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예술? 대중적인 예술?

"나의 예술을 공짜로 보여줄 생각은 없습니다. 누가보면 돈 밝히는 아티스트로 보시겠지만 이것은 공짜로 예술을 하는 작가들의 대한 대안입니다. 받은 금액에 대한 값어치를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기본입니다."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이야기를 자꾸 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녀는 인도의 에세이작가/소설가이지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은화화 되어 자신의 심장마저 그렇게 만들어 버릴 것 같다는 표현을 했으나 민욱은 그에 상반되는 표현을 했다.

얼마 전  김승범, 정혜진 제너럴 닥터 두분이 오셨을 때도 "돈을 받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하는거죠" 라는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허나 이것이 나에게 위험한 것은 자칫 정말 값어치에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자세가 될지 모른다. 어떤 예술가의 위치가 정착된다면 자신의 값어치는 인정되어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음악은 꼭 돈을 주고 받지 않아도 생각보다 단순하게 오고 갈수 있다. 음.. 어느정도 선이 있어야겠는데 말이다. (공짜예술을 나로 예를 들자면 거리공연, 자선공연인가?)

민욱은 자신의 예술을 대중에게 맞출 생각은 없다고 하셨다.(실로 몹시 tough하시다.)대중적인 예술이 존재할까? 그것도 하나의 의문이 든다. 만약 대중에게 맞추는 예술이 있다면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는 것을 얘기하는가? 그런데 나는 그건 반대다. 만약 알기 쉽게 표현하는 대중예술이 있다면? 예술가는 이상적인 부분 너머를 상상하고 그것을 끌어내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의 힘이 약해진다면 예술의 힘은 약해지지 않을까? 또한 예술을 대중에 맞춘다면, 이것은 금전적인 일과 연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민욱은 대중에 맞출 생각도 없고 공짜예술을 할 생각도 없으시는게 아닐지 추측해본다.

-내 애기(타이틀 제목이 좀 이상한데..)

만약 나에게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아이의 미래와 가정의 생계를 위해서는 나는 포기할수 없는게 있다. 자신은 나의 아이를 위하여 계속 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이 상황을 빗대어 비유하자면 나를 어떻게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고보니 나에게 정말 확고하게 지키고 싶다는 신조 하나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한 계기나 사건이 없어서 그런걸까? 내가 투신해서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디자인은 정보를 포장해서 주는 것

이것은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그렇다면 음악과 영상은 무엇인가? 나는 음악에 무엇을 포장해서 줄 것인가? 우리가 포장한 것에서 상대에게 무엇을 상상하게끔 만들것인가?

-실험과 시도

실험
(實驗) 
- 실제로 시험함. 
- 예술에서, 새로운 형식이나 방법을 시도하는 일.
¶ ∼ 연극.

시ː도
(試圖)
무엇을 이루어 보려고 계획하거나 시험 삼아 하여 봄.
¶ 온실에서 난(蘭) 재배를 ∼해 보다.

예술은 완성에 완고한 목적을 두지 않고 그 과정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완성품이라고 생각한다. 실험과 시도는 많은 발명가들이 하는 얘기이다. 실제로 예술가들도 무엇을 발명하지 않나? 이 이야기를 미루어 보았을 때 분명히 예술가들도 실패를 염두해두고 행동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일단은 행동이 우선시 되는 멋진 직업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염두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은 언제나 초대 받을 수 없다

소위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야"라고 불리운다. 월소득 10만원 미만이 되기도 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민욱이 지금에 와서 이곳 저곳에서 초대를 받는 것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참여하려고 하는 것에서 거절을 당하는 일도 있다는 것은 예술은 언제나 초대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 적합하지 않다면 문전박대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흠..

-우리가 예술을 왜 묻는가?
 
예술가에게 예술은 무엇이냐고 질문이 할 때는 무엇을 바라는건가?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조금 더 확고한 정의를 바라는 것인가? 한번쯤 예술에 대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쉽게 예술을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임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각기다른 정의를 가진 상태에서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유익하다고 보다.

하자에서 다루고 있는 매체도 예술 분야에 속하는데, 우리는 왜 예술과 예술가를 되묻을까? 확고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워서 그런가? 사실 누구나 그런 것 아닌가? 우리는 [~에게 ~는 어떤의미인가?]를 자주 얘기를 하면서 예술에 대한 자기정의를 내리는 도전은 어려운걸까?  나도 아직은 예술은 무어라 하기 어렵지만 예술가는 이상적인 부분 너머를 상상하고 그것을 끌어내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난 아직은 [예술가]라고 하기보다는 [예술바라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민욱을 위해 만든 작품은 예술이 아니었나? 각기 다른 뜻이 있고 표현되었다.그럼 예술에는 무엇이 첨가되어야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난 아직 그들의 복잡한 회로를 이해 할 수 없다.

많은 죽돌들이 민욱을 보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도 그중 하나다. 나는 아직도 예술가의 복잡한 회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민욱은 예술가이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매체로 얘기를 하는데, 매체를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말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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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 한강퍼포먼스는 광주비엔날레나 선재 아트센터에서 했던 것보다 비교적 널리 알리지 않은 상태로 진행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날의 예술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했던 건가요?

A, 그날은 저의 공연에 의식된 관객과 의식되지 않은 관객이 뒤섞인 오묘한 관계속에서 Performance는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2Q, 저에게 서울은 익숙한 장소라서 어디가 어떻게 흥미로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하자작업장학교는 정선에 다녀왔는데 그곳에 온 James Harris라는 사진작가도 '한국은 작업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민욱에게 한국은(혹은 서울은)
어디가 어떻게 흥미로운건가요?


A, 서울은 빠르게 변화하고 뭐가 계속 생기거나 사라지고 없어지고 다시 발생하죠. 그것을 너머 한국을 지적하기도 하고 그 지적의 대상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 많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이상하게 이렇게 많은것들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정작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거죠. 이상하지 않나요? 내가 예민한게 아니라 다른이들이 지나치게 무감각한거 아닌가요?

3Q, 오시기 전에 작가의 데뷔와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진출 해야 할까요? 저는 대안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과정도 대안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대학교나 일반학교를 거부한체로 말이지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아직도 대학교의 학력을 인정합니다. 저는 그 길이 아니고 대안적인 길로 해결하려고 왔는데 막상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저는 매우 두려워하고 갑자기 공부를 시작해 대학교로 갈 것만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안적으로 진출 할 수 있을까요?

A, 아직 아무것도 안 해보셨죠? 그럼 알 수 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 상태에서 돌아다녀보고 실패를 염두해보며 도전해보세요. 그것은 해보면 압니다. 그리고 때는 옵니다. 두려워 마세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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