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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2009년 09월 22일 (화) 21:40 한겨레 [이사람] 덜 가져도 더 행복할 수 있다[한겨레] '느린 삶 운동가' 쓰지 신이치 교수 방한 "숲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숲 동물들이 다투어 도망갔지만, 오직 벌새 한 마리가 그 작은 부리로 강에서 물을 한 방울씩 떠다 그 산불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그리 해서 어쩌겠단 거야?' 다른 동물들이 모두 비웃었지요. 벌새는 답합니다.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미국·남미 등 원주민·공동체 체험이 밑거름 11년 전부터 환경단체 활동·저서집필 해와 "국가체계 변경 힘들어…생활 속 실천 중요" 쓰지 교수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으로, 1998년부터 일본과 세계를 넘나들며 슬로 라이프 운동을 펼쳐왔다. 2001년 < 슬로 이스 뷰티풀 > 을 시작으로 < 슬로 라이프 > < 벌새의 물 한방울 > 등 왕성한 집필활동과 함께 나무늘보클럽이라는 환경단체를 만들어 '느린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지금껏 세계를 지배해온 인간중심주의 서양문명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확신을 인터뷰 내내 피력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기점으로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갈 희망이 돋아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연과 자원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이 에너지 위기, 환경 위기를 불렀다면, 이제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 옛 동아시아에서 발상한, 사람과 환경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사상이라는 논지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부와 행복을 한묶음으로 생각해왔다면, 이제 떼어서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번에 국내에 번역출간된 < 행복의 경제학 > (서해문집)에서 경제와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풍요를 위한 덧셈의 경제가 아니라 조금씩 덜 쓰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뺄셈의 경제를 제안한다. 이제 경제학은 부와 풍요를 추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행복의 경제학'으로 새로이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에서 나온 그 벌새는 무섭게 번지고 있는 산불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쓰지 교수의 답은 뜻밖에도 비관적이다. "우리는 이미 늦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불을 끄기 위해 조금씩,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벌새가 되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경제 고도성장기에 어린 시절을 통과한 그는 20대 중반이던 70년대 후반에 일본을 떠나 캐나다, 미국, 남미 등지에서 16년간 생활하며 그곳의 원주민들, 비주류 공동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체험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진국 사람들이 '슬로 다운'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런 믿음으로 일본으로 되돌아와서 98년 슬로라이프 운동을 시작했다. "어디에서 '내려온다'는 건 힘든 일이지요. 중요한 건 이런 경제시스템에서 조금씩 내려온다는 것이죠. 작은 공동체에서 사회, 국가 단위까지 각각의 단위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국가 차원에서 현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부터 해야 합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시민단체 나무늘보클럽이 펴고 있는 나무젓가락 안쓰기, 자판기 안쓰기 등 '~사용 않고 살기 운동('즈니 운동')은 조용히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전압 암페어 낮추기 운동과 전기제품 쓰지 않기,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도 벌이고 있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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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08:56:10
좌담 리뷰를 기대했는데 고맙네. :)
그리고, 당위로 사용하던 개념들을 다시 정교하게 생각해보고 또 나름의 재규정을 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 그래야만 아마도 지난 학기에 "그래서 생태가 뭐였더라"는 식의 질문을 하게 되는 상황은 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자기과제로 하기로 했다니 반갑고 그런 것들을 작업쇼하자 시간이나 poetry afternoon 때 들려주면 고맙겠다. 한 가지, 아직도 녹색 얘기하면 '쪼다'라는 건. 그만큼 한국사회가 속도전에 시달린다는 예로 말한 거지. 우리는 슬로라이프도 "빨리빨리" 추진해야 하는 속도전을 벌인다는 거고. 그런 점에서 슬로라이프가 5년을 견디고 여전히 쓰이는 말이란 건 놀랍다는 것. 녹색 얘기도 유행처럼 붐을 일으켰다간 그만 수그러들기 일쑤. 그러니 "아직도 녹색?"이란 반문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확실히 녹색 얘기는 별로 안 하고, 이제는 공무원들이 녹색타령하지. (항상 뒤늦게 관이 시작하게 되지만, 관이 움직인 뒤엔 온갖 일들을 행정력으로 장악하고는 그 전까지 시민사회가 해왔던 "같은" 일을 전혀 다른 내용과 질로 바꾸는 엄청난 재주가 있다네.) 우리는 약간 다르게 접근하면서 기후얘기를 시작한 거고. 어쩌면 우리도 녹색을 얘기하는 쪼다는 아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그러나 슬로라이프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균형을 잡아가길 바라는 기후그룹이랄까. 작업장학교 학생들을 쪼다라곤 하지 않았어. 또라이라고는 했지. 또라이가 못되는 사람들이 찌질하거나 쪼다라는 거지 뒤늦게 녹색타령을 하는 사람은 쪼다고 여전히 경쟁사회를 뒤쫒으며 스펙타령하는 사람은 찌질하다는 거. 그런 경쟁에서 내려와 드롭아웃한 작업장학교 학생들은 또라이. 그런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었다네. 나참... 나는 그 <또라이>라는 말 싫어하는데. 이렇게 많이 쓰게 만들다니. 소리를 내서는 말하지 않을 테다. T_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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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일 지성 3인 좌담시간 정말 즐거웠어요. 우석훈 박사님의 저희를 빗대어 말하신 찌질이, 쪼다, 또라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따지고 들고 싶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찌질이쪼다또라이무탄트가 아니라 그냥 지극히 평범한 자존심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을 하는데 말이죠. 우박사님도 마케팅사회에 찌드셨는지, 우스겟소리로 하셨지만 '요즘 누가 녹색이야기하나, 그럼 쪼다지'라는 발언으로 저에게 작은 상처반감을 주셨지만뭐 자극 받으라고 하신 말씀이셨으리라...
