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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To love. To be loved. To never forget your own insignificance.
To never get used to the unspeakable violence and the vulgar disparity
of life around you. To seek joy in the saddest places. To pursue beauty
to its lair. To never simplify what is complicated or complicate what
is simple. To respect strength, never power. Above all, to watch. To
try and understand. To never look away. And never, never, to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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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undhati Roy, quote from her "coming september"
제목 : 생존의 비용
저자 : Arudhati Roy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2003년 초판 최인숙 옮김 양장본 A 급 [ 책소개 ] 부커상 수상 작가이며, 환경, 반핵, 반세계화의 여전사가 세계화를 비판하다 이 책에는 아룬다티 로이의 두 편의 글이 실려있다. 대규모 댐 건설과 같이 무턱대고 진행하는 개발이 어떻게 자연을 해치고 사람을 해치는지 지적한 <공공의 더 큰 이익>과 핵군비 경쟁의 어리석음을 질타한 <상상력의 종말> 이다. 이 글들은 단순한 현장 보고가 아니다. 로이는 인도의 오늘을 돌아보며 민족주의와 개발지상주의가 어떻게 손을 잡는지, 지배 계급의 허황한 정치적 선전이 어떻게 거대한 물리적 실체를 만들어내는지, 이에따라 제3세계 지배 계급과 세계체제관리기구 간에는 어떤 상납의 고리가 생기는지 알아본다. 로이는 거대한 댐을 세우는 일이나 단시간에 핵무장을 하기보다 가난한 국민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외친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 역자 : 최인숙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서양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살면서 아동, 교육, 환경과 관련된 인문학 연구에 관심을 두고 출판 기획 및 번역 일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생존의 비용』『마음의 승리』등이 있다. 저자 : 아룬다티 로이 아룬다티 로이는 1961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건축학을 공부하였으며 시나리오 집필, 영화 연출 등 활동을 하다가 영국에서 낸 소설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이 1997년 부커 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그는 수상 덕분에 얻은 대중적 인기와 언론의 주목을 뿌리치고 인도로 돌아가 인권·환경·반핵·반세계 운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대중 강연과 글쓰기에도 힘쓰고 있다. [ 목차 ]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 책머리에 공공의 더 큰 이익 상상력의 종말 옮긴이의 말 부록 :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건설 관련 지도 [ 출판사 리뷰 ] 그는 인도 사회 문제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문제를 원환으로 엮어낸다. 인도 최하층 주민의 이야기가 인도 지배 계급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다시 자본주의 세계 체제 및 세계 체제 관리 기구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꼴이거나 그 역이다. 그러나 그 말과 글은 눈물겨운 이야기나 상투적인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전설적인 인도 빈민의 영웅 풀란 데비의 생애를 영화화한 「밴디트 퀸」의 제작사와 겪은 심각한 불화의 예에서 보듯 그는 사람 나름의 처지가 스펙타클로 이용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세부에서는 주류 질서의 담론과 그 선전 기관의 선전용 수사(rhetoric)를 교묘히 변주해 되받아침으로써, 그것의 허점을 보다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자신의 주장을 한층 인상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숫자와 통계로 미화되고 찬양된 대형 건설 계획에 대해서는 역시 숫자와 통계로 그린 재앙의 미래상을 들이밀며 항의한다(이 책에 실린 「공공의 더 큰 이익」에 숫자와 통계를 숫자와 통계로 맞선 대표적인 글이다). '수몰 지역 주민들에게는 땅 대신 돈 줬다,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하면, '대법관에게 비료 한 봉지를 월급으로 주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대꾸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말한 '무한 정의의 전쟁(작전)'은 그에 의해 '무한 정의의 대수학`The Algebra of Infinite Justice'으로 뒤집혀 신랄한 조롱을 받았다. 최근의 대중 강연 「911을 기다리며」는 뉴욕의 희생자들과 아프가니스탄 등 제3세계의 희생자들을 함께 위로하면서 따뜻한 애도의 정을 굳은 반전·평화 의지로 승화시켰다. 