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
결국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고고와 디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만을 기다린다. 그 고도를 기다리는 순간에 그들은 장난을 친다. 토라진다. 싸운다. 절교를 한다. 외로워한다. 보듬어준다. 그리고 다시 장난을 친다. 그럼으로서 그들은 화해를 하고 다시 친구가 된다. 그렇게 계속 반복된다. 때때로 정신줄을 놓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거나, 전혀 납득이 안되는 말들을 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게 고고와 디디의 관계이며 그들의 '소통방식'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막히지 않고서 통함] 혹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이라고 나와 있다. 고고와 디디는 서로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대화가 동문서답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소통한다고 느끼는가? 어떤 부분이 통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나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4년전부터 써왔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쓴다. 이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분명한 건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이 곳을 다니는 사람들과 소통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경험이 많았다. 이때 내가, 그리고 그들이 썼던 '소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나는 다른 대안학교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곳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10대들이 자발적으로 찾는 대안학교라기보다는, 학교가 싫어 무작정 일반학교를 나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황을 하는 10대들이 다시 학교로, 그리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끔 이것저것 시도하는 대안학교였다. 이 곳에서 나는 나보다 한 두살 어린, 하지만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과 서로의 관심이 전혀 달랐던 9명의 10대들을 만났다. 내가 다닌 하자작업장학교와 말하는 방식도, 분위기도, 관계도 달랐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나이차별 하지 않기 위해 닉네임을 지어 부르는 문화가 있지만, 그 곳에서는 나이에 따른 형, 누나, 동생이 확실해야했고, 5초에 한번 욕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욕을 하는 것은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개새끼였기 때문이 아니라, 친밀감을 표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친해지는 아이도 있고, 누가 더 잘났는지 우열을 가리고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아이도 있다면서, 이것이 이들의 소통 방식이라고 이 학교의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내가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과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영역에 있다고 느끼고, 각자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고고와 디디의 탄생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숨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프랑스 레지던스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뮤엘 베케트는 이 작품을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부조리극(처음이나 끝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허무주의 등으로 이 극을 분류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쟁을 기다리는 것 뿐인 사람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 빨리 가게 하기 위해 장난을 치는' 디디와 고고처럼, 나도 그러한 말들을 내뱉고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고와 디디의 소통 방식은 사실 서로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가끔은 정말 즐거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의 고도를 찾으러 가야지
연극을 보기 전 상상리뷰를 쓰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기도 했고, 막차 때문에 Q&A 시간을 놓쳐서 되게 많이 아쉽고, 어떤 식으로 리뷰를 써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연극을 보고 나서 가장 많이 혼란스러웠던 건, 나에겐 '고도'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각자 자신의 고도를 생각했다고 내 상상리뷰에 언급을 했었다. 죄수들은 '바깥 세상', '빵', '자유' 등을 외쳤고, 폴란드에서는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한텐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본 적도, 치열하게 싸워본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굉장히 미지근하게 내 인생을 산 것일까?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보다 기다리며 다음에 오는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나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언제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내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고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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