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글 수 53
여러분, 반가워요.^^
테러와 같은, 4월의 잔인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영화 <The Kingdom of Heaven>을 보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몹시도 궁금하여 하자를 찾아가려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서 미리 '전초전'을 하면서 여러분과 소통하면 되겠다 싶어... 이렇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은 자막이 있는 영화를 보겠지만, 저는 이 영화를 미국에서 보고, 감동받았던 구절들 혹은 생각해보고 싶은 구절들을 영어로 적어놓은 터라... 미안하게도 이 편지에 영어가 난무하는 '실례'(ㅎㅎ)를 저질러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완전 자유롭게 여러분 시각에서 마음껏 영화를 즐겨도 좋겠지만... 그래도 강의하려는 사람이 어떤 강조점을 가지고 이 영화를 추천했나 미리 알고 본다면 조금 더 집중하여,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며 볼 수 있을 것 같아... 일종의 팁이랄까요~ 그런 것을 전하려 합니다.
여러분!!! 마음껏 즐~감하시되 아래의 몇 장면에 특히 집중해 주세요!!!
#1 첫장면 이예요. Balian이라는 주인공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들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죠. 가톨릭에서는 '자살한 영혼은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가르치던 당시예요. 하여 사제가 어떤 식으로 아내의 육체에 범죄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십자군 전쟁으로 그를 유도하는지 그 대사들에 주목해 주세요.
특히 이 부분!!!
사제: I am your priest, Balian, I tell you God has abandoned you. I swear to you, you will have no peace so long as you stay here. If you take the crusade, you may receive your wife's position in hell. I put it delicately. She was a suicide. She is in hell. Though what she does there without a head?
#2 ㅋㅋ 여기도 나옵니다. "I am your father." 서양 영화들에서는 꼭 나오는 대사죠. 이건 잠시 곁소리이고... Balian의 아버지 Godfrey와의 대화에 주목해 주세요. 특히 이 부분!!!
발리안: Is it true that in Jerusalem I can erase my sins? And those of my wife? Is it true? 아빠 고프리: We can find out together.
#3 장면이 전개되면서 계속 나오겠지만, 중세 사제들의 선언적 내용들을 깨알같이 모아모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한 말단 사제의 잡상인 같은 외침!!! To kill an infidel is not murder. It is the path to heaven.
영화가 전개되면서 잠깐씩 나오는데... 숨은 그림 찾기하듯 한번 다 찾아보세요. 어떤 사제들이 '신적인 권위'를 내세워서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하는지...
#4 이와 대조적으로 고프리나 그의 사제, 그리고 발리안의 대사들을 한 그룹으로 모아서 함께 생각해 보세요.
아빠 고프리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기사직을 물려주며 한 말: Be without fear in the face of your enemies. Be brave and upright that God may love you. Speak the truth always, even if it leads to your death. Safegard the helpless and do not wrong. That is your oath.
발리안이 예루살렘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던 언덕에 올라 아내의 십자가 목걸이를 묻어주며 하는 말 How can you be in hell when you are in my heart? [이건 연애시에 적절한 응용적 활용이 가능하겠지요? ㅎㅎ]
예루살렘에서 다른 사제들과 달리 아빠 고프리의 친구 사제와의 긴 대화.
사제: So how find you Jerusalem? 발리안: God does not speak to me. Not even on the hill where Christ died. I am outside God's grace. 사제: I have not heard that. 발리안: At any rate, it seems. I have lost my religion. 사제: I have no stock in religion. By the word religion, I've seen the lunacy of fanatics of every denomination be called the "will of God." Holiness is in right action and courage on behalf of those who cannot defend themselves. And goodness, what God desires, is here(brain) and here(heart). By what you decide to do every day, you will be a good man.
그리고 감동적인 발리안의 예루살렘 연설. 결국 피하고 싶었던 이슬람 군대와의 접전을 앞두고 한 말이죠. 이하 모두 발리안~ It has fallen to us to defend Jerusalem and we have made our preparations as well as they can be made. None of us took this city from Muslims. No Muslim of the great army now coming against us was born when this city was lost. We fight over an offence we did not give. Against theose who were not alive to be offended. What is Jerusalem? Your holy places lie over the Jewish temple that the Romans pulled down. The Muslim places of worship lie over yours. Which is more holy? The wall? The mosque? The sepulcher? Who has claim? No one has claim. All have claim. [이 이야기를 들으며... 예루살렘의 비숍이 그래요. "blasphemy" 이 비숍을 영화 내내 주목하세요.^^ 과연 그가 말하는 언어들이 'holy'한지?] We defend this city, not ot protect these stones, but the people living within these walls.
