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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미황사에 대하여
* 미황사 창건 전설. 1692년 (숙종 18년)때 지은 [미황사 사적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가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80권, [법화경]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 검은 돌들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불상화 경전을 모실 곳에 대해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소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로 변했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나는 본래 우전국 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의조 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했다. 의조 화상은 소가 처음 누던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체계적으로 쌓여있고 돌담들마다 넝쿨들이 올라가서 초록색 층계를 이루는 것이 예쁘다. 달마산 달마산(489m)/ 전남 해남. 두륜산과 도솔봉으로 이어져 땅끝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그 마지막 자락을 남해에 풀어 던지기 전 안간힘을 써 돋군 바위 첨봉이 바로 달마산이다. 땅끝마을로 가는 길을 달리다 보면 마치 설악산의 공룡능선처럼 울퉁불퉁한 바위 암릉으로 이루어진 달마산이 보인다. 그 높이가 500m도 채 되지 않지만 사뭇 위세가 당당하고 산줄기가 기운차다. 그 바위 첨봉의 호위아래 그윽하게 자리한 미황사는 땅끝마을 찾아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절집이다. 달마산은 바로 이 미황사를 수호하는 천연 사천왕상 인 것이다. 신라 경덕왕(749년)때 창건된 미황사는 금인(金人)과 석선(石船)과 소에 얽힌 독특한 창건설화를 지니고 있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몇가지. 보물 947호 대웅보전의 단아한 품새와 그 너머 배경을 이루는 달마산의 병풍같은 바위들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 리고 단청이 다 지워진 자리에 금새라도 불을 뿜을 것처럼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의 목각, 배흘림 기둥의 기단석마다 음각되어 있는 바닷게와 거북의 문양들, 낡고 퇴색했으나 그래서 더 정겨운 사방무늬 문창살, 무엇보다도 부도원으로 가는 길가의 소박한 동백림은 빠트릴 수 없는 미황사의 아름다움이다. 동백림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동백꽃의 향기를 맡으며 부도원까지 걷노라면 어느덧 속세를 잊고 피안으로 이르는 길을 걷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스물 네기의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원은 그윽하기가 이를 데 없다. 부도원 뒤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30분 가량 오르면 달마산에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도착한다. 이 능선에 서면 동쪽으로 달량 앞바다와 남쪽의 다도해가 보인다. 서쪽으로는 송지면의 붉은 황토색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리저리 이어지는 암릉을 따라 20분 가량 진행하다가 능선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바위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는 금샘이 있다. 금샘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바위의 날등을 타고 가다보면 날카롭게 솟구친 두 개의 바위가 문처럼 버티고 있다. 이 문바위를 지나면 봉화대가 남아있는 달마산 정상에 도착한다. 달마산 정상에서는 발 아래 미황사가 굽어보이고 사방의 조망이 시원하다. 북쪽으로는 두륜산과 도솔봉(대둔산)이 지척으로 보인다. 달마산에서 작은 바람재까지는 억새밭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운치있다. 능선상에서 항상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여 전혀 지루하지 않다. 기묘한 바위마다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붙이며 걷다보면 어느덧 작은 바람재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산 중턱까지 차지한 작은 밭둑길을 따라 송촌마을로 내려선다. 달마산 산행의 일반적인 코스는 보통 미황사를 들머리 삼아 정상을 지나 작은바람재에서 송촌리로 하산한다. 미황사에서 떡봉을 지나 도솔봉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도솔봉 정상의 송신탑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아래 산정리까지 걸어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정상 능선상에는 표지기가 많고 등산로도 뚜렷하여 길을 잃거나 헤맬 염려는 없지만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잡목과 가시넝쿨 등이 우거져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능선이 계속 암릉으로 이어져 리지등반을 할 수 있다. 등산로는 암릉 옆으로 이어진다. 능선상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금샘은 문바위 동쪽 아래 바위 뒤에 있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 사찰이란? 불상을 모셔 놓고 승려들이 거처하면서 불도를 닦고 불교교리를 설하는 곳. -사찰의 구성 *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승원(僧院) ·가람(伽藍) 등으로 불린다. 불교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상가라마(Sañghrma)이다.