쓰리다. 나는 내 어릴적 이야기, 자라왓던 환경, 내가 여태 격었던 일들을 남에게 말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진심으로 친한친구 한명 말고는 내가 살아왔던 환경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못했던 그 이야기들을 여기에 풀어놓으려 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별 탈없이, 별 문제없이 학교를 다녔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편도 아니지만, 눈에 띄지도 않게,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게 학교생활을했다.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것을 스스로 최면을 걸며, 남들과 같은 가정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집 밖에선 밝게 행동하고, 집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학교에선 웃으며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면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보는게 싫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남에게한다면 '너를 이해해, 힘내'의 대답보단, '헐 불쌍해..' 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나는 그런 다른 사람의 눈길이 싫었다. 나도 또래 애들과 다르지 않는데, 그 애들은 나를 '다른집단의 아이'라고 생각하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이이야기를 이런곳에 하는게 맞나 싶기도하다. 사실 나는 어릴적부터 엄마가 안계신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계시지만 어디에 사는지, 성함은 무엇인지, 얼굴마저 모른다. 어릴적 당연하게 있어야하는 엄마의 자리도, 엄마라는것은 무슨일을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울때도 "엄마" 하고 우는게아니라 "아빠" 하며 울었었다. 어렸을적 초등학교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것을 알았다. 엄마와 함께 추는 포크댄스, 나는 친구와 친구엄마와 셋이서 춤을 추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에겐 큰 상처였다.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던 춤은 나에겐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다. 그때부터 였을까, 나는 엄마의 존재를 숨겼고, 친구들이 엄마에 대해 물어도 그냥 있다고만 말하고 흘려 넘겼던거 같다. 만약 엄마를 마트에서 살수있는 과자처럼 살수있다면, 사고싶었엇다. 함께살던 갓 스무살이 된 고모에게 엄마라고 부르면 안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빠는 새엄마와 결혼을 하셨고, 나는 마냥 엄마가 생겼다는 마음에 줄곳 잘 따랐다. 하지만 새 엄마에겐 나보다 나이가 많은 딸이 있었는데, 어쩌면 당연하다는듯이 나보다 그 언니를 이뻐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있어도 없는 그런 생활을 했었다. 적어도 엄마로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것 들을 나는 받지를 못했고, 처음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은 나에게 '엄마는 필요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요즘엔 한편으로 걱정인것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될수있을까 하는생각도 든다. 어릴적엔 엄마 밑에서 자라지도 못했고, 엄마라고 불럿던 사람은 그리 좋은사람도 아니였으니, 나중에 결혼을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내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며, 아이를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밤마다 나는 울고 울엇다. 중학교 1학년, 새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우셧다. 새엄마와 함께한 기억중엔 싸우고 맞는기억밖에 없다. 무엇때문에 자주 싸우셧는진 나도잘모르겠지만, 새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이면 난 항상 내방에서 혼자 울면서 기도했다. 이세상 아이들이 나보다 힘들지않게 해달라고, 이런 슬픔 나 혼자만으로도 족하니까 나처럼 힘든아이들 이젠 행복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결국 중1학년 1학기때 생엄마와 아빠는 이혼을하셧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원래 없었던' 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편했다. 그렇게 나는 또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왜이렇게 숨기는지 잘모르겠다. 창피한가? 현실을 받아드리고 싶지 않은건가? 그냥 나는 없는엄마를 만들어내며 중학교 3년을 탈없이 보냇다. 