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움을 지속하는 것

 

하자라는 곳을 처음 찾기 전에 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두려움과 소속감에 대한 불안감이 겹쳐져 있는 상태였다. 하자에 들어오고 나서 소속감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졌지만, 정작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 불안감은 곧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자는 나에게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길 찾기 과정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요리를 하고, 취미로 밴드를 하며, 정작 연극을 하려고 했던 나는 갈피를 못 잡은 채 휘둘리며 하자를 다니다가 공연팀의 쇼하자를 보았다. 공연팀의 쇼하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 무대에 올라가서 신나게 악기를 치고, 관객과 같이 놀고 싶었다. 그러면서 취미로 하던 밴드의 영향이 커져서 나는 길 찾기 1학기를 마무리 하는 쇼하자에서도 취미로 했던 밴드만으로 쇼하자를 했다. 길 찾기 1학기가 끝나고 2학기 째의 길 찾기 때도 다른 프로젝트 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밴드를 하며 결국엔 홍대에 ‘재머스’라는 클럽을 빌려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길 찾기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작 많은 일들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대에 서는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의 대한 조금의 망설임이라도 없다면 당장 시작해야 된다. 길 찾기 때는 몰랐지만 주니어가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갖는다면 하고 싶은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음이 분명함을 알게 되었다. 

길 찾기 이 후 주니어로써 선택한 공연 팀은 나에게 시작부터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난 분명히 아까도 말했듯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공연팀<촌닭들>의 시작은 내가 생각했던 밴드의 음악이 아닌 월드뮤직 ‘삼바’였다. 공연팀을 해야 될지 망설이다가 딱히 ‘삼바’라는 장르가 싫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길 찾기 수업으로 퍼커션 수업이 있기도 했고 역시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큰 두려움 없이 도전했다. 하자는 이후에도 나에게 새로운 문화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도전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었다. 

공연팀에서 새로운 공연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즐거웠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관계의 문제는 이미 내가 습관화 되어있는 것을 깨고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자에서의 관계 맺기는 하고 싶은 일 찾기 이 후로 두 번째로 온 새로운 도전과제였다. 하자 안에서의 관계 맺기의 방식은 모두가 동등하고 서로를 존중해주어야 하는 ‘작업자’와 ‘작업자’의 관계 맺기였다. 작은 학교에서 누구를 만날 때 선생님, 스님, 학생 등의 직업으로써 상대방을 대해본 적은 있지만 작업자의 태도와 신념으로써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같이 또래의 친구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거나, 말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조심해야 된다거나, 화를 내는 것조차 조심해야 되는 것,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공유하는 방법, 작업을 할 때 지켜야 되는 예의 나에겐 크나큰 스트레스로써 다가왔다. 더군다나 공연팀<촌닭들>은 나와 같이 작업장학교를 시작한 하자의 죽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자의 문화를 접하고 있던 다른 죽돌 들과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그리고 공연팀<촌닭들>에는 유일하게 남자는 ‘나’ 뿐이었기 때문에(꼭 남자라서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은근하게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트러블을 더 많이 일으켰다. 나는 그렇게 주니어 1학기를 마쳤다. 1학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팀별 회고모임을 가졌을 때 졸업생이자 촌닭들의 공연판돌인 제리의 코멘트를 시작으로 마치 모두가 짠 것처럼 나에게 똑같은 코멘트를 했다. “넌 너무 짜증나라는 말을 많이 해. 네가 짜증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짜증나지 않던 일들도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해.” 그 코멘트는 다시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도 똑같이 짜증을 냈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휘가 코멘트를 했다. “짜증나라는 말을 줄여봐. 그 말을 10번 한다면 1번으로 줄이고, 정말 말해야 되는 순간이 있을 때, 그 말을 꺼내어봐.” 이것은 내가 작업자와 작업자간의 처음으로 듣는 코멘트였다. 단순히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는 것이 아닌, 친구들 끼리 말다툼으로써 상대방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닌 그 이상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모두 같은 위치일거라 생각했던 죽돌 들의 관계가 2학기로 접어들면서 팀장제도가 생겨났다. 그 때 나는 적어도 팀장은 공연 팀 내에서 가장 악기(퍼커션)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팀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난 팀장이 되지 못했는데, 그렇게 팀장이 되지 못한 것이 분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어서 하자에 들어와서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판돌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처음 찾아간 판돌은 히옥스였다. 내 역할이 마치 악기만 치고 있는 곰돌이 같고, 지금의 팀장과 부 팀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을 때 히옥스는 나에게 서로의 다름과 능력을 인정해주고 서로 도와가야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팀장과 부 팀장의 역할과 자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나는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하고 자신을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됨을 알았고, 내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무슨 말을 고민할 지 생각해 봄을 통해서 그 이후의 팀 안에서의 내 의견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짜증으로써 상실되고 있던 신뢰도는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만약에 상대방의 코멘트를 인정하지 않고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시니어까지 공연팀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새로운 관계 맺기의 경험은 지금의 나에게 관계의 시작은 상대방을 한 가지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변 환경과 경험들을 통해서 바라보고 진정으로 존중해주는 것에서 시작함을 알게 해주었고 그것은 나에겐 ‘사람을 만날 때 예의를 지키는 방식’으로써의 학습으로써 남았다. 그리고 이 경험은 팀 안에서의 공연자로써의 시작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시작이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 내가 했던 공연은 영덕의 홍보대사로 초청되어 인사동에서 했던 바투카다 공연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해본 공연들 중에 첫 번째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많은 페이를 받은 공연이었다. 그 때의 나는 처음으로 무대에서의 그 시간을 만끽했다. 내가 처음 한 좋은 공연은 관객과의 소통도, 연주 실력도 아니었다. 지금 내가 무대에 서있다는 그 자체로도 나에겐 전부였다. 그렇게 공연을 즐긴 뒤에 돌아온 뒷말로는 우리의 공연이 너무 형편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공연이 첫 외부 공연이라 처음으로 ‘모니터링’ 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부끄러워서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생각했던 이미지보다는 너무 초라했고, 말 그대로 소음 그 자체였다. 아마 그 때 나 외에 모든 단원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함) 그 때부터 모니터링해도 부끄럽지 않은 공연을 만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 이후 브라질에서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팀들의 영상을 보면서 정작 우리의 연습시간에는 그런 사운드가 나오지도 않고, 연습이 안 되서 화를 내고 나가거나, 절망한 적도 많았지만, 공연을 할 때만큼은 모두가 즐거웠다. 그리고 공연을 하고 끝난 뒤에 전화번호를 물어보러 온다거나, “쟤 멋지다.”라고 말해주는 그런 시선들과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아주 일부분이다.)더욱더 에너지를 받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공연을 평가해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관객이 있음을 깨닫고 공연은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공연을 하는 것에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면, 촌닭들은 학교 공연 팀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공연의 수준을 올린 기존의 멤버가 나가고 새로운 신입멤버를 받아야 상황이 온다는 것이었다. 신입멤버들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과정들을 처음부터 다시 알려주어야 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해왔던 것들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흉내내기’ 워크숍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길 찾기 워크숍, 성미산 워크숍, 강진늦봄학교 워크숍, 홍콩창의력학교 워크숍, 동부 보호관찰소 워크숍 등을 하게 되었다.  

