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저의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인해 걱정 끼쳐서 모두 미안합니다.

요즘 저는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요. 날씨 덕인가? 아프면서 기분이 좋아보긴 처음이네. 이렇게 아픈 저를 찾아와주고 걱정해주는 모두를 보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뭔가 가슴한구석으로부터 공허하고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모두 알겠지만 저는 이제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왜, 죽기 전엔 자기가 살았던 인생이 필름처럼 스쳐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예전엔 그 말을 “설마, 죽는 와중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하고 무시했는데 요즘 저도 저의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 저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요. 마치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중학교 때 우다다학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정말 내가 이 넓은 세상의 그저 하나의 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것은 뭔지, 그냥 죽으면 거기서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죽어보고 싶다’는 생각, 죽는 게 어려운 건 아닐 거라는 그런 허무함과 공허함에 사로잡혀 그때는 정말 뭐라 말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런데 정말 이제 그 ‘끝’이라는 허무함의 막바지에 다다르니까 제 존재와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것 같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너무 슬펐어요. 제가 느낀 것을 그저 ‘슬펐다’라는 말에 모두 담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적어도 몇 일 동안은 그 우울함을 견뎌낼 수 없었어요. 그 우울함의 중심엔 저와 함께한 모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함께할 수 없다는 상실감, 앞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내가 낄 자리는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내가 죽은 후 그들이 슬퍼할 것 등 미안함, 고마움같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에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함께한 세월을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어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냥 저와 모두가 안고 있는 기억이 전부이고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니까요.

뭐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만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잘 살다가 죽으면 지금처럼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만날 수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아프다보니 못 만나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인사할 수도, 생각할 시간도 있네요.

사실 저에게는 ‘죽음의 롤 모델’이 있었어요. 길찾기 때 ‘롤모델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때 봤던 ‘안토니아스라인’의 여주인공 안토니아에요. ‘노후의 롤모델’에 더 가깝나? 안토니아를 보고 죽음은 어둡고 두려운 것이라는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죽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저의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는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롤모델은 아마 제가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오랫동안 살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 것 같기는 해요. 이렇게 당장이라니. 안토니아처럼 나중엔 넓은 가족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 살고 싶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재산도 그 마을사람들과, 혹은 내가 사랑한 볍씨에 줄거야!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돈을 버는 게 아니다보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설마. 죽고 싶지 않아요. 아직 살아갈 날들에 대한 미련과 죽음 이후의 세상이 무서워요. 그냥 아무것도 없었으면 차라리 덜 무서울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천국이니 지옥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너무 들었나 봐요.

롤모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제가 좀 더 삶의 경험을 쌓은 후의 이야기인데.

항상 끝맺음을 못해서 이별한다, 떠난다 하는 것도 잘 못했는데, (그래서 나중에 죽을 때가되면 우리 가족은 동시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이.)제가 먼저 가니 원망스럽기도 해요. 괜히 탓하게 되기도 하지만 알고 있었거든요. 탓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럼에도 죽어야한다면, 조금 더 빨리 죽게 되었다면. 행복하게 죽고 싶어요. 힘듦까지도 모두 감사함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바깥 날씨를 보기도하고 웃기도 하면서 글을 쓰네요.

제가 죽으면, 슬퍼해주세요. 죽음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성 현우’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장례식 때까지는 저의 마지막을 함께해주세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저의 사람들에게 제 죽음이 잊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가 죽은 후에도 저를 통해 모두 다시 모일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된다면, 그리고 그 만남으로 인해 모두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저는 죽어서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굳이 지우려고도, 굳이 아픔을 떠올리려고도 하지 말아요. 뜻대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겠죠. ‘죽어서 슬퍼’보단 그냥 저의 얘기를 그냥 기쁘게 꺼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자 어둠조차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물론 저 자신에게도.

저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여기까지 와서야 한의사선생님과 그 외 여러분이 말씀하시던 ‘지랄 맞던’저도 성찰도 하게 되고 너그러워 지는 느낌이에요.

감사해요. 내가 너무너무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나의 볍씨가족들. 볍씨학교,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아찌, 앵두나무, 컨테이너 건물, 싫어하던 화장실. 그저 모든 것.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자 사람들. 길찾기 식구들(까멜, 잘 지내?), 주니어 죽돌들, 판돌들. 고마워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가장 혐오하고 무섭고 두렵고 증오했던 비디오아저씨까지. 나를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 환경, 우리 집….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 현목이, 현구. 사랑해. 언제나 그냥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가족으로 만났으면 좋겠어. 언제나 사랑해 정말로.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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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까지 설정해 버렸네요. 아프다는 설정으로...안 그러면 도저히 못쓸 것 같았어요.
바라는 죽음으로 쓰게 되었는데요.
죽은 후에는 원래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려했으나 찾아보니 우리나라엔 정착한지 얼마 안되어 얘기가 복잡하네요...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요... 죽음은...
진짜 이 밤중에 쓰다보니 눈물 콧물 다 난다 흑흑.
두려웠던 어버이날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