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고정희?
고정희 시인. 난 왜 그녀를 기억하는 걸까?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명히 파악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일관성 있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생에서 우리가 소망하고 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가 살던 시대에 직면했던 문제들인 '수유리 종교의식'과 '광주의 역사의식', 그리고 '여성의식'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것들에 대한 시를 써내려감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고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시를 쓰던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그 시대의 사건과 감정들이 전해져 뭉클해진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삶을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갔다는 것. 하지만 그의 시에서 '우리'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듯이 그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면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놓치지 않았던 모습은 내가 제프 딕슨이 우리 시대에 대해 역설한 것처럼 달에는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진 이 시대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립고 그녀를 기억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녀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사회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는 삶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회의 부조리들과에 갈등들 때문에 앞으로의 삶에 대해 쉽사리 발을 내딛지 못하는 나에 상황에선,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들에 대해 자신의 매체인 시로서 표출하고 다른 이에게 공감을 주는 모습',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아시아의 여성 등 점점 더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며 '가부장적인 한국에서 독립적인 (끝없이 저항적인)여성'으로서 살았다는 건 내가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고, 내 부족한 부분이기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나에게 지속적인 저항, 단단함 그리고 자신의 매체를 통한 표출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묻는다.



새 시대 주기도문

               -고정희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 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 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미황사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불상과 경전을 가져와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달마산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다울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누를 황(黃)’자를 쓴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수백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데, 유일하게 전해지는 역사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는 등등 보수에 대한 약간의 기록만이 전해진다.

 미황사에 먼저 다녀온 나의 느낌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창건 설화와 함께 층계와 넝쿨담을 갖은 신비로운 사찰이다. 또 사찰이 산 중턱 아주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에서 거의 모든 시야가 산과 함께 바다로 트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열려진 시야. 이 부분이 바로 땅끝인 해남에 위치한 미황사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과 들판 그리고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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