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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권력은 누가 갖고 있는가?
'국민 여러분들의 충실한 일꾼이 되겠습니다'라고 많이들 하면서 상위의원으로 선택되면 일꾼이 주인을 덮쳐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라고 써있는데 말이다. 나라는 진행하고 추진하는일에 국민이 동의가 있어야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특정다수가 권력을 쥐고 힘을 행사하는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만 나에게 있어 '나라'의 틀은 너무나도 방대하다. 근데 대통령이 혼자 초안 내놓고 결정하는게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논의해서 결정하는거일텐데 이상하게 그 주변은 그렇게 넓지 않다. 수용할 수 있는 의견의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 따라서 시민이나 나는 어떠한 의견도 반영된지 않은 체로 진행되는건가? 나는 4대강 살리기에 반대를 표하는데, 국가는 나의 의견과 상관없이 살린답시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디자인 서울인지 Green서울인지 뭐시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컨셉에 사로잡힌건가) 뭘 계속 다시 만드는데. 이래서 정말로 Happy 서울이 되는건가? 누가 행복하고 누가 4대강을 살릴 것인가? 어떤 누가 이 사태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는 말인가? 우리는 어떤 특정 다수가 가진 권력에 어떻게 내 의견을 첨가 할 것인가? 소수가 아닌 어떤 무리수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돌봄' 홍성태 선생님은 '돌봄'의 대해 쉽게 예를 하나 들어주셨다. [어머니가 완벽하게 권력관계를 쥐고 있지만 주체 없는 아이의 개인에 존중을 줌.] 나는 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으며 자라왔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 권력'을 싫어하시고 나를 아들이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해주셨다. 아주 기본 적인 틀을 제공해주고(생활리듬과 어릴적 부터 깊이 새겨두고 싶은 문화와 행동들) 나를 그 속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셨다. 물론, 그 틀의 울타리를 넘고 들어오고 하는 것은 나의 자유였다. 나는 이 루트로 쭉 대안학교까지 거치게 되었다. 나는 저 돌봄의 개념이 사회에도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회가 완벽하게 권력관계를 쥐고 있지만 주체 있는 시민들에게 존중을 준다면? 지금의 사회가 시민들의 말에 귀를 귀울인다면, 지금은 4대강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포커스를 조금만 넓게 잡는다면, 4대강 말고도 분명히 보일 것이 많을 것이다. 더 이상 [법의 이름]을 대표해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 근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말하는데 이것이 사회에 어떻게 닿을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대 홍성태 선생님의 옛 시절은 보수세대라고 칭했다. 의사와 교수와 정규직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익을 쫓는 세대. 그런데 홍성태 선생님은 우리 세대를 [욕망 분출세대/자율세대]라고 하셨다. 뭐 그 얘기를 나오면 서태지는 뒤에 따라오는 당연한 꼬리인 것이고. 나는 보수세대가 아닌 자율과 욕망의 분출세대다. 그러나 나는 모순된 행동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드러나지만, 실패를 염두해 두고 움직이기 보다는 어느 것이 보장되어야만 움직이는 편파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면 이것은 욕망의 분출도 아니고 자율도 아닌 이것은 보수세대가 기대하고 있는 자율세대에 대한 이탈적 행동이 아닌가싶다. -실천 속에서 나오는 말을 하자 계획의 진가는 실천에 달려있다. 경험 속에서 나오는 말은 좀 더 신빙성 있고 더 힘이 있으며 사실적인 사례를 제공하여 이해에 돕는데 좋은 것 같다. 방금 꺼낸 이 말은 계획이니, 다음에 쓸 때에는 경험속에서 나온 얘기로 만들자. ![]()
2009.12.08 08:11:29
대통령이나 법이 국민의 의견과 상관없이 일하지 못하도록
3권분립의 체계나 법의 중립에 대한 개념과 상식과 신념체계가 있는 것인데 그것들이 지금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대통령과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수준의 장악과 또 그런 흐름에 무릎을 꿇는 (전엔 이럴 때 '권력의 시녀'라는 표현을 썼는데) 국회나 정부, 그리고 법관들이 다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적어도 '언론의 자유'가 네가 말하는 '대화'의 통로였을 텐데,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이 또한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지. 뭔가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난 토요일, 물길의 PPT자료 가지고 얘기하면서 생각한 것인데 정보에 대한 사용자운동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체로 작업장학교에서는 생산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저작자로서 창조적 공유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CCL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리는 사실 저작자일뿐 아니라, 사용자이기도 하잖니? 그래서 사용자로서의 정보사용에 관한 새로운 운동 - fair use 같은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러다보면 어쩐지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갖게 되었고 물길의 PPT를 계기로 그런 얘기도 나눠보고 싶다. 현재의 법체계가 닿지 않는 새로운 장소에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 과연 어떨지? 함께 해보겠니?
2009.12.08 13:48:41
권력의 시녀라.. 적합한 표현이네요. 요즘날 판사님들은 국민들의 말에 귀를 연다고 하셨습니다. 허나 자신의 판단이 아닌 구성된 법에 의하여 판단을 내린다면 판사님들의 생각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까요? 어떤 세상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니 만큼..(아, 그 판사님이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이런 얘기를 물어 볼 수 있었을껄..) 판사님들은 미디어 법의 효과를 알면서도 통과 시키고 싶었을까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법이 그 결정에 작용한 것일까요?
[현재의 법체계가 닿지 않는 새로운 장소] 허... 나의 상상력으로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군요. 법체계를 넘는다는 것이 새삼 거부감이 드는데 저도 어느 순간 '법'이라는 단어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요.. 물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환경이 생긴다면 같이 해봐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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