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신음소리 고통의 소리 끊이지 않은 곳에
희망 없는 쓰레기 인간의 추한 뒷골목 개똥과 뒤엉긴 마을
기울어진 집들 허물어진 몸과 황폐한 마음들
그 절망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의 마을에
낮고 낮아 오직 벌거숭이 인간밖에
남은 게 없던 인간의 마을에
인간을 감추고 은폐할 것 아무 것도 없고
인간 아닌 것은 모두 빼앗긴 마을
억울함과 서러움과 통한의 깃발 되어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일어나던 날
총칼과 군홧발은 차라리 거울이었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다 비추는 거울이었다
저들에게 분노하기 전에 우리는 정의로운가
저들에게 돌을 던지는 우리는 정당한가
우리는 물러날 곳 없는 인간이던가
불타는 바리케이드에서 비추어보던 그 얼굴들
자각과 자기정화의 또 하나의 투쟁으로 가슴 치던 날들
그날의 그 얼굴 얼굴들
불안과 공포 좌절과 연민의 눈물로 얼룩지던 얼굴들
그 어깨 너머로 떠오르던 인간, 아 인간의 시간을
- 백무산, '인간의 시간을 위하여-사북항쟁 25주기에 바치는 시' 몇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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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축전 2005-제1회 사북문학축전' 팸플릿 | |
| ⓒ2005 한국문학평화포럼 |
시커먼 탄가루에 절은 몸으로 시커먼 눈물을 흘리던 광산 노동자들의 분노는 마침내 갱을 뚫는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했다. 그때부터 광산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어용노조를 넘어 신군부로 상징되는 공권력과의 투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총칼로 짐승몰이 하듯 달려드는 공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사북은 광산 노동자들의 해방구가 아니라 생지옥이었다.
1.5평 간이 칸막이로 만든 여러 개의 방에서는 이른 바 '순회고문'이 시작되었다. 고춧가루와 물고문, 고무호스 구타, 손가락에 연필 꽂기, 무릎 사이 각목 끼우고 짓밟기, 군화발로 걷어차기는 물론 광산 노동자의 아내들에게는 겨드랑이털과 음모를 뽑는 성고문까지 이어졌다. 사북항쟁은 처절하게 끝났다. 아니,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북항쟁은 그렇게 끝난 게 아니었다. 그동안 고문의 후유증으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광산 노동자들과 성고문을 당하고도 가족들과 주변사람들 눈치 때문에 쉬쉬하고 있었던 광산 노동자 아내들의 가슴 속에는 그때 그 참혹한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불씨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돌이켜 보건대 1980년 4월 사북의 봄은 활화산처럼 분출하던 시대의 불꽃으로 우리에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발발하기 불과 한 달 전 사북에서 떨쳐 일어선 광산 노동자들의 함성과 그들이 흘린 피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 고은, '초대의 말씀' 몇 토막
사북항쟁 25주년을 맞아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고은)은 정선민예총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 2005-제1회 사북문학축전'을 연다. 오는 23일(토)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장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고한, 사북, 남면지역살리기공추위'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국무총리복권위원회, 강원랜드복지재단, 강원문화재단이 후원한다.
시인 홍일선과 강기희의 사회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고은 회장의 '인사말 및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소리 공연 '정선 아리랑'(김순덕과 사북어린이집 아이들), 평화시 낭송, 노래, 춤에 이어 사북항쟁동지회 회장 이원갑의 '현장증언', 오우열 홍세미의 '혜원소리굿', 정태춘 박은옥의 '작은 콘서트' 등이 차례대로 열린다.
이 산 아래 사북과 황지를 잇는 터널이 뚫리고
석탄 가득 실은 기차가 달리고
한숨과 노여움과 함성이 치솟았다
하루 삼교대 막장에서는
진폐가 입을 빌려 더 많은 탄가루를 삼키고
지열과 땀은 뒤범벅이 되어 사람의 진을 빼버리고
피워 문 담배 한 모금에도
내장이 뒤틀려 칵칵거렸다
계곡 물빛을 검정 크레용으로 색칠한 아이들은
도화지를 거둬들이는 선생님이
왜 흐느끼고 있는가를 알지 못했다
버림받은 사람들도 한 생각으로 뭉치면
나라가 온통 들썩거렸다 뜨내기들은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기가 고향이었다
- 이성부, '장성터널 위를 걷는다' 몇 토막
특히, 이번 문학축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평화시 낭송은 모두 3차례로 나눠서 열린다. 평화시 낭송 1부에는 시인 이성부의 '장성터널 위를 걷는다'를 시작으로 이건청의 '폐광촌을 지나며', 이상국의 '희망에 대하여', 안현미의 '고생대 마을'이 낭송되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의 작가 조세희가 나와 '사북에 대한 회고'를 한다.
