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잘못 없다
기사제공 mbnart2009-11-19  조회: 2676 댓글: 0




나무는 뿌리내린 자리에서 일생을 다한다. 그 일생은 매우 긴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무의 긴 호흡에 기대어 쉰다. 그러는 동안 나무는 자신의 나이테를 더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숨결까지 머금어 자란다. 이를테면 나무는 스스로 긴 역사이면서 기억과 시간의 축적인 것이다.
나무의 호흡에 비해 인간의 호흡은 짧기 그지없다. 그래서 순간의 감정, 혹은 순간의 이익을 위해 많은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나무의 자세를 배우기 원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자체로 오래 숙성시켜 간직하는 것, 그것은 다시 깊은 뿌리가 되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연관된 공공디자인에도 이러한 정신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건 아니건 간에, 공공디자인으로 만들어가는 도시가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사실을 증명하는 '시간의 흔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한다. 역사는 결국 너와 나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즈음의 우리 공공디자인은 나무의 긴 호흡이 아닌 순간의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무의 호흡을 배우지 않고 인간의 호흡을 나무에 적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재빠른 인간의 호흡은 나무의 뿌리가 머금은 흙들을 털어내고 자꾸만 새로운 자리를 강요한다. 이제 나무는 순간의 목적에 의해 심어지고 또 다른 목적에 의해 옮겨진다. ‘뿌리’ 혹은 ‘뿌리 내린다’라는 말에 담겨있는 의미도 이 도시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아닐까.




광화문 광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된 후 한 계절이 지났다. 그간 그리고 지금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이 제공하는 콘텐츠들을 즐겁게 즐기고 있다. 이즈음 이러한 궁금증이 든다. 이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던 은행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울시는 지난 8월 육조거리의 역사성 회복과 자연 조망권 확보를 위해 은행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밝혔다. 현재 29주의 은행나무들은 시민열린마당 앞 보도와 정부중앙청사 앞으로 옮겨진 상태다.




사실 광화문 광장 터에 자리 잡고 있던 은행나무들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육조거리축을 훼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심어졌다. 분명 불순한 의도이다. 서울시가 밝힌 육조거리의 역사성 회복도 이러한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은행나무를 옮겨 심는다 하여 역사성이 회복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역사는 선악 판단에 의한 기억의 선별작업이 아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역사라는 이름 하에서는 모두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뿌리로 튼튼한 현재와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무를 옮겨 심는 주요 이유는 광장 조성과 광장의 조경에 있는 것이지, 역사성 회복에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깝지 않은가. 육조거리에서 광장으로 이어져가던 의미축을 공원으로 끊어놓은 것이 아니냔 말이다.



시 관계자가 밝힌 대로 “현재까지 100살 된 은행나무를 포함한 29주의 모든 은행나무가 100% 활착되어 잘 자라고 있다.” 기왕의 옮겨진 나무에 대해 제자리를 논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그리고 무조건 변하지 않고 제자리만 요구하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란 옛것 그대로의 간직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는 변해야 하고 더 발전해야 한다. 다만 그 변화에도 맥락이라는 것이 있고, 바로 그 맥락이 우리의 역사이자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전통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터. 그리고 발전이란 것도 결국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가능한 터.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가는 도시는 큰 맥락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너무 빠른 호흡으로 끼워 맞춰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결국은 지금 당장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만을 끼워 맞춰 놓고는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높은 빌딩에 기와만 얹어놓고 현대와 전통의 만남이라 칭하는 식으로, 혹은 역사적 맥락과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놓고는 미래지향적이라고 칭하는 식으로 말이다.

현재라는 시간도 곧 과거가 된다. 그것이 역사의 맥락에 접속하고 있지 않을 때는 미래가 아니라 곧 지워져야 할 시간의 부유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부디 은행나무들이 새로 자리 잡은 자리에서 나무의 호흡으로 오래오래 숨쉬기를 바란다.


mbn 아트 & 디자인 센터 맹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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