2013.05.02 06:21:56
이번에는 <영화감상후기> 올리는 시간이 없었나요? <레 미제라블>은 삼일 전에 올라와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강의는 내일인데... 슬슬 걱정이 됩니다.
2013.05.02 06:26:26
김희옥 선생님, 저는 페북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영화감상 후기가 페북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여기에 해당내용을 링크 걸거나 옮겨와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가 내일 저녁 수업 가기 전에는 학생들의 피드백을 한 번쯤은 읽고 가고 싶습니다. 부탁드려요~~
2013.05.03 00:00:27
호조: 졸려죽겠지만 자고나면 모조리 까먹을것 같아 적어둔다. 영화가 단순히 선과 악으로 갈라진게 아닌 것 같아 좋았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다. 속에 숨겨진 뜻이 뭔지 궁금하다. *** 영화 속에서 <이도교를 학살하는 것은 천국에 가는 길이다. > 라는 말들이 오가는 걸 볼 땐 슬펐다. 예수가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살인을 장려하고 있다. 이교도를 학살하는 것이 예수의 뜻이란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나치 정권과 세계 2차대전 때 일본 국민들이 천황폐하는 신이니까 전쟁이 이길 거라며 천황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이랑 겹쳐보였다.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에 세뇌되어 스스로 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것,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간이란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옛날에도 다른 종교를 가진 이유로 죽였고, 지금도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심리는 똑같다. 이교도라는 이유로 신의 뜻에 따라 죽이자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도 보였다. 나와 다른 것들을 경계하고 배척하는 마음이. 그래서 더 슬퍼졌다. 아직도 예루살렘은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채 나뉘어져 있다. 나와 종교가 다르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인종, 성적 지향점이 다르다고 서로를 배척하는 마음은 언제나 풀릴 수 있을까? 우리 사람들이 그럴 수 있을까? 예루살렘은 종교를 초월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어렵다. 주인공 발리안에겐 "와 얼굴 잘생겼다.." 라고만 생각했지 큰 애정은 못 느꼈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양심있고 이상적인 캐릭터라서.. 다만 영화에서 발리안이 꿈꿨던 예루살렘, (-양심이 있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 신분 높은 자들이 떵떵거리고 백성들이 피해입지 않는 사회)은 궁금했다. 그 사회가 이루어질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 영화에서 예루살렘은 진짜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예루살렘도 그저 돌덩어리 건축물일 뿐인데, 그 곳에서도 여느 곳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일 뿐인데, 그런 곳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였다는게 참 신기하다...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1. 영화를 보면서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이성으로 무장한 근현대인에게도 이는 여전히 질문될 가치가 있을까?
2. 중세적 세계관에서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에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런데 과연 그 변화는 진정 변화인 것일까? 아니면 인간 욕망을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신'(과학절대주의)을 맹목적으로 믿게 된 것은 아닐까?
2013.05.03 00:02:04
까르: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엄청엄청엄청 중요한 곳이야!!! ㅋㅋㅋㅋ돌덩어리라고만은 할 수가 없을 곳이랄까. 전에 다 배웠었는데 지금은 확실하지가 않아 이야기 해줄 수가 없지만ㅠㅠ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은 곳 예수가 죽은곳이던가...? (이건 같이 찾아보자) 쨌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라서 여느곳과 똑같다고 하긴 어려울꺼야 심지어 그곳에 있는 한 회교사원은 이슬람교에 있어서 3번째로 중요한 성지래. 사우디 아라비아 서쪽에 있는 메카가 무슬림들의 예배방향이 되기 전에는, 무슬림이 기도할때 향하던 첫번째 방향이기도 했다네~ 그렇지만 그곳이 모두에게 소중한 성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나도 같은 생각이야...
