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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그린 <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다. >
하자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대안교육과 일반교육을 받은 사람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실상 그 차이는 정말 너무나 미묘해서, 일상생활을 할 때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 사람과 나 둘만의 이야기가 아닌 외부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미묘함’이 아닌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된다. 나는 그 미묘함과 엄청남 사이를 아르바이트를 통해 느꼈다. 내가 아르바이트 했던 가게는 가히 생활의 달인이라 느껴질 정도의 베테랑 10대들과, 서비스의 달인 20대 사장과 매니저, 빨리빨리의 달인 이모님들의 하모니로 만들어진 가게였다. 손님이었다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 이 선수들과의 대화는 하자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를 고민하기 전에 일은 그저 생활에 만족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돈’을 위함이 전부지, 내가 즐기거나 기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직장에 관련된 조사를 하면 눈에 띄는 몇 항목이 있는데, 나는 그 중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와 ‘일자리를 선택하는 기준’이 가장 작성하기 힘들었다. 꿈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해야 했고, 일자리를 선택하는 기준에 ‘월급’과 ‘적성’에 체크를 했다. 하지만 ‘적성’에 체크하면서 ‘나에게 맞는’이라기보다는 내가 부담 없이 원만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는 사실 그런 월급과 (내가 생각했던)적성만을 채워주는 자리였지, 내가 진정 ‘꿈’을 알게 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가게 사람들과 얘기하며 사뭇 하자 밖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 어떤 리뷰에 쓴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나를 포함한 하자 죽돌들에게서 하자 밖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곤 한다. 뭐, 대안학교 학생이라면 소수더라도 몇몇은 느껴봤을 것이다. 친구였던 아이에게 뷰티풀 그린 같은 영화를 보여주면 ‘재밌다’ 혹은 ‘지루했다’나 손짓을 따라하는 제스처밖에 보지 못한다. 실제로 나는 <영화는 영화다>를 보고 느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언니에게 얘기하면 재미없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고, 소지섭이 얼마나 잘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나 연기력이 어쨌다는 얘기밖에 할 수 없다. 나는 가끔 그런 얘기에서밖에 공감지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된다. 전에 유리가 말씀해주셨던 건데, 예전 영상 방이었던 107호 유리문에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는 카피가 붙어있던 적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 말에서 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대안교육 밖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영화는 지구인을 무시하는 행성인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행성인과 지구인의 혼혈 밀라가 지구여행을 하게 도와준다. 마치 일반학교에 다니던 내가, 하자에 입학하고 1년 반의 시간을 보내다가 돈데이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된 것처럼. 밀라는 지구에 내려와 더러운 공기에 질색하고 커피를 똥물이라고 말하며, 충격요법으로 지구인을 동화시킨다. 그리고 아들들은 밀라를 찾아와 밀라와 함께 아기를 구출한 두 명의 여자에게 반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들은 모두 지구인의 피가 한줌씩 섞여있는 ‘혼혈’이다. 다시 행성으로 돌아와 행성인들의 따뜻한 포옹을 받고, 지구인 여성 두 명은 행성인에게 동화된다. 나는, 이 결론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고 싶었다. 삶을 조화롭게 살아가고 싶은 나는 대안교육과 일반교육 학생 혹은 홈스쿨러 등의 사람들과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결론에 따르자면, 나는 비대안교육권 10대들과 충분히 얘기하고, 서로 공감지점(아기)을 찾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그들도 그 세계에서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그들이 흥미(아들들)를 느낀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막스 같이 흥미를 느끼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막스의 가족)에게 자신의 깨우침을 널리 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해피엔딩이며 내가 결론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결론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쨌든 밀라는 충격요법이라는, 동의를 얻지 않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동화시켰고, TV속 사람들과 축구선수 등을 이용(맞는 단어를 못 찾았다)하여 지구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그럼, 영화에서처럼 행성인(내입장)은 미개한 지구인(내가 보는 타인)에게서 아무런 깨우침도 얻을 수 없는 걸까? 다시 한 번 질문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는데! 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이 질문은 내가 하자를 수료할 때까지 이어질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안교육 밖 사람을 미개하다고 취급하고 싶지 않고, 좀 더 조화롭게, 그리고 함께 살고 싶다. 그리고 이 질문이 불러온 또 하나의 질문은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이다. 생각할 게 많다. 생각하자, 생각! ![]() ㅎㅎ
2009.09.29 08:43:37
어라 편하게 말해야 하는건가... 편하게 말 잘 못하는데... 해보도록 하겠음!