그땐 음악뿐이였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정할때쯤, 나는 평소 의지해왔던 음악이 내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여 예고를 준비하고있엇다. 그전부터 작은 아빠께서 추천해주신 대안학교가 있엇지만, 그곳은 기숙사형이라 친구들과 떨어지기도 싫고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안학교란곳을 모르는건아니였다. 하지만 내주위 친구들중 대안학교에 간 애들보면, 흔히 말하는 노는애들, 문제아들, 학생부 들락날락 하는 아이들, 또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애들, 학교안나오는애들밖에 없어서 그런지 나는 대안학교를 별로 좋게 보진않았다. 또 그런 아이들밖에 없는곳에 가서 내가 잘 적응 할수있을지도 걱정이 되엇고, 물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예고로 정한걸지도모른다. 목표를 예고로 정하고 내적성에 맞는건 음악이라고 생각할때부터였을까? 나는 공부에 손을대지 않았다. 그땐 너무 어렸다. 음악을 하면 공부를 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수업시간엔 항상 자고, 놀앗다. 그래도 선생님들께 찍히지 않으려고, 공부하는척하고, 숙제도 항상 친구꺼를 배꼇엇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난 참 어렸었다. 생각없이 마냥 놀기만 했고, 배우는거 없이 학교에다녓다. 왜 다니는지 왜 공부를 하는지모른체 정말 말그대로 생각없이 놀았다. 어른들이 '너 걱정된다'는둥 '한심하다'는둥 '생각좀하고 살아라'능둥 이런말을 할때면 나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엇다. 그런데 이제와서 왜 그런말씀을 하셧는지 알것같다. 내 어릴적 내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참 한심스럽다. 후회가 된다. 그래도 다행히 간당간당하게 성적이 되서 예고에 입학원서를 넣을수있게 되엇고, 실기시험을 보고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보기좋게 떨어지고, 학교를 어디갈가 생각하다가 그냥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었고 붙었지만, 한편으로 걱적이 태산이였다. 중학교때 공부도 안했는데, 고등학교 공부과정은 중학교때와 차원이 다르다는데, 내가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할수있을까? 고등학교 가서도 중학생때처럼 공부도 안하고 그냥 밑바닥 깔아줄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봄방학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냥 대충 3년 있다가 졸업하고 노래로 대학이나 갈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자퇴해서 돈이나 벌까하는 생각도 있엇다. 그때 마침 작은아빠께서 연락해 오셧다. 대안학교 갈생각이 아직도 없냐고.. 그냥 나는 인문계학교 가는것도 싫고, 공부하는것도 싫고해서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했고. 그학교가 하자 작업장학교라는곳인걸 알게 되엇다. 이미 늦은것만 같았다. 아주 어렸을적부터 대안학교에다녀 대안학교에 대해 지식이 많은 애들도있고, 일년전부터 자기가 다닐 대안학교를 찾아 다니는 애들도 있다고 들엇다. 그런데 나는 입학이 한달도 체 안남는 학교 입학원서를 지금 쓰고 있다니..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히 떨어질거라고 생각하고 한줄기의 희망을 믿고 원서를 쓴거같다. 사실 많이 불안했다. 내가 생각했던것처럼, 학교엔 노는 애들만 있을거같고, 대안학교란곳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체 가서 내가 무엇을 배울수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차 입학원서를 넣고, 합격 했다는 메일이 왔을때 믿기지 않았다. 2차 면접땐 무슨 얘기가 나올까,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또 어떤 마음 가짐으로 가야할까..생각이 많지도 않고, 말을 잘하는것도 아니고, 처음 하는 면접이라 많이 떨리기도 했다. 무엇을 배우는 학교인지도,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도 잘몰랏기 때문에 더욱 떨렸던거같다. 사실 2차면접을 생각해보면 잘기억이 안난다. 그땐 그냥 너무떨려서 머릿속이 새하애 무슨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그적 기억나는것은 나는 마냥 음악을 하고싶고, 밴드를 만들어 밴드도 하고싶다. 라고 말한것밖에.. 그런데도 히옥스는 '3차때 봐요'라고 말씀하셧다. 2차도 통과하고, 3차 쇼하자를 준비하는중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생각이 들엇다. "저는 성격이 활발하고 활동적이며 친구들과 어울리는것을 좋아하고, 꾸미는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는 음악이고 특기도 음악입니다." 말고는 할얘기가 없었다. 나는 참 나에 대해 아는것이 없구나..라고 느꼈엇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자신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하고있을동안엔 행복하다고 느끼는 음악으로 나를 표현해보자고 생각했다. 