2013.05.07 06:59:15
호조: 이미 까르가 예루살렘에 대해 공부를 해봤을거같지만.. ㅋㅋ 찾아봤늠데 예루살렘은 가톨릭에선 예수가 말씀을 전하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죽은곳, 이슬람에선 예언자 모하메드가 승천한곳. 그리고 이슬람사원이 많은곳, 유대교 측에선 유대 유적이 ㅁ있어서 제각각 의미가 있는곳이래. 아~~~ 가보고싶다. 저마다 서로 다른 종교가 한공간에 존재한다는게 너무 신기해. 아마 종교는 결국 같은 뿌리에 닿아있다는걸,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는걸 뜻하는걸까? 헤헤. 암튼 꼬박꼬박 댓글 달아줘서 ㄱ마워 답장은 좀 늦엇지만..
2013.05.03 00:04:32
푸른: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인들과 "신성모독이다", "이교도는 멸해야 한다" 고 말하는 세상에서 발리안이 여정을 떠나며 보여주는 변화가 인상깊었던 영화 같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발리안의 마음은 어땠을까. 처음엔 그 위대한 신조차 자신을 버렸다고 말했던 발리안이 기사로서 정의로워지고, 신이 아닌 사람을, 지켜야할 것들을 보면서 에루살렘에서 훌륭한 전투를 할 때는 통쾌함마저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신이 아니라 권력을 쥐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버린 모습이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신을 믿고, 신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신의 역할은 그처럼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자비,이해로 인한 깨우침.. 이런 단어가 생각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종교에 대한 거부감과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이 생각났었는데, 일방적으로 "너는 죄인이고, 지옥에 갈거야!"라고 말하며 쓸데없는 불안감이나 피곤함을 주입시킨다고 느껴지는 모습들과 도시에서 "주님믿으세요~"하시면서 다니는 분이 스님께 가서 막 설교하는 모습 등이 떠올랐었다. 친구따라 몇 번 교회간 것 빼고는 쭉 무교로 살아가는 중인데, 한때는 신을 믿는 것이 책임을 회피하고,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른 후 마땅히 책임을 지고, 현실을 정리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께 먼저 용서를 비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고, 그냥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믿고 있지 않아서 무교로 지내고 있다. 물론,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훌륭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고, 내가 종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영화였고, 나의 경험이나 성스러움, 신의 언어 이런 잘 모르겠는 부분들이 강의에서 어떻게 설명될지 기대하게 됩니다.
2013.05.03 00:07:06
별: 성스러움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답없는 질문 같은 느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주 어렸을 때, 한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는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안 다니지만. 엄마는 지금의 날 보며 너 광신도 였어~ 라고 말할 정도로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귀신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담당 전도사 교사님께서 예수님 믿으면 천국도 가고 널 항상 지켜줄거야. 라는 말에 굳게 믿고서 매일 밤마다 기도하는 버릇 까지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때의 나를 보면 항상 좋은 일만을 바라며 의지 하는 것 같아 좋지 않게 느껴진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은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 죄가 없는. 지옥에 안 갈 사람이 어디있을까? 정말 만물을 사랑하는데 지옥과 천국을 구분하는 걸까? 어째서 세상에 전쟁은 끝나지가 않는 걸까? 여러가지 질문이 중학교 때에는 떠올랐 던 것 같다. 영화속에서의 인물들은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 구분되어 있었다. 종교는 각자의 살아온 배경에도 영향을 주며 가치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걸 생각하게 됬다. 신이라는 존재는 종교 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그 신이 말하는 이야기는 세세하게 다르다. 한 신앙을 가진 이들끼리도 서로 저주하기도 하고, (자살한 영혼은 지옥에 간다느니, 구원을 못 받느니) 다른 신앙을 가졌기에 핍박하는 상황들이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항상 종교에 대한건 엄마가 교회 같이 가자고 해도 절! 대 !싫 !어 !! 라고 대답하고 , '아 나 기독교 안좋아해.' '하느님 안믿어.'라며 종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거절했던 나였으나.. 이번에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기대가 된다. 나에게도 조금 영향이 있을까?