만약에 촌닭들이 기존의 멤버로 계속 이어져 나갔다면 워크숍의 경험을 해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맨 처음에 나는 워크숍이 정말 싫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기 위해 해야 되는 것들이 정말 어려웠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서 해왔던 것들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어색해하며 내가 했던 기본을 다시 알려주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공연처럼 내가 너무 신나서 하면 안 되고, 강사의 태도를 따로 배워야 됨이 가장 어려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지난 관계 맺기와 같은 하기 싫은 일을 한 번 해봄으로 인해 알게 된 부분이 있기에 나는 금세 워크숍을 해야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후 난 워크숍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써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워크숍 후에 자신이 가르치는 방식 그리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들을 다시 한 번 다듬게 되었다. 워크숍과 공연들을 통해서 나는 나 혼자만 무대에만 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었고, 그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워크숍과 공연을 하며 혼자가 아닌 팀이었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배움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코멘트를 하는 방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코멘트를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어떤 코멘트를 하는가에 대한 경험이다. 나도 코멘트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했던 시절이 있다. 근데 그 방식은 상대방에게 ‘그저 너가 잘못했다.’ 와 같은 비난의 말 들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했던 공연과 워크숍의 회고회의에서의 코멘트들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되어 오고간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판돌들의 코멘트를 들으면 ‘독’이 아니라 ‘득’이 되었는데, 계속 듣다보면 판돌들의 코멘트는 잘못에 대한 지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 혹은 다른 사례를 통한 대안점에 대해 제시함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어떠한 코멘트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문제점을 어떻게 같이 풀어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됨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코멘트를 하는 시간은 주로 워크숍을 진행 하면서 나오는 각자의 습관(말과 행동)의 문제점과 공연을 망친 다음이었다. 길 찾기 워크숍 도중에 악기를 가르쳐주거나, 어떠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진행방식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것은 아무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러 나온 코멘트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서 천천히 나아가던 워크숍의 진행이 멈추거나 워크숍 도중 죽돌 들끼리 싸우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것이 아무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대안이라고 하더라도 진행 도중에 코멘트를 하는 것은 불이 붙으려고 시작한 작은 나뭇가지에 도움이 되라고 거대한 통나무 조각들을 올려놓아 불을 꺼버리는 격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연을 망치고 나면 망쳤던 이유와 그리고 상대방이 연주를 틀렸던 부분들을 바로 지적했던 적이 있는데, 이미 그 사실은 그 죽돌도 알고 있었고, 열심히 했지만 공연을 망쳐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의 팀원의 기분을 더 안 좋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렇듯 코멘트를 하는 데에는 어느 때에 하는가에 대한 부분에도 고려해야 됨을 알게 되었다. 