또한 실제로는 강대국에 심신이 종속되어 있는 주제에 민족주의 선전선동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인도(및 제3세계) 핵문제에 대한 발언: "핵폭탄을 내 뇌 속에 심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반힌두교적이고 반민족적이라면 나는 힌두교와 민족을 떠나겠다. 나는 나 스스로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공화국임을 선언한다. 나는 지구의 시민이다. 나는 영토를 소유하지 않는다. 깃발도 없다. 나는 여성이지만 불깐 남자에 적대적이지 않다. 나의 방침은 간단하다. 나는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핵확산 방지 조약과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하겠다"(이 책에 실린 「상상력의 종말」에서)까지, 그의 말과 글에는 1968년 당시의 프랑스 상황주의자들을 방불케 하는 활달한 생명력이 가득하다. 주류 질서의 담론을 치밀한 논리와 계량적인 근거로 압도한 뒤, 수사적으로 보다 뛰어난 대항 담론을 만들어내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업은 숫자 앞에서 우물쭈물하거나, 그저 울며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발끈하다가 마는 여느 보고서들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말과 글이 행여나 스펙타클로 전락하지 않을까 늘 회의한다. 이런 태도는 그의 활동과 말과 글이 지닌 특별한 미덕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매력적인 싸움꾼'이다. 격렬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는 끈기도 있고 화가 나면 법정에서도 욕설을 서슴지 않지만(2002년 초 인도 대법원에서 법정 구속되었다), 스파이스 걸스의 팝스타 빅토리아 베컴과 함께 영국 여성들이 뽑은 이상형에 나란히 1등으로 뽑히기도 했다. 물론 인도 상류층에게는 엄청난 증오와 질시의 대상이다. 그들은 로이를 '빨갱이 잡년'이라고 부른다. [ 미디어 리뷰 ] 현장의 과학으로 핵과 댐 반대 아름다운 소설 『작은 것들의 신』(1997)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42)는 ‘거침없는 싸움꾼’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야유한 그 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그는 반핵 운동, 댐건설반대 시위현장에서 뛰는 반핵·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싸우는 대상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인도 사회(정부)의 주류 담론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인도 상류층들에게 로이는 “빨갱이 잡년”이 되었다. 『생존의 비용』(1999)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서 로이는 댐 건설론자들의 ‘숫자와 통계’에 맞서 ‘숫자와 통계’로 댐건설이 불러온 재앙을 설득하는가 하면 때론 자기고백적이고 선동적인 글투로 ‘핵을 보유한 나라’ 인도를 들여다보면서 ‘핵 반대’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인도는 세계에서 댐이 세번째로 많은 나라지만 아직도 수많은 댐이 건설중에 있다. 로이가 ‘통계와 숫자’를 곱씹어 가며 들여다본바, 댐 건설로도 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난맥상이 됐다. 반 면 인도에서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 이주민은 줄잡아 무려 5천만명. 인도 현대사 50년에 걸친 이들 이주민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로이의 시선은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들 곧, 간디와 네루(따라서 간디와 네루의 후예들이 가꿔가고 있는 간디주의, 네루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 인도의 힌두교적 정체성 신화(간디주의)와 강대국이 되려는 열망(네루주의)이,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핵 무장”과 “대책없는 댐 건설”을 낳게 되었다는 비판이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허미경 기자 (2003년 2월 22일 토요일)
인도의 개발지상주의 고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내린천댐, 동강댐, 지리산댐 파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댐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풍광이 좋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전국의 하천치고 댐 계획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계획을 세워놓은 이들은 지난해 태풍 ‘루사’가 지났을 때처럼 “댐만 막으면 홍수 피해 정도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댐을 건설하려 한다. 그 러나 과연 그런가. 댐만 막으면 홍수조절도, 식수공급도, 농업 공업 용수 공급도, 전력생산도 가능한가. 이 책은 아직도 개발지상주의가 횡행하는 한국 못지않게 댐이나 핵개발 등 전체주의적 개발론이 판을 치고 있는 인도의 현실을 고발한다. 책 중 댐 관련 부분 일부를 요약해 보자.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을 두고 당초 정부에서는 쿠치와 사우라슈트라의 마을들에 식수를 공급한다는 말이 전혀 없었다. 