2013.05.03 00:09:52
비노: 영화 정말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교회를 일주일 다니면 5000씩 준다는 교회 등을 보고 전 어렸을때부터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이 영화가 반가웠지만... 머릿속으론 무언가 잡히는데 말로서는 정말 표현하지 못하겠네요. 묘하게 와닿는 말이 있다면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치만 모든것이기도 하다'라는 살라딘의 말입니다. 근데 정말 생각해봐도 복잡 복잡 복잡하기만 하지 뚜렷한 생각이 안나는 부분입니다. 왜 와닿았을지... 아오 답답해 여튼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욕망을 위해 종교라는걸 앞세우는 사람이 있다는게 새삼 느껴졌고요. 진정한 신의 뜻은 무얼까.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하더라도, 신은 예루살렘과 백성중 어느쪽을 택하라 하실까. 제가 신이었으면 사람들을 택했을거예요. 그니까 왜곡되지 않은 종교의 가르침은 무얼까!! 강요되지 않으며, 남을 존중해주는..? 기본적으로 불교는 수련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세상 보는 지혜와 덕을 쌓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참뜻도 비슷하진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저 개인적인 저의 생각이지만은, 기독교와 함께 존중과 이해와 소통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보아왔고 그래서 여러 종교의 가르침도 크게보면 하나가 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간단하게 쓰려다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횡설수설해요ㅠ 어쩌면 집에서 생각없이 봤다면 이런고민 안나왔을지도요. 다음강의 기대됩니다.
2013.05.07 06:54:42
비노: Nothing and everything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핑계거리로서 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신의 뜻이라는 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가되는(전염병에 걸리더라도 신의 뜻으로 화장을 하면 안되는), 어찌 보면 잘 못 해석되며 이용당하고 있는 종교, 신의 이름과 그의 뜻. 예루살렘을 두고 이러한 종교라는 이름을 걸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싸우는데, 신의 이름을 외치지만 전쟁의 이유는 인간의 탐욕일 뿐이여 진정한 신의 뜻이란 것은 왜곡되어있는. 많은 사람들이 성전이라며 피를 흘리며 죽지만 실로 이러한 종교는 의미를 잃는것이며 예루살렘 또한 함께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닐까. 신의 뜻은 왜곡되었지만 신의 이름을 외치는 이 싸움또한 의미를 잃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전쟁을 한다는 뜻으로 저는 해석했어요.
2013.05.07 06:55:58
비노: 종교란 것이 선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당연스레 갖게되는 시대. ㅡ'아무것도 아니야. 그치만 모든 것이기도 해'ㅡ 가 아닌 ㅡ'모든 것이야. 그치만 아무것도 아니기도 해'ㅡ 라면 살라딘의 말은 '이 시대에 종교라는 것은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종교적으로 매우 신성하며 우리가 이렇게까지 지키고 빼앗겠다고 싸우는 예루살렘은 우리삶의 큰 부분이고 모든것이라고 할수 있겠지. 하지만 그 종교라는게 왜곡되고 남용되며, 그런 종교를 위해 우리가 싸운다면 종교전이건 예루살렘이건 그 의미를 잃게되고 아무것도 아닌거야' 가 되지 않을까요? 라고 쓰려 했는데 먼저 nothing and everything 의 의미를 감잡아야지 이 뜻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제 식의 판단이라도. 감이 안잡히네요) 개인적으로 요즘 머리가 너무 안돌아간달까... 한 주제를 갖고 조금만 생각하면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입니다. 변명이 아닌, 머릴 맑게할 필요성을 느껴요.
