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動을 잡다, 시동을 걸다"


정선에 가기 전 나는 시민문화워크숍을 들으면서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이 어떻게 실현 될 수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이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너무 큰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겐 곧 내가 지향하는 작업자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바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추상적인 감정들만 표출해 내는 예술가/작업자가 되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해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나만의 세계'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나만의 세계를 넘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되는 지점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 입장에서 본 것들을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그것이 어떤 메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까지를 말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정선 탐사를 하면서 들었던 날것의 생각들, 날것의 기록들을 나만의 세계에서 끌어내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것에 집중한 나의 근거를 따져보는 것과, 내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판단하여 전달할 수 있는 메세지로 가공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하자에서 영상작업을 주로 해왔다. 이때 나에게 작업이라는 것은 학습의 결과물이라고 부를 만 한 것이었다. 아티스트의 작업이 아닌, 작업장학교에 다니고 있는 영상팀 토토 나름의 학습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작업물과 학습의 결과물이 본질적으로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학습과정이란 보고, 듣고, 알게 된 것들을 자기 입장에서 이해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주변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작업도 학습도 공통적으로 과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학습과정을 작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작업이라고 불렀을 때는 조금 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내 학습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고 거기에 메세지를 더해 '스토리텔링' 하는 것. 물론 나눌 대상도 있어야 한다.


1. 기록


"나의 매체는 영상이다"라고 항상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 매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매체실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2년 동안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몸에 밴, 그리고 학습한 영상의 특성들이 있는 것도 같다. 스틸 카메라를 놓고 비디오 카메라를 들었을 때, 내 눈앞에 놓인 사물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확실히 스틸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그 순간을 '기록'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거나, 스틸 컷이 담아낼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기억의 한 조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나서 가장 먼저 눈여겨보았던 것은 움직임이었다. 스틸에서 넘어와서 그런지 비디오 카메라만이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사북을 중심으로 탐사를 했던 나는 거기서 눈에 띄게 동적인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주치려면 동원탄자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시장에 가야 했고 기껏해야 볼 수 있는 움직임은 간간히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바람에 미세하게 떨리는 풀, 벽지 등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미세한 움직임들을 기록했다. 여건이 될 때는 직접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 움직임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상에서의 움직임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 연속성을 갖게 해주고 특히 사람의(의지가 담겨있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원탄자와 광부 사택에서 특히 이런 움직임을 촬영했던 이유는 단지 내가 축적된 시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도 있다. 사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기보다 지금도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예전 광부들이 일했던 시간,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은 그때에 비해 지극히 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 공간은 사실 바로 지금 가장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새롭게 개발될 시점을 바로 앞에 두고, 바로 옆에 18시간 가동하는 카지노를 두고 위기를 느끼며.


2. 마을의 예술가


기획자 토크 때 듣기도 했지만 공공미술에서는 그 예술작품이 공공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가의 작업 과정이 공공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작품도 전시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닌 '천천히' 팀의 작업처럼 마을 아이들의 예술교육으로 쓰일 수도 있다. 예술가가 자신의 어떤 예술적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마을에 '기부'하는 것보다 작업 하는 것 자체를 같이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고, 그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 '마을의 예술가'라는 것이 내게 와 닿았다.


공공미술을 생각해보면서 내가 만약 정선의 레지던트 예술가라면 그 특수한 상황에서 내 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달라질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이어서 지금 내 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특수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나. 학습 공동체라고 말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의 과정을 함께 하고, 앞서 내 작업이 곧 학습이라고도 말한 시점에서. 나만이 몰두하고 있는 주제, 그것을 풀어내는 '나만의 고유한 작업'을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나에게는 작업에 대한 조금 다른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 학습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학습에서 이어지는 작업, 그 작업과정을 함께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것. 아직은 함께 하는 작업과정을 구체화 시켜 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 너머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해, 남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드는 것에 더해, 작업과정 또한 함께 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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