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3학기, 디자인팀, 온(최하은)



연결된 고리에 초점을 맞추다

310, 후쿠시마 1주기 추모행사로 작업장학교의 세 번째 학기를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나 되었구나 하는 덧없는 감상과 함께 만약 작년에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지난 학기들에 비해 이번 학기에는 초점이 탈핵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탈핵이 아닌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지만, 그 중 어느 하나도 탈핵과 관련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가령, 이번 학기부터 시작한 도시농업 프로젝트 ‘현미 네 홉’ 에서 자립을 이야기하다 보면 에너지 자립이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탈핵이라는 주제가 나올 수 있었다. 지난 1월 메솟에서 만난 HEART SCHOOL의 라후라 씨가 말해주셨던 인권과 그것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와, 후쿠시마 사고는 일자리 및 주거지의 상실, 가족과의 이별, 피폭 등 인권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어느 한 지점에서 결국은 만나게 되어 있었다. 단순히 사람들의 권리만 앗아간 것이 아닌, 다른 생명들이 살 수 있는 권리도 앗아가 버렸으니 지구권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행사는 삼척과 영덕으로 가는 탈핵희망버스였다. 그 곳에서 나는 이제껏 서울에서의 시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생존을 위한 처절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했던 탈핵 행사나 시위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이 너무 감상적이고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 어딘지 모르게 관념적이기만 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히 삼척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고 하는 시장을 사이에 놓고 대립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나, 피켓과 깃발의 문구들, 구호, 사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에서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내면 어디에선가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깊은 슬픔이 느껴져 1박 2일의 일정 내내 무엇인가가 콕콕 찌르는 듯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단순히 누군가를 응원하며 환호를 보내고, 퍼포먼스를 즐기고 있는 모습들에서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이는 듯 했다. 특히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밀양에서 올라오신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을 나는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록 내가 사는 곳은 핵발전소와 멀리 떨어진 도심지역이지만, 탈핵을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삼척과 영덕에 다녀오면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그것이 몸으로 저릿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정말로 불타 없어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고서야 내가 늘 이야기해왔던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알게 되었고 나의 문제, 모두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전통 춤을 추며 시위하던 후쿠시마의 주민들, 두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오로지 ‘재가동 반대’ 라는 구호만 반복해서 외치던 일본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박 2일간의 짧은 여정이어서 그 곳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 곳에서 투쟁하시는 지역 주민 분을 만나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서 탈핵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어느새 내가 탈핵을 작업장학교에서 하고 있는 많은 공부들 그리고 그에 기반한 작업들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닌 그것들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한 학기였지만 이렇게 학기의 막바지에 내가 이제껏 배워 왔던 모든 것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 어느 한 부분에만이 아닌 전체에,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고리에 초점을 맞추고 정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농사와 자립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은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이라는 책이 있다. 미국의 슬럼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 소녀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버려진 공터에 강낭콩을 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그 동네의 주민들이 하나의 커다란 밭을 일구게 되는 이야기다. 그 버려진 공터가 생명으로 가득한 풍성한 밭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도시 한복판의 밭에서 고향도, 밭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하게 된 고민들과 그 고민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지난 학기 페차쿠차의 주제 ‘나비문명의 감각’ 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 도시농업이었고, 도시농업에 대해 찾아보면서 참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바쁘고 모든 것을 기업에 의존하는 도시에서는 생태나 자립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많았는데 도시농업이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이번 학기부터 현미 네 홉이라 불리는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하자센터의 앞, 뒷밭, 그리고 옥상에 작물들을 심고 돌보게 되었는데 단순히 그렇게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 오줌, 깻묵 등을 모아서 비료를 만들고 지렁이를 키우는 것 같은 많은 실험들을 함께했다.