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남승) ·비구니(比丘尼:여승) ·우바새(優婆塞: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여자 신도)의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중국에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음역(音譯)하였고, 나중에 줄여서 가람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전도(傳道) 초기인 BC 6세기 무렵, 인도의 출가자(出家者)들은 무소유(無所有)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정한 주거처를 가지지 않고 독신생활을 하면서 걸식(乞食)으로 수도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숲속의 동굴이나 큰 나무 아래에서 선(禪)을 하거나, 유행(遊行)을 통하여 불법(佛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묻에 우기(雨期)에는 이같은 생활이 불가능하였는데, 특히 7 ·8월의 장마철에는 바깥에 나가기보다는 한곳에 모여 수도에 정진(精進)하는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우기인 석 달 동안은 바깥 출입을 삼가는 것을 계율(戒律)로 정하고, 출가자들이 한곳에 모여 적절한 공동생활을 하도록 함에 따라, 안거(安居)할 만한 장소를 불교 신도들이 스스로 마련하게 되었다.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안거 장소는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비롯하여 수다타[須達多] 장자(長者)가 동산을 온통 금으로 장식하였었다는 기원정사(祇園精舍) 등이 있다. ‘정사’는 불교 교단의 공동재산이었고, 안거를 위한 실제적인 목적에 따라 불교의 사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초기의 사찰은 처음에는 이같이 단순한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종교의례(宗敎儀禮)를 집행하는 성소(聖所)로 그 성격이 승화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찰은 그 규모나 숫자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조형예술품 등 불교건축의 찬연한 전통을 이룩하게 되었다. 사찰의 구성 * 일주문 .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門)이다.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불도를 닦는 사람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와 진리를 생각하면서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 금강문. 사찰에 들어가면서 일주문 다음에 만나는 문(門)으로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보통 금강문을 세우지 않은 사찰도 많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사천왕문이 대문 역할을 한다. 금강역사는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들어가면서 오른쪽을 지키는 역사가 나라연금강인데,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왼쪽을 지키고 있는 역사가 밀적금강 이라고 하는데, 야차신(夜叉神)의 우두머리로서 손에는 금강저를 쥐고 있다. 이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이다. * 사천왕문 사찰에 들어갈 때 일주문, 금강문 다음에 거쳐야 하는 문(門)으로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사천왕상을 안치한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천왕문에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의 사천왕상이 있는데 각각 불국정토의 동ㆍ서ㆍ남ㆍ북을 지키는 신들이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손에는 보검을 쥐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붉은 관을 쓰고 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잡고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는 모습이다. * 불이문. 사찰에서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을 지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門)이다. 진리는 둘이 아니며 진정한 불이(不二)는 모든 번뇌를 벗어나 참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불이문을 지나야만 진리의 세계가 펼쳐지는 불국정토에 들어갈 수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는 불교의 수호신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욕계 6천의 제2천인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있다고 한다. 불이는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말하는데, 불이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할 수 있고 불이문을 통과하면 부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 석탑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든 축조물이다. 화강암이 많고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석탑이 많이 세워졌다.불교가 전래된 4세기 무렵에는 주로 목탑이 세워졌는데,7세기 전반부터는 백제에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비롯해 석탑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건축 기술이 가장 발달한 백제에서는 목탑 양식을 모방하여 석탑을 세웠다. 