이것이 어느 순간 2800만명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6년 뒤에는 3250만명으로 뛰어 오른다. 그리고 사업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인도는 2000만루피를 날린다는 것이다. …이 댐 때문에 이주하게 될 가구수는 당초 6000가구가 조금 넘었다. 이것이 9년 뒤에는 1만2000가구로 늘었고, 다시 4년 뒤에는 2만7000가구, 또 1년 뒤에는 4만가구로 뛰었다. 처음 500억루피를 조금 넘었을 뿐인 사업비도 4400억루피로 늘었다. 이 댐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관개, 전력생산, 식수공급, 홍수조절이 모두 충돌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어디선가 보았음직하지 않은가. 책을 쓴 이는 인도에서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영국의 부커상을 받으며 유명작가로 도약하자 환경, 반핵, 반세계화 운동가로 변신한 아룬다티 로이. 그는 책에서 이런 숫자뿐만 아니라 작가다운 은유와 상상력을 능숙하게 동원한다. 현장 활동가의 감각과 눈으로 개발의 허구성을 파헤치되, 이를 빛나는 상상력과 개성있는 말로 풀어내는 점은 이 책이 지닌 특별한 미덕이라 할 만하다. 최인숙 옮김. --- 문화일보 북리뷰 김종락 기자 (2003년 2월 2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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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19:20:22
찬성이오-(이것 마치, 이상의 말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좀 그렇긴 한데, '빨갱이 잡년'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요즘에도 이렇게 저항적인 사람이 있다니!)
2009.05.27 20:25:36
시대를 읽는 문학 /
경제사상가인 슈마허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누구의 직업이 가장 오래된 것인지를 두고 내기를 벌였는데, 먼저 외과의사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내 이브를 만드시는데, 이게 바로 외과에서 하는 수술이지.” 그러자 건축가인 친구가 말했습니다. “글쎄,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혼돈으로부터 이 우주를 만드셨지.” 두 사람의 논쟁을 듣던 경제학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혼돈을 누가 만들었지?” 가장 오래된 직업이 경제학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 우리 사회도 태초의 혼돈만큼이나 여러 가지 경제문제로 어지럽습니다. 환율과 주식 가치는 급변하고, 외환위기설은 끊이지 않으며,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공공재의 민영화 논란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혼돈은 바로 정부가 ‘경제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국민을 향해, 우리의 계곡과 강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는 개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시작한 이 소리 없는 전쟁으로 무고한 철거민들은 반체제 테러리스트로 체포되었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흐르던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그동안 방치되었다며 느닷없이 대토목공사용 정비소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일견 평화롭게 보이는 일상의 한가운데 앞으로 대혼란을 초래할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주목하는 작가들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무너진 자기 시대를 돌아보며 “선인은 모든 신념을 잃어버리고, 악인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슬퍼했지만 우리 시대의 개발 전쟁으로 인한 이런 파괴는 누가 지켜보며 슬퍼해줄까요? 매스컴의 관심을 끌 만큼 웅장한 서사도, 대규모의 학살도, 대폭발의 섬광도 없는 시시한 이 전쟁을 예민한 작가들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주목해줄까요?
인도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국가가 추진하는 ‘개발’이란 그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싸움을 걸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명성과 부를 뒤로하고 반정부 운동에 나섰다. ‘알타이문화연합’이나 ‘중도실용정부’만 작가를 부르는 게 아니다. 우리의 계곡과 강도 작가를 찾고 있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은 ‘이름 바꾸기’로 시작됐습니다. 강제철거 사업이 ‘뉴타운 개발사업’으로 바뀐 것처럼 경인운하 사업도 ‘아라뱃길 잇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친근하게 개명됐습니다. 물론 이름이 달라진다고 정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아라뱃길 잇기도 김포에서 인천까지 수심 6미터의 깊이로 한강을 파내는 사업이고, 4대강 살리기도 4대강을 모두 수심 6미터의 깊이로 파내는 사업입니다.
