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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버들 여행이 너무풍족하고 너무편했던것같아요. 이래도되나싶을정도로. 바쁜일정이라 어쩔수없었겠지만.. 그래도담엔기꺼이불편하고몸이더힘든여행을가고싶었어요. 고정희 시기행은 별로기대했던것만큼은 아니었어요.기왕이면시도써서서로나누는시간있었으면 좋겠다싶었습니다. 해남은 참 소나무가아름답고 바람이 아름다웠는데. 그리고 뭔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텐데. 일정때매 너무 훅 갔다 훅 오는 거 같아 아쉬웠어요 밀양은..그동안 막연히 송전탑은 전자파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걸로 진짜 밀양을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우리는 왜 같은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보다 바다건너 남의 나라 연예인에 더 관심을 가질까요. 다 분열되어 있었어요. 촛불집회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우리들이 서로 서먹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처럼, 밀양주민들이 별로 참석 안 했던 것처럼, 정작 전기쓰는 서울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것처럼, 모든사람이 가로막히고 분열되어있었어요. 동영상보면서 그게 너무안타까워서..8년전에있었던일이 이제야조금씩 알려진다는게 너무 원망스러워서..눈물이나왔어요. 우리는 뭣 때문에, 왜 분열되있는걸까요? 왜 남의고통에 무감각해져버린걸까요? 밀양의문제가,단지밀양만의문제가아니라대한민국사람들이,더나아가모든사람들이죄책감과책임감을느끼는문제가되었으면좋겠어요. 아 그리고, 저도 그렇지만 여행중에그날그날리뷰할때 우리너무말을아끼는거같아요. 담부턴 말조금씩하려고 노력해봐요 우리:-) 온 고정희기행은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이전까지는 여성주의 같은 것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도 없었고 어렵기도 했는데 이번에 기행을 준비하면서 고정희 시전집을 다시 읽어보면서 고정희가 꿈꾸었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고 이제껏 어렵다고만 생각해서 고정희의 시는 연시만 좋아했었는데 시인의 시 하나하나에 담긴 불 같은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반월시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정희를 사랑하고 매년 무덤가에 찾아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고정희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의 생가에서 좌담회를 했을 때, 한때 고정희와 뜻을 같이했던 친구들이 고정희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런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때라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저에게 고정희가 살던 때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라고 느껴지는데, 어느 시대이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고, 고정희의 친구들은 그런(고정희의)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네트워크학교 학생들은 이번 고정희기행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특히 저는 방도 작업장학교만 있는 방을 써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는 한마디?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밀양 시내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넓었는데도 관심을 가지거나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밀양의 문제인데 서울이나 타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런 외지인인 우리가 밀양을 위해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니면 밀양에 직접 내려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몸을 움직이면서도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인 것 같습니다. 이계삼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때에는 두 번째 듣는 이야기인데도 마음이 일렁였고 몇 번이나 울컥하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품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상님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는 언제나 가슴에 콕콕 박힙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나, 지금 이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나 어떤 만족과 감사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대흥사에서도 왠지 부처님께 무언가를 빌고 싶어서 빌기도 했고, 밀양에서는 '충만함' 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신상 이번에 고정희 기행을 갔을 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해남에 가서 편안하게 쉴 시간이라든지, 고정희를 생각할 시간이라든지 그런 시간들이 지난 기행들보다 별로 없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웠다. 항상 해남에 갈 때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냥 마음 놓고 있는다. 해남을 고향으로 생각할 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나에게 고향은 별 의미없지만) 답답하고 삭막한 곳을 벗어나 나에게 여유로움을 주는 곳이다. 이번에 조형 선생님, 조한, 박혜란 선생님의 얘기를 들은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사람, 친구'인 것 같은데 사실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을 몇 번 만나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은 나의 친구가 된다. 세 분의 선생님들의 관계 같은 내 친구들이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서 친구를 사귀지도 않는다. 나는 친구에 대해 잘 모르겠다. 나는 마음 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이른바 소울메이트(?))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가까운 사이의 친구들이 아닌 지금 우리가 친구라고 말하며 지내는 사람들 정도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그 세 분과 고정희 시인의 관계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TV나 인터넷에서 말하는 '친구'가 딱 저 네 사람을 말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매우 가까워 보이지는 않지만 편안해 보인다. 