신라의 석탑으로는 전탑 양식을 모방한 경주 분황사 석탑이 전해진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세워진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등으로 이어진 석탑 양식은 고려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발달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에는 기둥 모양의 우주와 탱주를 새기고,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을 쌓으며, 상륜부는 노반 위에 복발ㆍ 앙화를 놓고, 그 위에 보륜ㆍ보개ㆍ수연ㆍ용차ㆍ보주 등을 긴 찰주에 꽂아서 꾸민다 * 석등 석가모니의 깨달은 진리를 불로 밝혀 전하며, 사찰의 법당 앞에 있다. 땅 위에 지대석을 깔고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차례로 쌓아 그 위에 등불을 켜 넣는 화사석을 놓고 옥개석을 얹어 꼭대기에 보주로 꾸민 구조이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에는 화창을 내는데, 화사석을 8각으로 하여 4면에 화창을 내고 나머지 4면은 화사벽으로 하는 것이 기본형이지만 8면에 모두 화창을 내는 경우도 있다. 삼국시대부터 세워진 석등은 시대와 지방에 따라 그 양식이 다른데 통일신라시대에는 간주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이 8각형으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석등의 간주석 대신 사자 두 마리를 세운 양식이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였는데 그 예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논산 관촉사 석등과 같이 원형의 간주석에 4각형의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을 얹은 새로운 양식이 나타났으며, 한때 6각형 양식의 석등도 건립하였다. 주로 4각형 양식으로 지어진 조선시대의 석등은 짧고 두터운 모양이며, 유교문화의 발전에 따른 불교의 쇠퇴로 석등의 건립이 점차 줄어들었다. * 대웅전. (대웅보전)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법당으로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는 본존불을 모신 중심 전각을 '금당'이라고 하였으며, 조선에 들어와서는 법문을 설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법당'이라고 했다. '대웅'이란 말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큰 영웅인 대웅으로 지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대웅전은 도력과 법력으로 세상을 밝힌 위대한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가람의 중심 건물이다. 그 안에는 중앙에 수미단을 세우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안치하거나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봉안하기도 한다. 한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는 대신 미륵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등의 삼신불을 안치하기도 한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불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상이 안치된다. 대웅전 안의 불상 뒤에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와 삼존여래탱화를 걸고, 좌우에는 신중탱화와 감로탱화 등을 걸기도 한다. 불상을 모셔놓는 수미산 모양의 불단 위에는 닫집이 내려와 있고, 불단 주위에는 꽃무늬를 새겨넣거나용, 비천상, 사천왕상 등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꾸민다 * 대적광전 (대광명전,비로전)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는 대적광전이 본전이다. 그 러나 사찰의 주불전이 아닐 때는 화엄경의 연화장 세계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므로 비로전이라고도 하고, 화엄경에 연유되어서 화엄전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그 분위기가 위엄이 있고, 진리의 빛이 가득하며, 고요가 깃든 세계라는 데서 대적광전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신불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을 안치한다. 또한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두어 5불을 안치하기도 한다. 주불을 모신 불단 위에 닫집을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으로 화려하게 꾸미며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보상화무늬 등으로 장식한다 대적광전에는 삼신불을 안치하므로 후불탱화로 삼신불탱화를 걸어두는데, 한 폭에 비로자나불ㆍ노사나불ㆍ석가모니불을 모두 그리거나 법신탱ㆍ보신탱ㆍ 화신탱을 세 폭에 나누어 그린 불화를 배치하기도 한다 * 극락전 (아미타전,무량수전) 사찰에서 아미타불을 주불로 안치하고 있는 법당으로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 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인데, 무량한 지혜와 무량한 덕, 무량한 수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불'이라고도 부른다. 극락정토의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앙에 모시고,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과 지혜와 광명의 빛으로 중생을 비추어주는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안치한다. 또는 관세음보살과 함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지장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기도 한다. 