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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2009 시민문화워크숍 임민욱인데 하자에서는 민욱이라고 불린다. 오늘 준비해 주신 환영의 시간 감동적이다. 고맙다. 앞의 영상은 최근에 LA에서 보여준 것이지만 한국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아르코 아카데미에서 <작가의 위상과 전략_ 작가의 데뷔와 생존>이라는 주제로 강의요청이 있었다. 처음 이 주제를 받아보고 화가 났었다.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시스템 자체가 이 단어를 선택하고 해석하고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요청을 거절하려 했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술에 관심 있거나 혹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이 아카데미에 많이 찾아올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 그 제목에 대한 내 입장에 대해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권 혹은 시스템에서 규정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예술가 혹은 작가들의 존재와 작업에 대해 그들의 논리를 비판하고 예술가의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도시와 영상-의식주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초대된 그 전시회에서 나는 미술관 안에서 전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 작품을 설치를 했다. 제도 안과 밖을 돌아보게 하는 게 제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 전시하는 작업과 더불어 당대 예술 작업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비평적인 메시지를 함께 카달로그에 실었다. 그리고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호흡전(믹서와 쥬서)에 초대받았는데 이 또한 그것을 넓히는 작업이었다. 이미 있는 간판 혹은 현수막의 단어들을 임의로 가려 패러디를 하여 메시지를 재구성했다. 그 전시 작품 중에는 창고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나 안 쓰던 잡동사니들을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서 울타리를 만들어 토끼 두 마리를 사육했다. 종종 토끼가 울타리를 탈출하여 관계자들이 찾아다니고 배설물들을 치우는 수고로움을 끼쳤지만 유일하게 살아있는 작품들이었다고 자부한다. 99년 갤러리 인더루프. 잉크젯 프린트와 오브제 설치에 대해서는 예술과 경제의 문제, 예술은 왜 공짜여야 하는가? 다른 작가들을 위한 일종의 싸움이었으며 이면에는 제도와의 싸움이었다. 현재 이미지를 다루는 다양한 툴이 있지만 당시에는 프로그램이 막 쓰여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그런 툴을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것들을 실험했다. 아까 카달로그에 실었던 기자와의 가상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이미지 조작에 대한 증상에 대해 개인전 포스터 뒷면에 생각을 담았다. 지금까지도 현재성을 잃지않은 이야기라 생각하는데, 개발 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비유하여 보면,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을 남을 혼동시키는 데 사용한다는 등 글로벌화 되는 이미지와 그 조작에 대한 이야기를 텍스트로 담았다. 제 1 회 미디어시티 인 서울(2010예정). 참가 프로젝트 취소작인데 <vertical subway> 지상에 있는 풍경을 지하로 내려 보내고 지하의 풍경을 지상으로 올려 보내는 작업이었는데 종로구청의 보수적인 생각(여자 치마속이 보이는)에 의해 취소되었다. 작가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여러 원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 주관적 이웃집. 이 개인전에서는 커플을 이루고 있는 동료 작업자와의 협업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무엇이 개인전인가? 하는 질문을 풀어냈던 전시다. 또한 공간과 신체의 관계, 신체의 공감각을 느끼도록 영상을 보는 방식을 재구성한 작업 외에 안 과 밖의 경계가 없는 설치를 했다. 2000년 rolling stock 협업으로서 광주비엔날레 출판물. 지금까지 생존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한국을 관광하는 외국인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만들었다. 일상에서 전혀 볼 수 없는 한국의 전통 문화 혹은 민속적 지점과 반대로 접목이 되어 있는 현실을 보고 작가로서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스냅 사진들을 펼치면서 시작했다. 2000 넥타이 부대의 점심식사 전. 작가가 어떻게 미술관 혹은 전시회에 초대되는지를 포스코 사내 신문 5단 광고에 개입하여 작업했다. 작가의 위상에 따라가는 것인지 전략에 따른 것인지 다시 생각을 하면서 따라와 주길 바란다. 사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미술관이 갖고 있는 위상에 대해 패러디로 풀어내는 작업이 이어졌다. 동시에 그때 임신 5개월이었고, 사적으로 공적으로 단단한 현실을 직면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이후 3~4년 동안 프레드릭과 나는 작업 활동을 멈췄고 각자 샐러리맨과 전업 주부로서의 일상을 보냈다. 4년 이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작가로서 다시 삶을 살게 되었다. 2004년도 lost?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처음으로 종합적 공간으로서 멈춰있고 닫혀 있는 조각이자 열려있는 건축적 공간을 선보였다. 컨테이너 프로젝트로 작가의 플랫 홈으로서 열려있을땐 통로가 되기도 하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이 없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작가는 프로그램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기획되어진 프로그램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어떻게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에 대해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처음 질문을 던진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여러 액티비티들 가운데 옷에 구멍을 뚫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05년도에 드디어 하자에 온다. 