세 분의 얘기를 들을 때는 사실 얘기에 대해 듣기 보다는 그냥 세 분의 모습에 더 눈이 갔다. 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분위기 인지. 평소에 친구, 만남, 인연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이 기분이나 생각을 정리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정리하지 않은 채 그냥 느낀 채로 남을라 했지만, 조금의 정리는 필요한 것 같다. 천천히 정리해보고 싶다. 밀양에서는 조한이 하신 말씀이 가장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도 '품격'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품격있게 투쟁 하자는 얘기. 합창단 등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조한의 말이 간단해보이면서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뭐였을까? 아무 생각 않고, 한전이 거는 싸움을 그에 비슷한 레벨의 싸움(자신을 힘들게 하는, 폭력, 소리)으로 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한은 거기서 싸움의 방법, 방식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고통, 피해들을 당해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바꾸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밀양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을 높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됬다. 계속 조한 말을 듣게 되면서. 서울에서 밀양 기사만 끄적이면서 페이스북 좋아요만 누르는 것이 아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여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왠지 모르게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 이번 밀양에 가서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벗아 인연이라는게 굉장한 것 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고정희 시인은 자신이 죽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거라는 것을 아셨을까? 여전히 세분의 선생님들이 매년 자신의 친구를 찾는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다. 이토록 꾸준히 친구와 친구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수도있지만 이제는 단순히 고정희시인을 기리기 위함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22년간 찾아가는 해남이 이제는 그분들에게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히옥스가 말씀하신 고향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내가 느끼는 나의 고향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곳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추모제에서 이런 말을 들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지만 조한이 말씀하신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람과 만나라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많은 인연을 쌓아가다보면 꼭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서가 아닌 만남들을 통해 언젠간 나도 내가 고향이라 느끼는 곳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을 가기전에 페이스북을 하다가 어떤 사진에서 할머니들이 웃옷을 벗고 젊은 남자 경찰들 앞에 서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그 사진을 보고 무슨일이길래 그러실까? 이게 도대체 언제적 사진이지? 얼마나 급박했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밀양 어르신들이셨고 불과 몇일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충격받았다. 그러고나서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댓글들을 보게 되었는데 호감이 많이 눌린 댓들을 보면서 정말 이사람들은 평생 밀양 어르신들을 욕하면서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계삼 선생님이 말씀하신 정치와 언론의 파급력은 엄청나다는게 그런거였구나. 동영상을 보는데 '한전은 경찰보호 아래 공사진행' 이라는 글을 보고 도대체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누군데 한전을 보호하고 있나. 절대 권력인 국가와 싸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이지 않은 밀양 어르신들을 보면서 대단한 분들이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청춘을 다부은 자신의 고향 땅에서 8년간의 싸움이 이제서야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싸움이 무의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내 자신도 정말 이계삼 선생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돌아가서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훈제 고정희 기행은 우정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놀고 만나는 그러한 것이아닌 만나지 않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를 생각하면서 힘이 될수도 있고 지지할수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단지 묘에가서 추모만 하고 있다가 오는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노래도하고 같이 먹을것을 나눠 먹으면서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이란 것이 죽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 사람을 기억해주는 사람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양은 촛불시위를 하였을때 밀양 시민들의 관심이 너무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멀리있는 문제가 아닌 바로 자신앞에 직면해 있는 문제인데 그러한 것 들을 외면하고 신경쓰지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8년간 1주일 마다 한번씩 시위를 하고 시도때도 없이 산에 올라가 자신의 마을을 지킨다는 것이 쉽운 일들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농사를 하는데 농사는 시기가 정말 즁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한턴 농업이 바로 자신의 생계와 직관되는데 생계를 재껴두고 한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결심과 심리적 불안감 압박들을이 따라 올거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것은 농활을 한다던가 시위를 하는 도움도 있지만 우리가 가서 밀양에 싸움은 그들만에 싸움이 아닌 우리들도 같이 생각하고 그들만에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할수있게 심리적인 도움을 줄수있다고 생각하였다. 까르