본 존불의 신앙 내용을 구체적으로 그린 불상 뒷벽의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묘사한 극락회상도, 극락구품탱화, 아미타탱화 등을 걸기도 한다. 주불을 모시는 불단 위에는 닫집을 달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나 극락조를 새겨넣었다. * 미륵전. 사찰에서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미륵전은 법상종 계통 사찰의 본전이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용화 세계를 이룬다는 뜻에서 용화전이라고도 하며, 미륵의 한문 의역인 자씨를 따서 자씨전이라고도 한다.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부처가 아니라는 뜻에서 '미륵보살'이라고도 부른다. 이 미륵보살이 새로운 불국토 용화 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을 상징하는 법당이다. 미륵불의 협시보살로는 법화림보살과 대묘상보살 또는 묘향보살과 법륜보살을 배치하며, 후불탱화로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여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끌어주는 장면을 묘사한 용화회상도를 걸어둔다. * 약사전. 사찰에서 약사여래를 주불로 봉안하고 있는 법당인데 보통 동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불이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와 덕상을 지니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광보살을, 오른쪽에는 달처럼 청정한 덕상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월광보살을 배치한다. 약사여래는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동방의 정유리 세계를 다스리며 모든 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부처인데, 보살로 수행할 때에 중생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약사십이대원'이라는 12가지 서원을 세웠다. 대개 약사여래는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을 들고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동방약사 유리광회상도를 걸어둔다. 법당 안에는 우물천장을 비천과 연꽃으로 꾸미고 닫집을 만들었다 * 팔상전 (영산전) .......... <팔상도: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까지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설명한 그림> 영 산전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또는 5백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나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한다.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인 여덟장면을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인데, 팔상 탱화를 봉안하고 달리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함께 좌협시에 미륵보살, 우협시에 제화갈라보살을 모신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제화갈라보살은 본래 정광불로서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 석가모니부처님이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부처님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더불어 이 두 협시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있는 이른바 시간삼세불인 것이다. 팔상도 : ① 도솔래의상(도솔에서 내려오는 장면) : 석가모니부처님이 호명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다가 마침내 사바세계로 출현하게 되자,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왕비의 태자로 탄생하여 도솔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는 흰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는 마야부인의 모습, 상(相)을 잘 보는 바라문에게서 꿈의 해몽을 듣는 왕과 왕비의 모습 등이 주 내용으로 묘사된다. 이 때 바라문이 이르기를 "반드시 태자를 잉태할 것이며 훗날 출가를 하면 정각을 이루어 삼계중생을 제도할 것"이라 하였다 한다. ② 비람강생상(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 :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따뜻한 봄날에 마야부인이 궁중을 떠나 궁녀들과 룸비니 동산에 올라 무우수(無憂樹) 꽃가지를 붙들고 서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는 장면,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비단을 가지고 내려와 태자를 받으며 모든 천왕들이 온갖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땅에서 솟아오른 연꽃을 밟고 일곱 걸음을 움직이며 한손은 하늘을 또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치는 장면, 아홉마리의 용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는 장면, 태자를 가마에 태워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 아지타 선인을 불러 관상을 보이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③ 사문유관상(四門밖에 나가 관찰하는 장면) : 태자가 사방의 문으로 나가서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이 네 가지로 묘사된다. 