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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내용 정리 더 하고 있습니다. 준비물에 적혀있던 ‘카메라’. 죽돌들에게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판돌들을 보면서 그러고 보니 한동안 핸드폰으로 밖에 찍지 않았던 ‘사진’을 중심적으로 찍어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어떤 사진을 내가 담게 될 것인가 한참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마구잡이로 찍을 것인지 아님 내가 그곳에 갔을 때 과연 찍고자 하는 주제가 있을 것인지. 게다가 카메라라는 매개체에 대해 내가 조심스러워져야 할 부분, 혹은 다른 죽돌들이 고민하는 ‘카메라를 들었을 때’의 부분에 나 또한 같이 고민했다. 그래서 주민들, 혹은 사람들이 보일 때 최대한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의도가 ‘나쁜’ 것이 아님을 그들도 알겠지만(모를 수도 있겠다) 거꾸로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땐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한들 나의 집, 나의 동네, 내 친구들을 찍는 건 불쾌할 것만 같아서였다. 제임스, 강제욱, 윤주경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고 그들의 이유, 그들의 해석, 그들의 표현을 듣고 느끼며 나도 나만의 이유, 해석, 표현을 찾고 싶었다. 제임스에게서 놀랬던 부분은 그는 정말 세심한데 그 세심함은 준비성에서도 나오지만 과정, 그리고 자신이 하나하나 빠짐없이(빛의 구도, 각도, 대비까지) 연출한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것에 포인트를 맞추는 사진을 많이 봤고 나도 가끔 사진을 찍을 때 종종 그래왔던 것 같은데 그 모든 것들을 연출하고 작품 안에 의미를 더했기에 전체적인 화면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다 (어떤 면으론 시선이 분산되기도 하다). 얘기가 하나의 작품에 많이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으면서 한 편으론 ‘그 의미나 모든 것의 연출에 대한 의도를 설명을 듣기 전엔 모르고 넘어갈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 난 작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있을 때 어떤 매체를 뚫고 어떤 틀을 잡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낼 것일까? ‘사진을 찍기 전에 구상(아이디어)을 하고 거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간다. 내가 한 구상과 현실이 맞아야 그게 하나의 사진(작품)이 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일에 대한, 혹은 모든 것에 대한 세심함이 ‘준비자세’를 통해 나오는 것인가? 하며 놀랬다. 15년 동안이나 어떤 카메라를 사용할지 어떤 필름을 사용할지 체크하고 공부했으며 그래서 선택한 것들로 작업을 하고 있는 제임스의 모습을 보곤 나도 저런 ‘준비성’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만큼의 ‘끈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이든 주제와 이야기들이 있고 그래서 연결고리가 있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도 발견하는 것도 찍어내는 것도 나에겐 모두 ‘예술’이다. 이번 정선에서의 나의 ‘예술’은 사진이었다. 패턴들이 좋았다. 특히 옛 동네에서의 패턴들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도 기뻤다. 진하고 선명한 색들이 먼지 쌓이고 낡아진 벽돌 옆, 혹은 위에 놓여 있다는 게 꼭 경석산에서 본 ‘검은 돌 옆에 흰 돌 / 검은 광물 옆에 밝은 주황빛을 띈 단풍들’ 마냥 (조화롭다는 표현은 안 어울리지만) 그 곳에 같이 공존함으로써 어우러지는 묘함이 좋았다. 내 키워드는 ‘과거의 것(옛 것) 혹은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것. 한마디로 없어지고 있는 것 혹은 이제 자주 볼 수 없어지는 것’, ‘사람들이 지나간, 스쳐간, 머무른 공간의 흔적’ 이 두 가지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 정선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없어지고 소멸될까봐 두렵다.’ 기 보단 내가 더 이상 그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고 그 곳은 내가 다시 찾아갔을 때 ‘날 기다려 주는’ 것들이 아니라 ‘재개발’ 된 상태로 내가 저것들을 기다리는 게 두렵다. 기다린다고 재개발 된 것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없어짐. 답답하고 빡빡한 것에 대해 항상 숨막혀하는데 이번엔 골목골목간의 답답함과 빡빡함 그리고 좁음을 즐겼다.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모르고 넓지 않은 공간 속에서 여러 사람이 산다는 것은 참 갑갑하기도 할 텐데 그러면서 서로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곳이 재개발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괜스레 내가 거기서 사는 마냥 굴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자책했는데 그런 면이라는 것은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혼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리뷰를 하면서 히옥스의 코멘트를 받고 그제야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 대화’에 대해 난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놀러온 마음으로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질문이 있어도 안하고 키워드에만 집중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것이 그저 관광객마냥 여기저기 둘러보고 ‘좋다’ 거렸던 것 같아서 마음가짐에 대해 스스로 회의가 들었다. 무슨 의민데? 무슨 맥락에서? 무슨 비전이 있는데? 내가 하자에 와서 제일 많이들은 질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 문장들이 이 곳 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작가들의 의미가 어떤 의도로 마을 사람들에게 읽힐까. 마을사람들의 반응과 태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의미, 비전, 맥락속의 중점을 최대한 표현하려 하고 있고 10년이라는 시간의 계획만큼 신중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난 아직 이렇다고 결정 난 것들이 없고 표현된 것도 없다. 아직 걸어가지도 않고 내가 걸릴 돌들에 대한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에. 마을과의 소통, 교류가 되길 원하는 이 공공미술프로젝트, 예술마을이 시범사업으로 지금까지 2달 정도 벌여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잘 해결되고 있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그들도 더 움직이고 더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겠지. 광부들의 모습. 광부들은 ‘산업전사’라는 자신들의 위치가 있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지만 일터 자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안전에 대한 부분에서 보장되지 않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일을 하는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자신들의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노동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나도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살기위한 노동과 필요에 의한 노동은 절대 같을 수 없지만 내 노동은 필요에 의한 노동에 가까운 것 같다. 그 전에 어떤 것이 필요하기에 노동하는 건지가 나와야 하겠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고 무엇을 캐내는 것인지 내게 목숨은, 생명의 위협 지점은 무엇인지. 리뷰시간에 하루는 시즌 1의 시작, 시즌 1의 마무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대안학교와 일반학교의 얘기들이 오갔고 탈학교 학생의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때 들었던 제일 잊히지 않는 단어는 ‘수동적 사고, 수동적 태도’이다. 이곳까지 와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싫었고 내가 그랬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어느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내 앞에 놓아주기 전까진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고 쩔쩔매다가 말아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행동으로 표현으로 나가는 부분이 내 취약점이고 취약점인 만큼 잘해보고 싶다. 하면 되는 것을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해서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그렇담 내가 어떠한 포부와 생각, 계획을 세웠다 한들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고 실행되기 위한 행동이 나오지 않는 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분명 짚고 넘어갈 문제이고 나에게 있어 제일 마음이 불편한 문제이다. 생각. 생각을 옮겨보면 되는 것인데. 이리 어려운지. 이어져 나가지 않는 나. 수동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게 들렸던지. 꼭 날 두고 하는 얘기 같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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