2013.05.07 06:57:53
하하. 너무 고민스럽게 접근하지 마시고요... 예루살렘이라는 '성지'에 대해서, holiness가 바로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근원의 땅에 대해서, 신과 가장 가까이 신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그 땅에 대해서 그곳에 대한 얘기이니까. 사실 발리안이나 살라딘 모두에게는 예루살렘은 핑계거나 명분이거나 위선이거나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들로 그려진 것 같더라, 영화에서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잖아. 유일하게 비슷한 사람이라면 예루살렘의 왕 정도? 그러면서 왕과 살라딘 사이의 협정이란, 발리안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 같은데, '신의 음성을 더이상 들을 수 없는 곳' - 말하자면 신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지만, 민중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이고, 신의 뜻을 대리하는 왕에 대해 의존하는 정도로 살고 있는 것 같지. 말하자면 민중들에게 신은 영향력이 있지만, 신의 대리인이어야 할 왕들이 신과의 컨택트를 잃었달까. 왕들 사이에 있는 발리안은 왕은 아니지만 왕과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왕과 소통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는 대장장이로서 불을 다루는데 능숙하고, 우물을 파고 경지를 만드는 등 농경에도 일가견이 있지. 사람들이 신에게서 왕으로, 왕에게서 이 대장장이에게로 마음을 차츰 이동하는 것이 일종의 '근대화'과정이었다고 해야할지? 발리안에 예루살렘은 뭐였을까? 살라딘이 nothing. 그리고 everything.이라고 답했다면 발리안은, nothing. 그리고 또 nothing.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2013.05.03 00:11:42
꼬마: 개인적으로 저에게 불편함을 줬던 영화였어요. 그 이유는 너무나도 잔인했고, 폭력적이였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종교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데 쓰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왜 종교를 이용했을까도 계속 생각해 보았는데, 그 시대에는 종교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여서 이용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또 의문점이 있다면 왜 그 시대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 종교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종교로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그 영화에 대한,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종교분쟁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고요. 영화에서 이런 말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 그것은 모두 신의 뜻이겠지” 이 말이 나왔을 때 딱 과연 신을 믿는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고, 지금의 사람들은 신을 어떻게 믿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 제가 성당에 다녔을 때 기도를 할 때에는 항상 무언가를 부탁했던 것 같아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같은 것. 그게 과연 기도였던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신을 믿긴 믿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한 신을 믿는 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이런 말들을 하며 교회 홍보를 하러 나온 사람들을 저는 정말 싫어하는데요. 이유는 위에 말했듯이 신을 믿는 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신을 어떻게 믿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은 상태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돈 벌려는 수작으로 보이고, 다른 종교를 비하하는 말처럼 들린 달까요. 각각 신을 믿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그 방법의 옳고 그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과연 다 달라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번 영화를 보고 종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의문이 들면서 복잡해졌지만, 종교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나름 의미 있었던 영화였던 것 같네요.
2013.05.03 00:15:52
까르: 영화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세 가지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 존재하는 신. 폭력적 욕망을 정당화시키거나 신을 위함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이용되는 신. 양심 있고 선하게 살며 바른 삶으로 살아가기 위한 척도로 존재하는 신. 전쟁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영토와 재물축적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기. 자신들의 신이 옮고 자신들에게 신이 함께함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이단이라고 칭하는)상대는 비천하고 자신들의 고귀함을 증명하기 위해 싸운 교주들. 이단을 내모는 것 혹은 성지를 차지하는 것이 신을 위한 것이고,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해 싸움에 참여한 기사들. 아니면 그들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지켜야하는 것들을 알고 그들을 위한 협상을 위해 전쟁에서 버티던 발리앙도 있었고 르노 드 샤티옹과 같이 전쟁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보이던 별 최악인 인간도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종교도 누군가를 배척하고 차별하기 위함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두 가지의 모습으로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왕과 발리앙, 그의 아버지 절친(트베리아스) 그리고 추측컨대 살라딘 정도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차별하기 바빴다. 