일찍이 인도 작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국가가 추진하는 ‘개발’이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에게 싸움을 걸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로이는 1999년 인도 대법원이 나르마다 강의 댐 공사 재개를 결정하자 명성과 부를 뒤로하고 바로 반정부 운동에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의 아름다운 계곡과 강은 그녀의 작가적 상상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강물 속에서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과 함께 저항하면서 로이는 3200개의 댐을 건설하는 나르마다 강 재개발 사업이란 결국 이 강에 생존을 의지했던 무수한 약자들의 삶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임을 알아챘습니다. 로이는 나르마다 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한 사람의 작가를 간절히 찾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누가 밀려나고 누가 이득을 챙겼는지, 약자들의 삶은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지, 전문용어와 회계 수치 뒤에 가려진 이런 보이지 않는 진실들을 들려줄 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박혜영 인하대 교수·영문학
2009.05.27 20:27:46
한국일보 2009-5-18
최근 10년 사이에 미국의 주먹(군사적 신보수주의)과 보자기(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가장 열정적으로 펜을 휘두른 논객은
누구일까? 얼른 떠오르는 사람은 그 전부터 미국 정부의 정책에 비판의 펜촉을 들이댄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나 역사학자 하워드 진
같은 원로들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한두 세대 아랫사람으로서 근년에 이들 못지않게 눈길을 끈 이가 있으니,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48)가 그녀다.
로이 자신은 소설가로 불리기를 더 원할지 모르지만, 스무 권이 넘는 그의 책 가운데 소설은 단 한 편이고 나머지가 모두 (강연
원고를 포함한) 에세이이므로, 에세이이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의 시나리오와 방송극과 소설 속에
잠재해 있던 수사(修辭)와 논리의 힘은 그녀의 에세이에서 진면목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수많은 친구와 그만큼의 적을 만들어냈다.그녀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첫 소설이자 지금까지의 유일한 소설 <작은 것들의 하느님>이 1997년 명망 있는 부커상을 수상한 뒤다. 작가의 어린 시절 체험을 반영한 이 반(半)자전소설은 그 해 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책'(Notable Books of the Year)으로 꼽혔고, 그 신문의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4위에 올랐다. 그해 5월 출간된 이 소설은 6월 말에 이미 18개국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오늘날 한국어를 포함한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평단의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로이는 첫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과 부를 얻은 드문 소설가다. 소설쓰기는 그녀의 첫 번째 소명이 아니었다. 뉴델리 도시계획건축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로이는 방송과 영화 쪽에서 이력을 시작했다. 시나리오와 극본에서 단련된 그녀의 손가락이 소설 <작은 것들의 하느님>에서 풀리면서 일을 낸 것이다. 로이는 이 첫 소설로 저명인사가 된 뒤 다시 시나리오와 방송극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것들보다 더 몰두한 것은 정치에세이들 쪽이었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핵개발과 대규모 댐건설 공사를 비판한 에세이 <생존의 비용>이 2003년 번역된 이래, 그 이듬해에는 정치에세이와 강연문 일부가 <9월이여, 오라>라는 제목으로 편집 번역되었고, 역시 에세이와 강연문 모음 <보통사람을 위한 제국가이드>도 번역됐다. 출간 즉시(1997년) 번역된 <작은 것들의 하느님>이 아니더라도, 로이는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첫 소설말고 로이의 국제적 명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 비판은 2001년 9ㆍ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본격화했다. 그녀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에서 "아프가니스탄 공습은 뉴욕과 워싱턴 참사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 인민에 대한 테러"라고 썼다. 그녀가 보기엔 세계무역센터 공격이 테러리즘이듯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테러리즘이었다. 특히 그녀는 부시 주니어와 미국의 총애를 받는 '대사(大使)' 토니 블레어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 식의 이중언어(더블싱크)를 사용하고 있다며, 외국에 공습을 가하는 그 순간에도 자기들은 평화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 덕분에 '돼지'는 '말(馬)'을, '소녀'는 '소년'을, '전쟁'은 '평화'을 뜻하게 됐다고 비꼬았다. 이 글에서 그녀는 미국이 평화애호국이라는 부시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전쟁을 벌인 나라들을 열거했는데, 좀 길지만 여기 옮겨 놓아보자. 