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지만 도시 한 가운데에서, 그것도 자립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한 일이었으니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의 유기농/자연농부들만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시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 혼자였다면 과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농사만큼 타인과의 협력과 상생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농사는 정직하다. 손이 필요할 때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도와줄 수 있다. 농사에 대한 지식을 나누기도, 추수가 끝난 후에는 잔치를 벌일 수도 있다. 땅이 사람들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농사를 지었던 곳들만 유별나게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말농장에 가도 다들 각자 자신의 밭에서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함께 한다고 해도 전부터 알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었고, 일이 끝나면 다들 몰고 온 자가용을 타고 사라졌다. 미국 등에서 거대한 면적의 밭을 커다란 기계로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상천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짓는 농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업형 농사는 이미 농사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지만, 도시 사람들이 도시의 리듬에 맞추어 짓고 있는 농사는 좀 안타깝다. 나라고 잘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 짓는 농사는 죽은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베란다에서 쌈 채소 같은 것들을 기르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 고 하지 않고,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취미에 가까운데, 어디서부터가 농사이고 어디서부터가 취미일까? 그 전에 그런 행위를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 나만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도시에서 직접 먹거리를 길러내는 것이 단순히 취미나 체험으로만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직결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자립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급자족’ 이라고 하면 으레 ‘자신’ 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자신’ 이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겨우 몇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얄팍하게 배우면서 자급자족, 자립 할 때의 ‘스스로 자自’ 자는 자기 자신만을 나타내는 말이라기보다는, 내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혼자서만 하는 자립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자립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의존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일지 모른다. 나 하나에게만 이득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로움을 줄 수 있고, 서로 부족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각이 나에게는 아주 부족하다는 것을 한 학기 내내 느꼈다. 우리는 각 밭 별 농사 상황을 알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블루패드라고 하는 커다란 나무 패드를 만들었다. 지난 1월 홍콩의 생활관이라는 농장에서 무려 아이패드라는 이름을 가진 패드를 본 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보완해 만든 것이었다. 그 밭의 특성과 돌보는 법이나 밭에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지도, 누가 언제 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적을 수 있는 일지도 매달아놓았다. 그리고 밭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해놓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던 것 같다. 칠판 페인트를 칠해서 분필로 적어놓은 글씨들은 금방 형태를 잃고 허옇게 지워졌고 비가 오면 종이로 된 것들도 흐물흐물하게 망가져버렸다. 시농제 때 밭을 함께 일구었던 사람들도 그 이후에는 전혀 얼굴을 볼 수 없기도 했지만 블루패드를 제대로 관리하고 사용할 마음이나 나아가 함께 일한다는 자세도 나에게는 부족했던 것 같다. 함께 밭에서 일하기로 한 다른 죽돌들에게도 가끔씩은 너무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나머지 일을 할 때도 있었고 밭에서 모르는 것이나 의아한 부분도 그 때 그 때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넘길 때도 많았다. 이건 나의 자세뿐만 아니라 나의 성격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대충 몇 번 지어 본 농사는 도시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학기 내내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나는 이제껏 해 왔던 것처럼 그까짓 농사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잠깐의 취미처럼 느끼는 감각으로 농사에 임했던 것 같다.