그 중 다른 곳에 살다가 사북에 이사 온 초등학생 김진아의 이야기, "내가 처음 사북에 왔을 때는 시커먼 것만 보였다. 사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도 생각을 해 보았다. 사북에 처음 왔을 때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마음이 곱고 인정 많은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글은 듣는 이로 하여금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사북의 초등학교 6학년 이병각의 '사북의 봄'은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 "우리 사북엔 봄이 늦게 온다. 3월이 되어도 봄은 안 온다. 우리 사북은 산간지방이라서 봄이 늦게 오는 모양이다." 같은 초등학교 6학년 박현석의 '우리 아버지'란 글은 어른스럽다. "우리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시는 훌륭한 분이시다. 탄을 캐다가 우리나라에서 땔 수 있게 해 주시는 우리 아버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런 빽도 없어 선택한 막장인생
열심히 탄을 캐면 돈을 벌줄 알았다
열심히 일하면 희망이 있을 줄 알았다
죽기 살기로 일하면 막장인생 벗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도급제노동은 그게 아니었다.
땀 흘린 대가는 너무도 보잘 것 없고
회사는 안전보다 늘 생산이 먼저였다
노동조합은 한 번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공권력마저도 한통속이었다.
- 성희직, '1980년 사북을 말한다' 몇 토막
평화시 낭송 2부에는 시인 성희직의 '1980년 사북을 말한다', 박영근의 '그 눈동자', 서승현의 '길 아랫집', 이소리의 '칸데라 불빛 아득한 사북', 정호승의 '사북을 떠나며'가 차례대로 낭송된다. 이어지는 가수 손현숙의 노래와 춤꾼 박영희 박진화 홍은택의 '내 안의 한'은 사북 광산노동자들의 25년 한을 올올이 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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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북 문학축전에 참가하는 시인과 예술가들 | |
| ⓒ2005 한국문학평화포럼 |
이어 오후 5시 40분부터는 '주민화합 한마당 및 뒤풀이'가 이어진다. 이번 행사의 연출은 시인 김정환씨가, 음악 총감독은 한국민족문학인협회 대중음악위원장 김현성씨가, 준비위원으로는 시인 홍일선, 이승철씨가 맡았으며, 사북 준비위원으로는 성희직, 이재욱, 강기희, 김창완씨가 맡았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서울 중심의 문화적 섹트주의를 극복하고 현장과 이슈가 살아 있는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문학 실천의 장을 마련하고, 우리 문학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파수꾼으로서의 문학의 역할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문학 본래의 영원한 재야정신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 한국문학평화포럼 홍일선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 이승철 시인은 "지난 해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상처받은 현장, 우리 문학의 문제적 현장에서 '제1회 임진강 문학축전' '제2회 매향리 문학축전' '제3회 부안 문학축전' '제4회 태백문학축전' '제5회 대추리 문학축전'을 잇달아 열어 일반 독자들과 문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헌국문학평화포럼은 '제1회 사북문학축전'에 이어 오는 5월 28일(토)에는 인천 옹진군 백령도 통일기원탑 광장에서 '제2회 백령도 문학축전', 6월 25일(토)에는 경남 거창 추모공원에서 '제3회 거창문학축전', 7월 26일(토)에는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제4회 노근리 문학축전', 9월 24일(토)에는 여주 도리마을에서 '제5회 여주 도리 농민문학축전'을 잇따라 열 계획이다.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참가문의/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02-2285-6799), 홍일선 사무총장(011-9775-3277).
- ⓒ 2005 오마이뉴스





산간지역 고한에 고래가 산다는 놀라운 사실이 출발점이다. 그 고래의 혹은 말하자면 고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래란 바로 급속 성장했다가 쇠락하는 탄광지대의 모습과 아귀가 맞다. 고한/고래의 비극성은 포유류의 새끼처럼 슬프다. 그 슬픔은 그러나 바깥으로 터져나오는 울음이 아니라 머금고 자제하는 울음이다. 그리하여 시는 전체적으로 의문의 방식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했다. 이 시의 구조는 사겹의 동심원이다. 가장 바깥 동심원에 동시대의 삶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원이라기보다는 사각형일지 모르겠다. 세 번째 동심원에 도피처처럼 아름다운 정선의 풍광이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원은 보이지 않지만 유추 가능한 공간이다. 두 번째 동심원이 바로 이 시의 껍질이다. 즉 고한, 어용노조, 막장, 유리창도 깨진 사택, 역전 주점, 사람들의 한숨, 석탄 등이 구성하는 쇠락한 검은 색들! 그리고 그 안에 핵인 혹등고래, 그 고래는 두 번째 동심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면서 기실 세 번째 동심원인 자연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감춰진 역동성이기도 하다. 시인의 진술을 고스란히 따라가면 고래는 불이거나, 한숨, 석탄이면서도 불이 아니거나 한숨도 아니고 불도 아닌 그것들을 모두 껴안는 가치체계이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있게 하는 가치일 것이다. 혹등고래는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심리적 현상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이 포유류는 사실 우리 내면 세계의 평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