특히 교주들. 그들은 ‘신’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의 기반을 다지고 신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행동해 그에 아무도 반론 할 수 없게 했다. 세금을 받으면 알라신께 바치는 기도를 허락해준다거나 전쟁에서 살라딘에게 지려하니 개종해버리자고 말하는 교주의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신은 그저 수단이었음이라 의심하게 했다. 신에 대한 인간의 해석. 이번 <kingdom of heaven>에서는 그 결과가 극단적으로 보여 진 것이지만 지난번 <레미제라블>은 그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영화였다. 자베르와 장발장도 서로 똑같은 신을 믿었지만 신의 존재나 신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 신의 자비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했다. 누구보다도 그것들을 굳건히 믿으며 충실하게 살다보니 둘의 세계는 자꾸만 부딪쳤고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자베르가 스스로 사라져버렸었다. 신의 믿음에 대해 이러한 설정이 흥미로웠었다. 이런 이야기를 전에 한 죽돌에게 했더니 그 죽돌이 “그래서 신은 믿을게 못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것 봐 순 인간들 멋대로야.”라고 했었는데 <kingdom of heaven>은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신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그저 믿음 하에 존재하는 것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왕과 살라딘은 참 현명하게 행동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배웠다고 생각되는 점이기도 한데 그들은 신, 신앙, 믿음 그러한 것들은 보이진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다른 신적인 부분은 각각의 것으로 인정해야하는 것임을 알려주었고 (난 분쟁을 일으키는 종교자체를 부정하려 했으니) 그 외의 사람이나 관계, 질서와 같은 것들을 함께하면 된다는 것을, 다른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신도 중요하지만 전략과 병력, 병사의 사기, 건강 그리고 식수도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한 살라딘과 “시체를 태우지 않으면 성 안에 전염병이 돌 것이요.”라고 이야기한 발리앙의 말에서 알게 된 것들이다. 신에게 ‘얼마나’, ‘더’ 이러한 것들을 붙이면 그때부터 신으로의 길은 닫히는 것 같다. 성스러움에는 더더욱 먼 행위다. 나에게 가장 성스러움은 책 <파이이야기>에서 본 것인 듯하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두루 관심을 갖고 믿음을 갖던 파이에게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그것이 ‘종교들’의 자유는 아니라고 말하곤 한 가지 종교를 선택하라는 흰두 사제, 이슬람 지도자, 신부 이렇게 세 현자 앞에서 파이는 말 했다.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저 ‘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로썬 내가 아는 가장 성스러움이다. 각자의 신, 같은 신 속에 또 각자의 모습을 띤 신.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하느님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지가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세상에 감사하게 해주고, 사람답게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신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신은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없는 그러나 그것이 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산타와 같은 존재인 것 같다(조금 다르다면 배울 것이 많은..?). 개인적으로 나는 자연에 깃든 신은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 신에게서 인간으로.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너무나도 신으로 쏠려있던 세상이 인간으로 한 번 들썩 하는 정도로 넘어왔을 때 볼 수 있는 좋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신과 인간의 적절한 조화가 참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의 신의 모습은 ‘믿음’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어떤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것에 신은 많은 힘을 잃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 확실한 증거, 계산적 확률 혹은 과학적 분석과 결과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몇 백 년이 지난 후엔 지금과 같은 우리들의 신뢰의 근거가 뒤흔들려져 있을까? 확률에 관해서는 관점이 어디냐에 따라 다른 게 확률이기 때문에 맹목적인 믿음은 없지만 과학이라는 것도 하나의 잣대고 수단에 불과한 걸까?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시대의 또 하나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강의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영화 자체는 굉장히 잔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많이 흔들리지도 않고 컷이 빠른 것도 아니어서 정신없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발리안의 영웅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아니라 영화 제목과 같이 ‘kingdom of heaven'이란 무엇일까, 종교란, 신앙이란 이런 것들을 풀어서 굉장히 좋았고 요즘은 보기 드물다고 생각되는 미국영화라고 생각되었다. 영화 정말 좋았다. 추가로 작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면 조금 더 ’전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을 텐데 싶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전쟁은 무엇으로 인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안보라는 이름하에 너무나도 빵빵하게 준비하고 있는, 대비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을 위함일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그런 공부도 좋았겠지 싶다. 여튼 강의가 매우 기대된다.