생각을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했던 것은 이렇게 생각은 했지만 아직도 ‘자립’ 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현미 네 홉 프로젝트를 잘 했다는 확신은 들지 않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처음으로 자립에 대한 일을 진지하게 시작해보게 된 것 같다. 다음 학기에도 현미 네 홉은 계속될 것이고, 농사뿐만 아니라 자립을 위한 다른 기술들도 어쩌면 배우게 될 것이다. 작업장학교에서 자립에 대한 이야기도 앞으로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의 한 주인공 레오나는 마을 사람들이 밭을 일굴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쓰레기가 가득한 공터를 치워 달라고 시청에 전화를 하다가 결국 시청에 찾아가게 되면서, ‘목소리만 존재하던 ‘유령 인간’에서 ‘살아 있는 한 인격체’ 로 보이게 되었다’ 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으로 자립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그것을 어떻게 꾸려나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중심에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인격체’ 로서 주고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디자인 워크숍

세 번째 디자인 워크숍이었다. 학기를 여는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했던 화장실 프로젝트를 한 학기 내내 질질 끌었고 그마저도 한 학기 안에 끝내지 못하게 되었다. 워크숍 내내 매체에 대한 고민, 나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게 부담이 될 거라고 여기지 않았던 ‘3학기’ 라는 타이틀도 디자인 워크숍에서만큼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올해 초, 본관 안의 화장실들은 전부 리모델링을 마쳤지만 정말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우리 학교 디자인팀이 리모델링된 화장실을 살펴보고 단점을 찾아내 그것을 보완하고 리디자인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자잘한 문제들도 많았지만 우선은 크게 드러나는 단점들 – 노출, 악취, 썰렁한 분위기 등 – 을 먼저 개선하기로 했다. 처음에 단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자꾸만 딜레이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작업을 빨리 끝내 더 이상 미뤄지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과제가 많아서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핑계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화장실 사인 작업이 마무리되고 판돌들에게 발표회를 하던 시기에 편도선염에 걸려 일주일 동안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앓았었다. ‘겨우 한 주 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의외로 그 차이가 큰 것이었는지 다시 학교에 가자 나는 한참 뒤쳐져 있었다. 그리고 결국 화장실 사인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아팠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 다음 주 디자인 워크숍 하루 전에는 밤을 새워서 작업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물은 형편없었고 의지를 잃었다. 한심하게 들리겠지만 그랬다. 누군가는 나에게 내 열정과 책임감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기분이었던 나는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화장실 사인의 주제로 잡았던 것은 ‘벌’이었는데, 내가 순수한 내 의지로 한다고 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지만 선택권이 별로 없었기에 선택하게 되었다. 리서치를 하고 스케치를 하면서 ‘사람들이 수펄과 여왕벌을 구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주변 사람들도 어느 게 남자이고 여자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주제로 다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못했다. 만약에 처음부터 브레인스토밍을 더 알차고 꼼꼼하게 했더라면 애매모호한 벌을 주제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처음에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면 도중에라도 이건 아니라고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벌이라는 주제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물론 아직 툴을 다루는 것에 많이 미숙했던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견을 크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디자인팀 내에서는 자꾸만 반복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느새 하자 전체의 일로 커져 있었다.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하자허브 여름학교에서 슬로워크 대표 분의 강연을 들었는데 ‘디자이너의 갑을관계’ 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사회에서 디자이너는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기획하는 능력을 잃고 창의성 없는 디자인만 하게 된다면서 디자이너 스스로 기획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화장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중에는 결국 하자센터가 ‘갑’ 이 되고, 우리들이 ‘을’ 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무거웠다.

내가 왜 이런 숙제 같은 것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 3학기로서 더 좋은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내 개인적인 흥미와 열정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기 때문에 억지로 끌고 나가는 텅 빈 책임감 같은 단어들로 이번 학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310 행사부터 ‘디자인팀’ 이라는 이름 안에서 같은 3학기 죽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작업했지만 그 때부터 ‘어떻게 보일지’ 에만 온 신경을 쏟으며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우리만의 확실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화장실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을 빼고, 그 다음 주로 늦춰지고, 할 일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미루게 되어서 결국 끝마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지만 모두가 제 할 일에 치여 누구에게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꼼꼼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부재와 결과물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310 때부터 디자인 프로세스를 이야기했지만 언제나 그 중 하나를 놓친 채로 작업을 했고 어쩌면 그 이유는 더 보기(에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급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가 만든 시각 작업물을 타인에게 보일 때 전달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 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느끼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테지만, 한 학기 내내 그것이 제대로 공유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디자인 워크숍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어도 가끔씩 농담조로, 지나가는 말처럼 서로 헛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 게 다였다. 그러고 보면 팀 내에서의 소통도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만큼이나 중요한데 간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음 학기에는 디자인팀으로서 무엇을 하고 싶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기초부터 찬찬히 다져가며 일하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내려는 부담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내 온전한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작업을 하고, 공동 작업을 할 때도 나에게 주어진 일만을 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같이 맞물려서 일하고 있는 큰 틀을 보면서 조금은 느긋하게 일하고 싶다. 개인 작업에도 집중하지만, 왜 디자인팀 전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작업하고 싶다. 그러려면 서로가 한 팀이고 동료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또 어설프게 좋아 보이려고 하는 디자인보다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해서 나온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그것을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알이 꽉 찬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앞에서 말한 마음가짐과 훨씬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하겠지만 말이다. 결국은, 디자인팀이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숙제처럼 해내는 것 이전에 디자인팀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틀을 짜 갈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공동 작업을 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메솟을 떠올리며

