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세상을 구하는’시인들. 그들은 지금 현재 이 시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자신이 내어야 하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고 언어로 표현할 줄 알며 자신의 키워드로 나, 너, 세상을 보듬어 자신의 영역과 위치에서 각자의 판을 만들고 있다.
난 이제껏 이 시대가 어떤지, 어떻게 표현되고 정의할 수 있는 시대이고 세대인지 감지하지 못 했을 뿐더러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라는 울타리, 대한민국이라는 벽에 난 그저 ‘소속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난 무엇을 하려던 간에 부모님

의 동의 혹은 주민등록증이 필요한 이 사회 속에선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정치’라는 것, 모든 규칙에 대해 이미 정해진 것

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내 주위에 있는 것들부터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발언을
했고 목소리를 냈던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6분의 시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거리를 던져주셨고 스스로의, 내면

의 힘을 성장시키고 목소리를 내라고 하셨다.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내 얘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선 내 키워드로, 혹은 그 키워드

를 찾아가며 개개인의 색깔에 맞게 움직일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시민’이라는 것과 ‘시인’이라는 것으로 날 설명할 수

있고 내가 그것들이 되어서 움직이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내가 시민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 무엇에 ‘책임’을 지느

냐에 대한 것을 추상적으로 ‘시민’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홍성태 시인이 ‘판’에 대해 말씀을 잠깐 하셨다. ‘판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근원적인 기초, 그것을 판이라 설명하셨다. 어떤 판에 어떤 판을 벌일 건지에 대해 생각하기 전 그 판을

단단하고 강하게 하지만 안전하게 스스로가 만들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내 주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나아가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구체적인 판을 만들고 그 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겠지. 그렇다면 그것 또한
시민으로서 가질 책임감인 것 같다. 아직 하고자 하는 미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지진 못했지만 여러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위치와 관점으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고 그 바라본 것을 가지고 지금부터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하승창 선생님 말씀처럼

‘많은 것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선택’과 ‘잘라내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전엔 어떤 ‘주제’가

있을 때 거기에 맞는 보고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내 궁금증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하는 이 두 가지 과정을 같이

함께 가져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거쳐 온 혹은 지금 속해있는 공동체, 내 역할이 ‘판’을 만들어 주는 좋은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혹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는 게 첫 번째인 것 같다. 민욱씨가 ‘밀어

붙이고 나서 계기를 찾는다.’라는 말씀을 해주실 때 내 준비성에 대한 태도, 한마디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한 번 더 강조했다. 수동적인 태도로서의 시민이 아닌,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겁을 내는 시민이 아닌 날 이루

고 있는 것들, 입장과 위치로 인한 스스로의 애매모호함을 극복하고 아직은 어려워하지만 소소한 문제가 왔을 때도 조바심보단

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