선호 해남으로 내려가는길에 수많은 송전탑을보면서 최근에읽은 디자인팀 선정도서 <초조한 도시>에서 표현한대로 거대하고 괴물같은 것에 지배 당하는 것과 같고 저것을 만든 것이 인간인 걸까 싶을 정도로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것이라는 걸 살짝느꼈다. 밀양에만 백개가 넘는 송전탑이 주르륵 놓일 계획이라고 했는데 이미 있는 송전탑들을 보고 있으면 백개가 넘는 수가 더 생긴다는 사실에 뭔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얼마나 더 생겨야 하는걸까? 하는생각에. 송전탑이 세워진 주변지역을 지나니 모내기를 하는 밭들과 새들과 풀. 산 등이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직접 일을 하면선 느낀 적 없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논도 모내기를 하고 있는 것과 이미 했지만 얼마 되지 않은 곳, 그리고 그곳보단 좀더 자란 논 등 이렇게 다양한 것이 조화로워서 인상적이었다. 해남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조형선생님 조한 박혜란선생님 그리고 고정희시인의 큰 올케님의 토크쇼? 였다. 분위기도좋았고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고정희시인이 존경할 만한 분이구나 싶었고 위인전이나 기념관없이 친구들의우정으로 직접적으로 기억되고 그런것이 대단하다. 고정희시인과 잦은논쟁을 하는얘기들도 재밌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는데 어케 그렇게일찍 집을사셨을까? 낮에는 사람들만나서 대화하고 밤에 글을썼다는 얘기도 재밌었다. 그런얘기들이.. 이 사람을 기억하고 알려야돼!하는 치열함이 없는데도 선명하고 즐겁고 그렇게 전해졌다. 치열함 대신 있는게 우정인가보다. 밤에는 노는 공용방을 마련해준 것이 좋았다ㅎㅎㅎ 이때가 계기가 되어 청소년준비위원회를 인식하고 비노한테도 많이 물어봐서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게됐다. 그리고 자기 전에 비노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학교생활 같은 것에대해서.. 다음날에 대흥사가 정말 좋았다. 나한테는 불화와 불화를그리는 초의선사의 절로 기억될것이다. 예전부터 탱화에 관심이 좀 있었는데 탱화까지 아우르는 불교미술을 지칭히는 단어가 불화라는 것도알게되고, 초의선사와 그 제자들의 그림들이 참 좋았다. 관음전이라는 곳에 가득한 그림들은 최근 그린 것 같은데 화려하고 그래픽적이라고 생각되서 신기했다. 그다음엔 밀양에 갔다. 너들마당이 우리의 숙박장소였는데 대책위사무실에서 잔다는사실이 감흥이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생활하고 회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영남루에서 106회째되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밀양시민들이 수가 좀 있었다. 나를 포함해 작업장학교는 좀어색하고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집회의 사회를 보셨던 분이 목소리가 익숙했는데 아마 전에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인데 궁금하다. 전문가 협의체의 활동이 시작된지 10일이 넘어가고 30일을 기다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결과란 765송전탑공사가 잘못된 일이며 할머니할아버지들에 대한 인권탄압이 인정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진대 다음날 이계삼선생님의 강연에선 그게쉽지가않다고한다. 이미지어진원전과 공사중인원전들 전기를 못보내면 어떻게할거냐 그 막대한 피해 책임질 거냐 하는 질문에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촛불집회에선 소리하시는 분의 실력이 대단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즐기실 수 있는 컨텐츠들이 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시위의 본질이 흐려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준비를 더해가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단순히 정기집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금 밀양엔 일꾼들과 실력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7년의 시간을지나 이제는 뉴스에 보도되는(님비라고소개되지만.) 밀양이지만 그래서 이제부터 시작인 건가 싶었다. 전도연이나 이창동감독은 한전에 반대한다고 입장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기나긴 싸움이지만 그때마다 지금이 무엇이 필요한 상황인지 판단하는 이계상선생님이나 대책위의 사람들같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놀라웠다 감동이었다 신기했다 이런표현으론 부족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라고생각한다. 이계삼선생님이 보여주신 비디오는 전에 본 적 없던것인데 보면서 여러번 울컥했다 울진않았지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많이전해주셨다. ....그밖에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이만줄인다. 꼬마 새롭게 알게 된 시인과, 처음으로 간 죽은 시인의 마을로의 여행. 고정희 시인에 대해 듣고, 알고. 그리고 시인이 살던 마을로 여행을 갔다. 생가도 가보고 무덤에 가서 함께 시인이 좋아하셨던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노래를 함께 불렀다. 또, 우리는 각자 시를 읽어보고 마음에 닿는 시를 찾기도 하고, 공유했다. 시인의 친구를 만났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인의 모습과 했던 일들. 생각들. 모든 것을 다 듣진 못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 여행이 나에게 어떻게 남을까 궁금했었다. 모든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에 나에게 남았던 단어들은 친구, 죽음, 기억. 이였다. 친구란 건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내가 죽고 나서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는 있을 것이며, 그 친구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것들. 고정희 시인은 많은 시를 남겼고, 많은 글을 남겼다. 