메솟을 다녀오고 나서 그 곳의 친구들과 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지만 사실 많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어떤 친구에게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 거의 일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락과 심지어는 전화까지 왔었지만, 매번 조금은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해서 나중에는 좀 피하게 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과도 가끔씩 페이스북 메시지로 사사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다였다. 그리고 다시 내 일을 하면서 메솟은 내 머릿속에서 조금씩 흐려져 갔다. 메솟에 다녀오고 나서 내 생활 속에서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끔씩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버마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것을 좀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된 것 정도일까? 무언가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다.

6월에 난민포럼이 있었는데, 마웅저 선생님, 메솟에서 치과의사로 계셨던 정보임 선생님, 그리고 라후라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로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세 분의 이야기가 각각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나중에 이선재 선생님의 이야기 때문에 좀 헷갈렸다. 하지만 난민포럼을 준비하면서 옛날 메솟 영상들을 돌려보며 내가 메솟에서 했던 생각들과 영상이 맞물려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포럼을 들으면서는 메솟에 다시 가고 싶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의 공항에서 출발해서 타국의 땅에 내려앉기까지 긴장이 되면서 아랫배가 살살 아려오는 느낌이라든지, 메솟의 따뜻한 공기나 별이 총총한 밤하늘 같은 외면적인 것들도 머릿속에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난번보다는 조금 더 어떤 이유를 가지고 메솟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럼을 들으면서 메솟과 멜라에 있던 청소년들의 생각이 많이 났다. 나중에 외국으로 나가서 돈을 많이 벌고 싶고, 그래서 먹고 살 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던 몇몇 친구들의 말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메솟에서 진행되어야 할 교육이 단순히 아이들에게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HEART SCHOOL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같았는데, 인권과 지구권을 가르치며 그것들을 배운 청년들이 각자 자신의 공동체로 돌아가 자신이 배운 것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이라고 했다.

‘인권’ 이라고 하자 멜라캠프 내의 난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후라 씨가 말씀하신 인권을 위한 조건들은 난민들에게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 난민캠프 내에는 전기를 끌어 쓰는 것도, 농사를 짓는 일도, 장사를 하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물론 다들 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불법이라는 것은 이미 태국 정부에서 난민들의 인권이 없다고 치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 사실을 아는 난민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민들은 과연 멜라캠프를 공동체라고 생각할까? 어쩌면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평생 죽을 때까지 캠프 안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들에게는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마구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꼭 캠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태국에서의 삶과 버마의 현실이 따라 주지 않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교육에 대해서 과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하는 생각도 연이어 들었다. 그러면서 버마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무거워서 메솟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나는 메솟 친구들과 버마의 정치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있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고 있고, 그 과정이 정말로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내가 메솟에 가서 나쁜 영향만 끼치고 오는 것이 아닐지 걱정된다. 아무리 내가 메솟 친구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해도,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내가 크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는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메솟에 세워질 따비에-하자센터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고, 그런 이야기를 메솟 친구들과 나누었을 때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이미 메솟에 가서 그들을 만났기에, 그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번에 다시 메솟에 가게 되면 아직까지 언어의 장벽은 있지만 내가 궁금한 것들을 더 많이 물어보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가고 싶다. 버마의 정치적 상황과 메솟과 멜라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에 치여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지난번까지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메일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들과 나누고 있는 사사로운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업장학교에서 새로운 1년, 세 번째 학기를 맞게 되니 어느새 나는 가장 ‘선배’ 같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앞에서도 계속 썼듯이 그런 사람이 되어서 좋은 본보기 같은 것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조그맣게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작업(특히 공동작업) 은 힘들고, 작업을 할 때를 비롯해서 평소에 회의나 리뷰를 하거나 학교에서 생활을 할 때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것도 언제나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분야에 흥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오로지 흥미만 가지고 할 수는 없으므로 그것을 계속해서 끌고 나가고 생각을 더 깊고 넓게 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공부를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모든 공부가 어려웠다.