배움의 태도를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먼저 '인정'해보는 것도 중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해. 나는 심지어 가족들이 내게 해주는 사랑이 담긴 말도 무시하는데(아주 가끔임), 하자 밖 사람들을 먼저 인정하려고 하는 것부터가 너무 섣부르다는 말이야. 물론 난 내가 알고 있는 하자 밖 사람들을 다 좋아하고 절대로 나보다 낮거나 무시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는, 그냥 길가다 지나치게 되는 소위 '노는 친구들'은 가끔 무시하는 눈빛으로 보게 되더라고. 코드얘기도 되게 어려운 건데, 나도 예전에 하자 사람들이 멋지게 영화얘기하면 부러워서 그 영화 다 보고 이해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면서 허세만 부렸는데, 그런 시기가 좀 지나고 나니까, 어차피 사람마다 코드가 다 다른데 굳이 하자코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영화보는 코드가 그쪽이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내 코드, 타인의 코드 모두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한다고 생각해. ... 근데 말은 쉽지 아주 어렵지 내가 아닌 사람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2009.09.29 10:37:30
"무시"라니.
깜짝 놀랐다. 오히려 작업장학교라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어쩌면 그 메인스트림의 무시 속에 한 번은 고통받고 그러나 그 무시속에서도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할 줄 아는 자기치유의 힘을 가지고 여전히 메인스트림 안으로 가지는 않거나, 가지 못하지만 나름의 삶의 공간 - 말하자면 "대안"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이제쯤 그 공간에서 "우정과 환대"를 논하는 것은 우리 나름의 내공으로 하는 얘기지... 물론 쉽지가 않다. "무시", "모욕" 이런 단어들은 타인보다는 자신을 더욱 아프게 하는 단어들이란다. 언젠가 데리다가 쓴 <환대에 대하여> 같은 책도 같이 보면 좋겠다. "무시"에 대한 너의 얘기는 너무 중요한 얘기라서, 꼭 한 번 자리를 만들어 얘기 나눌 수 있기를. 그리고 발을 들여놓는다고 했으니까 "낯선 <곳>"이라고 해야겠지?
2009.09.30 09:11:50
제가 워낙 스트레이트한 단어선택을 해서 하 하 하하하 하하
세심하고 신중하고 유연하고 부드럽게 글쓰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환대에 대하여>라는 책은 찾아서 꼭 볼게요 전에 추천해주셨던 것도 같이. 오늘 어쓰랑 집에가면서 이 글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아마 하자사람 대부분 다 비슷한 생각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더군요. 그런데, "대안", 그 부분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거라, 다시 생각해보고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마련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살롱 수요일이라던가..(생긴다면) 그리고 '것'은 아마 오타가 난 것 같은데.. 오타도 조심할게요 ^^;;
2009.10.01 09:32:33
농담이라는 게 회의 때 말하는 거랑 달리 마음을 열어놓고 혹은 웃기려고 하는 거라서,
어떻게 보면 무의식 중에 있던 진심을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가끔 죽돌들이랑 일상 대화하거나 길가고 있을 때 농담하면서 가는데, 그 때 들려오는 농담 중 하자 밖과 하자 안을 구분하여 말하는, 근데 어투가 약간 하자 안 사람이랑은 말이 통하는데 바깥 사람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그게 누군지 굳이 기억해내면 기억할 수 있겠지만 꼭 이름으로 기억할 필욘 없는 것 같아서... 음.. 누구더라. .... 그런데 그 농담 한 마디로도 충분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에도 이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다들 좀 꺼려하는 눈치였어요. 그냥 무시 혹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솔직하게 그렇게 생각한다고 터놓고 얘기하면서 하자 배경이나 초기에는 어땠는지, 영상방 문에 그 문구가 왜 써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하자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며 공감할 수 있을지. 얘기거리는 좀 더 생각하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2009.10.01 20:54:52
