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누가 갖고 있는가?

'국민 여러분들의 충실한 일꾼이 되겠습니다'라고 많이들 하면서 상위의원으로 선택되면 일꾼이 주인을 덮쳐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라고 써있는데 말이다. 나라는 진행하고 추진하는일에 국민이 동의가 있어야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특정다수가 권력을 쥐고 힘을 행사하는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만 나에게 있어 '나라'의 틀은 너무나도 방대하다. 근데 대통령이 혼자 초안 내놓고 결정하는게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논의해서 결정하는거일텐데 이상하게 그 주변은 그렇게 넓지 않다. 수용할 수 있는 의견의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 따라서 시민이나 나는 어떠한 의견도 반영된지 않은 체로 진행되는건가? 나는 4대강 살리기에 반대를 표하는데, 국가는 나의 의견과 상관없이 살린답시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디자인 서울인지 Green서울인지 뭐시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컨셉에 사로잡힌건가) 뭘 계속 다시 만드는데. 이래서 정말로 Happy 서울이 되는건가? 누가 행복하고 누가 4대강을 살릴 것인가? 어떤 누가 이 사태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는 말인가? 우리는 어떤 특정 다수가 가진 권력에 어떻게 내 의견을 첨가 할 것인가? 소수가 아닌 어떤 무리수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돌봄'
 
홍성태 선생님은 '돌봄'의 대해 쉽게 예를 하나 들어주셨다.
[어머니가 완벽하게 권력관계를 쥐고 있지만 주체 없는 아이의 개인에 존중을 줌.]

나는 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으며 자라왔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 권력'을 싫어하시고 나를 아들이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해주셨다. 아주 기본 적인 틀을 제공해주고(생활리듬과 어릴적 부터 깊이 새겨두고 싶은 문화와 행동들) 나를 그 속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셨다. 물론, 그 틀의 울타리를 넘고 들어오고 하는 것은 나의 자유였다. 나는 이 루트로 쭉 대안학교까지 거치게 되었다.

나는 저 돌봄의 개념이 사회에도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회가 완벽하게 권력관계를 쥐고 있지만 주체 있는 시민들에게 존중을 준다면? 지금의 사회가 시민들의 말에 귀를 귀울인다면, 지금은 4대강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포커스를 조금만 넓게 잡는다면, 4대강 말고도 분명히 보일 것이 많을 것이다. 더 이상 [법의 이름]을 대표해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 근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말하는데 이것이 사회에 어떻게 닿을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대

홍성태 선생님의 옛 시절은 보수세대라고 칭했다.  의사와 교수와 정규직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익을 쫓는 세대. 그런데 홍성태 선생님은 우리 세대를 [욕망 분출세대/자율세대]라고 하셨다. 뭐 그 얘기를 나오면 서태지는 뒤에 따라오는 당연한 꼬리인 것이고.

나는 보수세대가 아닌 자율과 욕망의 분출세대다. 그러나 나는 모순된 행동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드러나지만, 실패를 염두해 두고 움직이기 보다는 어느 것이 보장되어야만 움직이는 편파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면 이것은 욕망의 분출도 아니고 자율도 아닌 이것은 보수세대가 기대하고 있는 자율세대에 대한 이탈적 행동이 아닌가싶다.

-실천 속에서 나오는 말을 하자

계획의 진가는 실천에 달려있다. 경험 속에서 나오는 말은 좀 더 신빙성 있고 더 힘이 있으며 사실적인 사례를 제공하여 이해에 돕는데 좋은 것 같다. 방금 꺼낸 이 말은 계획이니, 다음에 쓸 때에는 경험속에서 나온 얘기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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