내가 죽고 난 후 무엇을 남기게 될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해결하지 못한 체 간 여행 이였고, 그 여행에서 모든 것을 조금 내려놓고 편하게 있다가 결국 더 복잡한 것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한 번 쯤 생각해보아도 좋은 죽음 이란 것을 그리고 내 곁에 많지 않았던 죽음 이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두 번째 여행에선 또 어떻게 남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혼자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찾는 곳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남루 촛불문화제가 106회째가 되어간다. 106회쯤 되어서야 신문에 밀양에 대한 기사가 나고 밀양 주민들은 고마워한다. 그리고 지금도 무관심한 밀양 시민들이 있고 그들에게 주민들은 외치고 있다. 밀양 시민 몇몇은 이게 대체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당황했었고, 함께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공연을 하고 촛불을 들었지만, 정작 밀양의 할머니들께 인사 한 마디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송전탑이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고, 한전 측이 저지른 만행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알진 못하지만 밀양 주민들이 겪은 지난 8년간의 일들을 알았다. 물론 알았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알고 나서의 행동과 해야 할 일들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도 물론 알아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주님 아직까지는 시를 읽으면서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좋다고 생각한 적은 많다.) 작년 고정희기행때 누가 이야기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고정희시인을 사랑한 사람을 사랑해서 고정희 시인을 알고, 기행을 오게 됐다는 이야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럴 수도 있나? 싶었는데 조한,조형,박혜란 선생님을 보면서 아직 고정희 시인이 매우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고정희 시인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젊었을 때 같이 꾸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구를 매년 찾아오는 것, 무덤에 하모니카를 들고 오고, 아직 고정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시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들말이다. 어떤 시인의 시를 읽고 책상 앞에서 그 사람을 추모할수도 있지만 시인의 고향과 생가를 찾고 자취를 밟으면서 느껴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고, 그래서 시를 많이 읽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됐다. (근데 아마 그런 시나 시인이 생기려면 한참 걸릴 거 같다) 기억에 남아 메모해뒀던 것은, 조형선생님의 한사람사람과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관계를 지키는 힘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밀양에서는 106번째의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106번째면 2년이 넘는 시간이다. 2년이 넘는 시간의 집회가 밀양 시내의 사람들에겐 무엇이고, 또 서울의 사람들에겐 무엇일까. 밀양엔 8년이 넘는 긴 싸움의 시간이 계속 되고 있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싸움은 언제나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일어나왔었다. 내가 할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일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갈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히옥스가 말했던 것과 이계삼 선생님 이야기들을때 마지막에 대안교육연대의 어떤분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이때까지 어떻게 공부했고 무엇을 보아왔는지 돌이켜봤다. 난 이때까지 개인적인 일들을 고민하고, 내 행복을 찾는 일에 집중해도 그게 쉽게 허락되는 사람들 옆에서 커왔는데 그런것들때문에 보지 않고 지나친 것들이 있진 않았을까. 사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난 이때까지 두개가 다른 관점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었지만 (둘 다 존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익숙해져있는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었던 것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직접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든다 핑두 이번엔 고정희시인을 만난시간이 작년에 비해 짧아서 조금 아쉬웠다. 작년에 해남에 처음가서 경상도지역의 시를 읽고 쓰길 좋아하던 소녀들을 만났던 것도 생각났다. 대부분 지금은 대학에 적응하여 지내는것같던데 그들에게 고정희 시한편 보내주어야지 했다. 그 누구보다도 여행내내 시를 보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사람은 고정희 시인을 무척좋아하는 나의 소중한 친구인데 고정희시인의 친구들이 말하길 자신들은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서로가 떠오르면 애틋하고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사이랬는데 그친구가 떠오르더라. 고정희시인의 무덤가에서 내가 죽고 난뒤에도 몇해가지나도록 매번 찾아와 이런저런얘기를 하고 노래와 시를 읽어주는 그런 친구를, 살아있는 시간속에 드문 생각나버린 친구를 사귄다는것을 생각했다.. ㅇㅇ 이번 여행은 작년의 기행때의 만남도 다시생각하고 그로부터 흘러온 시간도 실감했고 친구들의 증언으로 고정희 시인의 성격도 상상해볼수있었다. 또 시인의 무덤에 모인 여자어른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각각의 자리에서 뭔가를 만드는 여자들이 좀 멋있게 느껴졌다. <페미니즘>이란 책을 읽고있던 중이라 더욱이 여성운동이 있었을 70년대의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싶었던거같다. 하록 고정희시인 무덤가에서 노래를 부를때 눈부셨던 햇살이 한장의 사진처럼 인상깊다. 여러명이 함께 한기타연주, 잔잔한 노래,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는 고정희 시인의 친구,동료선생님들... 여유로운 분위기가 편안했고 따뜻했다. 고정희 시인은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겠지. 