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인 기무사


어떻게 이 전시를 정리해야 할 지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벌써 3일이나 흘렀는데... 플랫폼 인 기무사는 내 기억과 그 공간에서의 내 감정을 조종하는 듯 했다. (어쩜 모든 작품들의 목표가 관객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일 수도..) 일단 내가 기무사에 대한 공포감과 어두움을 갖고 전시를 보러 갔기에, 유독 매달려있는 작품들을 보기보다는 그 공간이 전시장이기 이전의 모습과 일상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이끌렸다. 마치 그 작품은 그 공간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이런 상상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에서 작품이 느끼기 위한 장치로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눈에 들어 온 작품들의 공통점은 그 무겁고 찝찝한 공간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아예, 기무사스럽거나, 환상 같거나, 따듯하거나. 사실 '플랫폼 인 기무사'의 수많은 방들이 모두 다 각자의 말을 하고 있기에, 소화가 잘 안된다. 너무나 많은 사회적 메시지, 개인적인 관심 등등.... 그래서 나는 기무사스럽거나, 환상 같거나, 따듯했던 방들 부터 정리해보려 한다. 


내게 기무사스러웠던 방은 지하에 있었던 13번 방의 '크리스티안 머클레이'의 공간이었다. 처음 내가 그 방을 봤을 때 너무 무서워 발걸음을 지상으로 옮겼었다. 하지만 왠지 그 방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때문에 또 다시 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방의 작품 설명엔 괴상한 사람이 괴상한 소리가 들리고 악마를 운운하고... 어두워서 글을 읽기도 힘든데다가, 글을 점점 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규칙적인 시계소리는 더욱 더 나를 숨막히게 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 글을 끝까지 읽기 까지는 4번이나 걸렸다. 읽는 동안 계속 숨이 막혀서 글 읽기를 포기 했다.  마침내 5번째에 글을 모두 다 읽고 그 글에 써있는데로 그 공간의 '소리'에 집중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무슨 악마의 소리가 들린다나.... 그렇게 10분 동안 그 공간에 머물며, 악마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규칙적인 초침소리에 집중 했고, 결국 악마의 소리 대신 편안함을 얻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쉴 새 없이 심장이 빨라진다. 그럴수록 난 더욱 더 답답해 숨이 막혀온다. 마침내 난 편안해지고 그 방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 문장은 내가 그 방에서 쭈그려 앉아 썼던 것이다. 내가 왜 이 방이 쭈그려 앉아 글을 쓸 만큼 편안하게 느꼈을까.. 이것은 나를 어렷을 적 기억으로 끌고 간다. 어려서 부터 혼자 지내는 것이 흔했고, 그때 마다 시계의 초침소리가 너무 크고 무섭게 들려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때문에 어렸을 적에 난, 엄마와 아빠를 원망했고 혼자 있을 싫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혼자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고 상처가 되었었다.그래서 내 방엔 시계가 없었다. 지금 내 방에도 초침소리가 나는 시계는 없다. 그런데 문뜩 기무사 리뷰를 하던 중 땀이 말하길, 자기는 어렸을 때 혼자 있을 때면, 초침소리가 집이 울릴 정도로 크게 느껴젔고, 그것을 듣고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됐더랬다. 문뜩 나는 기무사 지하의 13번 방에서 그 초침소리와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있기라는 것을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면서,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어 아무것도 아닌 걸 상처라고 간직하는 나를 잡아 치유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근데 이 부분은 거의 기무사의 거의 모든 작업에게도 공통되는 것 같다. 공간마다 어떠한 우울하거나, 평범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게 되고,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는 것. 


두 번째로, 따듯했던 방은 64번 경은씨의 공간이었다. 일단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사진들 자체가 살색으로 따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그 사진과 함께 적혀있는 글귀들, 정말 소소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단지 사진에 적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떠다니며 채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또한 벽면에 적혔있던 작가 자신의 여성에 대한 바램과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너무 따듯했다. 어쩌면 그 사람 또한 내가 고민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열변을 하고 더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 뭐랄까, 이 작업에서 '배'라는 것을 사진에 담아 이야기 했다는 것도 정말 흥미롭고, 의미심장했다. 


세 번째로는 노란 조명과 엄청난 사운드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환상의 별관이었다. 난 이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일단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노란 불빛의 힘. 그것을 부피감인 것 같다. 내가 그 공간에 혼자서 존재하고 있지만, 혼자 인 것 같지도 외롭지도 않은 느낌. 때문에 그 공간에서 잡생각이 아닌 참생각으로 그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다. 뭔가 그 공간을 만는 작가는 사운드와 조명설치 만으로도 공간을 주무를 수 있다!. 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것 같다. 유독 그 공간에서 만큼은 우울하거나 무서움의 기무사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잠시 동안, 어렸을 적 내가 광주 망월동에서 보았던 이미지의 파편들이 떠다녔었다. 또한 기무사에서의 전시는 후각과 시각 청각을 자극했는데, 특히 이공간은 주로 후각과 청각,  약간의 시각을 자극했던 것 같다. 이 별관의 2층 끝방의 작은 창을 통해서 이 건물이 있는 마을의 민가들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너무 기분이 묘해서 몇 글자를 끄적였었다. '겔러리와 민가. 기무사와 마을. 관람자와 작가. 작자가 공간에 연출한 사운드와 불빛에 묻혀 연출되지 않은 민가들에 초점을 둔다'.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경험 또한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노랑 불빛의 부피감. 공간마다, 층마다 달라지는 쾌쾌한 냄새, 웅장하며 일관성있지만, 방 마다 가볍게 쪼개지는 사운드. 정말 쾌쾌한 공간이 환상적이었던 이상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메모, 

이건 제가 이 작품을 이해 했다는 게 너무 흥미로운 것 같아서..... 

(가족을 찾습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전사 전사자 위패의 주인을 찾는 행사를 열어 시청광장을 점령한 일에 대한 작업이다. 사실상 가족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위패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러면서 가족을 찾는다는 사운드는 들릴 듯 말 듯, 알아 들을 듯 못알아 들을 듯 들려온다. 그러면서 관객은 녹음된 사운드에 대한 설명을 보기 위해 정해진 장소로 간다. 그 와중에 구석 바닥에 설치된 조명이 관객을 향해 쏘아지고 관객은 반대쪽 벽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든다. 순간 내가 위폐가 되고, 그의 가족이 되고, 그가 되어버린다. 이것에 더해서 촛불집회를 막으려 했던 정치적 보수파들의 유치함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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