하자 공간에 컨테이너 프로젝트로 SCRAP이라는 하자 시민 문화 플랫 홈이라는 이름으로 죽돌들이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궁금해 했었고, 작가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작업실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을 수 있듯이 운동가로서 협업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가로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시도를 해보았다. 그 시도의 전개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같이 갈 수 있는, 작업할 수 있는 계기를 갖고 리서치를 하면서 자가 출판 아카이브도 만들고 사운드로도 기록했다. 2005년 실험교환 하자 전. 우리는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파는가를 질문하고 소소하지만 실험적인 시도들을 했다. 실험교환하자, noah-no war는 예술과 거리가 멀게 보이지만 어떤 맥락을 발명하여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2006 피켓. 비폭력 저항 매뉴얼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춘천마임축제에서 진행했다. 디자인이란 정보를 드러내는 프로세스라고 봤을 때 그 서로의 관계는 물론 현실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2005 라운지. 피진 컬렉티브라는 이름으로 한 마지막 작품. 내일이 와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작가는 매개자와 같은 역할, ‘자리’를 마련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같은 해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하는 비디오 작업을 하게 되는데 <new town ghost> 작품은 세계일주한 작품인 것 같은데 뉴타운 개발지구로 지정된 영등포를 중심으로 트럭을 타고 다니며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개발망령에 부응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하는 탄식을 랩으로 표현하였다. 2006년 오리지널 라이브 클럽. 여성전용공간(제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맥락을 통한 전시와 작가의 관계를 통해 다시 질문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생존보다는 실존을 중요시하고 한류, 글로벌리즘 등에 대한 이면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내는 작업들을 했다. 어떤 경계와 어떤 대상들이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작품 앞에 오리지널라이브 클럽 행동강령을 적어서 다 허락된 것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한계를 들추는 작업의 연장이었다. 2007 너무 이른 너무 늦은, 아틀리에(에르메스 미술상 후보 전). 이른바 새로운 유형의 작업으로 회자되면서 예술과 경제 문제, 작가의 생존문제 등 예술이 그런 것을 말할 수 있겠구나,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하는 작가로 주목받게 된 것 같다. 더불어 하자라는 곳이 매개가 되어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이 작품들로부터 한국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것들에 대해 역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들을 담아 보려고 노력했던 작업들이다. 그 때 영상 텍스트에 나오지만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고백은 그러한 한국 근대화의 부조리를 거꾸로 잠재력으로 파악하고 이해해보려는그때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2007 솜사탕 내각. 일시적이고 실패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시도했었는데 이 퍼포먼스를 통해 프로페셔널하다는 것과 아마추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타 장르와의 협업했던 것 중의 하나로 청계천의 장인(기술은 있는데 아이디어는 없는)과 작가들(아이디어는 있는데 기술은 없는)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만남을 주도하고 작품들을 협업을 통해 만들어나갔다. 청계천의 특성과 한국근대화의 특성, 빨리빨리 문화가 낳은 일상용품 가운데 스테레인스 식기, 몸빼 바지의 역사들을 이용해 변경과 재해석을 했던 작품을 모아놓았다. 2008년 제4회 다문화축제. 축제명칭의 변천사가 보여주듯 호명에 관한 혼돈,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들, 우리의 새로운 풍경이자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축제의 세계시장 바자르의 텐트 디자인을 의뢰받았고 두 개의 원이 크로스 되는 형태로 디자인 하였다. 올해 없어질 축제인지는 몰랐었다. 하자 운동장도 마찬가지고 공교롭게 빨리 사라지고 빨리 생겨나는 가운데 작가의 작업은 그것을 기록하고 여기에 무엇이 있다 라는 것을 얘기하는 지점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생각을 시간이 흐를 수록 하고 있다. 2008년 점프 컷.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의 부의 상징인 그랜저를 분수대로 만들었다. 점프 컷 통로는 강화 유리로 통로를 만들고 계단을 올라가면 가지가 밟고 있는 것이 깨져있는 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견고함과 흩어져 있는 것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다. 2009년의 SOS는 관람객을 뱃속으로 삼킨, 말장난처럼. 관람객의 신체감각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우리는 흔히 앉아서 스펙타클을 감상하는데 관람객이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는 것, 좌우로 무엇이 벌어지는지 능동적으로 찾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세 개의 퍼포먼스를 구성하였다. 