2013.05.03 03:06:57
서키: '이교도 학살은 죄가 아니오. 천국 갈 선행이오.' 라는 말을 들으면서, "교회 믿으면 천국갑니다. 그 곳은 행복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선 교회를 믿어야 합니다!" 라고 했는데 지나 가던 어떤 사람이 "그럼 먼저 가시던가!"라고 했다고 하던 어떤 글이 기억 나기도 한다. 도대체 신은 왜 평화를 주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갈 기회를 사람을 죽여 면죄부를 주시는 건가? 그게 신이라면 왜 믿어야 하나?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인 사제... 그리고 성지로 올라가 신의 말을 들으려 했지만 듣지 못했다는 발리안도 생각이 났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는 깊은 신앙을 믿고 계시는 분들에겐 별로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왜냐면 이 영화는 그 안에서 사제들이 굉장히 비굴하고, 한마디로 볼품없고 하찮게 나오기 떄문이다. 죽을 위기에 처하자 일단 개종하고 회개는 나중에 하자는 한 사제의 모습이 기억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서로의 종교가 이도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를 보았을 땐 이도교지만,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를 봤을 땐 기독교가 이도교다. 모두의 것이 될 수 없고 꼭 어느 하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 중에 발리안과 아버지의 친구이자 사제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신앙을 잃었소. -신앙은 믿을 게 못돼요. 폭력의 광기를 주의 뜻으로 합리화 하는 자가 많죠. 너무나 많은 살인자의 눈에서 광기 어린 신앙을 보았소. 선행과 약자를 돕는 용기만이 참된 믿음의 모습이오. 라는 부분을 보면서 루터의 반박문이 생각났었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 라는 구절.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중세에서는 암흑기라 불리며 신이 중심이었고, 근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인간 중심이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 들어간다. 근데 이 르네상스가 동방과의 교역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건 거의 귀족에게만 해당되었고, 종교개혁의 경우가 더 확실한 근대적 세계관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참 카톨릭이 면죄부를 판매하고 막장으로 치닫자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가지의 반박문을 붙였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 라고 주장했고, 칼뱅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구원을 못 받을지 받을지는 예정되어 있다' 는 예정설을 말했다. 그리고 나서 신교 대 구교로 루터파,칼뱅파와 가톨릭이 충돌하며 30년 동안 잔인한 종교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으로 신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또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죠?" 했더니 살라딘이 "아무것도 아냐, 또한 모든 것이기도 하고."라고 했다. 내 추측으로선 신앙으로서, 혹은 땅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고, 나를 믿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죠?"라는 물음이 "신앙은 무엇이죠?"와 같은 말인 것 같았다. 예수살렘은 성지다. 그래서 발리안은 구원을 받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지금도 그 예루살렘에서는 계속 전쟁이 일어난다. 그것은 성지인가? 이름뿐인 성지가 되어버린 그 땅... '영웅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대장장이로 일하던 발리안의 일터의 나무대들보에 적혀 있던 문장이다. 신이 아닌 사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로 이해를 했다. 또 성 안에서 지금 시체를 태우면 지옥에 간다는 사제와 전염병이 돌아 다 죽을 수도 있다는 발리안, 발리안은 신도 이해해주시겠지 라고 하고 시체를 태웠다. 그리고 또 성 안의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던 말도 그렇고 발리안. 고프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사제가 봤을 때 이도교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살라딘은 정말 멋있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선 발리안이 주인공이지만, 난 살라딘이 주인공 아닌 주인공 같았다.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떨어져 있던 십자가상을 탁자에 제대로 세워 놨을 때 이유 모를 이상한 뭉클함이 들었다. 나는 사실 살라딘이 모두를 그냥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 그래놓고 죽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여서 놀라웠다. 성스러움이라 하면 기사는 성스러운 존재인데, 그것은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발리안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모두 기사가 되게 했다. 그들도 고결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의 말은 묵살 당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문장이 자꾸 머리에 남는다. "수천년이 지난 뒤, 오늘날에도 그곳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 난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생각을 해봐야 하는 말이 계속 나와서 이런 영화 답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서 내가 생각한 중요하던 순간들을 정리해보고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도 계속 했다. 또 실제 역사를 비교해 가면서 재밌게 이해할 수 있는 이런 영화는 정말 좋다. 또 감독판이 조금 더 다르다고 하니 그것도 봐야겠다.