문명의 전환기처럼 처음부터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것들은 더 이상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환경이나 난민 문제 같은 것들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비참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이 보여서 ‘이제 그만 알고 싶다’ 는 생각을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지난 학기부터 나름의 관심사가 생겼었다. 왜 도시에서는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기가 힘든 건지, 왜 사람들은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지 같은 조금은 진부하고도 근본적인 의문들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에 부딪혔고, 많이 알고 있어야 나만의 해답이나 대안이 나올 것 같아서 우선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앞서가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공부할 게 있다’ 는 생각에 안심해서 무엇인가를 더 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하는 글로비시를 포함한 공부든,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공부든 너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뛰어넘느냐 마느냐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디자인 워크숍에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매주 한 편씩 데이북에 만화로 그리는 일을 했다. 그게 내 생각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가보다는 내가 짤막하게나마 생각했던 것들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 표현 방식 등에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또 이번 학기부터 주님과 함께 하자의 뉴스레터를 만들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배치해서 만든 것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자간 조정도, 사진의 배치와 그 사진의 구조나 밝기 같은 것들도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잘 보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조금 나아갔다면 나아간 것일까? 하지만 이 두 가지 일 모두 내가 생각해서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 조금 더 발전하고 무난함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 TV에 흘러가는 뉴스에서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기사랄 것도 없는 짤막한 헤드라인 같은 것이었는데 그걸 보고 갑자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밀고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기를 짓는 모습이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 탄소발자국에 대한 강연을 하던 날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농민 한 분이 마을에 태양광발전기를 지어서 농사도 짓지 못하고 마을을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고 무엇보다도 그런 발전은 아무리 ‘대안’ 이라는 말을 붙여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대안적인 과정이 될 수는 있어도 목적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대안적’ 이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알아야 하고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이라도 단편적이거나 근시안적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러려면 언제나 감추어진 부분과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 계속하게 될 공부들을 머릿속에 쌓아만 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삶에 대입시켜 보는 용기와 적극성이 필요할 것 같다.


삶의 그물

아마 이번 학기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행사는 자공공포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님의 ‘3만엔 비즈니스’ 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자립’ 이라는 키워드를 내 머릿속에 들어오게 했던 결정적인 행사였다.

3만엔 비즈니스는 한 달에 3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원만 벌고 사는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만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5일 동안 노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5일 동안에는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는 것 같은 자립에 관련된 일을 한다. 주변에 친구들을 늘려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적게 벌면 자연히 지출도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단 30만원만 벌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에 놀랐고 실제로 지금 일본에서 3만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창의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에 또 한 번 놀랐었다. 무엇보다도 3만엔 비즈니스와 이제까지 우리가 배워 왔던 나비문명, 현미 네 홉 같은 것들이 모두 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마사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품었던 ‘저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의문은 후지무라 선생님이 제시한 길을 보며 조금은 해소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에 만족하고 ‘이제 됐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갈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꼭 3만엔 비즈니스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좋은 에너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3만엔 비즈니스를 포함해서 내가 배웠던 것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앞서 말했던 과정 같은 것이 될 것 같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었지만 각자가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조금 다를 뿐이지 결국 꿈꾸고 있는 세상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다른 이야기가 함께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은 저것으로, 저것은 또 다른 것으로 끊임없이 촘촘히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배움이 될 수도 있고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나 하나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과도 만나고 만나서 하나의 커다란 세상이 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서 ‘꼭 그물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물코 중 어느 하나가 뚫어지거나 끊어지면 그물을 못 쓰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들 중 어느 것 하나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싶다. 언젠가는 내가 그물코와 그물코를 이으며 그물을 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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