코멘트는 것은 비난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난은 상대방이 하고 있는 일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지만, 코멘트라는 것을 할 때의 마음은 상대방이 이 코멘트를 듣고 정말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서 자신의 생각과 대안 점들을 같이 내놓아야 할 줄 알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팀뿐만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작업할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에서 꼭 필요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공연과 워크숍을 통해 ‘촌닭들’이라는 이름으로 전전긍긍 하는 동안 휘와 제리가 떠나서 담임판돌이 없는 공연팀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공연을 나갈 때나, MT, 회의 등의 시간에 히옥스와의 잦은 만남을 통해 어느 덧 히옥스는 공연팀의 담임판돌과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히옥스가 공연팀에 들어오시고 나서부터 우리가 했던 즐겁고 좋은 공연에 의미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 의미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하는 공연이 아무 이야기도 없고, 공연팀 멤버들의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왜 그 공연을 했나?”라는 질문은 우리가 하는 공연들을 통해 무슨 학습이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들이었는데 갑자기 악기연주와 표정 짓는 방식, 공연의 분위기만 생각하던 나에겐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그 이 후의 질문들에 대해 진척이 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히옥스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이야기가 담긴 공연을 하기 위해선 그 행사에서 이야기 하려는 것이 무엇이며, 전체적으로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가 하는 노래에는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곡의 구성이 만들어져야 되고, 공연이 연출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내가 아직 잘 구성해내고 있거나 만들어 내고 있지는 못하다. 대신 지금 이 질문을 통해서 바뀐 점이 있다면 어떤 공연이나 작업을 하던 ‘왜’ 이 공연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먼저 묻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평화’를 외치는 공연에 초대받아서 무대에서 “공연을 해서 즐겁다.”와 “공연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음에 즐겁다.”에는 공연을 하는 태도와 의미에서 부터 차이가 난다.    

4년간의 하자에서 팀의 경험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 무대에 서기까지의 준비단계였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간들의 경험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에 했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는 두려움을 없앨 수 있던 것은 끊임없이 옆에서 도전 과제를 내준 하자작업장학교의 판돌들이 있기에 가능했고, 내가 말하는 태도와 무의식중의 모습들을 옆에서 바라보며 지적해주었던 죽돌 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도전하면서 내가 겪어야 할 변화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많은 생각과 일들이 시도와 변화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되는 것은 자신에게 변화가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최근 반년의 시니어 기간 동안 난 고립되어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주니어 수료 이후 시니어가 되면서 다른 주니어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내가 다 겪었던 문제들이고, 하자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난 철저하게 ‘겉멋’이 들었다. 시니어가 되면서 해야 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의 흐름에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고,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매우 조심해져야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했다. 특히 20대가 되면서 더욱 그 부분은 나에게 스트레스이자, 숙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더 어떤 이야기를 하던 소위 ‘정답’만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 난 맨 처음 그런 ‘정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다른 죽돌 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겉멋만 들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현실의 대한 문제에 대한 이미 남이 내려놓은 정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 그 정의가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의 대한 질문도 없고, 내 추측과 남이 내려놓은 ‘정답’이 난무하는 이야기들을 해왔다. 그리고 시니어가 되면서 잦은 지각과 프로젝트 시간에 조는 모습들은 모두의 눈에 좋게 비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는 순간부터 나는 등교거부증이나 자신감결여, 우울증과 외로움을 느끼며 정말 힘들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뭉개버리는 데에는 반년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고,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서 내가 가장먼저 취한 행동들은 그 전에 내 행동들을 되돌아보고, 나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해주었던 코멘트들을 기억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각과 조는 습관을 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안정된 생활패턴을 유지하면서 그간 해보지 않던 일들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책을 꾸준히 읽는 것에서부터, 영어를 공부하는 것, 시를 쓰는 것과 같은 지속 가능한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은 닥치는 대로 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은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 지속성 있게 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해야 될 일을 맡게 되도 끈기 있게 해나간다면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만들어 낼 결과들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하자를 졸업하는 나는 더 이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며 그 전에 있던 과정들을 가지고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해야 됨을 알았다. 하자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멈추어진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닌 나의 발전에 끊임없는 에너자이저가 될 것이다.

 

profile
오앙! 엽입니다.
e-mail: yeop@haj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