2013.05.07 06:50:28
서키가 많은 생각을 하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적어두었는데, 그래서 정확히 서키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네. 글이 기니까, 서키가 자신의 생각을 좀더 명료하게 정리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좀 편협한 사람들은 그렇게 여길지도. 깊은 (카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은 종교의 형식(의례)과 내용(믿음)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을 느끼는 사람들이 터이니.) (나는 모두들 감독판을 본 줄 알고... 감독판을 보느라 매우 힘들었음. ㅠㅠ)
2013.05.03 23:07:47
벗아: 내가 느끼기에 영화의 전과 후는 발리안이 왕의 청을 거절하기 전후로 나뉘는 것 같다. 만약에 발리안이 청을 받아들여서 시빌라와 결혼을 했다면 어떤 이야기로 전개가 되었을까? 발리안은 자신의 양심과 십자군의 평화를 위해 거절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고 존경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발리안에게 화가났다. 그는 분명히 기가 위험한 사람이고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이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도 자신의 양심을 위해 저버리고 결국에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예루살렘도 잃었다. 영화를 보면서 멍청이 발리안 그냥 청을 받아들이지 왜 거절해서 최악의 상황으로 만드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는 사라지고 자신의 아버지가 말하던 새로운 세상, 더나은 세상, 신변을 뛰어 넘어 꿈을 이루는 곳, 양심이 있는 땅, 전쟁 대신 평화가 증오 대신 사람이 있고 전쟁의 종착점인 예루살렘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텐데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할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발리안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어떻게 보면 결국에는 발리안이 그 청을 거절한게 잘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영토도 잃었지만 끝까지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킨 발리안이 존경스러워보였다. 어찌보면 발리안은 또 하나의 크리킨디 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예루살렘 전체를 뒤바꾸어 놓지는 못했지만 자기 자신의 선에서의 충분한 큰뜻을 이뤄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도대체 예루살렘이 뭐고 뭐였길래 이리도 사람들이 목을 매나 싶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은 어떤곳이였냐고 물었도 살라딘은 아무것도, 전부였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단지 돈과 영토를 두고 벌이는 자존심과 기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살라딘이 그 말을 함으로써 그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는 새로운 세상, 더나은 세상, 신분을 뛰어 넘어 꿈을 이루는 곳, 양심이 있는 땅, 전쟁 대신 평화가 증오 대신 사람이 있고 전쟁의 종착점인 예루살렘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다. 발리안의 여정의 시작은 사제를 살해하고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예루살렘에 가는 것 이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벨린의 성을 지키고 성안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라딘의 대군과 싸운다. 그 장면들에서 빌리안은 신에 대한 믿음과 찬양, 절차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는데 이때 신에게서 인간에게로의 대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벨린의 사제는 살라딘의 대군이 위협을 하자 지금 종교를 바꾸고 나중에 참회하자고 했는데 인간의 삶은 신의 뜻이라고 했던 다른 사제의 말과는 다르게 결국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오자 신을 향한 믿음보다 자신의 생명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대조되어서 보였던 부분은 발리안이 수도사를 죽였을 때는 교황에게 불려가 심판을 받아야 했지만 십자군전쟁은 무수한 살생이 일어났지만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심판하지 않았다. 주의 뜻이라는 핑계로 전쟁을 합리화 시켰다. 그리고 이면에는 영토확장과 돈을 욕심 내었다. 그 합리화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게 되었다. 가끔씩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왜 신을 믿는지 궁금했다. 정말 왜 신을 믿을까? 정말 예수는 존재할까? 이건 도저히 알길이 없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이지 않을까?
2013.05.07 06:51:49
예루살렘은 '근원'과 '대의명분'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만 예루살렘이 신의 말씀이 전해지고 신의 뜻이 있는 곳이라면, 아마도 인간의 '양심'이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발리안이 '양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이미 그는 '신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양심밖에는 없다는 것이 근대철학자인 칸트라는 사람의 견해이기도 했거든 . 구약성경에는, 신의 뜻에 가장 순종하는 대표 신자였던 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집이 망하고 자식들이 죽고 아내가 죽고 문둥병이 걸리고... 가장 절망적인 순간 그가 신을 원망하게 되었을 때 신의 말씀을 듣게 되고 다시 신을 받아들이는 얘기가 있어. 발리안은 아마도 그 욥과는 아주 다른, 신의 세계로부터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인 것 같다. 그는 대장장이이고 (불-에너지를 다루는 사람) 화포를 만든 사람이고 (과학적 지식을 다룰 줄 아는 사람) 귀족의 자식이지만 동시에 평민의 자식이지. (고귀함과 보편성을 동시에) 그렇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현재의 예루살렘을 어떻게 들여다보게 할까? 그런 얘기가 강의중에 나왔니? 덧. 그런데 시빌라를 주목해서 보았던 사람은 없었을까? |
|||||||||||||||||||
영화를 보면서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이성으로 무장한 근현대인에게도 이는 여전히 질문될 가치가 있을까? 중세적 세계관에서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에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런데 과연 그 변화는 진정 변화인 것일까? 아니면 인간 욕망을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신'(과학절대주의)을 맹목적으로 믿게 된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질문들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너무 어려우면... ㅎㅎ 그냥 재미있게 보고,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아래 댓글로 나누어 주면 좋겠어요. 굳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감상문이 아니어도 좋으니... 폭풍 댓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