동문으로 나가서는 노인을 보고 사색하는 장면, 남문 밖에서는 병자를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 서문으로 나가서는 장례행상을 보고 죽음을 절감하는 장면, 북문 밖에서는 사문을 보고 깨달아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등이 표현되고 있다. ④ 유성출가상(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 태자가 정반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태자를 감시하던 야수부인과 시녀 그리고 오백 장사들이 잠에 취해 있는 장면, 태자가 마부 차익에게 궁성을 뛰어 넘을 것을 지시하는 장면, 말을 탄 태자가 성을 뛰어 넘으니 제석천이 호위를 하며 하늘에 오색광명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 머리카락을 자른 태자가 사냥꾼의 옷과 자신의 비단도포를 바꾸어 입는 장면, 마부 차익이 태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금관과 용포를 가지고 궁궐로 돌아가는 장면, 정반왕과 마야부인 그리고 태자비가 태자의 의관을 받고 슬피우는 장면 등이 주로 묘사된다. ⑤ 설산수도상(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 설산에 들어간 태자가 대신들을 보내어 환궁을 종용하는 정반왕의 권청을 물리치고 신선들과 함께 수도에 정진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정반왕이 교진여(橋陣如) 등 5인의 신하를 보내어 태자를 환궁하게 하는 장면, 이들이 태자에게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장면, 환궁을 거절한 태자에게 궁중에서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6년 고행의 무상함을 깨우친 태자에게 목녀(牧女)가 유미죽을 바치는 장면, 제석천왕이 못을 만들어 목욕을 하게 하고 천인이 가사를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수도하면서 모든 스승을 찾는 장면, 풀베는 천인에게서 길상초를 보시받는 장면 등의 많은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⑥ 수하항마상(보리수 아래서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장면) : 태자가 마군들의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진다. 마왕 파순이마녀로 하여금 부처님을 유혹하게 하는 장면, 마왕의 무리들이 코끼리를 타고 부처님을 위협하는 장면, 마왕이 80억 마군을 몰고와 부처님을 몰아내려고 하나 창칼이 모두 연꽃으로 변하는 장면, 지신(地神)이 태자의 전생공덕과 계행을 마왕에게 증명하는 장면, 마군들이 작은 물병을 사력을 다해 끌어내려고 하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돌비(石 雨)와 바람이 쏟아져 80억 마군들을 물리치는 장면, 드디어 마왕의 무리들이 항복되고 부처님과 모든 천신·천녀·군중들의 수희 찬탄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⑦ 녹원전법상(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장면) : 무상전각을 이루신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을 설하시는 장면들이 상·하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상단에는 노사나불의 모습을 보이신 석가삼존이 처음으로 화엄경을 설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하단에는 세존께서 녹야원에 이르러 교진여 등 5인의 비구에게 고·집·멸·도의 사제법문을 설교하는 장면, 수달다 장자가 아사세 태자의 동산을 사서 기원정사를 건립하고자 하는 장면, 흙장난을 하고 놀던 어린이들이 부처님께 흙을 쌀로 생각하고 보시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탑으로 바꾸는 장면 등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⑧ 쌍림열반상(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 : 80세가 되신 부처님이 이월 보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시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사라쌍수 아래서 길게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과 그 주위로 비탄에 잠겨 있는 사부대중과 천룡 팔부중의 모습들, 노가섭이 크게 슬퍼하자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시는 장면, 아나율존자가 하늘에 올라가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전하자 마야부인이 천녀들과 허공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꽃을 뿌려 공양하는 장면, 관이 성밖으로 저절로 들려 나가는 장면, 다비를 하니 사리가 비오듯 쏟아지는데 이 사리를 차지하려는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바라문이 골고루 나누어주는 장면등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 관음전. (원통전,대비전)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건물이 사찰의 중심 법당일 때는 원통전, 사찰 건물의 일부에 속하는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한다. 관음전에는 연화좌에 앉아 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들고 있는 관음상을 모시는데 양류관음, 백의관음, 십일면관음, 해수관음, 용두관음, 천수관음 등을 안치한 곳도 있다. 관세음보살의 협시인 해상용왕과 남순동자는 후불탱화에만 나타난다. 