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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5월부터 진행한 유스토크에서 나는 ‘empathy’, 공감, 감정이입 능력에 대해서 얘기했다. 획일화된 목표와 과정 속에서, 기계와 같이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특히나 이런 감정이입 능력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인 애정, 돈, 죽음, 가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삶의 가치와 감정이입의 대상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낯간지러운 감정에 대해, 19세기 유럽과 현재 한국을 비교해보고, 돈과 경제의 가치관,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없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 살 건지 상상해보았다. 사실 아직 돈에 관해선 구체적이지 못하다. 돈은 의식주와 더불어 내가 공부하는 데에도 필요하고 남을 도와주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돈을 욕심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은 천천히 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먹고 사는 것 보다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돈을 어떻게 벌까 보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생각하기로 했다. 5월 달에는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첫 째로 나는 시詩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죽음, 슬픔 같은 주제에 대해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돌려서 말하거나 추상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시들은 구지 나의 삶과 비교해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공감되고 여운을 주는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4, 5월 달에 걸쳐 실제로 옆에서 여러 차례의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더해졌다.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하시고 난 뒤엔 세상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죽은 사람들로부터 남겨진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허무한 발상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아 갈까 고민하면서 떠난 사람들을 잘 기억하는 것, 애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6월을 끝으로는 나와 뗄레야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에 관해, 가족의 의미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서 되새겨 보았다. 나에게 가족은 떠난 사람들 보다 더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못돼 보이지만 가족의 의무라든지, 단합이라든지 하는 ‘가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영향 받지 않고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가족이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언니, 오빠, 이모, 고모, 사촌,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라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일단 엄마와 아빠부터가 묶여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끝내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지금 나의 가족은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며 밥을 같이 먹거나,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맨날 싸우고 화해하면서 더 많은 감정을 교류한 캐치스코프들이 가족의 의미와 가까울 수 있다. 매일 보는 사이도 아니고, 심지어 밥도 같이 안 먹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 하나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지만 아무도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가족과의 관계는 논리로 설명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지만 한편으론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에 집착하는 나에게 남아있는 인간성이기도 한 것 같다. 인문학이 인간의 삶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면 愛,錢,別,親은 빠질 수 없는 대목일 것이다. 또한 나의 삶을 회고하는 과정으로, 콘크리트 속에서 잃어버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되살리는 학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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