이번 좌담회의 핵심은"지금까지 우리가 부와 행복을 한묶음으로 생각해왔다면, 이제 떼어서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를 진심으로 인식하기 위함 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의 행복의 뜻으로 돌아가자. 그런 점에서 저는 이 부분 하나는 확실하게 인식 한 것 같아요. 쓰지 신이치 선생님의 말씀대로, 풍요(부)와 행복이 함께 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이 행복해지려면 부를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평생 단지 부를 쫓을 뿐,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말 그대로 행복을 부와 떼어서 생각해야 하고, 그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상상을 해봐야 겠어요. 또 이 부분에 대해 우박사님께서 나름에 폭로? 해주신, 이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원동력과 광고와마이너스 통장에 대한 이야기도 확신하게 되어 좋았어요. 다른 죽돌들과 뜻이 맞는다면, 시민문화워크숍 시간에 우박사님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경제학 적인 이야기보단, 이 한국사회에서 본인께서 말씀하시는 또라이, 돌연변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요.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말씀하셨다면, 현재 10대는 어떻게 보시고 계시는 건지를요.
강의를 듣고나서 행복이라는 것을 정의를 내린 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사실 행복을 또 다시 다른 의미로 정의 내리는 것은 또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 속을 살아가게 되는 삶의 시작이 아닐까 싶네요. 또 행복이라는 개인차와 모호함을 갖고 있는 인간의 느낌을 정의하려 하고, 그것을 갈망하여 쫓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부자연스러운 것은 오류와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죠.) 또한 정의를 내렸을 때엔 또 다시 쓰지 신이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 생겨나겠죠. 그래서 제가 행복을 정리해보기 위해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행복이란 '자신의 만족에서 나오는 즐거움이며, 사람마다 감수성이 다르기에 각자에게 그 의미도 달라지는 흐르는 즐거움이다.'라고요. 근데 사실 아무리 사회에서 공통으로 쓰기 쉽게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지만시장에서 행복을 악용하는 것에 질렸는지 행복행복거리며 그것을 원하고 정의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행복은 자기가 마음먹기 나름인데 말이죠.
근데 또 문뜩, 행복과 돌봄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은 뭔가 찌릿한 생각이라 좀 더 공부해봐야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돌봄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소식과 동시에 행복 또한 희미해져간다는 소식 또한 많이 들려오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관계를 돌보지 않고, 생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행복과 돌봄의 연결에 대한 생각은 지금 '보이지 않는 가슴'을 읽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요. 아무튼, 이래저래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과 뭔가 많이 연결이 되는 좌담회였어요.
때문에 이 강의를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과제를 하나 내줬는데요. 항상 행복을 '부'와 함께 생각해 행복해지기 위해 자본주의를 열심히 굴려왔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제 주변에 아주 가깝거나 흔하게 사용, 추구하고 있는 어휘나 가치들을 의심해보고 원래의 뜻을 되짚어보기라는 것이에요
아 그리고, 원래 이 리뷰를 그 좌담회 끝나고 바로 썼었어요. 원래 궁금증이 몇개 있어서 같이 썼었는데, 그건 좀 더 혼자 고민해보려구요. 아 그리고, 오늘 히옥스께서 행복과 욕망, 물질이라는 것을 아예 뒤짚어 버리는 상상이 필요하다는 말 저도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참 즐거우면서도,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