중국(1945~46, 1950~53), 북한(1950~53), 과테말라(1954, 1967~69), 인도네시아(1958), 쿠바(1959~60), 콩고(1964), 페루(1965), 라오스(1964~73), 베트남(1961~73), 캄보디아(1969~70), 그레나다(1983), 리비아(1986), 엘살바도르(1980년대), 니카라과(1980년대), 파나마(1989), 이라크(1991~99), 보스니아(1995), 수단(1998), 유고슬라비아(1999),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이들 나라를 열거한 뒤 로이는 "확실히 미국은 지치지 않는다"고 썼다. 맞다. 미국은 로이의 이 발언이 나온 지 두 달도 채 안 돼서, 9ㆍ11테러와 아무 상관도 없고 대량살상무기도 지니지 않은 이라크를 다시 침공해 지금까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로이가 열거한 전쟁들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일상적으로 벌인 파괴, 살상, 쿠데타 조종 같은 비밀공작들을 제외하고 셈한 것이다. 로이의 주장은 늘 상식적이다. 미국 스타일 자본주의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것, 군수산업, 석유산업, 주요 미디어네트워크, 외교정책 따위가 동일한 자본복합체 아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따위다. 그러나 이 평범한 상식을 끌어내는 그녀의 문장은 너무나 힘차고 아름다워서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의 정치적 목소리는 에세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세계지식인들과의 연대서명운동과 강연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그녀는 자신을 선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연설은 적절한 수사와 공격성이 아름답게 결합된 일급 선동문이다. 라난재단 주최로 200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페에서 행한 유명한 강연 '9월이여, 오라'에서, 로이는 2001년 9월11일을 피노체트가 미국 CIA 지원으로 칠레의 합법 정부(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1973년 9월11일, 영국 정부가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선언한 1922년 9월11일 등과 포개며, 앵글로-아메리카와 이스라엘이 제3세계에 저지른 범죄들을 추궁했다. 이 아름다운 연설문의 들머리에서 그녀는 소설가 로이와 에세이이스트 로이를 일치시키며 "논픽션과 픽션은 이야기를 전하는 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픽션은 내게서 춤추듯 흘러나오고, 논픽션은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맞이하는 이 고통스럽고 깨진 세계가 비틀어 짜듯이 내보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그녀는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인스턴트-믹스 제국민주주의'라는 강연을 통해 자신을 '미 제국의 한 신민'이자 '왕을 비난하는 노예'로 비유하며, 미국을 "신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아 아무 때나 그의 속국들을 폭격할 권리를 보유한 지구제국"으로 묘사했다. 2006년 부시가 인도를 방문하자 로이는 그를 '전범'이라 비난했고, 같은 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그는 촘스키, 하워드 진 등과 성명서를 발표해, 그것을 '전쟁범죄'이자 '국가테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로이의 정치활동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군사주의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공공의 더 큰 이익'과 '상상력의 종말' 두 편의 에세이로 이뤄진 <생존의 비용>에서 보여주었듯 그녀는 나르마다 강 댐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인도의 성장우선정책과 핵개발에 반대했고, 더 나아가 카시미르의 독립을 옹호했다. 그녀는 또 어떤 사회운동이 폭력을 수반했을 때, 그것을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의 맥락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반대하는 것은 이른바 세계화 자체다. 그녀 생각에 세계화란 원격조종되고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되는 변종 식민주의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녀 생각이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주의적' 정치 활동은 그녀의 적들로부터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동료들로부터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특히 나르마다 강 댐 건설이 관개나 식수공급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수천만 주민들에게 고향만 빼앗을 것이라며 반대했을 때는, 생태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그녀에게 용기와 신념은 있지만, 그녀의 언사가 너무 과장됐고 단순하며 세계를 마니교적 2분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로이의 대답은 이랬다. "내 글의 열정적이고 히스테리컬한 톤은 의도적인 것이다. 나는 히스테리컬하다. 나는 유혈이 낭자한 지붕 위에서 소리 지르고 있다. 나는 점잔을 빼며 '쯧쯧쯧' 하고 싶진 않다. 나는 내 이웃들을 깨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목적의 전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기를 바란다." 미국과 이스라엘, 탈레반 등의 근본주의와 목하 진행되는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또 한 사람의 근본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약한 자들을 위한 근본주의고, 때로 지나쳐 보일 때도 있지만 정의감각과 조율되는 근본주의다. 이 명민하고 열정적인 글쟁이에게 나는 질투와 연대감을 동시에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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