예고를 준비할때 불럿던 '뭐라할까'라는 곡을 부르려고 했으나, 나를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러다 예전에 한참들었엇던, '나의 노래'라는곡이 생각낫다. 내 심장과도 같은 내 노래, 모두가 안된다고 하고 힘들거라고 했지만 나는 노래할거라는 내용의 노래엿다. 정말 제목그대로 딱 내노래 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없이 이노래를 택했지만, 일주일도 체안남은 기간동안 그곡을 완벽카피라는것은 힘들었다. 그리고 내음향대가 그리 높지도 않아 키를 낮췄는데도 힘든곡이였다. 그래도 굳이 고집을 부려 3차 쇼하자때 노래를 불럿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은 무대였다. 3차 쇼하자에서 떨어질거라고 생각했었는데, 3차를 붙었고 나는 그냥 마냥 좋아 했었다. 신입생이니까 신입생 오티를하고, 졸업식을하고, 하자 작업장학교의 죽돌이 되엇다. 처음부터 공연팀을 목적으로 들어왔고, 하자란 어떤곳인지도 잘몰랏엇다. 학교에 들어온지 일주일도 안된시점에 3.10이라는 탈핵시위를 했고, 그때까지 탈핵이란것이 뭔지도 모른체 행사에 임했다. 심지어 나는 하자 작업장 학교에 다니며 하자작업장학교가 어떤곳인지 파악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저 학교가 재밋었고, 즐기기에 바빳다. 내가 생각한거와는 다르게 대안학교 학생들은 사교성도 좋고, 성격도 좋은 친구들이였다. 언니오빠라는 나이개념이 없다는것에 신선한 충격도 있었고, 어찌보면 언니오빠들에게 반말을 한다는건데, 일반학교에선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나는 적응하기에 바빳다. 학교에 있는 모든것들이 나에겐 신기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것도 없고, 나이개념도 없고, 선후배관계도 없고, 한건물안에 여러개의 학교가있고, 밥도 학생이, 행사도 죽돌들끼리 회의하고, 일회용품을 안쓰고.. 그저 신기할뿐 나는 하자 작업장 죽돌로서 움직이는게 없었다. '신입' 이라는 타이틀 안에 나의 철없는 행동들을, 실수들을, 짧은 생각들을 감추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리뷰는 애들 말하는거 따라서 이정도 포장하면 되겠지, 하는생각이였다. 내생각은 10%들어간다면 포장하는거에90%가 들어갔다. 다른애들이 "이런생각을 했어요," 라고 말하면 '어? 나도 그생각 쫌 했는데' 하며 이런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게 좋았고 저게 좋았고 이런점은 싫었어요." 그저 이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습관이 되어 리뷰를 할때 자동적으로 포장을 해버렸고,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진짜 그런생각을 했다고 느껴버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준비가 덜되있엇다, 학교를 다니며 항상 '나는 일반학교에서 왔고, 그전에 공부도 안했었으니까 이해해줄거야' 라고 생각을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않았다. 그런점에 반성을 많이하고 있다. 처음 한학기를 마치며 그런학교가 아니야 자퇴를 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자퇴를 고등학교 등교가 한달도 안남은 시첨에서 덜컥 해버린다는 결정을 내린다는건 어려운일이였다. 나는 나름 학교도 잘다녀왔고, 당연히 고졸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또 아빠가 엄하셔서 자퇴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하자 작업장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뭘하며 먹고 살지부터가 고민이였다. 내가 학교에 가서 배울수있는게 있을까? 가서 일반학교 다닐때처럼 행동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솔찍히 드는생각은 무서웠다. 자퇴서를 내는 순간까지 이길이 맞나 싶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처음 자퇴를 하고 대안학교를 갔다고 중학교 친구들에게 말했을때 "네가 그런학교를 왜가?" , "자퇴? 9년동안 학교 다닌거 다 날릴거야?" 등 모두들 하나같이 말은 다르지만 뜻의 똑같은 말들을 했다. 몇몇 아이들은 걱정의 눈빛으로 처다보기도 하고, 몇몇 아이들은 일찐이네 뭐네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어쩌면 안좋은쪽으로 보는게 당연한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하고 다른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좋지않은 감정도 있었을 것이고, 걱정도 했을것이다. 하나같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과 말과 행동이였다. "거긴 어떤 곳인데? 뭘 배우는데? 세가지 키워드? 지금은뭐해? 공연음악? 아~ 음악하는 학교구나"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학교'가 아니며, 너네와 조금 다른 공부를 하는것일뿐이야. 세가지 키워드의 매체로 세가지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난 공연음악팀 을하고있어 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줘도 결국 이해하는건 '음악하는 학교'라는것, 이런 물음과 대답이 반목하니 벌써부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일반학교를 다닐땐 대안학교를 좋게 보진 않았다. 