잠수교 옆 낚시터에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십대와 20대가 거울을 들고 빛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동시에 반사하는 관계로 일자리를 달라는, 이른바 전향 포인트였다. 최근 작업으로서 2009 portable keeper. 어느 날 길을 헤매다 폭격 맞은 동네 같은 모래내 시장 근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기억의 회로를 뒤적여 보니 어릴 때 그 공간에 대해 사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공간의 사적인 기억이 공적인 기억과 연결 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정치적으로는 뉴타운에 대한 찬반이 있다. 정치는 바꾸겠다 라는 말을 하는데 미술은 그 말, 우리 언어의 한계를 또 한번 밀어붙이고 다른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이상한 막대기를 들고 폐허를 거닐게 하는 것은 보상과 철거민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또는 집단 기억상실증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속도와 움직임이 압축적일 때 나타나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포착하는 작업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면서 관계를 주목하고 관계를 생성하는 일 혼자서든 여럿이든 사람을 만나고 서로 배우며 관계를 발명하고 나누는 일. 정치와 예술은 결국 균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물과 관계에 대한 균형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본 윤미화의 독서기 중 한 부분을 다시 인용 재구성하여 예술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것을 이야기하고 끝내겠다. 실존을 말하지 않는 예술은 사이비이고 상상력으로 위로해주지 않는 예술은 관속에 넣어야하고 최후의 질문조차 남기지 않는 예술은 불쏘시개로 끝나야 한다. Q&A
민욱: 핸드폰에 지금 메모되어 있는 문장 중 하나가 볼테르의 말이다. ‘나는 지금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내일 당신이 그 사상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이다. 하나 더, 김훈 소설가의 말, 고통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 편에 서 있을뿐이다. 예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가령 한 예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을 위해 내가 기존의 activist처럼 활동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헤아리는 언어들을 발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레토릭을 갖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 고통의 역할을 사랑의 경험과 견주는 것. 모두가 빛을 바라고 옳다고 할 때 거기서 생겨난 나머지 그림자를 보는 것이 작가로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셀은 모든 것을 새로운 것으로 종합해서 창조함으로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을 말했다. 분열되고 대립적인 상황해서 새로운 것으로 종합해서 창조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무엇을 본다. 무엇을 봤다. 내가 본 것을 봐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무언가 있다,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Q : 새로 발명된 언어이기 때문에 관객의 반응이 중요할텐데. 민욱: 대중매체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대중을 의식하고 그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관계가 중요하다. 대중이라는 것은 나에게 추상적일때 중요하지 않다. 개별의 관계가 중요하다. 질문한 분이 작업을 보고 생각한 것은 중요하다. 시트콤과 9시 뉴스와 같은 대중적 감각과 정보와 싸워야하는 부분이 있다. 기억마저 조작되고, 학습되어진 감각들이 공산품, 규격품처럼 된다. 미술가는 그것을 깨는 사람들이다. 관람객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중요하다. 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동선으로 어떤 시간을 보게 하는지를 발명한다. SOS도 그런 점을 신경을 썼다. 그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은 자기가 움직이면서 본 감각이 있다고 말한다. 움직이는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머리만 살찌고 있다. 여러 방식으로 여러 층위로 나누어서 곱씹어 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도 미술적 오브제가 호프 집에도, 어느 시인의 방에도 갈 수 있고 그것이 움직였기 때문에 드러난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 중요하다. Q : 사용하는 매체가 다양한 것 같은데 그것을 선택하고 체계를 세울 때 영감을 주는 인물이나 장소가 있는가? 공공적인 일을 몇 가지 하셨는데 그때 필수적으로 지켜나가야 했던 것/ 타협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민욱: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의 영감은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굉장히 구체적이다. 내 이웃, 친척, 가족들을 들여다보면 압축적인 존재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확고해진다. 사회적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미술을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확고해진다. 만남이 영감이 되고 다시 나눌 수 있게 한다. 항상 비판적인 기능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협업하는 것이다. 공적인 것은 작업을 겸손하게 만들면서도 스케일이 커지기도 한다. 공동체적인 감각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다뤄질 것이다. 협업하는 것은 제약을 끌어안는 것이다. 제약이 있기 때문에 비상하고자 한다는, 같이 날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것이 멋있는 것이 아니라 중력이 있는데 새가 나는 구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Q : 얼마 전에 정선을 다녀왔다. 