후불탱화로는 안치된 관음상에 따라 양류관음도, 백의관음도 등을 배치한다 * 지장전. (명부전,시왕전) 사찰에서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으로 대개 대웅전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곳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어 지장전, 시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의 위촉을 받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6 도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명부전 안에는 불단 가운데에 지옥중생의 구세주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는 죽은 뒤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다루는 10명의 명부시왕상을 세운다. 옥을 다스리는 시왕은 진광대왕,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 등이다. 명부전의 후불탱화로는 지장탱화와 명부시왕탱화를 안치한다 * 응진전 (나한전)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그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인 16나한상을 안치한 법당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6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아라한을 줄인 말인데 존경과 공양을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으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로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의 수기를 받았다. 응진전 안의 가운데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 협시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또는 아난과 가섭을 세웠다. 그 좌우에 16나한을 안치하고 끝에 범천과 제석천을 배치하는데 5백 나한을모신 곳도있다. 후불탱화는 영산 회상도나 6나한도를 안치한다. 응진전은 주불전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불단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나한님들을 모신 전각입니다. 아라한은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버린 분들로서 진리와 합치하기 때문에 응진(應眞)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응진전은 나한전의 또다른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나한전은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했다 해서 영산전(靈山殿)으로도 불립니다. * 조사전 (국사전) 불교 사찰에서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후세에 존경받는 승려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안치한 건물이다. 사찰에 따라서 조당, 조사당, 국사전이라고도 한다. 조사는 불교에서 한 종파를 열었거나 그 종파의 법맥을 이은 선승을 가리키는데 선종 사찰에서 조사당을 세워 영정과 위패, 조각상 등을 모신 데서 비롯되었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영각을 짓고, 국사를 배출한 절에서는 국사전을 짓기도 하였다. 조사전은 성현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뒤에 두고 그 앞쪽에 처소를 배치시키는 후묘선학 배치법에 따라 사찰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 대장전 (장경각) 대장경을 보관하는 사찰의 건물이다. 불교도의 세 가지 근본 귀의처인 불보, 법보, 승보 의 삼보 가운데 법보에 해당하는 대장경을 안치하고 있으므로 법보전이라고도 한다. 대장전은 부처의 가르침인 불경이나 불경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존하는 전각으로 사찰에 따라 장경각, 장경판전이라고도 한다. 한편, 경남 합천 해인사의 장경각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대장전에는 석가모니불이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안치한다. * 삼성각. (칠성,산신,독성) 사 찰에서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한곳에 안치한 전각이다. 전통 민간신앙인 삼성신앙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생겨났다. 한 건물 안에 독성ㆍ칠성ㆍ산신을 함께 모시면 삼성각이라 하고, 이들을 따로 모시면 칠성각ㆍ산신각ㆍ독성각이 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과 후불탱화로 독성탱화를 안치하는데, 사찰에 따라 탱화만을 배치하기도 한다. 천 태산을 배경으로 오른손에 승려의 지팡이인 석장을 짚고, 왼손에는 염주나 불로초를 들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희고 눈썹이 긴 모습의 독성상이나 탱화를 안치한다. 칠성각에는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로 배치한 삼존불과 칠원성군, 칠여래를 그린 칠성탱화를 안치한다. 산신은 백발 노인으로 묘사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산신 옆에 배치된다. 삼신산을 배경으로 손에는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대머리에 수염과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을 그린 산신탱화를 산신각에 안치한다 * 범종각. 해탈문인 불이문을 지나 불국정토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주악을 연주하는 범종이 있는 건물이다. 종각이라고 하고 이층의 누각인 경우에는 범종루, 종루라고도 한다. 사찰에 들어가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에 들어서면 법당 쪽에서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범종각에는 범종을 비롯해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의 법전사물(法殿四物)을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이들은 중생의 교화를 상징하는 불구로 예불의식 때 쓰인다. [ 법구 ] 목어 나무를 깍아 잉어 모양으로 하고 속을 파낸 불구이다. 