내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했다. '학교 잘다니던 애가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갔대' 나같아도 걱정 했을것이고, 분명 뭔가 안좋은애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과 시선이 달라졋다. 대표적으로 학교 학생들, 물론 사고처서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도 있겠지만, 내가보기엔 모두들 착한 학생들이였다. 아주 어릴적부터 대안학교를 다녀온 애도 있었고, 나처럼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대안학교로 온 애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생각이 깊고, 밝은 아이들이였다. 공연팀 바투카다 역시 하자에 처음와서 접해본다. 바투카다하는것을 졸업식 밑 입학식때 처음 직접봤는데, 내눈엔 마냥 멋있기만했다. 나의 첫 악기는 해삐끼였다. 사실 해삐끼보다 다른악기에 눈이 가긴했지만, 해삐끼의 소리가 너무좋았고, 그대문에 해삐끼를 선택했다. 나는 초창기엔 그저 팬심이 강했다. 공연 욕심도 많지 않았고, 왜 내가 무대에 오르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인지 해삐끼연습도 그리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쇼가 한번 이런말을 해준적이 있다. "공연팀은 공연에 목말라 있는게아니라, 공연을 매체로 세가지 키워드를 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해요." 라고 나는 저말을 잊을수가 없다. 정확히 나도 잘모르겠지만, 아마 그때부터 연습을 열심히 한거같다. 하지만 나는 악기를 까이샤로 바꿧다. 처음에 악기를 바꿔야한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너무 바꾸기 싫어했다. 이제조금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약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배워 왔는데 덜컥 악기를 바꿔버린다니, 겁도났었다. 정말 바꾸기 싫어서 바꿔야되나 말아야되나 갈피를 못잡고 있을때, 동녘이 했던 말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지금 악기를 바꾼다고 해서 해삐끼와 영원히 안녕은 아니라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 나는 해삐끼를 좋아하는건지, 해삐끼를 치고있는 나를 좋아하는건지, 내가 해삐끼를 치면서 합주하는데에 방해가 되는건아닌지, 지금 내가 하고있는건 혼자만의 해삐끼인지 모두의 바투카다인지.. 많은 생각이 들면서 흐름을 깨고싶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접하는 바투카다로서 소리가 잘들리는 해삐끼도 나름 부담이있었었다. 그래서 악기를 해삐끼에서 까이샤로 바꿧고, 또다시 합주를 하며 피해를 주고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연습을했다. 원래 호흡을 맞추던 풀이아닌 나와 같이 악기를 바꾼 까이샤 파트너인 까르와 호흡을 맞춘다는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였다. 생각보다 서로 안맞는것도 있었고, 의견도 달랐다. 서운한 감정도 없지않아 있었었다. 그래도 서로 대화도하고 함께 연습을하며 트러블을 없애고 서로다른 의견도 이해해가며 까이샤 연습을 했엇던거 같다. 까이샤를 치며 생각이 많아졌다는것을 느낀다. 내가 왜 무대에 올라야 하는지도 많은 생각을 해봤고, 중간에 푸른이 공연팀을 쉬고나서부터, 내가왜 공부가 아닌 공연팀을더 열심히 하고있는지 생각을해보았다. 처음부터 악기에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고싶어하는게 많아질수록, 내가 공부해야하는것은 음악이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인데..하는생각도 많이들었다. 그래서 나도 방학동안 공연팀에대해 시간이 필요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했나 처음 하자 작업장학교에 들어왔을때 일반 학교와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다니며 여러 학교를 다녀왔고, 가는 학교마다 비슷하기도 해서 이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일반학교와 다르게 필수과목인 국수사과도 안배우고하니 음악도하고 이것저것 배우면서 지낼생각이였다. 하지만 이 학교는 그리 호락호락 한곳만은 아니였다. 열시부터 열시까지 거의 열두시간을 학교에 있는게 적응이 되지 않을때엔 너무 피곤해서 주말엔 세시를 넘겨서 일어난적도 있엇다. 나는 행사를 할때에도 내가 먼저 나서지않았고, 회의를 할때도 내생각을 쉽게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와서 알게된 리뷰도 나에겐 낮설기만했다. 학교는 생각보다 수준도 높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 리뷰를 할때는 내 생각의 한계를 들어내기도했다. 그러다 내가 생각했던것에 살을 붙이고, 포장을해 '이정도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리뷰를 할때도 있었다. 사실 학기 중간에 신입 죽돌들과 얘기를하다 리뷰얘기가 나왔는데 진심이 담겨있지않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리뷰같다는 소리를 몇번 들었엇다. 