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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불어봤던 악기 리코더(Recorder). ‘리코더 여제’로 불리는 미칼라 페트리(51)가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그는 이 악기가 지닌 ‘대중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연주자라는 평을 듣는다. 앞세대의 거장 프란츠 브뤼헨(75)이 바로크 시대의 레퍼토리를 철저한 고증으로 연주해낸 학구적 연주자라면, 페트리는 바로크뿐 아니라 현대음악과 탱고, 때로는 월드뮤직과 퓨전까지 넘나들면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연주자다.
이번 연주회도 마찬가지다. 작고 단순한 악기인 리코더로 펼쳐내는 음악적 팔레트가 다채롭고 화려하다. 텔레만의 ‘2대의 리코더를 위한 소나타 3번’과 바흐의 ‘리코더 솔로를 위한 모음곡’에서부터 낭만적 선율감이 가득한 랄로의 ‘노르웨이 환상곡’,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등이 연주된다. 여기에 피아졸라의 탱고와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등이 어울리면서 라틴적 흥취를 더한다.
가장 중요한 곡은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D장조’일 것으로 보인다. 페트리는 모차르트가 플루트를 위해 작곡했던 이 곡을 리코더로 처음 녹음했던 주인공이며, 한국에서 이 곡을 리코더 버전으로 드디어 선보인다.
18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남편인 기타리스트 라스 한니발, 한국의 리코더 연주자인 조진희, 조이 트리오가 무대에 함께 오른다. 11살에 데뷔해 필립스와 BMG에서 30여장의 음반을 낸 페트리는 이번 내한을 기념해 국내에서 베스트 앨범도 발매했다. (02)2052-5988
<문학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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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
“리코더 전공, 다들 농담인줄 알죠”
브리헨 연주에 매료 진로 굳혀
전자음악 실험에도 깊은 관심
"리코더를 전공한다고 하면 다들 농담인 줄 알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네가 리코더 전공하면 나는 탬버린 전공한다'고 받아치기도 했어요. 심지어 발음이 비슷한 '리코더(recorderㆍ녹음기)'로 알아듣고 저를 녹음 엔지니어로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죠."
지난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린 '제3회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우승한 리코더리스트 권민석(24ㆍ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 재학) 씨는 희귀 전공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면 누구나 다룰 줄 아는 악기 리코더가 전공이 되는 순간부터 이렇게 낯선 악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플라스틱 리코더 불던 소년, 전문 연주자되기까지
권씨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1000원짜리 플라스틱 리코더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음악 시간에 친구랑 둘이서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라는 곡을 2중주로 연주했어요. 화음 맞추는 걸 재미있어 하니까 음악 선생님이 계속 리코더를 배울 수 있게 정규 과정을 소개해 주셨죠. 그땐 리코더를 전공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권씨의 리코더 사랑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계속되자 어머니는 '리코더 여제'로 불리는 미칼라 페트리와 프란츠 브리헨의 음반을 구해다 줬다. 그 음반은 권씨가 리코더 연주자로 진로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브리헨의 연주를 들으면서 바로크 음악에 매료됐어요. 리코더 곡 중에는 바로크 시대의 레퍼토리가 많거든요. 어린 마음에 '아, 리코더가 이렇게 예술적인 악기로 쓰일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리코더 인구가 적다 보니 뜻밖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우선 국내에서는 좋은 연주용 리코더를 구할 수가 없어, 해외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알음알음으로 부탁해야 했다. 국내에서는 리코더를 전공할 수 있는 학교도 거의 없었다.
그는 200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이론 전공으로 입학해 3학년 때인 2006년 가을 본격적인 연주자 과정을 밟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네덜란드에 도착해 보니 한국에서 마이너 악기로 설움 받던 리코더가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고음악 붐 덕분에 리코더의 인기는 한참 높아져 있었다. 심지어 그가 입학한 학교에는 리코더 전공 교수가 5명이나 있었다.
▶2차원의 악기 리코더로 4차원에 도전하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지 3년,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리코더 콩쿠르 중 하나인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 도전해 우승했다.
콩쿠르 결선은 '미니 독주회'처럼 30분짜리 자유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리코더 실력뿐 아니라 구성 아이디어도 중요한 채점 요소라는 얘기였다.
그는 첫곡으로 17세기 네덜란드의 리코더 연주자 겸 작곡가 야콥 판 에이크가 영국의 전통 선율을 변주한 '사랑하는 다프네가 떠나갈 때'를 연주한 뒤, 이어서 영국의 록그룹 라디오 헤드의 노래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자신의 즉흥곡을 선보였다. '17세기 리코더 연주자의 초상' 야콥 판 에이크와 21세기 리코더 연주자인 권민석의 음악이 시대를 뛰어넘어 대구를 이루도록 한 아이디어였다.
리코더는 18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개량되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는 리코더를 이용해 현대 음악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권씨는 "비록 리코더가 오케스트라에서는 밀려 나긴 했지만 가능성이 많은 악기"라며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적인 기법을 도입할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윤이상과 베리오, 슈톡하우젠의 현대음악을 즐겨 연주하는 그는 리코더를 이용한 전자음악적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깜빡 잊을 뻔했던 질문을 던졌다. 리코더가 왜 그리 좋으냐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나무로 된 리코더를 불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리코더는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듯한, 사람을 눈물 짓게 하는 음색을 갖고 있거든요. 양치기 소년의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뭔가 보호 본능을 일으켜요. 그 소리에 빠져서 여기까지 왔어요."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