목어에는 물고기처럼 잠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의미를담고 있으며, 그 소리는 물속의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범종 사찰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치는 법구이다. 그 소리는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여 번뇌로부터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법고 사찰의 불교의식에 쓰이는 법구이다. 그 소리는 불법을 널리 전함으로써 중생들이 해탈을 이루게 하고, 축생의 무리들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운판. 뭉게구름 모양의 얇은 청동 또는 철제평판으로 만든 불구아다.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는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공중을 날아 다나는조류게(鳥類界)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 * 부도탑 불교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묘탑이다. 부도의 어원은 불타를 뜻하는 붓다(Buddha) 또는 불탑을 뜻하는 스투파(stupa)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 주검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불교식 장례법이 생겨남에 따라 부도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선종이 들어온 뒤 승려의 지위가 높아지고 각 9산선문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법맥이 이어지면서, 불상보다는 조사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예배 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건립되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불상 등을 안치한 불탑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 세운 데 비해, 승탑인 부도는 사찰 주변에 석비와 함께 단층으로 건립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석등과 함께 조성하였다.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된 팔각원당형 부도와 형태가 단순한 종 모양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 기타건물 무설전 (설법전) 사찰에서 고승들이 화엄경 등 주요 경전을 가르치는 장소이다. '무설'이란 설법하는 강당이지만 역설적으로 설함이 없이 설한다는 불교적인 표현이다. 이는 말로써 경론을 강의하지만 말과 글은 진리를 전하는 수단일 뿐 말과 글 자체가 진리일 수 없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경론을 강의하는 강당인 무설전은 출가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과 계율을 익히고 석가모니의 설법 중에서 가려 뽑은 경전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배우는 곳인데, 일반 불교 신도들도 무설전에서 설법을 듣기도 한다. 요사채 (승당,승방) 사찰에서 승려들이 거주하는 건물이다. 요사는 사찰 안의 전각이나 산문을 제외하고 승려들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건물인데, 승려들이 참선하고 정진하며 거처하는 집으로 쓰이는 요사를 통틀어 승당 혹은 승방이라고 한다. 승 려들이 참선하는 선방을 비롯해 승려들의 식생활이 이루어지는 부엌과 식당, 일반 신도들이 음식을 먹거나 쉬면서 거처할 수 있는 장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절의 법당보다 규모가 작은 한옥 형태로 법당 앞 좌우나 법당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해우소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찰에 딸린 화장실을 가리킨다. 대소변을 미련 없이 버리듯 번뇌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우소라는 말은 원래 옷을 벗는 곳이라는 해의소(解衣所)에서 유래했다. 예전에는 속속곳ㆍ단속곳ㆍ속고의ㆍ속치마 등 켜켜이 입고 있는 옷을 몇 개는 벗어야 시원하게 뒷일을 볼 수 있어서 화장실을 옷을 벗는 곳이라고 하였다 두륜산(703m)/ 전남 해남. 한반도의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해남에서 두륜산은 가장 먼저 바다를 건너오는 봄을 맞이한다. 고 계봉(638m), 가련봉(703m), 두륜봉(673m), 도솔봉(672m, 국립지리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대둔산으로 표기), 연화봉(613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등 7개의 봉우리가 둘러싼 우묵한 분지의 가운데에 명찰 대흥사가 자리잡고 있다. 대흥사 입구 마을 이름이 장춘리(長春里)인 것처럼 이 땅에 가장 먼저 찾아온 봄이 또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다. 대흥사와 표충사의 담장을 따라서, 또 7개의 봉우리가 형성한 널따란 분지의 곳곳에는 선연한 핏빛으로 피어오르는 동백이 지천이다. 그런 동백을 남들보다 먼저 보고싶다면 바로 해남의 두륜산으로 가야한다. 대흥사 입구 장춘리에서 도로를 따라 대흥사로 향한다. 길옆으로는 이제 얼음에서 풀려난 맑고 시린 냇물이 흐르고 울창한 삼나무 숲이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 짙푸른 동백 잎 사이마다 진홍빛 동백의 봉우리가 빼곡이 맺혀있다. 대 흥사에 이르기 전 만나게 되는 서산대사 부도와 초의선사의 부도 밭에도 처연하게 떨어져 내린 동백의 꽃송이가 지천이다. 