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월 회고

요즘의 나는 꽤나 멍청하며 또한 짜증나고 굉장히 추하다. 내가 봤을 때 꼴보기싫은 것들은 많지만 그게 나일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보는 것은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내가봐도 나는 꼴보기싫다. 심지어 동정이 가지 않는 종류로.

계기가 뭐였든 이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게 정말 계기의 전부라면) 아주 사소한 이유로 내가 열심히 붙잡고 있던 생각의 끈들을 놓쳐버렸고, 그 이후 몇 개의 사건들 - 언급했던 부모님과의 트러블을 포함한 - 이 겹치면서 내 안에 갑자기 생긴 것 같아 보이는, 하지만 사실은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조각들이 쌓여서 생겨난 고민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해왔던 고민과 생각들, 그리고 지금 이 생활은 전부 사치일까? 하고싶은 일 하며 먹고살기는 아지랑이같은 환상일까? 나는 결국 하기싫은 일 하며 생존해나가는 삶을 정말로 살게 될까?'

저 고민에 대한 얘기는 제쳐두고 다시 요즘의 나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면, 꽤나 여러번 말하는데 요 2주간의 나는 정말 최악이였다(그렇다고 그 전에 내가 최고였냐고 물어본다면 할말은 없겠지만.). 생각이란 걸 멈춰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동시에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 처럼 안절부절 못했으며 그 총체적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중에 나는 (이 말을 하는건 주저되지만) 굉장히 힘들었다. 그 힘듦이 정당하던 아니던 어쨌든 힘든건 힘든거니까 생각이라도 많이 했으면 억울하진 않을텐데 심지어 나는 힘든 나를 동정하는데 바빠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플러스해서 '나는 힘든사람이니까 괜찮아' 따위의 면죄부까지 나에게 선물한 듯 했는데, 그 증거로 개학하고 거의 빠지지도 않고 늦지도 않았던 학교를 2주동안 한번 빠지고 한번은 오후에 왔으며 약간의 지각은 셀 수도 없이 했다(핸드폰이 없다는 게 한몫했다는 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2주동안 나는 아침모임시간 중간에 살짝 들어와서 앉아있다가 아침모임이 끝나자마자 흡연실로 달려갔다. 글로비시 시간을 어물쩡 보낸 후 오도리가 시작하기 전 다시 흡연실로 갔고, 오도리가 끝난 후, 점심을 먹은 후, 그리고 2시가 되기 10분 전쯤 한번 더 흡연실로 갔다. 오후 프로젝트 시간 중 쉬는 시간, 프로젝트 시간이 끝난 후 언제나 흡연실로 갔고 이쯤 되면 난 담배를 피러 하자에 다니고 있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로 요즘 난 하자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돌아보면 너무나 긴 Blank들과 그 사이의 아주 적은 이벤트성 생각들로 이루어진 하루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런 하루들은 어쨌든 내게 잦은 음주와 늘어난 흡연량을 선물해줬는데 지난 2주동안 남은게 그것밖에 없다는 건 좀 슬프다.

그런 시간을 보낸 지금, 내가 하자에 다니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내가 하자에 다니는 이유가, 단지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위해서인건 아닐까? 그랬기에 지난 2주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에 점점 더 불안해졌고, 그 불안때문에 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 아닐까? 일반학교에 다닐 때 처럼 자퇴한 후에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명함처럼, 카드처럼 여기저기 내밀고 다니면서 위안을 얻은 것은 아닐까? 이번학기 초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뿐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2주 동안 생각을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놓친 생각을 잡기 위해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기 초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지경이다.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섬세하기 위해서라도 생각을 멈추면 안된다.

섬세함. sensitivity. 이 단어는 내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어쨌든 섬세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고, 난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행동을 내가 하고 있는 걸 목격했을 때 굉장히 슬퍼지기에 요 2주간 난 꽤나 슬펐다. 그리고 생각했다. 섬세하기 위해서도 생각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해보니 지난 2주가 남겨준 것이 술담배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했었다니.

나에게 관대하다는 말, 나를 동정한다는 말은 나를 창피하게 만든다. 좀 더 섬세하게, 좀 더 내가 뭘 하는지 인식하고 앞으로를 지낼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내 고민을 지속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하며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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