난 고정희 시인의 시를 통해 이야기 했다는 페미니즘, 여성의로써의 삶...등등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아직 시인의 시를 다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기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고 읽었던 시를 다시 읽었을때 처음과 다른 느낌, 더 많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고정희 시인의 시는 여유있게 다가가보고 싶다. 해남의 공기, 햇살, 공간, 느낌을 떠올리면서. 밀양의 급박했던 상황이 40일간의 어느정도 안정된 시간을 갖게 되고 밀양을 찾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는 소식들이 굉장히 처절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농활을 하진 못했지만 촛불문화제에 참여할 수 있어 기뻤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마을이 있고 송전탑이 들어서지 않는 밀양의 마을이 수십개가 있다고 했을때 송전탑이 들어서지 않는 밀양의 마을 주민 사람들은 송전탑에 큰 관심이 없는 걸까? 밀양 내부에서도 송전탑 반대운동이 큰 힘으로 합쳐지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이계삼 선생님의 말씀에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으로 하고 계신것 같았다.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 송전탑을 함께 막아보겠다는 선생님의 생각을 정말 응원하고 싶었다. 영상은 감정을 건드리는 그런 영상이었다. 그야말로 밀양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대체 국가권력이란 어떤 것이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란 무엇인지, 할 수 있는것인지.. 개인, 마을의 삶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가 정말 올바른 사회인지... 무서웠다. 조한의 말씀도 인상깊었다.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밀양의 처절함, 불쌍함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아니고, 할머니들이 혹은 할아버지들이 밀양에 터전을 가지고 살면서 가져온 dignity를 보여주는 것. 난 어려서 귀촌을 해서 도시사람들이 농촌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굉장히 불쾌한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밀양의 경우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송전탑을 죽기살기로 막는 일이 처절하게 보일지언정 농촌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밀양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고 있고 긍정적인 방향이 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영상을 통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번 여행을 통해 한켠에 더 크게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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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에 메일을 보냈는데, 문제가 있었나 보네요. 댓글로 답니다. )
푸른
고정희시인을 만나뵈러 갔을 때에는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준비시간이 적어서 노래와 기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고, 시도 다른 해보다 많이 읽지 못하고 가서
충분히 기행을 잘 하고 왔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올해 들어서는 시를 훨씬 덜 읽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고정희 시인의 오래된 친구이자 이제 할머니가 되신 세 분의 이야기에서는
서로의 다름, 각자가 느끼는 서로의 좋아하지 않는 점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그러면서도
절대로 일에 개인적인 감정을 섞지 않았다고 말하시는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요즘의 관계에서는 잘 보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 저에게는 어렵고, 어색할 것만 같은 상황인데
동인분들은 그렇게 서로 달랐지만 일을 잘 만들어 나가셨단 부분들은 배우고 싶은 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 번째 가는 기행이다 보니, 올 해에는 시인께 자연스럽게 " 저 또 왔습니다, 내일은 밀양에 가요." 같은 말걸기도 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홍조같은 다른 분들을 보며 저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겠지요.
고정희 시인이 저에게 어떤 존재인지 아직 제대로 말할 순 없지만,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생전의 시인의 생각을 만나고,
네트워크 학교 죽돌들과도 꽤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서 역시 좋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시인을 이해하려면 좀 더 많은 시를 읽어봐야 하겠지만요. (참, 그제 까르가 나나에게 했던 질문에 나도 답을 하자면
올해 새롭게 보게 된 시는 " 아우슈비츠.2 -심판의 날을 거두소서". 개인적으로는 밀양도 생각나고, 요즘 하게되는 생각들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밀양으로 넘어오면서는 역시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지고 계신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리뷰할 때에도 이야기 했지만, 공사가 강행될 때에 안타까운 마음은 커지는데 페이스북 좋아요나 공유 가 너무 작은 일처럼 느껴지고, 법이나 움직이는 시스템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참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개인으로는 즉각적으로 국가의 일에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고 그래서 그 힘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느꼈어요. 이런 부분이 바뀔 순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기도 하고,
밀양도 후쿠시마처럼 앞으로 더 자주 살펴보고, 생각해보게 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을 지킨다고 하시는 할머니들의 마음, 유지하고 싶었던 삶의 모습, 한전이 밀양을 흔들어 놓은
그 체계적인 방법들과 마을 밖 사람들의 반응 모두 생각해볼만한 것들인 것 같아요.
뚜렷히 정리되지는 않지만, 어쩌면 앞으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