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누구와 살고 있나요?]
이 세상는 내가 하고 싶은것도 많고 잘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 개개인의 욕망, 욕구가 자연스럽게
경쟁을 일으킬 테고 그러면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집중조명을 받게되고
또 우리는 다시 그 하나의 지점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이렇듯 사회가 위를 보고 달리는 사이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모두가 잘 살 순 없을까? 더 있는 사람이 덜 있는 사람과 조금씩 나눠 갖고 살면 어떨까? 라는
아이같은 질문을 하게된다. 세대마다 신세대라고 기성세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게 되고 기성세대의 입장이 되는 것 처럼 우리는 참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한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과정이 있는 것 처럼 없는 사람은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생태계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데서
균형이 깨지는 것처럼 인간만 놓고 봤을 때의 문제도 과정은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는데 '부'의 순환 과정에서
기성 세대들이 너무 안 뺏기려는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 그렇다면 "기부"는 또 무슨 소린가?
기부를 하는데 습관처럼 하는 사람, 어렵고 힘든 상황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무관심한 사람.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기부를 위한 여러가지 행사를 만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더라는 말은 더 나아졌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왜 일까?
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봐야하는 걸까?
시선이 불빛이라고 하지만 당장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얼해줄 수 있는건지.
그리고 이미 열심히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려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꾸로 내가 말하고 있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 같이 하자라고 얘기하는게
다 쓸모 없는 소리가 되어버린다. 이런 함정에는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럼 내가 방법은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정말 본질을 파악해서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을 때 부터
하나 둘 씩 생겨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려움에는 대안을 찾고, 시야는 넓게 가지고 행동은
지금 주위부터 시작한다면 그게 시너지 효과를 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당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의미를 갖고 산다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들이 모여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그만한 마을들을 만들어
이웃이 된다면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담, 나는 누구와 이웃하여 어떤마을을 구상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