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2일 전, 나는 상암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그 넓은 스크린과 꽤나 큰 소리와 많이 비어보이던 좌석. 지루한 광고를 보며 지쳐있는 나에게
영화는 손글씨 같은 글씨체로 시작을 알렸다.

거두절미하고 결말을 말하자면 나는 울었다. 신민아가 용산역 의자에 앉아 화를 내며 울고 있을 때 나도 같이 울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카라 사이로 들어가 나시를 적셨다. 영화가 끝나고 말했다. 만일 집이었다면 나는 이것보다 더하게 소리를 엉엉내며 울었을 거라고. 그 앞 공원에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도대체 모르겠더라, 왜 세이랜은 이것과 델마와 루이스를? 왜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그들은 길을 떠났다. 그들은 함께 떠났다. 그들의 의식은 깨어났다. 그들은 함께다.

델마와 루이스.

처음 그들이 떠나려고 했을 때, 그들이 원하던 것은 결국 여행동안 순탄하게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다른 이야기로 결말을 매듭지었고, 그들만의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나지 않았나 싶다. 처음으로 깨어있게 되었다는 델마, 그리고 그 과정까지 함께한 루이스. 그들에게 나타난 선택들에 대해, 언제나 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처럼?

그러나, 왜 델마는 그런 '일'을 당했어야 했을까, 루이스도 마찬가지로 왜? 여자 둘이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혹은 혼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럴까? 성별이라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꼬인 것 같아서, 자꾸만 내 눈앞에 벽을 만든다.

남자가 무조건 힘이 강해서 여자는 약한 존재고 보호 받아야 된다는 말을 부정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 그런데 그 과학적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냈고 의심해볼만도 하다. 그러나 저 약하다는 것을 무기로 위기에 닥치지 않았을 땐 콧대만 세우다가 위기에 봉착하면 ‘난 약하니깐, 여자니깐’ 이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뭘까.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를 보면서 왜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 모르겠다. 어색하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지금? 이 좋다고? 그 상태에서 한발자국 더 내딛으면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지만, 발자국을 때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를 두 번 봤다. 두 번 다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생겼다. 신민아가 용산역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울었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딱 한번 공효진이 맏이로 느껴진 순간이 있다. 병원에서 신민아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을 때 “그냥 사는거야.” 라고 딱 한마디를 할 때였다. 맏딸이나 언니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조금 더 살아본 더 부딪혀본 공효진이라 할 수 있는 말 같았다. 그러나 그 때를 제외하곤 공효진보다는 신민아에게 감정이입하며 영화를 봤었다. 나에게 도대체 아빠란 무슨 존재일까. 어제 청바지 돌려입기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같은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도대체 아빠가 나에게 무엇이냐.

그러나 신민아가 아빠를 생각하는 것과 아빠가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는 신민아보다는 아빠에게 더 몰입하게 되었다. 성이 바뀌었지만 신민아를 바라보는 태도는 변하지 않은채 그 자리에서 신민아를 보고 있을 때의 감정이랄까, 깨어난 순간에 자기는 의식했다. “나는 깨어있어!”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다시금 눈을 감아야했다. 시간이 너무 일렀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이었던 적은 없지만, 나는 성을 수술로 바꿔본 경험은 없지만, 나는 회사에 다녀본 경험은 없지만, 나는 생선을 팔아보거나 일찍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제주도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아직 십대이지만,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본 적은 없지만 어째서 영화에 감동(感動)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뭐가 나를 울리고 불편하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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