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문화 워크숍 리뷰>


홍성태 時인 <시대 읽기와 삶 읽기 :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점잖지만 호쾌한 모습으로, 긴장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목소리로 시작된 강의는 끝까지 유유히 흘러갔지만, 강의 내용은 절대 ‘유유’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때로는 갑자기 툭툭 던져지는 정치적 메시지가 미소를 머금게 했다.

<Dr. Strange love>는 나의 첫 영화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영화다. 주니어 2학기 말, <소녀에겐 가장 중요하지만 그 소녀에겐 반복되는 어떤 이야기>를 찍고 나서 내가 시나리오를 쓴 내용들이 매우 극단적이고 암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거나 과하게 심각해지기보다는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영화 초반부터 말까지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물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소녀에겐~> 말고 다른 시나리오도 있었다. <네 가족의 네모난 식탁(가제)>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가족 안에서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아버지(가장)가 4위, 장남이 3위, 어머니가 2위, 장녀가 1위인 서열로 한 가족의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블랙코미디로 연출했다. 하지만 컨셉이 흔하고 이야기가 너무 차분하게 진행되고, <푸콘 가족>을 패러디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그 때는 <푸콘 가족>의 존재를 몰랐다) 잠시 등 뒤로 제쳐뒀다. 그 뒤 접하게 된 영화가 <Dr. Strange love>이다. 1인 3역을 했다는 것과, 스텐리 큐브릭감독이 짧은 시간동안 순발력이 매우 많이 가미된 연출을 했으며, 블랙코미디의 진수라고 불릴 정도로 완벽한 구조를 자아냈기에 극찬을 받은 영화다. 내가 영화에서 보고 가장 크게 마음이 찡했던 건 결말이다. 영화 내용은 상대 나라에서 핵(혹은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루머를 듣고 정상회의를 소집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하는 게 전부인데, 마지막에 결국 이 나라는 핵무기를 투척해 지구 전체가 큰 파멸에 이른다. 다른 재난영화와 다르게 핵이 터져도 우주에서 지구가 Boom하는 모습만 보여주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시사하고 있는 건 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누군가 아주 간단명료하게 써주었지만, 나는 이 감독의 연출방법에 계속해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길고 긴 영화 얘기를 꺼낸 건 홍성태 시인의 강의 방식과 영화가 비슷하게 진행된다는 점에 있다. 카메라가 두 대나 돌아가는데 현 대통령 비하를 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웃게 해주었다. 나는 시인이 말씀해주신 것에서 놀란 점이 매우 많았다. “한국은 돈 많은 못 사는 나라”라는 비유가 절실히 와 닿았다. 별로 돈이 많은 것 같진 않지만, 타국과 비교했을 때 절대 못 살지는 않는다. 지하철에 결식아동 돕기 모금을 받는 모습이 보이지만, 내 주변에 결식아동이 있지는 않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땅 면적에 비해 슬럼가가 많지 않고, 무엇보다 장님인 어린이가 구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재개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감추고 싶어 하는 성급함이 계속해서 눈에 띈다.

토벌하는 것. 중학교 때부터 산을 깎는 건 자연을 파괴하는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교육을 받았음에도 나는 산이 울창하거나 논밭이 있는 건 보수적인 것이고, 큰 고급아파트가 있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했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지금이야 다른 죽돌들이 계속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시인은 나의 이런 남아있는 생각의 잔해를 ‘후진국가’라는 표현으로 뿌리 뽑아주었다. 마지막 질문 부분에서 한 사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물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궁금해지기는 하다. 예전에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강의를 접했는데, 그 때도 ‘대체 어떻게?’라는 질문은 접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하자에서 10대 작업자로 영상도 찍고 강의 기록도 하고 편집도 하고, 정선에 갔다 와서 미약하나마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자 밖에 나가면 ‘대체 어떻게?’라는 질문조차 할 지 모르겠다. 지속이 중요하고, 행동과 실천이 중요한 건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것도 완벽히 하지 못하고 있다(물론 완벽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시인의 대답은, 10대 10만인 서명 같은 걸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10만인 서명? 서명에 참여한 적이 딱 두 번 있다. 길찾기 때 정토회에서 ‘왜 하는 지도 모르는’ 서명을 ‘그냥’ 동참했고, 길을 걷다가 10대 서명 부탁드려요, 라는 pick up!에 발목 잡혀 그냥 빨리 서명하자, 하는 마음으로 서명을 했다. 그 때의 내 머리를 박아주고 “왜 그랬어? 이 못된 아이야”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의미도 모르는 운동에 내 이름을 ‘그냥’ 적었다. 물론 두 운동의 참 뜻을 알면 더 깊게 심사숙고 하고 결정하여 훗날 훈훈하게 ‘내 이름도 저기에 적혀있어’라며 생각할 텐데. 내 이름 석 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중간에 시인은 88만원 세대를 언급하며 지금의 청년들이 자신의 세대에 보다 당당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셨다. 동의한다. 나는 warm한 세대, cool한 세대, hot한 세대, 88만원 세대, 꿈이 없는 10대 같이 타인이 지어준 이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10대, 나와 같은 문화와 정치, 경제 등을 공유하는 ‘우리’를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또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만약, 내가 좀 더 공부를 차근차근 하고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영화가 찍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상태가 오면 꼭 <Dr. Strange love> 같이 멋진 블랙코미디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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