영국에서 온 제임스해리스라는 사진작가는 한국은 작업을 하기에 흥미로운 곳이다 라고 말을 했다. 나에게는 서울은 익슥해서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힘이 들다. 민욱은 어디에서? 민욱: 내가 전시하러 외국으로 갈 때에도 이러한 로컬한 부분이 어떻게 글로벌과 맞닿아 있는가에 대해 항상 같은 생각이다. 88만원세대의 이야기는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영등포에 대한 이야기 또한 사라짐과 속도에 대한 문제로 세계가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면서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로 존재를 축소한다. 그러나 나는 일상이 어떻게 제도와 시스템의 매카니즘을 증언하고 있으며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드러내는 지가 곧 예술 작업으로 옮겨진다. sos와 같이 이것은 대중들의 언어와 맞춰주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Q : 영상이나 행위, 설치 등 매체를 다양하게 하시는 이유는: 민욱: 저는 고루한 미술 교육을 받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전공도 그림을 했다. 그 이후 데뷔를 했다, 그림으로. 어떤 장르적 구속이 있었고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내가 구체적인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장르 매체에 대한 구분을 없애버렸다. 이야기의 형식을 발명하고 질문을 남기고자 했으며 이때에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중요했지 매체에 대한 것은 중요치 않았다. 미술관 밖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전시를 했을 때 어떤 도구에 대한 고민이나 반드시 써야 할 도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이런 것은 아이들이 비온 후 물이 괴인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노는 것과 비슷하다. 다양한 매체를 쓰는 작가는 숙련된 기술을 다루는 것과 달리 놀이가 중요하다. 순수한 놀이. Q : 창작의 의무라는 말이 신선하면서도 낯설었다. 창작의 고통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흔히 이야기가 되어 왔는데 이 의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민욱: 내가 말하려고 하는 창작의 의무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의무는 아니다. 자유롭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었는데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디자인 그룹과 함께 구체적이고 작은 작업들을 시작했고 피진에서도 내조자처럼 작업을 했다. 예술은 세상의 내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안에서 돕는…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나왔던 어린 아이와 낙타, 사자가 나에게 중요하다. 모순된 양상에서 순수하고 창작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항상 머리에 두고 있다. ‘너는 해야 한다’와 ‘나는 하고자 한다’. 창작의 의무는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표현하지만 이때에 어린 아이가 중요하고 또한 조심스럽기도 하며 억눌린 부분을 끄집어냄에 있어 자유스럽게 한다. 이런 부분에서 하자와 함께 하면서 에너지를 느꼈던 것 같다. 생존보다 실존으로서의 의무이며 이에 대한 인정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작가가 윤리, 의무, 뭐 이런 것을 말하면 고리타분해 보일텐데 내 숨길 수 없는 특성 가운데 하나임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고통과 괴로움이 아닌 즐겁고자 하는. Q: 한강퍼포먼스와 광주비엔날레를 다녀왔는데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강퍼포먼스는 탔던 사람들을 위한 지나가던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었는지? 민욱: 퍼포먼스를 보러 온 페스티벌 관객과 유람선을 타러 왔던 일반 관람객이 함께 타고 있었다. 퍼포먼스는 그 당시 한강변의 공사장을 조명했고 한강의 기적의 또 다른 버젼이 선장 목소리로 들려지면서 사람들의 감각은 증인으로 자극되고 일시적이지만 일시적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Q : 실존을 말하지 않는 예술은 사이비다 라는 말에서 그렇지 않은 예술이 사이비라고 할 때 그것은 가짜인지: 민욱: 일단 인용해서 재배치한 문장이었고 그 말은, 실존을 말한다는 것은 제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작가의 생존과 위상이 있음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문제제기한 단어처럼 전략? 그런 건 없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이젠 예술도 브랜드 홍보 마케팅 전략가들처럼 움직이는데, 나는 어떤 위상을 위해서 어떤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이미지에 부합된 예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가 쌓아 올린 것을 스스로 허물 수도 있는 일이고, 부과된 이미지, 기존 논리와 같은 것들에 대한 질문과 반문을 하는 것이 예술이고 이것이 아닌 것은 허상이고 사이비라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술은 운명적인 공동체 관계에서 고립된 고독한 그 무엇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만들어져 있는 것을 그냥 추종하지는 않는 상상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운명에 대한 관점을 어떤 방식으로 따르느냐, 차별화 하고자 말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예술이 안정적인 직업과는 거리가 멀기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어쨋건 여기서 실존이란 주어진 정의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하면서 하나의 존재로 성립한다는 걸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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