나는 내나름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내생각을 말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와보니 그게 아닌거 같다. 어느순간부터 리뷰를 포장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작게 느낀것을 크게 부풀려 말하는것을 느낀건 학기 말즈음 이였다. 이런 습관을 이제서야 알아버린것은 크게 잘못된것이라고 본다. 한 학기를 되돌아보면 나는 참 불량학생 이였다. 지각을 밥먹듯이 했었고, 글로비시는 정말 배우려는 의지로 열심히 했던건 아니였다. 학기 중간즈음에 글로비시 참관을 하던때가 있었다. 분명 그때는 공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관이 아니라 참여를 하고싶었다. 그래서 참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달라지려고 노력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배우려는 의지로 달라지려고 열심히 노력을 한것처럼 보이진 않았겠지만, 조금씩 필기도 하고, 숙제도 하고, 집에가서 글로비시 책을 다시보기도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거같다. 다시 나태해지고, 눈은 허공에 머리는 다른곳에 있을때도 있었다. 왜 그런것일까? 내 생각엔 일반학교 다닐때 습관인거같다. 나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있음에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에 매우 창피할뿐이다. 나는 한학기동안 무엇을 했을까? 5개월동안 행동해왔던 나의 모습들을 되돌아 보다 문득 생각난것. 보람차고 뿌듯했다는 말은 나오질 않고, 나의 행동이 잘못됫다는 말밖에 안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참 나쁜학생이였고, 불성실한 학생이였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스스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그저 학교를 즐겼던것만 같다. 열심히 움직이지 않았던점,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점, 공부하려는 자세가 되있지 않았던점, 모두 후회가 되고 한학기동안 부질없이 행동했던것에 스스로가 창피하다. 친구관계는 어땟을까? 가끔 트러블도 생기고, 오해도 생겼었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했던거 같다. 특히 까이샤 파트너인 까르와 이래저래 서로 섭섭한것도 있었고, 안 맞는것도 많았다. 생각하는것도 다를뿐더러,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았다. 평소의 나같았으면 혼자 감정상해서 꽁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르는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한거 같다. 먼저 대화로 풀려고 노력을했고, 나는 까르와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생긴 트러블을 지워갔다. 다른 애들도 그렇지만 특히 까르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엇다. 고민이 있을때 누구보다 자기일처럼 생각해주고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또. 피곤하고 지칠때, 이래저래 생각은 많이나는데 정리가 안될때, 어렵고 힘든일이 있다면 글로써보라는 제한을 내게 해준적이 있다. 까르는 생각하는게 깊어 내가 차마생각해내지 못한것들을 잡아주곤한다. 이런면에서 나는 참 까르에게 고마울뿐이다. 약 5개월 동안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며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것들이 더 많았고, 내가 모르는 세상도 많다는것을 알았다. 솔찍히 '배움' 이라기보단 '호기심'으로 수업에 임했던거 같다. 학교에서 듣는 단어, 이야기, 강의 모든것이 나에겐 처음듣는 이야기 였고, 알지못하는 세계를 맛보는 기분이였다. 이런저런 강의도듣고 영상도보며 내가 알지 못했던 핵이라는 위험한 것부터, 그 위험을 막아스려는 여러가지 대안들과 그 대안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알았고, 매솟이라는 처음듣는 나라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또 지구를 위해 힘쓰고 땀흘리는 환경 운동자들이 많은것도 알았으며, 다른사람들은 쉽게 나서지못할 일들을 용기있게 나서서 하는사람도 있다는것을 알았다. 내가 만약 일반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느끼질 못할 생각과, 배우지못할 공부, 채험하지 못할 많은 경험들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진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들이 나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잘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내가 행동하는 작은 실천으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어떤이에겐 큰 도움이 되진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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