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의 중심"


내 학습의 중심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만 하는 사람인가, 20살을 준비하기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doing'하는 사람인가. 내가 지난 2년 반 동안 경험한 하자에서는 '한다는'것이 중요했다. 무언가를 보고, 나 혼자 느끼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것.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은, 한 학기 동안 고민하고 학습했던 주제들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발표하거나, 리뷰를 쓰거나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doing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는 겉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학습하는 공간이 하자이기 때문도 있지만 스스로 계속 확인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무언가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특히나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시민, 시인을 만나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 사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묻는 사람", "내 시선이 곧 불빛이 될 수 있다는 것", "한때 무관심했던 세상을 직면하고 아파할 수 있는 것"... 어떤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뚜렷해 질 수록, 더욱더 고민하게 되는 것이 '그래서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아직 스스로를 디자이너라, 예술가라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주변에 대해 질문과 문제제기를 하는(그것을 작업으로(지금으로썬 영상)풀어내는)것이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들어도 "그럼 예술은 어디쯤에 들어갈까, 사회적인 영역에서의 예술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등의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항상 어떤 시기쯤 되면 부딪히는 것이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니?"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내 학습의 중심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지금 내가 학습하고 있는 공간'이다. 나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지금 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 하자라는 공간은 사실, 하려는 의지와 계획만 있다면 어떠한 시도도 가능한 것 같은데(실제로 뭔가 움직여서 '하는 것') 이런 제약 없는 공간에서 왜 계속 '생각'만 하고 있게 되는 지 스스로를 타일러본다. 조금 다른 얘기이기도 하지만, 요즘 너무 '소화'라는 키워드가 부각 되서, 나도, 모두, 들은 얘기를 소화하는 것에 집중해서 그 이상의 상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진정한 '소화'는 들은 얘기를 내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에 더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그것을 적용시켜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조금 더 많은 '상상'을 하려 노력해 보려한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도 뭔가를 하면서 진전시키는 게 지금은 필요한 것 같고(물론 읽고 쓰는 공부는 할 거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은 '디자이너란 무엇인가'와 발터 벤야민과 존 버거의 책들.) 하자 안에서, 내가 누구와 함께, 어떤, 'movement'를 상상할 수 있을까. climate change action을 상상해볼까? 


(저는 앞으로 개인 노트와 더불어 이런 종류의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써볼까 합니다. 일주일의 회고 같은 느낌으로...) 쓰고 보니 시니어 PT때 할 거라고 얘기했던 것들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얘기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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