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1
[김산] 디자인과 죽음
tag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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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산(디자이너)

2009년의 키워드로 ‘죽음’을 꼽아도 이견이 없을 만큼 올해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는 슬픈 죽음이 많았다는 표현이 옳겠다. 어떤 죽음인들 슬프지 않으랴마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준 정치인과 연예인을 포함하여 연이은 자살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자살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일 것이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후의 진술인 것은 분명한데 한 해에 13,000명이 자살하는 한국 사회는 이런 일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억울하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그런데도 정작 들리는 이야기는 비정함 보다는 착함이다. 심지어 ‘착한 디자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잦아지면서 ‘디자인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가’ 라는 물음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질문은 디자인의 윤리적인 측면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웰빙 디자인 수준의 것에서 더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태도의 완곡한 표현 같다.


죽음을 재촉하는 디자인

얼핏 보면, 디자인은 ‘살림’과 가까우면 가까웠지 죽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디자이너라면 죽음과 우울함보다는 새로움과 참신함으로 차별화를 이끄는 미션에 더 익숙한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런데 이 사실을 뒤집어보면 적어도 기업을 위한 디자인은 (제품의) 죽음을 촉발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이전 것은 의도된 진부화에 따라 사멸한다. 이전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미처 그들이 깨닫지 못한 ‘필요’를 일깨워주는 새 것의 등장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 모진 프로그램을 견뎌내고 시대를 초월하는 명품으로 등극한 몇 가지만이 이베이(e-bay)에서 거래되고 있을 뿐이다. 제 아무리 혁신적이고 ‘엣지’있다고 한들 유효기간이 무척 짧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가서, 한강변에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을 세우고자 초라한 건물들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고수하려다 화염에 싸여 죽은 이들을 생각하면 디자인과 죽음은 정말로 가까워 보인다. 어쩌다 세금 들여서 진행하는 디자인사업이 슬픔 또는 죽음을 동반하게 되었는지, 어쩌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신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의 분노를 담은 현수막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디자이너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려 하지만 분명히 디자인 특수기와 관련된 것이니 마음이 무겁다.


당신의 관을 준비하라


미디어매틱(Mediamatic)에서 열린 ‘Ik R.I.P’전 포스터


‘Ik R.I.P’전의 작품 중 장례식에서 입관 전에 촬영한 인물사진

죽음을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전시에서 다룰 주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의 미디어매틱에서 열린 ‘Ik R.I.P’전은, ‘인터넷에서의 자기표현(Self-representation on the internet)’이라는 시리즈 전시인데, 세 번째 전시 주제로 ‘죽음’을 다루었다.

마치 생전의 모습을 찍듯이 죽은 사람을 기념 촬영한 등신대 크기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진짜 관에 들어가 보는 '죽음 연습'(test-dying)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관 뚜껑이 닫혔을 때의 표정을 사람들이 모니터로 볼 수 있다.)


‘Ik R.I.P’전의 전시장 전경


‘Ik R.I.P’전에 전시된 다양한 관들
photo by Kim Saan

다른 한편에는 가나인들이 죽은 자를 위해 만든 독특한 관을 보여준다. 어부였던 사람을 위한 물고기 관, 과일을 좋아했던 사람을 위한 파인애플 관이 있고, 미디어매틱에서 특별히 주문한 코카콜라 병 관, 나이키 운동화 관, 테디 베어 관도 있다. 가나가 아닌 한국에서 죽을 때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입관하는 것이 아니니, 아무래도 그런 관으로 장례식을 치를 가족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드라큘라가 밤마다 나사못을 돌리면서 나올 법한 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발랄한 상상이다. 전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평생 가져보지 못할 LVMH 무늬로 도배한 관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지만 죽을 때까지 짝퉁 논란에 휩싸인다는 것이 우울하기도 하고 좁은 땅에 매장하기가 어려운 국내 현실을 상기하면서 예쁜 항아리만 떠올려야 했다.


윌리엄 워렌(William Warren), ‘생을 위한 책장(Shelves for Life)’
ⓒ William Warren


‘생을 위한 책장’
ⓒ William Warren

관도 일종의 가구라면 가구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 워렌이 디자인한 ‘생을 위한 책장’은 관이 가구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워렌은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고 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으로 관을 만들지 말란 법이 있는가? 더구나 당신 가족이 관을 고르는 수고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혜진, ‘죽은 자들의 데이터 묘지(Virtual Gravestone)’
ⓒ Hyuh Jin Lee

이혜진의 ‘죽은 자들의 데이터 묘지’는 고인의 화장 유골 일부와 고인에 대한 정보를 담은 USB 묘비를 제안한다. 육신의 물리적인 최후 증거물에 데이터를 더해 놓은 것이다. 간혹 장례식이 끝난 뒤 홈비디오의 거친 영상에 남은 사랑하는 가족을 보면서 눈물짓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이 묘비는 홈비디오와 앨범의 디지털 버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발송 일정을 예약해서 마지막 할 말을 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낼 수도 있고 웹하드에 길이길이 자신의 고백 동영상을 남겨둘 수도 있을 것이다.  


ⓒ Hyuh Jin Lee


ⓒ Hyuh Jin Lee


디자이너의 마지막 프로젝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주인공인 정원이 죽음을 앞두고 몇 가지 준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계치에 가까운 아버지를 위해서 유성매직으로 또박또박 비디오 플레이어 작동법과 사진인화기 작동법을 적어둔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정 사진을 직접 찍는다.

매일매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 마당에 정원처럼 나의 생을 멋지게 마감할 방법이 없을까? 편집디자이너가 자신의 청첩장을 고민하듯이, 건축가가 자신이 살 집의 설계를 고민하듯이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장례식을 하나의 멋진 이벤트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있던 시청 앞 광장 주변의 노란색 물결은 붉은 색 티셔츠 이래로 한 가지 색이 지배한 가장 강렬한 사례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풍선이며 종이 모자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장례식이 하나의 마을의 하나의 축제였던 전통을 떠올리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삶을 위한 용기로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고, 디자인이 그런 장례식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면 정말로 ‘살림’의 디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이 부질없다면 디자이너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나의 장례식을 위한 안내장이라도 짬짬이 디자인해놓는 것은 어떨까?


관 뚜껑을 미는 힘

앞에 나열한 단상은 죽음에 대한 충격을 다독거리기 위한 말일 뿐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 2009년에 생각하는 것이 고작 세련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생명의 힘’을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관 뚜껑을 미는 힘’이란 바로 그런 바램을 담고 있을 것이다.

디자인이 죽음을 불러왔다고 믿고 싶진 않다. 더구나 디자인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디자인이 자신을 구하는 것이 급하다. 가을에 몰린 엄청난 규모의 디자인 행사들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 안에 있었고 그 안에서 신나는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물론 어느 곳에서든 착함과 녹색이 단골 메뉴로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린디자인이 하나의 보호막이 되어 디자인이 좋은 것임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린디자인(Green Design)이 아닌 푸르게 디자인하는 것(designing things greener)이 필요할 것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착하다는 말로, 녹색이라는 말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일에 헐값으로 디자인 능력과 지식을 상납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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