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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자, 미술가로서의 삶

그러다가 임민욱 작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다. 2007년, 당시 신사동에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었던 아뜰리에에르메스(에르메스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 전시 공간)를 찾았을 때였다. 작품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를 설치하던 작가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다. 작품에 몰입한 상태여서일까, 작가는 그 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작가가 했던 말 중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의 ‘전복적 지점’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그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가끔씩 그 말을 혼자서 곱씹게 되었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여러 가지 일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면 임민욱 작가의 그 말이 떠올랐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일까’하고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인터뷰를 할 때도 작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인 남편 사이에 둔 딸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에게 나누어준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아온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임민욱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에는 한국인, 여자, 미술가라는 기본적 조건부터 외국인 남편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미술대학의 강사 등 사회적인 맥락이 함께 얽혀 있다. 작가가 아니라도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는 누구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상황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대적 가치와 규율의 아이러니한 충돌과 교란 앞에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일 것이다.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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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의 작품은 그가 한국인으로서 줄곧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 프랑스에서 체류했고, 지금도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 세대는 새마을운동 같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주인공이고 여전히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깊이 남아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갈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세대적·문화적 갈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감하고 애매한 상황, 즉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상실감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이를 뒤집기도 하는 잠재적 어휘로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의 주요 모티프는 그러한 그녀의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뉴타운 고스트>는 그가 살고 있는 영등포 지역에서 이뤄졌고, <테너와 고구마>는 2004년 당시 그가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던 하자센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뉴타운 고스트>는 2005년 영등포로터리를 기점으로 재개발 대상 지역에서 펼쳐진 프로젝트다. 확성기를 든 한 명의 래퍼가 드러머와 함께 트럭을 타고 누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외 주요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작품에 드러나는 우리 삶의 단면이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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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민욱은 그녀의 주변인을 작품 속에 종종 등장시킨다. <잘못된 질문>, <스무고개-‘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에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작가의 딸이다. 특히 <제4회 다문화축제>에 천막 디자인을 의뢰 받아 참여하면서 만든 <스무고개>는 다문화축제 현장을 배경으로 이주와 노동, 차별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딸의 시선을 통해, 혹은 “(질문)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간다. 나는 낮은 곳에서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 / (보기) ①피 ②혼혈 ③잡종 ④튀기 ⑤해당 없음” 같은 스무고개를 통해 집단 속의 개인, 외국인들 사이에 또 다른 이방인을 바라보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혹은 글로벌사회의 첨예하게 드러나는 호명(呼名)과 경계 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야기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만 느껴지는 관계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일 수 없는 역사들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지 거리 두면서 바라보려고 한다. 즉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어떻게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지를 더듬으면서, 무언가의 이면, 또는 양가적 측면을 들춰내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게 삶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해서일까, 그의 작품은 표현 방식에서도 이중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에 등장하는 피켓은 ‘ON’을 가리키기도 하고, 뒤집으면 ‘NO’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영상 작품을 보여줄 때도 2개, 3개의 화면을 제시하여 관객들이 같은 상황이라도 다면적으로 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다. 고인 물 위에 물감을 풀어 놓은 뒤 수면 위에 우연히 맺히는 모양을 종이에 찍어내거나, 형광색의 우레탄이 제멋대로 부풀어 굳는 식이다. 의도하지 않은 대로, 다시 말해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음을 시각화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동시에 큐레이터 김선정이 지적한 바 있는 ‘운동성, 역동성’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다른 문화 사이의 교차나 시차에 주목한다. 전시장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며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강을 무대 삼은 공감각적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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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최근작 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지난 3월, 임민욱은 딱 이틀 간 관객들을 여의도 한강 유람선으로 초대했다. 마침 선착장 주변은 땅이 갈아엎어진 채로 엉망이었고, 그럼에도 군데군데 나와 있는 불꽃놀이나 장미꽃 행상들, 선착장 특유의 조악한 조명 장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약속된 정각 밤 9시, 유람선은 예정대로 출항했다. 물론 늦게 온 사람은 배를 놓쳐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열어 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미술관에 비하면 매우 불친절한 전시 방식이다.
시간을 잘 지킨 부지런한 관객은 을씨년스러웠던 선착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결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의 출발과 함께 선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해 노들섬,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지 및 중단된 잠두봉 선착장 등을 지나오는 동안 유람선 외부에 설치된 조명은 교각 구석구석, 강변의 아파트와 대형 빌딩, 공사 현장 등 한강 주변의 풍경을 쉴 새 없이 쏘아댔다. 또한 중간 중간에는 유람선 바깥의 특정 장소에 작가가 미리 준비해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보안관찰 대상자, 갈 곳 없는 연인, 거울시위대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은 가만히 앉아서 선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야경과 퍼포먼스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작품의 일부가 되어,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만끽했다. 동시에 관객들은 ‘한강의 기적’이나 ‘한강 르네상스’보다 더욱 진기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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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한강으로 옮겨오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정도로 무모하리만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작가 임민욱. 사실 그는 예중, 예고, 여대라는 다소 ‘모범적’인 미술 교육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대학 시절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사회 분위기는 임민욱을 현실과 미술에 대한 괴리감에 빠트렸고, 그 즈음 까뮈나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졸업을 포기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파리에 약 10여 년 간 체류하면서 동료 작가들과 ‘제너럴 지니어스’라는 집단을 조직했다. 협업을 통해 디자인, 아카이브, 공공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귀국한 임민욱은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급진적인 작품들을 여럿 선보였다. 그 해 개최된 <도시와 영상_의.식.주>전에서 서울 시내에 버스 정류장의 홍보판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채웠고, 1999년 문예진흥원미술관에 <사회적 고기>,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주관적 이웃집>을 발표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3년 간 체류를 한 다음 2004년 ‘제너럴 지니어스’의 멤버이자 지금은 남편이 된 프레데릭 미숑과 함께 ‘피진 콜렉티브’를 다시 조직하고 대학로의 아르코미술관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일종의 현장 사무실을 차리고 미술관 방문객부터 노숙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작품 , 대안관광가이드북 <피진 버스 투어-가리봉동>을 발표했다.
공동 작업이나 액티비스트에 가까웠던 과거 활동에 비해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임민욱은 작년 연말에서야 단독 개인전을 처음 개최하게 되었다. <점프 컷>이라는 제목을 단 개인전에서 임민욱은 한국의 산업화 근대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건드리는 메시지를 던지며 미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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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는 과거의 팀 형태가 아닌 ‘임민욱’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임민욱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 석자 밖에 내걸 게 없는 단독자로서, ‘어떻게 하면 겸허하게 나를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임민욱은 작업 속으로 내장시켜 오히려 질식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라면서, “공동 작업이 ‘사랑의 행정화’를 가져왔다면 개인 작업은 아무 것도 없을 때 시작되는 윤리적 질문과의 싸움이다. 최근 혼자서 진행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적 신화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나서지 않아도 여전히 타자로부터만 확인되는 나를 스스로 키우거나 줄이거나 하려는 형태이자 고민의 장치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필자가 앞으로 곱씹을 만한 말을 덧붙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대응할 수 있는 미덕은 부정과 긍정이 아닌 ‘인정’,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가능한 ‘침묵’이라고. | |

(http://minoukl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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