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에서 다시 의도를 추적해 보는 것'
결코 길지 않은 여행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곳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었고, 탐사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아,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해 부족했던 점이 많았다. 역사와 배경을 기반으로 탐사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했다. 나는 사전에 많은 정보를 알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시선을 가져야할지 솔직히 고민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것은 탄광지역에 관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한 간략한 정보였다. 확실히 들은 것을 상상한 것과 실제를 본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정선에 간 처음에는 평소에 하던 고민들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주제연구로 공부하려고 했던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상태였다. 하지만 정선에서 그 고민들을 이어가려고 했다.
정선에 도착해 정선을 돌다 보니 내가 도착하기 전 일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정선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 주변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낯선 환경이었지만 분명히 연관점이 있었다.
나는 '사라지는 것'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광범위할 수도 있는 주제다. 현재만을 담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라진 것’과 ‘사라질 것’ ‘사라지는 것’ 같이 말을 조금만 바꿔도 비슷하지만 다른 관점이 될 수 있다. 정선은 이 세 가지 관점과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곳에 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정선에 대한 사전 공부는 역사와 현재의 배경, 상황에 대한 공부였고, 실제로 가서 보게 된 것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풍경은 조금 아이러니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너무 다른 것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고리를 가진 것들이 외형적으로는 각각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북과 고한, 고한에서는 조금만 다른 길로 들어가면 또 다른 고한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본 것들은 양면성이 있었다.
동원탄좌는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으로하여금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는 과거가 보존되어 있었다.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상상한 것들이 단순히 '나의 느낌'에만 머물었던 것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동원탄좌는 그곳의 '기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직접 보진 못했지만 탄광의 모습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동원탄좌에서는 보존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의 탄광사업에서는 늘 '생존'에 대한 것이 상기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여주는 "절대 다치지 말자" 같은 표지판이나 글귀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한때 탄광사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장소가 갖고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비록 나는 동원탄좌에, 정선에 처음 발을 들인 이방인이었지만 '흔적'은 현재의 나와 그곳을연결해주는 매개였다. 나는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지금 내가 서있는 곳과, 그곳의 과거를 상상해보게 되었다.
흔적은 그렇게 조금은 힘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니까. 동원탄좌에서는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탄광의 역사를 반영한 기억들을 가지고, 많은 사건들을 지고 있는 그곳을 내 감상에 머물어 '무엇이다'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잠깐 머물고 온 그곳에 대해 함부로 무어라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만, 내가 그곳에서 가져온 느낌들을 조금씩 추적해 보면서 느낌을 느낌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잠시 보이는 것에 시선이 압도되어 '색'과 '길'을 찾아다니는데 열중했었다. 정선에서의 원초적인 색은 색 자체에서 강렬함이 있었으며 그런 색들이 한데 모여서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파랑이나 노랑, 주황같은 원초적인 색은 대부분의 시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색이었으며, 색에 대한 원인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에게 색은 '색'으로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은 산과 탄광지역이라는, 어쩌면 편견 비슷한 생각 때문인지 파란, 노란, 주황 색을 가진 지붕, 대문은 저절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첫 인상을 좌우할 수 있듯이 내가 본 정선의 첫 인상은 '색'이었다. 그리고 색은 고한과 사북, 장소의 느낌도 주었기 때문에 지금, 기억으로 떠올리는 고한과 사북의 이미지는 조금 다르다.
정선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동원탄좌, 카지노, 검은산, 고한과 사북의 마을. 모두가 한데 모여있다는 사실이 그런 아이러니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동원탄좌와 그 주변의 풍경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으며 어쩌면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았을 수도, 사라졌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 카지노는 새로운 개발지이다. 카지노만으로 그 지역을 본다면 탄광의 역사는 높은 카지노 건물에 가려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한데 모인 그것들은 '정선'이라는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마구 뒤섞인 느낌이다. 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있는 것들, 사라지려고 하는 오래된 것들, 검은산이 사라짐으로 인해 기억에서 조차 자취를 감추면 그것들은 어떤 풍경을 자아낼지 모르겠다. 장소와 함께한 기억의 보존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 지역에 대해 함부로 무어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느 곳에서나 기억의 잊혀짐을 안타까워 하는 것과 같이 그곳의 사라짐의 잔해들을 보면서 '기억'이나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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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 것에 있어서 ‘입장’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런 입장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선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너무 강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발을 들이는 나의 입장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카메라를 든 나로서는 정선에서 과거를 담은 흔적들을 단순히 찍는 다는 것에만 의미를 둘 수 없었다. 사실 단순히 이끌리는 것은 많았다. 그것들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도 쉬웠다. 그리고 그런 단순한 느낌에서 ‘사진을 찍자’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한 순간에 사진에 담을 것들의 관계를 의도하거나 관찰하는 것에서는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사진아뜰리에에서 들은 말 ‘사진을 찍기 전 구상과 현실의 풍경을 찾아 합치는 것’ ‘사진 속 관계를 관찰하고, 의도할 수 있는 것’은 인상에 깊었지만 쉽게 되지 않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할 지점인 것 같다.
정선을 갔다 온 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사진으로 담는 무언가를 지역, 시간, ..등 중점을 두려는 것과 연결을 시켜야 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정선에서 나의 사진은 내 의도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 사진으로 전부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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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은 기억으로 돌이켜봐도 조금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내 기억이 비록 주관적이겠지만.
내가 정선에서 가장 고민하게 된 것은, 하루 하루 내가 보는 것들이 나의 어떤 의도에 의해 내 시야에 들어올까 라는 물음이었다.
단순히 내가 본 것들이 '보이는 것에 압도'된 것이라면 그것을 추적하긴 어렵다. 내가 평소에 하고 있는 생각들을 구체화 시키는 것은 내 느낌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선에서 나는 내가 바라보는 것들, 사진으로 찍기까지 강한 인상을 받은 것들을 거꾸로 다시 추적해봐야 했고, 정선에 있지 않은 지금 역시 거꾸로 추적하고, 고민하고, 의도하고, 인식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강범위'가 아니라 '광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