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린시절이라고 할 수 없는 어린시절, 나는 자살을 감행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 의지로 살아가면 될 것이지. 라고, 저도 그말에 공감합니다만, 한편으로 생각해보세요. 과연 그 말이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가장 소중하다거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에서 상실했을 때, 가장 극적으로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겁쟁이인지라 핏줄을 건드릴 순 없었고 기도를 막을 수 없었고 한발짝 움질일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었습니다. 어떤 괴로운 순간이나 즐거운 순간에도 그리고 그런 시간이 지나, 지금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의 마지막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이겠죠. 죽는 것은 참으로 허무합니다. 누군가의 극적인 죽음은 사람들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 처럼 너무나 큰 영향을 주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던가요. 어느새 그것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 아주 가끔 떠오르는 순간 그 순간을 괴롭게 할 뿐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흐른 뒤였어요. 장례식에선 아무런 감흥없던 내가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게 되었지요.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네, 그는 내 안에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 되었지요. 이젠 그의 방에 갈 수 없고 매일 피어오르던 그의 체취를 맡을 수 없고, 그의 늘어져버린 살가죽을 만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죽는 나는 행복한 것일까요? 늙어서 늘어진 살가죽을 가지기 전에, 어떤 것들이 내 얼굴을 뒤덮어 나도 어색한 얼굴이 되기 전에, 혹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너무 무거워 발을 옮기기 전에 죽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왜, 늙었을 때의 죽음을 나는 좋아할 수 없는 것일까요. 죽어버린 마당에 참 할말이 없습니다. 언젠가 그렸던 나의 유서에는 너무나 많은 내용이 담겨 종이가 부족했는데, 이젠 글씨가 부족한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부디 보시게 된다면 이 편지를 태워주시길. 이것은 아무 가치도 역사도 기억도 없을 그저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주 살짝 담겨져 있는 것이랍니다. 당신이 나를 모른다면 알 수 없고 당신이 나를 안다면 헷갈릴 그런 이야기 입니다. (원래 이쯤에서 찢거나 불태우거나 편지를 덮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읽는 당신은 ....) 너무나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하게 값진 경험을 하러 갈 것입니다. 죽고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죽게되니 여기에 있는 것은 더이상 붙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덧없다. 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아쉬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더한 시간이 있었다면 참으로 좋았을텐데... 그러나 이렇게 씁슬함 따위의 말투들은 나를 더 쓸쓸하게 만들테니 그만 두도록 하죠. 나의 장례식은 부디 화장을 해주세요. 절대로, 매장은 안됩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내 한몸 누일 자리를 만드는 것은 사치입니다. 화장도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흔적이 남지 않은 것으로 해주세요. 왠만하면 집 뒤에 뒷산에 뿌리면 좋을 것 같아요. 워낙 추억이 많은 곳이라 그곳에 뿌려지면 참으로 좋을 것 같네요. 비록 그 산이 재개발로 밀려버리더라도 (이미 반정도는 밀렸지요..) 그 공기가 있을테니 괜찮을 것 같아요. 한순간에 무너지고 재처럼 사라지지 않을 어머니. 가슴에 묻으실 수 밖에 없을까요? 떳떳하고 자랑스럽거나 혹은 괜찮은 맏딸이 되지 못했네요. 고이고이, 저 깊숙히 묻어버리면 좋으련만, 그 주름 한줄한줄에 눈물이 알알이 박힐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아빠의 흰머리하나하나에 수진이와 진아의 자라나는 이빨 그 티끝하나하나에 기억될까봐 사실은 두렵습니다. 차라리 완전히 잊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어중간하게 잊혀지다가 갑자기 생각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다던지 패닉을 일으킨다던지 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언젠가 담담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썬 그저 잊혀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을 보고 다시 읽어보길 바랍니다. 언젠가, 즐겁게 아리랑을 부를 수 있기를 꿈꿨던 것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어딘가 탁 트인 곳에 오게 되면, 나는 아리랑을 부르곤 했는데, 한이 없으면 아리랑을 부를 수 없는 것 같아 (사실 소리가 너무 크기때문도 있습니다.) 자주 부르지 않았지만, 티비에서 보여준 아리랑은 항상 슬프기만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이순간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자- 이제 해산.'. 분명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저는 이만 해산하렵니다. 그럼, 이만 죽게 된 후에 이 편지를 읽게 되었을 때, 나는 항상 읽게 될 것 같은 입장이어서인지 유서를 어떻게 쓰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번도 두번도 세번도, 유서를 본 적이 없다. 그냥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xx씨 50000000원, d씨 100000원' 이런 빚이라던지 '가족, 친구들 모두 미안해요. 잘 살기를 바래요.' 이런 것을 쓰고 싶진 않았고, 차라리 짧고 굵게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키보드에 앉아 생각해보다가 걸어가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을 해보니, 죽음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니 키보드가 침묵할 수 밖에. 너무나 쉽게 단순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사실은 복잡합니다만)을 말하고 있진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다가 부모님이 나오는데가 많아서, 내일은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아니더라도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