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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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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Book...ing [3월 23일] 실의에 빠진 사업가, 그린피스로 거듭나다 - 데이비드 맥타가트 ![]() 생태학자 아르네 나에스 노르웨이 오슬로의 금융가와 사업가 부모 밑에서 태어난 나에스는 오슬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7살 나이로 최연소 교수가 됐다. 그는 1954년에 파키스탄의 7708m 티리크 미르산을 처음으로 등정하기도 하였다. 이 등반대의 리더였다. 이 등정이 어떤 '정복욕'이나 '루트 개척'에 있지 않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링스카르베트 산속에 작은 집을 짓고 70여 년을 살았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그런 맥락일 뿐이다. 그 산속 오두막에서 나에스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을 더없이 귀중한 자연의 풍요로운 선물로 여기며 살았다. 등산화는 50여 년이 넘도록 신었다. 교수라는 사회적 신분이었지만 말이다. 그의 '최소한의 삶'과 경건한 태도는 5,60 서구 지식인들이 2차 대전의 폐허와 극단적인 산업화에 따른 비인간적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자연과의 합일'을 강조한 경향을 보여준다. 이 목적을 위해 당시 서구 지식인들은 인도의 명상이나 불교의 선 철학에 몰입하기도 했다. "자아가 확장되고 깊어져서 내가 편안하게 자연을 돌보는 행위가 우리 자신의 보호로 인식될 때, 모든 우려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우리가 호흡할 때 어떤 도덕도 필요하지 않듯이. 만약 넓은 의미에서 당신의 '자아'가 다른 존재를 포용한다면, 당신은 우려를 나타내기 위해 어떤 도덕적 훈계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어떤 도덕적 압력도 느낄 필요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 노르웨이 할링스카르베트 산속의 아르네 나에스 김우창 선생도 '경향신문' 칼럼을 통하여, 나에스의 깊은 생태학 또는 생태적 자아실현의 ‘생태지혜학 (echosophy)’으로 오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철학이 오늘의 문제를 밝히는 큰 거울이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고 썼다. 왜냐하면 그의 우리 사회가 "더 넓은 삶의 지혜의 견제와 균형을 멀리 떠난 정치와 경제 계획의 허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예스는 1970년 교수 직을 마친 후에는 좀더 본격적으로 환경 생태 운동에 뛰어들었다. '심층(깊은) 생태학에 대한 논문을 마친 후 나에스는 마르달 폭포의 댐 건설에 항의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폭포 근처의 바위에 몸을 동여매고 투쟁했다. 1988년에는 그린피스 노르웨이 지부 초대 책임자를 맡았으며 노르웨이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 실의에 빠진 사업가에서 그린피스 운동가로 거듭난 데이비드 맥타가트 ![]() 그린피스 상징 로고 1971년에 저항 시위를 위한 항해를 준비하는 중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 '녹색 지구와 반핵 평화'의 뜻으로 그린피스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다. 활동용 소형 어선 ‘필리스 코맥’호의 이름을 그린피스호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린피스가 굳어졌다. 미국 정부는 1972년 암치카 섬에서 핵실험을 포기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1972년. 그린피스의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뮈뤼로아 환초에서 프랑스 정부가 핵 실험을 갖기로 하였는데 이를 그린피스가 저지한 것이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핵 실험 반대를 위해 뮈뤼로아 환초까지 항해를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뉴질랜드의 은퇴한 사업가가 본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맥타가트이다. ![]() 작은 보트에 몸을 실은 맥타가트와 동료들이 핵 실험에 반대하는 해상 투쟁을 벌이고 있다 1972년 6월, 맥타가트와 동료들은, 이날 이후로 우리가 수많은 그린피스 투쟁에서 자주 본 대로, 작은 요트 '베가'에 타고 뮈뤼로아 환초 실험장소를 지키는 프랑스 해군 소해정과 순양함, 헬기에 맞섰다. 탄탄한 방어벽을 향해 돌진하던 맥타가트의 요트 베가는 소해정에 부딪혀 부숴졌다. 이듬해 8월, 맥타가트와 동료 선원 그리고 그린피스 대원들이 또다시 저항하였다가 프랑스 수병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 일본의 거대한 포경선 사이에서 그린피스의 작은 요트가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맥타가트는 그린피스의 '세계화'를 추지하였다. 북미, 유럽, 대양주 등으로 각 지부를 만들어나갔다. 1979년 10월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그린피스국제본부가 공식출범하였고 이 자리에서 맥타가트가 의장 겸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 런던 히드로 공항 인근의 부지 일부를 '알 박기'로 매입하여 활주로 확장 공사 반대를 하고 있는 그린피스(사진 afp 멀티비츠) 기후변화, 원시림 보호, 해양 보호, 고래잡이 방지, 유전자조작 반대, 핵 실험 및 확산, 독성물질 위협, 미사일 및 전쟁 반대 등이 그린피스의 활동 목표들이다. 이를 위하여 그린피스는 유엔환경계획,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 종의 국제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 자연과 천연자원 보호를 위한 국제 연맹, 유독물질의 투기와 처리에 관한 오슬로 및 파리 협약, 남극조약 체제를 위한 회의 등에 참여하고 있다. '알박기 투쟁'도 벌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제3 활주로 건설을 막기 위해 활주로 건설 예정 부지의 땅 일부를 매입하여 이를 '상징 투쟁'의 공간으로 쓴 것이다. ![]() 2008년 12월, 그린피스와 환경운동연합이 참치장례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 다대포 앞바다에 쓴 그린피스 구호 이런 점들을 두루 감안할 때, 그린피스의 '그린' 즉 '녹색'이 단순한 자연 보호나 생태 운동 차원이 아니라(물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 운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1970년대의 서구에서 '그린'은(예컨대 독일이나 노르웨이의 '녹색당'은) 환경 보호 보다는 반전 반핵 평화 운동의 의미가 더 컸다. 그린피스의 '그린' 역시 그러하다. '신성장 녹색산업'이라는 기묘한 조어의 시대에는 더욱 이 '그린'의 정치적, 문화적 의미가 각별하다. 평범한 사업가였다가 실의에 빠진 바다 사나이였다가, 남은 생애를 그린피스 운동에 바친 데이비드 맥타가트가 2001의 오늘 3월 23일에 사망했다. 그래서 한번 두루두루 생각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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