대흥사 앞뜰 가득 쏟아지는 봄볕을 즐기며 천불전을 지나면 일지암과 북암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정상인 가련봉까지 다녀오는데 4시간이면 넉넉해 당일 산행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동백꽃을 살펴야 하는 것이 두륜산 봄 산행의 원칙이다. 표충사를 지나고 천천히 오르막길을 따라 약 40분 정도 오르면 이내 북암에 도착한다. 가는 도중 여러 갈림길이 나타난다. 북암에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북암 뒤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다 보면 고계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가련봉과 고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 10분쯤 걸으면 넓고 평평한 능허대에 도착한다. 능허대에서 가련봉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50m쯤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야한다. 정상에 서면 남해가 한눈에 펼쳐져 눈과 가슴이 한꺼번에 시원해진다. 정상에서 두륜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암봉을 넘어서야 한다. 두륜봉과의 안부에 있는 헬기장이 만일재다. 두륜산의 명물인 자연암석으로 이루어진 구름다리가 있는 두륜봉을 지나 도솔봉까지 갔다가 도로를 따라 하산할 수 있다. 약 2시간 반 정도 소요. 만일재에서 바로 하산을 하면 이내 천년수가 서 있는 만일암터에 도착한다. 만일암터에는 5층 석탑이 있다. 이곳 만일암터에서 대흥사까지는 40분이면 충분하다. 해남읍에서 대흥사행 버스를 타고 대흥사 입구인 장춘리에서 내린다. 매표소를 지나 경내버스가 운행되지만 삼나무 숲과 동백, 박달나무, 팽나무, 측백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도 좋고 출렁다리를 건너기도 해 재미있다. 산행은 대흥사를 지나 표충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왼쪽은 일지암과 북암을 향해 오르는 길이며 오른쪽의 길은 진불암으로 이어진다. 어느 쪽이든 정상인 가련봉까지 4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먹고 잘곳/ 장춘리 주차장과 매표소 사이의 집단시설지구에 여관과 식당이 많다. 대성각(☎061-535-4700), 두륜각(☎061-535-0080), 해남관광호텔(☎061-533-9002), 해남식당(☎061-534-5584) 등이 있다. 가는 길/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6282-0600)에서 해남행 버스가 07:30∼17:30까지 8회 운행된다. 5시간 소요. 해남에서 대흥사행 버스는 06:30∼19:4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미황사에 대한 산의 느낌. 창건 설화 절묘하게 어울려 신비로운 사찰입니다. 보통의 절과는 다르게 산 중턱에 자리에 그 경사에 따라 낮지 않은 층계들에 사찰들이 차례차례 자리해있어, 보통 사찰과는 다른 층계의 체계적인 모습이 보는 이에게 청결하고 정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 층계들을 타고 담쟁이 넝쿨들이 자라고 있어 초록색 층계와 나무로 지어진 절(건물), 그 뒤로 펼쳐진 숲과 바위들이 병풍처럼 어우러져 그 자체로 거친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또 소가 위치를 보는 능력이 있었는지, 아주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에서 거의 모든 시야가 바다로 뻗쳐 공간이 끝없이 열려 있어 뭔가 해방적인데, 이 부분이 바로 땅끝인 해남의 참 멋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과 들판 그리고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 ![]()
2009.05.24 03:30:05
미황사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다울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금 황(黃)’자를 쓴 것이라고 한다. 그뒤 수백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데, 유일하게 전해지는 역사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현종 1)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중창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사찰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 사찰의 가운데 있는 문으로 출입하지 않는다. 법당 가운데 있는 문을 "어간문" 이라고 부르는데,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에서 어간문은 공부를 많이 하신 큰스님이 출입하는 곳으로, 일반신도는 가운데 문을 피해 좌우에 있는 문을 사용하는 사찰에서의 예의이다. 또 사찰이란 스님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부처님을 모시는 성스러운 공간임으로 떠들거나 무례를 일으키지 않고 스님들과 마주치면 합장을 하고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미황사에 대한 산의 느낌. 창건 설화 절묘하게 어울려 신비로운 사찰이다. 보통의 사찰과는 다르게 산 중턱에 자리에 그 경사에 따라 낮지 않은 층계들에 사찰들이 차례차례 자리해있어, 또 중턱에서 시작된 층계의 체계적인 모습이 보는 이에게 청결하고 정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또 그 층계들을 타고 담쟁이 넝쿨들이 자라고 있어 초록색 층계와 나무로 지어진 절(건물), 그 뒤로 펼쳐진 숲과 바위들이 병풍처럼 어우러져 그 자체로 거친 아름다움이 있다. 또 소가 위치를 보는 능력이 있었는지, 아주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에서 거의 모든 시야가 바다로 뻗쳐 공간이 끝없이 열려 있어 뭔가 해방적인데, 이 부분이 바로 땅 끝인 해남의 참 멋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과 들판 그리고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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