"하자"라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변화하는 것이니까. 뭔가 달라지고, 또 그래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는 마렴. <지금> 네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면 그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NOW + HERE = NOWHERE (no where) 이라는 말장난도 있지 않니? no where를 아마도 라틴어식으로 조어한 것이 토마스 모어의 <u(no)+topia(where/place)>란다. "유토피아"라고 읽는다. 너나 동녘이 말하는 "하자 안"이란 그런 의미의 유토피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말이 통하냐. 이건 참 어려운 문제이다. 한동안 마틴 하버마스란 분이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란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2001년 이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실지 (아직도 살아계신 분인데... 1929년 생!) 잘 모르겠다. 하버마스는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쓰던 무렵에 젊은 시절을 지냈고 베케트에 열광하던 아도르노의 동료이기도 했는데 그들이 주목하던 "부조리"(absurdsim)보다는 협력과 합의에 의한 "이성적 소통"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분이지. 우리가 좀 더 "문화적"이 되는 것도 그런 이성의 발로라고 여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인 우리 삶('생활세계'라고도 부르는데)이 관과 시장의 독점적 지배상황에서도 그러한 소통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그러나 어쩌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아마도 소통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인데 자기 이성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면 타인의 이성에 대한 신뢰도 언급할 수 있어야 하겠지...하고 생각해기도 한다만. 생활세계를 다양한 문화적 장르로 분화시키는 것 그리고 더 다중적 결을 가진 의미 분화를 시키는 것 "전적인" 신뢰보다는 분화된 각 순간들에서 '소통'의 흔적들을 추적하는 것 정도 그것이 하자라는 '현실에는 없는' <안>에서 연습하고 있는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2009.10.03 05:36:52
하자 현실에 없는
그 말이 매우 와닿지만 쓰라리기도 하네요. .... 말을 하고 싶을 땐 듣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듣는연습을 하고 있지만 배고픔과 졸림이 저를 늘 방해하네요. 몸을 정신이 방해하다니 ... 아마 죽돌들도 그걸 느끼고 있을 거에요.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요즘에는 하자죽돌 전체가 모여서 얘기하는 자리만 있으면 귀 기울이는 연습이 나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과제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또, 섬세하게 듣고 섬세하게 짚어내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암묵적이고 자신이 만들어낸 압박감 때문에 꺼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조심스럽거나 너무 조심성 없이 얘기하는 일도 적잖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같이 있을 때 속에 있는 얘기를 하는 게,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하고 싶어하는 저조차도 제대로 하기 힘들곤 해요. 이 얘기도 다같이 있는 자리에선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얘기에요. 추석연휴 전에 히옥스께서 인터넷 댓글을 많이 달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동의하고, 저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그런데 여전히 이 글에는 동녁, 저, 히옥스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째, 다들 관심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당가...... 추석음식 다 끝내고 여유롭게 샤워 후 커피한잔 하며 내일 8시에 있을 제사를 기다리면서 다시 생각해보고 글도 좀 써봐야겠어요. 명절이여 영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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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더욱) 그런 구석이 있는데, 나는 자칭 아웃사이더라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은 정말이지 얘기가 안 통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괜히 무시하는 태도를 부정할 수가 없어.
영화 초반에 보면 지구인들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나는 왜 하자 밖 사람들에게 자꾸 그런 배움의 태도를 가지려 하지 않는 걸까.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작업장 학교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 들을 별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사실 나는 그런 류의 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좋아하는 편인데, 왜인지 모르게 그런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고 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여겨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떠한 집단에 있어서 '코드' 라는 것은 의외로 엄청난 작용이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